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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역대 MLB 투수 최고의 시즌은? ㅡ Part (2)

by 카이져 김홍석 2008. 5. 16.

한국 프로야구에서 투수의 한 시즌 최고의 성적이 궁금하다면 삼성 선동렬 감독의 선수시절 기록을 찾아보면 된다. 메이저리그 역대 타자 최고의 시즌을 알고 싶다면 베이브 루스나 배리 본즈의 기록에 그 답이 있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 투수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시즌 성적을 기록한 투수와 그 시즌의 성적은 어느 정도일까?


미국의 스포츠 전문 사이트인 SI.com에서는 <Aces High: Best Pitching Seasons>라는 제목으로 최근 50년 동안 메이저리그를 지배했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투수들의 15시즌을 선정했다. 매우 흥미롭게 본 기사인 터라 2회에 걸쳐 [야구스페셜]을 통해 소개해 본다.(선정 자체는 SI의 것을 그대로 따랐으나, 덧붙이는 설명은 필자의 의견임을 미리 밝혀둔다)


역대 MLB 투수 최고의 시즌은? ㅡ Part (1) 에 이어서...



9) 1985년의 드와이트 구든(뉴욕 메츠)


1984년 19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등장해 신인왕과 더불어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2위에 올랐던 드와이트 구든. 20세가 되어 맞이한 1985년은 그 생애 최고의 시즌이었다. 35경기에 등판해 16번의 완투와 8번의 완봉승을 기록하는 등 276.2이닝을 소화하며 268개의 탈삼진을 잡아냈다. 자신의 나이보다도 많은 24승(4패)을 따냈고 방어율은 1.53에 불과했다. 양대리그 통합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 구든에게는 당연히 만장일치 사이영상이라는 영예가 뒤따랐다.


당시만 하더라도 구든의 앞날은 태양처럼 환하게 빛날 것이라고만 여겨졌다. 로저 클레멘스조차도 ‘유망주’에 불과하던 시절에 그보다 두 살이 어렸던 구든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에이스 자리에 등극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혹사를 당했기 때문일까. 그의 전성기는 짧았고, 30대에 들어서는 이미 정상적인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도 없었다. 당연하게조차 보였던 200승과 3000탈삼진도 달성하지 못한 그는 2000년을 끝으로 은퇴를 했고, 통산 194승 112패 2293탈삼진 방어율 3.51의 기록을 남겼다. 현역 선수 가운데 구든과 동갑인 선수로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케니 로저스가 있다.


10) 1988년의 오렐 허샤이져(LA 다저스)


88년은 다저스가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던 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선수가 바로 ‘불독’ 오렐 허샤이저였다. 8월까지 18승 8패 방어율 2.88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만약 그러한 페이스로 시즌을 마감했다면 그 해 사이영상은 데니 잭슨(23승 8패 2.73)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허샤이저의 9월은 매우 특별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그 어떤 투수도 1988년 가을의 오렐 허샤이저만큼 완벽할 수는 없었다.


그 유명한 59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이 탄생했던 것이다. 5연속 완봉승.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는 0:0상황으로 연장에 돌입하는 바람에 10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도 승리투수가 되지 못해 연속 완봉승 기록이 중단되었을 뿐, 그는 점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시즌 방어율은 2.26까지 낮아졌고 23승을 거둔 허샤이저는 만장일치로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이 기세는 포스트시즌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리그 챔피언십과 월드시리즈를 합쳐서 도합 6차례(선발 5회) 등판해 상대 타선을 42.2이닝 동안 단 5실점(방어율 1.05)으로 막아냈던 것이다. 특히 챔피언십 7차전과 월드시리즈 2차전을 연거푸 완봉승으로 제압하고, 마지막 시합이 된 5차전을 2실점 완투승으로 장식한 허샤이저의 모습은 ‘도미넌트’ 그 자체였다. 허사이저는 리그 챔피언십과 월드시리즈 MVP를 모두 수상하는 것으로 생애 최고의 시즌을 마무리했다.


