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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이치로의 흔들리는 위상-환상은 깨지고

by 카이져 김홍석 2008. 6. 27.

이치로가 예년 같지 않다는 말이 들려오고 있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최초로 2할 대의 타율로 6월을 맞이한 그는 7월이 코앞까지 다가온 시점에서도 3할 타율에 도달하지 못했다. 현재 이치로의 입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로운 지경이다.


소속 팀 시애틀은 50승에 도달한 팀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50패를 당하는 치욕을 맛보며 메이저리그 전체 꼴찌로 가라앉은 상황. 그 결과 팀 성적이야 어땠든 개인 성적만큼은 늘 나무랄 데가 없었기에, 마치 성역처럼 보호받아왔던 이치로의 팀 내 위상이 점차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과의 불화로 인해 팀에서 버림받았던 마크 하그로브 감독 대신 지휘봉을 잡은 존 매클라렌 감독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그에게 5년간 9000만 달러의 거액의 계약을 안겨준 빌 바바시 단장 역시도 팬들의 비아냥거림 속에 팀을 떠났다. 이제 시애틀 팀 내에서 그를 지켜줄 사람은 남아있지 않다. 벌써부터 언론은 그를 트레이드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흔들리고 있는 이치로의 팀 내 위상.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 환상이 깨어지다

이치로가 합류한 2001년은 시애틀이라는 팀 자체에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였다. 팀 내를 넘어 메이저리그 전체의 아이콘으로 통했던 켄 그리피 주니어와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1년 만에 모두 팀을 떠났다. 그 대신 팀에 새로이 합류한 선수가 바로 이치로였다.


의혹의 시선도 많았으나 그 해 시애틀은 116승으로 7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최고 승률 팀의 자리를 차지했다. 포스트 시즌에서는 뉴욕 양키스에게 디비즌 시리즈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지만 3할5푼의 고타율로 타격왕을 차지함과 동시에 리그 신인왕과 MVP까지 휩쓸었던 이치로는 영웅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만큼 당시 메이저리그를 강타한 ‘이치로 열풍’의 파급효과는 엄청났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 그에 대한 환상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지난 6년 동안 시애틀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7년 연속으로 확정되어질 전망이다. 이치로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치로는 계속해서 매년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것이 팀을 포스트 시즌으로 이끌진 못했던 것이다.


결국 2001년 시애틀이 기적에 가까운 승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이치로라는 좋은 1번 타자에 37홈런 141타점을 기록한 브렛 분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중심 타선의 활약이 더해진 결과라는 것을 전문가와 팬들이 마침내 깨닫고야 말았다. ‘팀을 포스트 시즌으로 이끄는 선수’라는 점에서 어쩌면 2001년의 MVP는 이치로보다 분에게 더 어울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상에 빠졌던 당시의 전문가와 팬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후 이치로는 MVP 투표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물론 팀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이미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꼴지 팀 텍사스 출신으로 2003년에 MVP를 수상한 마당에 2004년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안타 신기록(262개)을 작성하고 타격왕까지 차지한 이치로가 MVP 투표에서 7위에 그쳤다는 것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문가들은 단타 4개가 모여도 홈런 하나만큼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팬들 역시도 이치로의 안타행진이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없다는 것을 체험했다. 2004시즌이 종료된 후 리치 섹슨과 애드리언 벨트레의 영입에 거액을 투자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통산 3할3푼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이치로의 출루율은 3할7푼7리. 환상에서 깨어난 전문가와 팬들(한국의 팬들은 아직 아닌 것 같지만)이 볼 때 뉴욕 양키스의 포수 호르헤 포사다(.381)보다 낮은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는 이치로의 타율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을 것이다. 환상이 깨진 상황에서 이치로의 팀 내 위상은 더 이상 성역이 될 수 없었다.


▷ 구멍 난 보호막

현재 김연아와 박지성은 언론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다. 그들에 대한 비판적이거나 비관적인 내용의 기사는 팬들의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한 때 국내 스포츠 기자들은 박찬호에 대에 비판적인 내용이 담긴 기사를 쓰지 못했다. 당시 박찬호의 존재는 지금의 김연아와 박지성과 같았기(사실은 그 이상) 때문이다. 하지만 박찬호가 부진에 빠지자 일부 팬들의 태도와 함께 언론의 논조도 점차 바뀌어 갔다. 지금 이치로가 처한 상황이 딱 그 짝이다.


