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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WS 중간 점검 - ‘무적함대’ 보스턴

by 카이져 김홍석 2007. 10. 27.
월드시리즈 1,2차전을 모두 보스턴이 가져갔다. 시즌 내내 투타에서 팀을 이끌었던 에이스 자쉬 베켓과 팀내 타점 1위 마이크 로웰이 이끌어낸 기분 좋은 승리다. 시리즈 프리뷰는 콜로라도 중심으로 살펴봤으니, 이번 중간 점검은 보스턴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사실 지금의 분위기로 봐선 콜로라도 로키스가 과연 반격을 할 수 있을지 조차도 의문이다. 그들의 가장 큰 무기였던 ‘기세’는 한풀 꺾여 버렸고,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해보니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태산과도 같은 전력을 자랑하는 보스턴 레드삭스다. 1차전에서는 에이스의 역투와 불을 뿜은 막강 타선의 힘으로 손쉽게 승리를 가져가더니, 투수전 양상으로 펼쳐진 2차전도 집중력에서의 우위를 선보이며 홈에서의 2경기를 모두 쓸어갔다. 항상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클린트 허들 감독의 인상이 펴지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 2007년 최고의 팀

올 시즌 내내 좋은 성적을 이어왔던 팀들이 몇 군데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보스턴은 가장 안정적인 전력을 자랑했다. 시즌이 80%가량 진행되었을 무렵까지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을 만했던 팀은 보스턴 외에는 LA 에인절스와 뉴욕 메츠 정도.


하지만 에인절스는 블라드미르 게레로를 받쳐줄 거포의 부재가 계속해서 약점으로 지적되었고, 그러한 면은 결국 포스트 시즌에서 그들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게레로가 침묵하자 해결사 노릇을 해주는 선수가 없었던 것. 메츠 역시도 안정된 전력을 자랑했으나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공백으로 인해 확실한 에이스 카드가 없다는 점이 문제였고, 끝내는 시즌 막판에 침몰하며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보스턴은 달랐다. 저력의 뉴욕 양키스가 치고 올라왔을 때도 끝끝내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지구 1위를 지켜냈다. 그들에겐 믿을만한 에이스가 있었고, 전반기 잠시 부진에 빠지기도 했었지만 어느 팀과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 중심타선이 존재했다. 조나단 파펠본이라는 최고 수준의 소방수가 맹활약했고, 혜성처럼 나타난 오카지마는 불펜의 깊이마저 더해주었다.

유일하게 1번 타자 자리가 문제가 되었으나, 그것도 신인 더스틴 페드로이아가 꿰차면서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거기에 든든한 수비와, 기존의 매니 라미레즈-데이빗 오티즈의 익살 콤비에 신예 파펠본까지 합동으로 웃음을 선사하기 시작한 벤치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강팀’이 가져야 할 요소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가지고 있었던 팀이 보스턴이다.


▷ 격이 다른 인기의 전국구 팀

아직도 일부 전문가들과 라스베가스의 도박사들은 보스턴이 패배에 젖어있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그들의 승리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그런 예상을 비웃어주기라도 하듯이 드라마틱하게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2경기를 내리 승리했다. 디비즌 시리즈에서는 ‘집중’하는 매니 라미레즈가 얼마나 무서운 선수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고,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확실한 에이스 카드 한 명이 단기전에서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가지는 지를 증명해 보였다. 거기다 3년 전 3패 후 4연승의 ‘기적’을 일으켰던 경험과 그로 인해 파생된 집중력은 다시 한 번 1승 3패 후 3연승을 내달리는 ‘작은 기적’을 다시금 연출하며 극적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던 것이다.


전국적으로는 비인기 팀에 가까운 콜로라도 로키스가 올라오는 바람에 많은 이들이 월드시리즈 시청률을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다.(한국에서는 일부 팬들이 이러한 내용이 보도된 기사를 비웃기도 했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중계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보스턴이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며 월드시리즈에 진출함으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 되었다.