11) 1995년의 그렉 매덕스(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드디어 매덕스의 차례다. 94년에 현대 야구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경기당 평균 8이닝 투구(25경기 202이닝투구)’라는 기적을 보여주며 16승 6패 1.56의 방어율을 기록했던 매덕스는 95년에도 괴물 같은 활약상을 이어나갔다. 28경기 10완투 3완봉 19승 2패의 경이적인 승률과 더불어 1.63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90.5%라는 승률은 25회 이상 선발 등판을 기준으로 역대 1위의 기록이다.


연이어 만장일치로 사이영상을 수상했던 매덕스의 94년과 95년은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백-투-백’시즌으로 남아있다. 선수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단축시즌이었다는 점이 천추의 한으로 남을 정도다. 매덕스가 기록한 2년 연속 1점대 방어율은 1963-64년의 샌디 쿠펙스 이후로 처음이었고, 1.70이하로 기준치를 높이면 1918-19년의 월터 존슨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풀 시즌을 치렀으면 방어율이 올라갔을 것이라는 의견은 설득력이 없다. 94년 후반기의 매덕스의 방어율은 0.87이었고 95년에도 전반기(1.64)와 후반기(1.62)의 차이가 없었다. 타자에게 불리한 구장을 홈으로 썼다는 지적도 있지만, 오히려 홈구장에서는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승수를 쌓지 못했다. 저 2년 동안 매덕스의 원정경기 성적은 28경기 217.2이닝 23승 2패 방어율 1.24로 너무나도 엄청나서 말도 안 나오는 수준이다. 매덕스는 2년 동안 271과 262라는 조정 방어율을 남겼고, 이는 당시까지 단일 시즌 역대 1,2위의 기록이었다.


12) 1997년의 로저 클레멘스(토론토 블루제이스)


클레멘스는 보스턴에서의 마지막 4년 동안 40승에 그치며 기대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했고, 사람들은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의 전성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홧김에 토론토와 계약한 클레멘스는 멋지게 부활하며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과 더불어 만장일치 사이영상을 차지했다. 특히 21승 7패 264이닝 292탈삼진 방어율 2.05를 기록한 97년은 사이영상 7회에 빛나는(그러나 지금은 빛이 바랜) 로저 클레멘스 개인으로서도 커리어 하이라고 부를만한 시즌이다.


98년에도 20승 6패 271탈삼진 방어율 2.65를 기록하며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클레멘스는 5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했고, 이를 통해 그를 추월했던 매덕스(4회 수상)를 다시금 넘어섰다. 하지만 클레멘스의 98년은 문제가 있다. <미첼 보고서>에 따르면 98년 여름이 클레멘스가 처음으로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았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해 클레멘스의 전반기(9승 6패 3.55)와 후반기(11승 무패 1.71) 성적을 들여다보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97년의 부활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냈다고 봐야 한다. 당시 클레멘스는 자신의 필살기라 부를만한 스플리터를 완성시켰고, 그로 인해 제 2의 전성기를 열었던 것이다. 그 당시의 클레멘스는 진짜 영웅이었다. 약물의 유혹에 넘어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13) 2000년의 페드로 마르티네즈(보스턴 레드삭스)


메이저리그를 좋아하는 야구팬들이 자주 토론하는 것 중 하나가 “94-95시즌의 매덕스와 99-00시즌의 페드로 가운데 누가 더 위대한가?”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선호하는 피칭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결국에는 “둘 다 너무나 뛰어나서 도저히 우열을 가릴 수 없다”라는 식상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매덕스와 페드로의 2년은 현대 야구사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99년 213.1이닝 동안 313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는 압도적인 구위를 과시하며 23승 4패 방어율 2.07을 기록한 페드로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만장일치 사이영상에 올랐다. 그해 포스트 시즌에서 양키스의 조 토레 감독으로부터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이듬해 진정한 외계인으로써 메이저리그에 강림한다. 217이닝 동안 허용한 피안타는 128개에 불과했고 284명을 탈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본격적인 타자들의 시대가 열린 상황에서 기록한 1.74의 방어율은 리그 2위(클레멘스 3.70)와 두 배가 넘는 차이가 났다. 291의 조정 방어율과 0.74의 WHIP[(피안타+볼넷)/이닝]은 둘 다 매덕스의 기록을 넘어선 라이브볼 시대(1920년 이후) 역대 1위의 기록이다.


