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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역대 MLB 투수 최고의 시즌은? ㅡ Part (1)

by 카이져 김홍석 2008. 5. 15.

한국 프로야구에서 투수의 한 시즌 최고의 성적이 궁금하다면 삼성 선동렬 감독의 선수시절 기록을 찾아보면 된다. 메이저리그 역대 타자 최고의 시즌을 알고 싶다면 베이브 루스나 배리 본즈의 기록에 그 답이 있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 투수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시즌 성적을 기록한 투수와 그 시즌의 성적은 어느 정도일까?


미국의 스포츠 전문 사이트인 SI.com에서는 <Aces High: Best Pitching Seasons>라는 제목으로 최근 50년 동안 메이저리그를 지배했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투수들의 15시즌을 선정했다. 매우 흥미롭게 본 기사인 터라 2회에 걸쳐 [야구스페셜]을 통해 소개해 본다.(선정 자체는 SI의 것을 그대로 따랐으나, 덧붙이는 설명은 필자의 의견임을 미리 밝혀둔다)


1) 1963년의 후안 마리샬(시카고 컵스)

16년의 선수 생활 가운데 6번이나 20승 시즌을 보냈던 ‘Hall of Famer' 후안 마리샬(통산 243승 142패 2.89)이 처음으로 20승을 기록한 시즌이다. 41경기에 출장하여 321.1이닝을 소화한 마리샬은 25승(ML 공동 1위) 8패 18완투 5완봉 방어율 2.41이라는 멋진 스탯을 남겼다. 사실 이 해가 마리샬의 커리어 하이는 아니다. 이때가 시작이었을 뿐, 마리샬은 65년(22승 13패 10완봉 2.13)과 66년(25승 6패 25완투 2.23) 그리고 68년(26승 9패 30완투 2.43)에도 그에 못지않은 성적을 남긴 투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마리샬은 단 한 번도 사이영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저 4시즌 내내 사이영상 투표에서 단 한 표도 얻지 못했다. 물론 66년까지는 양대리그를 통합하여 한 명에게만 사이영상을 수여했고, 지금처럼 투표용지에 3명이 아니라 한 명의 이름만 적었던 시기라는 점도 문제였지만 정말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는 경쟁 상대를 잘못 만났다.


2) 1965년의 샌디 쿠펙스(LA 다저스)

마리샬이 사이영상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이 선수 때문이다. 1963년은 저 유명한 ‘쿠펙스의 위대한 4년’이 시작되는 시기였고, 이 시기의 쿠펙스는 63년을 비롯하여 65,66년까지 3번의 사이영상을 모두 만장일치로 수상했다. 그 위대한 4년 가운데서도 65년은 더욱 특별하다.


26승 8패 그리고 2.04의 방어율. 다승은 27승을 기록했던 66년보다 못하고, 방어율도 모두 1점대를 기록했던 나머지 3시즌에 비해 모자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펙스의 65년이 특별한 이유는 그 해 9월 9일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퍼펙트 경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또한 쿠펙스가 기록한 382개의 탈삼진은 20세기 이후 기준으로 메이저리그 최고 기록이었으며, 훗날 놀란 라이언(383개)에 의해 깨지긴 했으나 여전히 내셔널리그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3) 1968년의 밥 깁슨(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68년은 투수들이 메이저리그를 지배했던 시기의 정점으로 기록된 해였다.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선수가 무려 7명이었고, 양대 리그의 평균 방어율이 모두 2점대(AL-2.98 NL-2.99)를 기록했던 엽기적인 시즌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돋보였던 선수가 라이브볼 시대(1920년 이후) 최저 방어율을 기록한 밥 깁슨이다.


22승 9패의 다소 평범한(?) 성적표를 받아든 깁슨의 이해 방어율은 1.12였다. 아무리 같은 1점대 방어율이라 하더라도 2위(1.60)와는 격이 다른 수준. 다른 선수들의 평균과 견주어 비교 우위를 가리는 조정 방어율에서도 258을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라이브볼 시대 최고 기록(현재는 4위)이다. 34경기에 등판해 28경기를 완투(13완봉승)하고 304.2이닝을 소화한 깁슨의 피칭은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사이영상과 리그 MVP를 독식한 깁슨은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도 17탈삼진 완봉승을 거두며 월드시리즈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경신한다.(종전 샌디 쿠펙스의 15개)


※ 조정 방어율이란 리그 전체 투수들의 평균 방어율과 구장 효과를 감안해 활동한 시대가 다른 투수의 비교우위를 평가하는 세이버매트릭스의 항목 가운데 하나다. 예를 들어 구장효과를 감안한 리그 방어율이 5.00일 때 어떤 선수의 방어율이 4.00이라면 그 선수의 조정방어율은 (5.00/4.00)×100해서 125가 된다. 보통 단일 시즌을 기준으로 150 이상이면 특급 에이스라 부를 만하다. 200이 넘었다면 리그를 지배했다고 봐도 무방하며, 라이브볼 시대가 시작된 1920년 이후 200이상의 조정 방어율이 기록된 것은 모두 17번이었다.


4) 1968년의 데니 매클레인(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내셔널리그에 깁슨이 있었다면 아메리칸리그에는 매클레인이 있었다. 워낙 엽기적인 시즌이었던 터라 1.96의 방어율로도 리그 1위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41경기에 등판해 31승(6패)을 거두며 1934년의 디지 딘(30승) 이후로 34년 만에 30승 투수로 등극했다. 매클레인은 지금도 여전히 역사상 마지막 30승 투수로 남아있다. 그의 주무기는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와 같은 컷 패스트볼이었다고 한다.