이치로가 칭송받던 시절, 그의 모든 행동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뒤따랐다. 영어를 배우지 않고 굳이 통역을 두는 것도, 팀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것도 모두 오로지 야구에만 열중하기 위해서였다며 언론이 알아서 변호해주었다. 감독과의 불화설이 불거지고, 실제로 지난해 하그로브 감독이 사임했을 때에도 이치로를 향한 비난의 여론은 매우 미약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이 모든 것들이 이치로의 약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물론 이치로의 성격은 배리 본즈처럼 모가 난 것은 아니다. 단지 그는 다른 선수에게 관심이 없고 굳이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뿐이다. 해를 끼치지도 않지만 주는 것도 없다.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이치로다.


그렇다면 딱히 비난받을 이유도 없는 것인데, 그렇게 무시하기엔 그가 팀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 이치로는 팀 내 최고 연봉자이며 최고 스타플레이어다. 또한 34살의 나이로 최고참 축에 속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도 그렇겠지만 그러한 위상을 가진 선수는 최소한의 리더십을 갖추고 그것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메이저리그에서의 팀 리더는 한국 프로야구의 주장과는 그 역할이 많이 다르지만, 그러한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치로는 그러한 역할을 해주는 선수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가끔은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편이다. 이를 좋게 표현하면 ‘솔직함’이 되겠지만,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 바라보면 ‘밉상’일 뿐이다. 최근에도 자신이 부진한 가운데 인터뷰에서 4할에 도전하고 있는 치퍼 존스에 대한 질문을 받자 ‘관심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가 언론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오해받기 딱 좋은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오직 팀의 승리에 도움이 되었을 때만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야구기계. 이것이 매리너스 클럽 하우스 내에서 이치로가 지니는 의미다. 본즈보다는 훨씬 좋은 성격이지만, 결국 팀 내에서 고립된 외로운 존재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 위기의 2008시즌

사실 이치로의 올 시즌 개인성적은 크게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분명 올 시즌 타율은 2할8푼5리로 통산 3할3푼 이상을 기록했던 예년에 비해 부족한 감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 이치로의 팀 공헌도가 떨어졌느냐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떨어진 타격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열심히 달렸고 또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치로는 시즌의 절반도 치르지 않은 상황에서 33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벌써 자신의 평균치인 39개에 근접한 개수이며 56개로 도루왕에 올랐던 2001년을 훌쩍 뛰어넘을 것처럼 보이는 빠른 페이스다.


게다가 도루자는 겨우 2개! 세이버매트릭스는 도루 성공률이 75%이상은 되어야만 도루가 팀에 도움이 된다고 인정한다. 그러한 기준을 적용시킨다면 이치로는 총 33도루 가운데 2도루자에 따른 6도루를 뺀 27베이스를 순수한 플러스 요인으로 팀에 가져왔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그의 올 시즌 성적을 지난해에 비해 크게 부족할 것이 없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이는 시애틀의 올 시즌 경기당 평균 득점(4.01)이 지난해(4.90)보다 크게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치로의 득점 페이스는 동일하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이치로는 지난해 161경기에서 111득점을 기록했고, 올해는 78경기에서 54번 홈을 밟았다. 최고는 아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1번 타자 중에선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성적이다.


하지만 환상이 깨어지고 그를 둘러쌌던 보호막에 구멍이 뚫린 현재 사람들은 그의 도루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가 8년 연속 30도루에 성공하고 일-미 통산 3000안타에 도전하고 있음에도 그 주목도는 예년과 비교해 매우 낮다. 반대로 단장과 감독이 연이어 해임되자 곧바로 이치로의 트레이드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어쩌면 이치로 자신은 이러한 모든 것에 관심이 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그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철썩 같이 믿던 사람도 한번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잘하고 있더라도 한 번쯤은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이치로가 3할 타율을 회복하고, 자신의 통산 평균에 근접한 성적을 기록하게 되더라도 이미 그를 향하고 있는 부정적인 시선들을 완전히 떨쳐내기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더 이상 그는 ‘실력에 비해 적은 연봉을 받고 있는 선수’의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다. 1800만 달러를 받는 1번 타자는 단 1년의 부진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 수많은 먹튀들로 인해 민감해진 메이저리그의 현실이다.


메이저리그 생활 8년 만에 맞이한 최대의 위기. 이치로는 이 위기를 어떤 방법으로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다만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결과가 트레이드(가능성이 크진 않지만)는 아니길 바란다. 현재 상황에서 그의 연봉을 감당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팀으로의 트레이드는 더욱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뉴욕이나 보스턴, 시카고의 극성스런 언론은 이치로의 컨디션 자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 야구‘만’을 위해서라면 시애틀이 그에게 있어 훨씬 좋은 환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