만약, 로저 클레멘스에게 98년의 사이영상을 도둑(?)맞지만 않았더라면 페드로는 매덕스 이후로 역대 2번째 4년 연속 사이영상 수상자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14) 2002년의 랜디 존슨(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어떤 면에서 랜디 존슨이 사이영상 4연패를 이루어냈던 99년부터 02년까지의 4년은 매덕스와 페드로의 4년 보다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매덕스와 페드로가 20대 후반의 나이로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던 것과는 달리 랜디의 4년은 35살부터 39살 사이에 만들어진 신화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24승 5패 방어율 2.32를 기록하며 260이닝동안 334개의 탈삼진을 잡아낸 2002년은 최고 중에서도 최고였다. 그가 수상한 5번의 사이영상 가운데 유일하게 만장일치의 영광을 누렸던 해이기도 하다.


랜디는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수많은 선수들 가운데 가장 큰 키(207cm)를 자랑하는 선수다. 그런 선수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100마일의 강속구와 80마일대 후반의 슬라이더는 숱한 헛스윙을 유도해냈다. 현재까지 통산 287승(151패)을 기록 중인 랜디는 300승 도달의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선수이며, 탈삼진 부문에서도 25개만 추가하면 로저 클레멘스(4672개)를 넘어 역대 2위로 올라서게 된다.


15) 2004년의 요한 산타나(미네소타 트윈스)


사실 산타나가 이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앞서 언급된 투수들에 비하면 이름값도 현저히 떨어지거니와, 해당 시즌의 성적(20승 6패 265탈삼진 방어율 2.61)도 비교할 수 없을 만치 초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타나가 이 명단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후반기에 그가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피칭 때문이었다. 적어도 2004년 후반기의 산타나는 ‘리그를 지배했다’라는 표현에 조금의 부족함이 없다.


전반기를 7승 6패 방어율 3.78의 평범한 성적으로 마친 산타나는 후반기가 시작하자마자 180도 돌변한다. 15경기에서 13연승을 달리며 무패가도를 이어갔고, 방어율도 1.21에 불과했다. 승리를 기록하지 못한 두 경기에서도 고작 1점씩을 허용했을 뿐, 그의 후반기는 완벽에 가까웠다. 그 덕에 산타나는 생애 첫 번째 사이영상을 만장일치로 수상했고, 미네소타는 경쟁 팀들을 멀찌감치 떨어뜨리고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수 있었다.


16) 2008년의 브렌든 웹 or 클리프 리(??)

올 시즌, 어쩌면 이 두 명의 투수 가운데 한 명이, 또는 두 명 모두가 저 위대한 투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모습은 위의 선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9승 무패 방어율 2.56을 기록 중인 웹과 6승 무패 방어율 0.67의 리가 지금까지 보여준 활약은 100점 만점을 줘도 모자랄 정도다.


개막과 동시에 등판한 9경기에서 전승을 거둔 브렌든 웹은 팀 선배 랜디 존슨의 24승을 넘어 1990년 밥 웰치가 기록한 27승에 도전할 태세다. 그 자신의 빼어난 투구에 소속팀의 막강한 뒷받침까지 어우러졌기에 최소한 20승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지난 2004년 3.59의 방어율로도 16패(7승)나 당했던 당시의 불운을 올해 한꺼번에 보상받고 있는 듯 보인다. 2006년에 이은 두 번째 사이영상은 만장일치가 될 수도 있다.


지난 12일 9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도 승부가 연장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전승가도에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클리프 리의 올 시즌 투구는 역대 그 어떤 투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특히 0.67의 WHIP와 4볼넷 44탈삼진이라는 볼넷-삼진 비율은 엽기 그 자체다. 막강한 클리블랜드 선발진을 가장 선두에 서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 사이영상 수상자 C.C. 사바시아도, 19승 투수 파우스토 카모나도 아닌 지난해 실패를 맛봤던 좌완 클리프 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