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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일본의 야구영웅 사와무라 에이지, 그리고 사와무라 상

by 카이져 김홍석 2007. 10. 20.

찰리 게린저(통산 1774득점 1427타점) 삼진!
베이브 루스(통산 714홈런 2217타점) 삼진!!
지미 팍스(통산 534홈런 1922타점) 삼진!!!
루 게릭(통산 493홈런 1995타점) 삼진!!!!

4타자 연속 탈삼진, 73년 전 일본의 17살짜리 애송이 투수가 당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들을 상대로 이룩한 기록이다. 이 일을 계기로 2년 후 일본에는 정식으로 프로야구가 발족하게 된다. 이 중학생(당시 일본 중학교는 5년제)의 이름은 사와무라 에이지, 이후 일본 야구의 전설로 남게 되는 위대한 이름이다.


▷ ‘불세출의 천재’ 사와무라 에이지

일찍부터 세계로 눈을 돌린 메이저리그는 20세기 초부터 간간히 일본으로 원정을 와서 친선경기를 치르곤 했다. 경기는 일본의 전패로 끝이 났지만, 1934년 11월에 있었던 일본 선발팀과 메이저리그 올스타 팀 간의 경기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 경기로 기록된 시합도 있었다.


사와무라는 위에 언급한 전설적인 타자들이 포함된 메이저리그 올스타 팀을 상대로, 중심축이었던 루스-팍스-게릭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을 비롯해 9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올스타 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게다가 5회까지는 노(No)히트였고, 7회 루 게릭에게 허용한 솔로 홈런이 실점의 전부였다. 0-1의 완투패, 일본 열도가 들끓었음은 물론이다.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창단과 동시에 팀의 에이스가 된 사와무라는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노히트 노런 시합을 달성하는 등 짧은 선수 생활동안 3번이나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하지만 일본을 야구 열풍으로 몰아넣은 이 장본인은 마지못해 참전한 2차 대전에서 1944년 27세의 나이로 짧은 생애를 마감하고 만다.


사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처럼 사와무라가 메이저리그의 최고 강타자들을 추풍낙엽처럼 날려버릴 만큼(즉,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 투수로 꼽힐수 있었을만큼)의 ‘압도적인 투수’였던 것은 아니다.


1934년에 일본 선발팀과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은 무려 18경기를 치렀고, 위에 묘사된 경기는 그 중 10차전이다. 그렇다면 사와무라처럼 뛰어난 선수를 그 한 경기에만 기용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사와무라는 이 시리즈에서 5번 등판했고, 0-1 완투패를 포함해 4패를 당했다. 연이어 홈런을 허용하며 조기 강판 당한 경기도 있었다. 이 18경기에서 베이브 루스의 기록이 13홈런 33타점이라고 하니 사와무라를 비롯한 당시 일본 투수들이 얼마나 난타당했는 지를 알 수 있다. 프로야구의 성공을 위한 영웅이 필요했던 일본 측에서 사와무라가 돋보이는 부분만을 부각시킨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사와무라는 대단한 투수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두 번이나 참전하는 바람에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는 못했지만 105경기에 등판해 63승 22패 평균 자책점은 1.74였다. 1937년 춘계리그에서는 30경기에 등판해 24승 4패 방어율 0.81의 어마어마한 성적으로 MVP에 성정되기도 했다.


일본 야구의 영웅으로서 프로야구의 열기를 주도할 선수의 사망 소식은 너무나도 슬픈 소식이었다. 때문에 일본 프로야구 협회에서는 사와무라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한다. 메이저리그에서 ‘사이영 상’이 만들어진 것보다 9년이나 빠른 1947년의 일이었다.


▷ 사와무라 상 - 완투형 선발 투수의 꿈

사와무라상은 ‘최고의 완투형 선발 투수’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선발이든 마무리든 관계없이 그 해에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사이영상과는 달리 사와무라상은 선발 투수만을 그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꽤나 까다로운 7가지의 조건이 따라 붙는다.


그 7가지 조건은 15승 이상, 방어율은 2.50이하, 승률 6할 이상, 완투 10경기 이상, 탈삼진 150개 이상, 200이닝 이상 투구, 25경기 이상 등판이다. 꽤나 어려운 조건이 아닐 수 없다. 투수의 분업이 이루어지는 현대 야구에서는 쉽게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이다.


해당 선수가 없으면 아예 시상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으나, 이는 다소 과장된 것이다. 물론 후보들의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고 판단되어 시상하지 않은 경우도 4번(71, 80, 84, 00)이나 있었다. 하지만 보통은 4~5개 이상의 조건을 만족한 투수가 몇 있다면 그 중에서 선발하는 편이다. 충분한 자격을 갖춘 선수가 여러 명이라면 공동으로 선정하기도 한다.


메이저리그와 다른 것은 기자단 투표가 아니라 사와무라상을 시상하기 위한 위원회가 별도로 구성이 되어 있고, 그곳에서의 회의를 통해 최종 수상자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1947년 제정된 이후 처음에는 센트럴리그의 투수들만 수상의 대상자가 되었으나, 1989년부터 퍼시픽리그까지 확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 이듬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노모 히데오가 신인왕과 동시에 퍼시픽리그 선수로는 처음으로 사와무라상 수상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올 시즌부터 보스턴 레드삭스에 둥지를 튼 마쓰자카는 2001년도 수상자이며, 뉴욕 양키스의 이가와 케이는 2003년에 꿈에 그리던 사와무라상을 품에 안았다. 마쓰자카는 방어율(3.60)과 승률(.500)을 제외한 5개 조건을, 이가와도 완투(8)와 방어율(2.80)을 제외한 5개 조건을 만족시키며 수상의 영광을 맛봤다.


▷ 2007년의 수상자는?

지난 1993년 수상자인 이마나카 이후로 지난해까지 무려 13년 동안이나 위의 7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한 투수는 단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드디어 저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선수가 등장했다. 이미 한국 팬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니혼햄 파이터즈의 에이스 다르빗슈 유우다.


「나나」,「착신아리」등의 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 사에코의 약혼자로도 유명한 다르빗슈는 21살(1986년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위력적인 투구를 보여주는 선수다. 올해가 프로 3년차인 그는 지난 해(12승 5패 2.89) 보다도 월등히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팬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26경기에 등판한 그는 절반에 가까운 12경기를 완투했고, 그 중 3번은 완봉승으로 장식했다. 207.2이닝을 던지며 210개의 삼진을 빼앗았고, 15승 5패 방어율 1.82의 너무나도 뛰어난 기록을 남겼다. 다르빗슈를 제외하고는 6개의 조건을 만족하는 선수도 없는 형편이라 이변이 없는 한 올 시즌 사와무라상의 영광은 그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몇 년 후가 되면, 노모와 마쓰자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르빗슈도 메이저리그 행을 선언할 가능성이 무척이나 크다. 아직까지는 사와무라상 수상자 출신의 일본 선수가 사이영상을 수상한 적이 없다. 과연 다르빗슈는 훗날 그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