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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박찬호에 관한 두 가지 의문점을 되짚어 보자

by 카이져 김홍석 2008. 5. 9.

박찬호가 뛰고 있는 LA 다저스의 투수 에스테반 로아이자가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덕분에 또다시 5선발 경쟁이 본격화되었고 박찬호의 선발 투수진 진입 가능성이 국내 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조 토레 감독의 공식적인 발표가 없기에 확언할 단계는 아니다.(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LA 타임스는 궈홍즈 쪽에 무게를 실어주었지만, LA 데일리 뉴스는 박찬호에게 기회가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만약 선발 투수로 등판을 하게 되더라도 그 시점은 이달 18일이다. 조금은 더 여유를 가지고 지켜봐도 될 것이다. 지금 이 칼럼에서는 박찬호의 선발 투수 가능성 여부 보다는 그 외적인 것을 다루려고 한다.


얼마 전에 CBS 스포츠라인에서 박찬호를 두고 ‘운 좋은 투수’ 가운데 한 명으로 꼽았다. 그리고 최근 박찬호의 약간은 달라진 듯 한 투구 폼에 관한 내용이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 혼선을 빚고 있는 듯 보인다.


그다지 명확하게 구분 지을 만한 것들은 아니지만, 한 번 쯤은 정리를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목별로 나누어 차근차근히 한 번 알아보자.


▶ 박찬호가 사이드암 투수라고?

한 언론의 기사를 통해 ‘박찬호가 임창용 버전의 사이드암 투구를 했다’라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를 두고 팬들 사이의 의견이 분분하다.


기본적으로 박찬호는 스리 쿼터형의 투수다.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에는 오버스로 형태였지만 컨트롤을 잡기 위해 스리 쿼터형으로 투구 폼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러한 폼은 과거 다저스에서의 전성기를 가능케 했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 박찬호가 지금은 사이드암으로 던지기도 하는 것일까?


이 대답은 ‘Yes’에 가깝다.


얼핏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박찬호의 최근 경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투구에 따라 팔의 각도가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임창용처럼 여러 가지 스타일로 투구한다’라고까지 표현하는 것은 다소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보기에 따라 충분히 사이드암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고 본다.


박찬호는 현재 팔의 각도를 바꾸면서 원래의 구질을 더욱 다양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최근의 일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과거 WBC를 주의 깊게 지켜본 팬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이미 당시에도 박찬호는 상황에 따라서 사이드암으로 볼 수 있을 만한 폼으로 공을 던지곤 했다. 당시 현지의 언론에서는 ‘박찬호의 팔 각도가 저렇게도 낮았었나?’라는 의문을 자아냈을 정도.


이것은 박찬호가 수년간의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이 고안해 낸 투구법이다. 기본적으로 사이드암이나 언더스로 투수들은 더욱 위력적인 투심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다. 박찬호 역시 자신의 장점인 투심성 싱커의 위력을 높이기 위해 그러한 폼으로 진화한 것이다. 임창용과는 조금 다르지만 박찬호의 투구 폼도 던질 때마다 조금씩 변한다.


특히, 경기 중 가끔씩 보이는 낮은 각도에서 구사되는 투심 패스트볼은 사이드암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흔히들 사이드암스로의 대표적인 선수로 김병현의 투구 동장을 기억하고 있기에 아무리 팔 각도가 내려가도 기본적인 투구 매커니즘 자체가 다른 박찬호는 사이드암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리 쿼터형 투수의 대표 격으로 불리는 랜디 존슨을 두고도 꽤나 많은 전문가들은 사이드암으로 평가하고 있다.(오히려 최근에는 사이드암으로 보는 시각이 더욱 우세하다 싶을 정도다)


사이드암스로(side arm throw)란 말 그대로 겉으로 보기에 팔이 옆쪽을 향한 채 던지는 것을 뜻한다. 어차피 ‘사이드암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고 교과서처럼 규정된 것도 아니기에 박찬호가 보여주고 있는 투구 폼 중 어떤 특정한 형태를 두고 사이드암이라 지칭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는 뜻이다.


‘박찬호는 스리 쿼터형 투수이지만, 필요에 따라 사이드암에 가까운 팔 동작으로 투구하기도 한다.’라는 것이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 ‘위기관리 능력’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CBS가 세이버매트릭스 가운데 하나인 ERC(Component ERA)를 바탕으로 한 평가에 의해 박찬호를 ‘운이 좋은 투수’ 가운데 한 명으로 언급한 것 때문에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ERC는 일반적인 평균 자책점(ERA)과는 달리 피안타와 볼넷, 피홈런, 몸에 맞는 공, 투구 이닝 등을 바탕으로 산출해 내는 것으로서, ‘기대 방어율’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시간으로 8일 경기에서 3이닝 퍼펙트를 기록하기 전까지 박찬호는 1.58의 비교적 높은 WHIP(이닝당 평균 출루 허용률)으로 2.84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ERC는 6.43이나 되는 데에 비해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낮은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으니 CBS는 이를 두고 운이 좋았다고 표현한 것이다.