10.5%를 기록한 1차전 시청률은, 비교적 전국구 팀에 가까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맞붙었던 지난해(10.1%)보다 높은 수치다. 같은 전국구 팀이라도 레벨이 다르다는 것을 올해의 보스턴이 직접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보스턴이 86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던 2004년에는 15.8%의 시청률을 기록해 199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었다.


이제 메이저리그 최고의 흥행 카드는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 간의 월드시리즈 매치업이 아니라 보스턴 레드삭스와 내셔널 리그 중 한 팀 간의 대결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한국의 메이저리그 팬들 중에서도 보스턴 팬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으며, 레드삭스 관련 커뮤니티와 전문 블로그가 몇 개씩이나 따로 존재할 만큼 그 영향력이 크다.


▷ 플로리다와의 트레이드

2005시즌 종료 후 보스턴은 플로리다 마린스와 대형 트레이드를 만들어냈다. 4:3의 트레이드였지만 어느 정도 알려진 선수들만 살펴본다면, <자쉬 베켓(투수) + 마이크 로웰(3루수) = 핸리 라미레즈(유격수) + 어니발 산체스(투수)>의 트레이드 구도라 할 수 있다. 베켓이 15승을 기록하긴 했지만 5점대 방어율에 그친 지난해만 하더라도 내셔널 리그 신인왕을 따낸 헨리 라미레즈(지난해 17홈런 119득점 51도루 타율 .292 )와 신인으로서 10승을 달성하며 노히트 노런의 쇼까지 펼친 산체스(10승 3패 2.83)의 활약 때문에 테오 엡스타인 단장은 적지 않은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다.


결국 막판 뒷심이 모자라서 포스트 시즌 진출에도 실패했고, 시즌 종료 후 톱타자와 유격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년간 3600만 달러나 들여 훌리오 루고를 영입해야 했으니, 갈수록 비난의 강도는 더해만 갔다. 게다가 올해 루고가 심각한 부진에 빠진 사이에 헨리 라미레즈는 시즌 내내 MVP급 활약을 펼치며 특급 유격수로 성장해 버렸다.(29홈런 51도루 125득점 .332)

하지만 이제 와서 그 당시의 트레이드를 비난하는 이는 없다. 아니,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매니 라미레즈와 데이빗 오티즈가 동반 부진에 빠졌던 전반기에 팀내 홈런-타점 선두를 달리며 팀 타선의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선수가 바로 마이크 로웰이다.


시즌 시작부터 9연승을 내달린 베켓은 메이저리그 유일의 20승 투수로 우뚝 섰다. 포스트 시즌 내내 그 누구와의 비교도 불허할 정도의 위력적인 투구로 “베켓이 나오면 무조건 승리한다”라는 공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베켓의 올 해 연봉은 겨우 600만 달러, 앞으로도 3년 동안은 3200만 달러라는 헐값(?)으로 써먹을 수 있다. 이번 월드시리즈 1,2차전의 수훈갑도 바로 베켓과 로웰이었다. 2003년 플로리다 우승의 주역이었던 이 둘은 4년 만에 팀을 바꿔서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 프랑코나의 뚝심과 선수들의 화답

베켓은 지난 2003년 월드 시리즈에서 3차전 등판 후 4일 만에 6차전에 선발 등판해 2:0 완봉승을 일구어내며 소속팀 플로리다에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안겼다. 앞서 벌어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도 5차전에서 4:0 완봉승을 거둔 그는 3일 후 벌어진 7차전에 또 다시 구원 투수로 나와서 4이닝을 1실점으로 막으며 승리의 주역이 된 경험이 있다.


