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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MLB 역사상 가장 재수 없는 선수들~!

by 카이져 김홍석 2007. 11. 26.


일반적으로 흔히 ‘
재수 없다’ 함은, ‘정말 되는 일 없고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으로 원치 않는 불행을 겪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즉 ‘재수 없는 사람’이란 예기치 않은 불행을 겪어서 ‘사랑니가 나기 시작할 때나, 치질로 인해 의자에 앉아 있기조차 힘들 때’ 에나 느낄만한 그러한 심각한 스트레스와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겪는 불쌍한 사람을 일컫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또는 당장의 생각 같아서는 마빡을 한대 갈겨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런 표현을 씀으로써 그 본뜻이 퇴색되어가고 있는데... 야구 선수를 예로 들면 예전에 한창 날리며 Lima-Time을 외치고 다녔던 호세 리마나, 자신이 우주 최강의 파이어볼러로 착각하고 있었던 존 락커 같은 친구들이 이런 칭송을 듣기에 무척이나 합당한 자격을 갖췄다 하겠다.


BUT... 그러나... 지난 120년 메이져리그 역사를 통틀어 정말 ‘순수한’ 의미로 재수 더럽게 없었던 여러 선수들도 있었으니, 아직도 억울한 영혼이 승천하지 못하고 메이저 리그 구장 곳곳에 떠돌아다닌다는 전설이 난무한다. (흠... 이건 쪼금 오바군...) 각설하고, 이번엔 그 수많은 ‘재수 없는’ 사람들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세 사람을 소개해 볼까한다.


NO.1 제임스 크레이튼(James Creigh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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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수는 야구 역사상 최초의 스타 플레이어라고 일컬어지는데, 1859년 18세의 나이로 브루클린 나이아가라스에서 데뷔한 투수이다. 당시에는 투수들이 공을 던질 때 손목을 꺾는 것을 금지하는 규칙이 있었고, 그 때문에 대부분의 투수들이 언더스로우 피쳐였다. 이때 크레이튼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규칙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에 스핀을 먹여 던지는 법을 터득하였고, 전례에 없는 빠른 스피드의 공까지 겸비, 가히 언터처블의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야구는 순수 아마추어 스포츠라는 생각이 강했기에, 선수들은 지금의 연봉과 같은 돈을 받지 않았었는데, 그 틀을 깨어 버린 선수 역시 제임스 크레이튼이었다. 그를 붙잡기 위해 각 팀이 연봉과 안정된 직장을 최초로 제시하게도 했다고 하니 그의 능력과 소질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허나... 그러나... 이 친구를 달리 재수 없는 사나이로, 그것도 가장 먼저 언급했겠는가! 데뷔한지 4년차 되던 1862년 10월 14일 이날 그가 뛰었던 경기가 그의 운명을 바꿔놓을 줄은 그 누구도 몰랐으리라. 타격에도 재능이 있던 우리의 크레이튼. 멋지게 타석에서 홈런을 날렸는데, 아니 이게 웬일? 허리춤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벨트가 부서졌나 보구만... 에이~"


라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넘겼는데... 사실은 격렬한 스윙으로 복부에 큰 무리가 가해져서 방광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크레이튼은 고통에 신음하다가 4일 뒤 숨지고 말았다고... (묵념...)



NO.2 론 네샤이(Ron Necci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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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선수는 메이저리거는 아니고, 1952년 지금의 마이너리그중 하나인 애팔래치아 리그산하 브리스톨 트윈스에서 뛰었던 유망한 투수였었다. 19살의 나이로 아주 더러운(무브먼트가 뛰어나다는 뜻) 구질의 커브와 이미 친구의 갈비뼈를 박살낸 바 있는 강속구로 무장한, 지금으로 비교하자면 저스틴 벌렌더급의 투수였다고 한다.