우선 ERC를 언급하기에 앞서 ‘위기관리 능력’이라는 것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흔히들 박찬호를 두고 ‘위기관리 능력이 좋은 투수’라고들 표현한다. 하지만 이는 과거 그의 경기를 중계하던 국내 중계 진들이 만들어낸 말일뿐, ‘지속적이고 꾸준한 위기관리 능력’이라는 것은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야구 속에는 수많은 변수가 함께한다. 같은 공을 던지고 똑같이 쳤다 하더라도 타구가 날아간 방향에 어떤 수비수가 대기하고 있느냐에 따라 안타가 되기도 하고 아웃이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수비 위치나 날씨, 그라운드 상태 등 수많은 변인들이 작용한다. 투수가 이 모든 것을 통제하지 못하는 한 야구에서 ‘운’이라는 요소는 결코 배제할 수가 없다.


위기관리 능력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그 상황에서 실력과 운의 동시 작용으로 위기를 손쉽게 벗어날 수도 있는 것이고, 운이 따라주지 않아 대량실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한 것이 바로 야구이며, 그렇기 때문에 ‘위기를 관리하는 능력’이라는 것은 어떤 한 투수가 지속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흔히들 말하길 야구에는 ‘평균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한다. 경기 수가 많아지고, 투구 이닝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결국은 그 선수의 커리어 평균에 수렴한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에서 ‘포스트 시즌의 사나이’나 ‘위기 때 힘을 내는 투수’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다. 즉, ‘위기관리 능력’이라는 것은 투수의 컨디션에 따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갑자기 생기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능력에 불과하다는 말이다.(필자도 이 견해에 99% 공감한다)


박찬호의 통산 방어율은 4.38이다. 그가 정말 ‘위기관리 능력이 좋은 투수’라면 그의 통산 ERC는 그 보다 높아야 한다. 하지만 박찬호의 통산 ERC는 4.35로 통산 방어율과 거의 차이가 없다. 애당초 박찬호처럼 통산 17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라면 큰 차이가 날 수가 없는 것이 ERC라는 스탯이다. 운이 따라주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가 모두 합쳐져서 큰 덩어리를 이루게 되면 결국 실제(방어율)과 이론(ERC) 사이에는 차이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ERC라는 통계치가 얼마만큼의 신뢰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대변해 주며, ‘박찬호는 위기관리 능력이 좋은 투수’라는 말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박찬호가 위기관리 능력이 나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애당초 그러한 근거도 알 수 없는 능력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자, 그럼 이제는 ERC에 따른 박찬호의 올 시즌 성적을 살펴볼 차례다. 과연 박찬호는 운이 좋았을까?


‘위기관리 능력’은 존재하지 않지만, 일시적으로 운이 따를 수는 있다. 또는 일시적으로 운이 따르지 않아 고생을 할 수도 있다. WHIP에 비해 방어율이 낮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운이 좋았을 경우다. 계속해서 주자를 내보내는 데도 불구하고 운이 좋아서 적시타를 허용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실점이 적을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운이 나빴을 경우다.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말은 연타를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구위가 빼어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게 좋은 구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운이 나빠 많은 안타와 볼넷을 허용했을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두 가지 형태에 따른 결과도 매우 명확하다. 현재 박찬호의 낮은 방어율과 높은 WHIP는 꽤나 큰 괴리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박찬호가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면 결국은 WHIP을 따라서 방어율도 점점 높아지게 되어 있다. 반대로 두 번째 경우라면 방어율을 따라서 WHIP이 낮아질 것이다. 결국 방어율과 WHIP는 둘 중 하나로 수렴하게 되어 있다. 이도 저도 아닌 가운데 지점에서 만나든지 말이다.


박찬호는 CBS의 기사가 나간 후 8일 경기에서 3이닝 퍼펙트를 기록하며 방어율(2.45)과 함께 WHIP(1.36)도 좋아졌다. 여전히 방어율에 비해 WHIP이 높기는 하지만 그에 따른 ERC도 3.96으로 대폭 낮아졌다. 최근의 추세는 분명 WHIP이 방어율을 따라오고 있다.(최근 4경기 10이닝 방어율 0.90 WHIP 0.80)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상황이 아닐까? 앞으로의 결과와 선발 등판 여부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