베켓은 4일만의 등판을 최고의 결과로 보여준 몇 안 되는 투수 중 한명이고, 그런 선수를 보유한 감독이라면 10일 동안 7경기가 펼쳐지는 이번 챔피언십과 월드 시리즈에서 베켓의 1-4-7차전 기용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겉보기와는 다른 뚝심을 보여준 프랑코나 감독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1승 2패로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4차전에 베켓을 기용하지 않았다. 결국 4차전은 내줬지만 베켓의 역투와 선수들의 집중력으로 5,6차전을 승리한다.

남들이 난조를 보이는 마쓰자카의 7차전 기용을 두고 고민할 때 프랑코나는 “예정대로 간다”는 말로 일축했고, 마쓰자카도 그런 그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며 영광스러운 7차전 승리 투수가 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포스트 시즌 12경기를 치르는 동안 1번부터 5번까지의 타순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6번 타자인 J.D. 드류도 “내년 시즌을 위해 포스트 시즌마저 버렸나?”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부진했음에도 불구하고, 2경기를 제외하곤 모두 선발 출장시켰다. 결국 챔피언십 시리즈 내내 속을 썩였던 1번 타자 페드로이아와 6번 타자 드류가 6,7차전의 승리를 만들어 냈다. 이는 프랑코나 감독의 뚝심의 승리이기도 했다.


게다가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보름간의 휴식을 취하게 했던 오카지마는 철벽 셋업맨으로 돌아와 파펠본과 함께 팀의 승리를 책임지고 있다. 유니폼 입는 것도 싫어해 간단한 티셔츠 하나만 입고 경기장을 누비다 사무국으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한 프랑코나는 이제 ‘승부사’라는 명칭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수준이다.


▷ 남은 것은 승리 뿐?

보스턴이 6번째 월드시리즈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무려 86년의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7번째 우승은 3년 만에 이루어낼 확률이 높다. 이제 남은 것은 2승, 베켓의 등판에서 1승을 확신할 수 있다면 나머지 4경기 중 1경기만 승리하면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콜로라도의 역전 가능성은 너무나도 희박하다.


하지만 희박하긴 해도 그 가능성이 ‘제로’인 것은 아니다. 쿠어스 필드에서 열리는 3~5차전은 내셔널 리그의 룰이 적용된다. 즉, 지명타자가 사라지고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야 하는 것. 챔피언십 7차전에서 호투했다고는 하나 마쓰자카는 여전히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일본에서도 지명 타자 제도가 있는 퍼시픽 리그에서 활동한 그는 타격에서 완전 젬병이다. 웨이크필드 대신 4선발로 들어서게 된 신인 존 레스터(4승 4.57)도 쿠어스 필드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애런 쿡(8승 7패 4.12)에 비하면 한참이나 모자라다.


무엇보다 큰 불안 요소는 수비. 데이빗 오티즈의 타격을 포기할 수 없는 보스턴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그를 1루수로 기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덕분에 1루수로 나선 135경기에서 단 하나의 에러도 기록하지 않았던 케빈 유킬리스와 견고한 3루 수비를 자랑하는 로웰 둘 중 한명은 경기에서 빠져야만 할 상황. 이는 타력의 하락과 함께 큰 수비의 구멍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최근 3년 동안 오티즈가 1루수로 경기에 나선 것은 27번에 불과하다.


또한 원정 팀들이 쿠어스 필드 적응에 애를 먹는 것과 달리 콜로라도는 이미 그 환경에 최적화 되어 있는 팀이다. 62.2%(51승 31패)라는 높은 홈경기 승률이 이를 증명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홈에서 열리는 3~5차전을 모두 잡아낸다면 역전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5차전 선발 베켓을 넘어야만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다.


콜로라도에 의해 다시 한 번의 대역전 드라마가 그려질 수 있을까? 현재까지 드러난 양 팀의 전력으로 봐서는 ‘무적함대’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보스턴의 승리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확신할 단계는 아니다. ‘기적을 일으키려는 팀(콜로라도)’과 이미 ‘기적을 몇 번이나 일으켰던 팀(보스턴)’간의 대결, 마지막에 웃는 팀은 과연 어디일지 그 결과가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