하도 굉장한 유망주라 여러 가지 별명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한 "Rocket"!! 네샤이는 로져 클레멘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와 같은 닉네임을 얻었던 선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을 괴롭히는 걸림돌이 하나 있었으니! 잘 던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고, 그것은 신경성으로 발전하여 아주
지독한 위궤양
을 앓게 되었다는 것이다.


1952년 5월 13일 그는
9이닝동안 27명의 타자 모두를 삼진(!!!)으로 잡으며 27K-Perfect Game라는 다소 어이없는 전대미문의 대 사건을 일으키고 만다. 머 당연히 위궤양 때문에 시합 중간 중간에 볼보이가 우유를 가져다주는 등 투구보다 고질병에 의한 고생이 심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참고로 그는 저 퍼펙트 게임의 전 경기에서는 볼넷 등으로 단 3명의 주자만을 허용한 노히트 노런을, 그 다음 경기에서는 2피안타 24삼진 완봉 승을 거두는 등 43이닝에서 109삼진을 잡았다... 가공할...)


어쨌든 이런 사건들을 연이어서 보여주고 엄청난 기대를 받으며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콜업 되었는데, 하필 그 시즌이 그의 위궤양이 절정에 달한 해였던지라, 1승 6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남기고 스스로 너무 열 받아서(?) 군대에 지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군대에서도 위궤양은 그를 괴롭혔고, 그의 몸무게는 25파운드나 빠져서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되었고, 결국엔 야구선수의 꿈까지 버려야만 했다. 바로 그놈의 지긋지긋한 위궤양 때문에...


그런데... 정말 어이없는 사실은 그가 야구선수를 그만두고 낚시장비 세일즈맨으로 전업하자마자... 그토록 그를 괴롭히던 위궤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ㅡ.ㅡ;)



NO.3 하비 해딕스(Harvey Hadd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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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수도 위의 두명과 비교해 결코 만만치 않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이 팀이 문제로군...) 투수로 활약하던 1959년 5월 26일 밀워키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선발 등판해 투구를 했는데, 아니 이게 웬걸? 아무리 이닝이 지나도 상대팀에서 단 한명의 타자도 진루 하지 못하는 것 이었다!!


쉽게 말해서
퍼펙트 게임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이닝 한이닝씩 야금야금 타자들을 아웃시키더니, 끝내 9이닝 완투하며 27명의 타자를 연속 아웃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버뜨... 그러나... 피츠버그 역시 8개의 안타를 쳤으나 단 한 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결국 시합은 연장전으로 넘어가버렸다. 그럼 이것으로 그의 퍼펙트는 그냥 날아갔느냐? 이게 이야기의 끝이냐? 그렇지 않다! 연장전이 시작 된 뒤에도
12회까지 36명의 상대타자를 연속아웃 시키는 엄청난 피칭이 계속되었다! 이제까지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이 작성되는 중이었던 것이다.


허나 이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피칭을 허접한 타격으로 얼룩지게 하던 피츠버그 타자들은 또한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수비 삽질로 인해 시합을 어이없는 결과로 끝내고 말았다. 3루수가 평범한 땅볼 송구를 실수하여 퍼펙트가 깨지고... 기록 달성의 실패로 흔들리는 해딕스... 뒤이어 행크 아론의 고의사구... 마지막으로 조 애드콕의 끝내기 2루타까지... 사상 초유의 대기록은 이렇게 우주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ㅡ.ㅡ;;;;)


상대 선발 투수인 류 버뎃(Lew Burdette)은 12개의 안타를 맞으면서도 3개의 더블 플레이등 모두 산발처리 하며 한 점도 내주지 않으면서 13이닝 완봉승을 거두었고, 이러한 약발을 받았는지 당시로서는 정말 힘들게도 4점대 방어율로 시즌 20승(21승)투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누구는 퍼펙트를 노리다가 안타 하나 맞고 패전을 기록했는데, 누구는... 이정도면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9이닝 퍼펙트가 깨진 건 양반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물론 이것도 무지하게 재수 없는 일이긴 하다)


앞으론 재수 없다는 한탄 함부로 하지 말고 열심히 사는 모두가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