사이영상과 리그 MVP를 모두 만장일치로 수상했으며, 이것은 MVP 투표에서 피트 로즈에게 6표를 빼앗긴 깁슨과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깁슨이 이끈 카디널스와 매클레인의 타이거스는 결국 월드시리즈에서 격돌했다. 깁슨은 1,4차전에서 연거푸 매클레인을 제압하며 ‘Best of Best’로 등극하는 듯 했으나, 2승 3패로 몰린 상황에서 3일 만의 등판을 강행한 매클레인은 6차전을 1실점 완투승으로 이끌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다. 시리즈 전적 3-3에서 맞이한 7차전, 디트로이트는 마침내 깁슨에게 패배를 안기며 월드시리즈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다만, 메이저리그의 악동으로 유명했던 매클레인은 야구장 안팎에서 다양한 문제를 일으켰고, 그에 대한 출장정지와 부상으로 인해 짧은 전성기를 끝으로 그 기량을 상실하고 말았다. 결국은 1972년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메이저리그를 떠나야만 했고, 통산 131승에 그친 그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없었다.


5) 1971년의 비다 블루(오클랜드 어슬레틱스)

39경기 24완투 8완봉 24승 8패 1.82의 방어율, 그리고 301탈삼진! 거의 신인에 가까웠던 블루는 혜성처럼 등장해 ‘1점대 방어율-20승-300탈삼진’이라는 꿈의 기록을 남겼다. 이와 동일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는 샌디 쿠펙스(63,66년 2회)와 스티브 칼튼(72년)뿐이다. 1승과 탈삼진 7개가 모자라 투수 3관왕은 놓치고 말았지만, 사이영상과 리그 MVP는 그의 몫이었다.


6) 1971년의 탐 시버(뉴욕 메츠)

뉴욕 메츠 소속으로 3번의 사이영상을 수상한 탐 시버는 통산 300승과 3000탈삼진을 동시에 달성한 몇 안 되는 선수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가 사이영상을 수상했던 것은 69년과 73년 그리고 75년이었다. 71년의 사이영상 수상자는 또 다른 3000탈삼진의 주인공 퍼기 젠킨스였다. 그렇다곤 해도 탈삼진(289개)과 방어율(1.76)에서 생애 최고를 기록한 71년은 시버의 커리어 하이시즌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당시 20승 10패를 기록했던 시버는 방어율과 탈삼진 부문에서 리그 1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24승(1위) 13패 263탈삼진(2위) 방어율 2.77(9위)을 기록한 젠킨스에게 밀려 사이영상 투표에서 2위에 그치고 말았다. 시버의 20승도 리그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지만 1.01의 방어율 차이와 26개의 탈삼진은 4승의 차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진정한 에이스가 누구였는지는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7) 1972년의 스티브 칼튼(필라델피아 필리스)

4년 동안 마운드 위의 유일한 태양으로 군림하던 샌디 쿠펙스가 은퇴한 후에도 메이저리그에는 기라성 같은 투수들이 리그를 주름잡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탐 시버와 퍼기 젠킨스 외에도 게일로드 페리, 짐 팔머, 돈 서튼 등의 위대한 투수들이 이 시대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시절을 보내면서도 사상 최초로 사이영상 4회 수상을 달성한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역대 최고의 좌완’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스티브 칼튼(통산 329승 244패 4136탈삼진 3.22)이다.


72년은 칼튼이 첫 번째 사이영상을 만장일치로 수상한 시즌이자, 역사상 마지막 20승-300탈삼진-1점대 방어율의 투수가 탄생되었던 시즌이다. 41경기에 선발 등판해 30경기를 완투(8완봉)한 칼튼은 27승 10패 310탈삼진 방어율 1.97의 훌륭한 성적을 남겼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해 59승 97패로 리그 최하위에 그친 소속팀 필라델피아의 성적이다. 저 59승 가운데 29승이 칼튼이 등판한 경기에서 거둔 승리였으니, 팀 전력이 평균만 되었더라도 30승 이상을 하고도 남았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8) 1978년의 론 기드리(뉴욕 양키스)

1977년 메이저리그의 선발 투수로 첫 번째 풀타임을 보내면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경험한 기드리는 선발 2년차가 된 78년에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며 만장일치로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25승 3패의 엽기적인 승률도 그렇지만 조정 방어율로 환산하면 208이나 되는 1.74의 방어율은 독보적이었다. 탈삼진 260개를 잡아낸 놀란 라이언에게 탈삼진 1위(기드리는 248개로 2위)자리를 내주는 바람에 투수 3관왕은 놓쳤지만, 그에 못지않은 화려한 시즌이었다.


무엇보다 6월 17일에 벌어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전이 그 백미였다. 기드리는 4피안타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거뒀을 뿐 아니라, 선발 타자 전원 탈삼진이라는 기염을 토하며 18개의 탈삼진을 잡아냈다. 이것은 아메리칸리그 기록이었다.(이후 1986년 로저 클레멘스가 20탈삼진 경기를 펼치며 경신)


[이어지는 글]
역대 MLB 투수 최고의 시즌은? ㅡ Part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