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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홈런더비에 출장한 이치로의 무(모)한 도전?

by 카이져 김홍석 2008. 7. 11.

교타자의 상징과도 같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일본인 타자 이치로 스즈키가 올스타 전 홈런더비에 출장한다는 소식이 일본으로부터 날아들었다. 이로써 사실상 현역 최고의 홈런 타자인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불참 선언으로 인해 다소 관심이 덜할 뻔 했던 2008년의 홈런더비는 오히려 예년보다 큰 주목을 받게 될 전망이다.


사실 이치로가 우승을 위해 출장한다거나, 우승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출장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팬들과 사무국측에서 끈질기게 구애를 했고 이치로는 거기에 부응한 것뿐이다.


이치로의 홈런더비 출장은 그러한 의미와 시각에서 바라봐야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메이저리그의 올스타전은 오로지 팬들을 위한 이벤트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지닌다. 올스타전과 관련되어 있는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은 전부 팬들을 위해서다. 이치로의 홈런더비 출장도 팬 서비스의 일환이다.


이치로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후 오랫동안 팬들은 그의 장타력에 대한 환상과 의구심을 동시에 가져왔다. 또한 올스타전의 홈런더비가 열릴 때면 팬들은 항상 아래와 같은 상상을 한 번쯤은 했었다.


‘거대한 체구의 거포형 선수들이 출장하는 홈런더비에 이치로 같은 타자가 나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과연 이치로 같은 교타자 유형의 선수들도 홈런더비 우승에 도전할 수 있을까?’


1번 타자가 홈런더비에 출장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알폰소 소리아노가 출장한 바 있고, 올 시즌 이치로와 경쟁해야 하는 그래디 사이즈모어도 클리블랜드 부동의 1번 타자다. 다만 소리아노는 연간 40개 정도의 홈런을 쳐줄 수 있는 파워히터이며, 사이즈모어는 올해 아메리칸 리그 홈런 부문 1위(22개)를 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치로와는 경우가 다르다. 이치로 같이 철저한 끊어 치기 위주의 단타 생산형 타자가 홈런더비에 출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올스타전의 흥미와 팬들의 더 큰 관심을 끌기 위해 지난 몇 년간 계속해서 이치로를 올스타전 홈런더비에 초청하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이치로는 매년 그것을 거절해왔다. 홈런 타자들의 영역을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올해 드디어 그는 사무국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홈런더비에 출장하는 ‘홈런타자’로서 팬들 앞에 서게 되었다. 어떤 이유로 심중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지켜보는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될 전망이다. 그 결과나 이치로에 대한 선호와 관계없이 말이다. ‘이치로의 올스타전 홈런더비 출장!’ 이 이상의 흥행 보증 수표가 대체 무엇이 있을까?


혹자는 ‘홈런더비는 양날의 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홈런더비에 출장했던 타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후반기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곤 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홈런더비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홈런’이다. ‘좋은 타구’ 따위는 의미가 없다. 오로지 담장을 넘어가야만 그 타구는 성공한 것이다. 따라서 더비에 출장하는 타자들은 자신의 본연의 타격 자세를 버리고 무지막지한 풀스윙을 한다. 목표는 오직 하나, 바로 ‘홈런’이다.


바로 이점이 문제다. 배팅 센터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스윙’이라는 동작도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허리를 이용해 몸 전체의 탄력을 일순간 폭발시킨다는 점에서 야구의 스윙은 피칭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 순간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홈런을 치기 위해서, 그것도 빠른 공을 좋은 타이밍으로 받아쳐서 담장을 넘기는 것과 순전히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공을 퍼올리는 것은 엄청난 중노동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내기 위한 프리배팅과 ‘홈런’을 만들어 내기 위한 풀 어퍼 스윙은 분명 다르다. 스윙의 궤적과 속도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며, 그로 인한 피로도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당연히 부상의 위험도 평상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무엇보다 그러한 스윙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타격 자세를 망가뜨릴 위험이 있다. 라이언 하워드나 아담 던 같은 선수들은 기본적인 타격 폼 자체가 ‘홈런더비용’이라 부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투수와 마찬가지로 타자도 굉장히 민감한 생물이다. 더비용의 큰 스윙을 계속 하다보면 타격 자세가 미세하게 흐트러질 가능성이 있고, 그것은 후반기의 크나큰 부진으로 이어진다.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에 관련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그 동안의 홈런더비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고, 이번에 불참을 선언한 것도 홈런더비의 그러한 점과 관련이 있다. 로드리게스의 홈런은 특유의 부드러운 스윙이 자신의 파워와 결합되어 나타나는 결과다. 무지막지한 풀스윙의 소산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로드리게스가 홈런더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부드러운 스윙 자체가 무기인 그가 혹여나 타격자세가 망가질까봐 홈런더비 참가를 꺼리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러한 요소들이 이치로에게는 어떻게 작용할까의 여부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치로는 경기 전의 프리배팅에서 홈런성 타구를 많이 날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홈런더비에서 필요한 스윙은 그것과는 또 다른 것이다. 과연 이치로는 홈런더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이치로가 2할 2푼을 때려도 상관없다면 홈런 30개 정도는 칠 수 있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립(lip) 서비스일 뿐이다. 이치로 스스로도 그런 시도를 할 맘이 전혀 없으며, 현실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 그렇게 따진다면 에이로드나 알버트 푸홀스가 홈런 포기하고 방망이 짧게 쥐고 단타를 노린다면 4할은 치고도 남는다는 논리도 통해야 한다. 즉, 양쪽 모두 현실가능성과는 조금 동떨어진 가상의 현실에 대한 상상의 결과일 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치로가 출장하는 8명의 타자 가운데 꼴찌를 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하지만 이치로라는 타자는 자신의 자존심을 걸고 무언가에 도전했을 때는 항상 의외의 결과를 팬들에게 보여줬다. 우승할 가능성은 0.1%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꼴찌를 할 것 같지도 않다.


기억하는가? 지난해 이치로는 올스타전 사상 최초로 그라운드 홈런을 선보이며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었다.


현존하는 동양인 최고타자 이치로. 이번 올스타전과 홈런더비를 통해서 또 어떤 모습으로 팬들을 놀라게 할 지 무척 기대가 된다.


PS. 이치로의 홈런더비 출장과 관련한 뉴스는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메이저리그 현지에서는 이치로의 홈런더비 출장과 관련한 뉴스가 나오지 않고 있다. 신빙성이 떨어지는 출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혹여나 한국의 기자들 모두가 일본 언론에 '낚시'를 당한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현재 양 리그에서 4명씩 출전하게 되는 홈런더비의 대표들 중 내셔널리그는 4명이 모두 확정되었고, 아메리칸리그는 2명만 확정된 상황이라 빈자리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