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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위기(?)의 디펜딩 챔피언 - 보스턴 레드삭스

by 카이져 김홍석 2008. 7. 28.

다행히도 보스턴은 28일(한국시간) 경기에서 뉴욕 양키스를 9:2로 제압하며 그들의 9연승을 저지했다. 덕분에 양 팀 간의 승차를 다시 2경기로 벌이며 지구 1위에 한 경기 뒤진 와일드카드 1위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이 날 경기까지 패했다면 승차 없이 승률에서 양키스가 보스턴을 앞서며 순위가 뒤바뀌는 상황이었다. 보스턴과 그 팬들로서는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21세기 들어 더더욱 본격화되고 있는 레드삭스와 양키스와의 경쟁은 이를 지켜보는 팬들을 더더욱 흥미진진하게 하고 있다. 매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고 있지만, 2000시즌 이후로는 우승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양키스. 정규시즌에서는 양키스에 밀리는 인상을 주곤 하지만 정작 최근 4년 동안 2번의 우승 트로피를 가져간 레드삭스.


누가 뭐래도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라이벌로 꼽힐 수 있는 팀은 바로 이들 두 팀이다. 61승 45패 승률 57.5%의 좋은 성적을 기록 중임에도 불구하고 라이벌 양키스가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8연승을 달리는 등 58승 46패 55.8%의 승률로 바짝 뒤쫓아 오는 바람에 때 아닌 위기설이 나돌고 있는 레드삭스.


정말로 그들은 위기를 맞이한 것일까? 레드삭스의 현 상황을 살펴보자.


▷ 잘 키운 유망주 열 FA 안 부럽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보스턴이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그들이 자체적으로 키워낸 유망주들 때문이었다. 물론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에이스 자쉬 베켓과 마이크 로웰의 역할의 역할도 컸지만, 뛰어난 유망주들이 계속해서 빅리그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는 공수 양면에서 아메리칸리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1루수로 성장한 케빈 유킬리스(17홈런 68타점 .311), 지난해 신인왕 출신으로 올해는 타격왕 후보로 성장한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72득점 11도루 .319), 최근 기세가 많이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리그 도루 1위를 지키고 있는 중견수 자코비 엘스버리(63득점 35도루 .265) 등은 모두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보스턴이 뽑았던 선수들이다.


타자들이 다가 아니다.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3년 연속 30세이브를 달성한 리그 최정상급 마무리 조나단 파펠본(4승 3패 30세이브 2.23), 에이스급 투수로 성장하고 있는 존 레스터(9승 3패 3.17), 시즌 중반부터 합류한 새로운 선발 유망주 저스틴 매스터슨(4승 3패 3.65) 등도 최근 몇 년간 보스턴이 자체적으로 팜에서 키워낸 주인공들이다.


최근 몇 년간 FA를 통한 선수 영입에서는 엡스타인 단장의 한계가 엿보이기도 했지만, 세이버매트릭스의 대부인 빌 제임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신세대 단장답게 오클랜드의 빌리 빈 단장과 마찬가지로 유망주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데는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마이너리그에서는 아직도 다 보여주지 못한 유망주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의 존재 때문에 지금의 보스턴이 강하며, 앞으로의 전망도 밝은 것이다.


▷ 막강한 선발진(1) - 에이스 자쉬 베켓

지난해 20승 투수였던 에이스 자쉬 베켓은 올 시즌 현재까지 9승 7패 방어율 3.83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얼핏 보면 지난해만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차이는 없다. 이닝 소화 능력은 더욱 향상되었으며 피안타율이나 볼넷 허용비율, 탈삼진 비율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차이가 있다면 단 한 가지. 지난해 200이닝에서 17개에 불과했던 피홈런이 올 시즌은 127이닝 동안 15개에 달한다는 것뿐이다. 이 점이 약간의 방어율 차이와 더불어 베켓의 승수 쌓기를 방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본인 스스로가 조금만 더 집중력을 발휘하면 고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베켓이라는 투수가 지닌 기본적인 투구의 위력은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5월 한 달 동안 9개의 홈런을 허용했을 뿐 나머지 3달 동안은 허용한 홈런은 단 6개에 불과했다.


이 말은 레드삭스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베켓의 괴력투를 감상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상대팀에게는 공포나 다름없다.


▷ 막강한 선발진(2) - 마쓰자카

올 시즌 마쓰자카는 지난해와 전혀 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마운드에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메이저리그에 첫 선을 보인 지난해 15승 12패 방어율 4.40의 괜찮은 성적으로 합격점을 받았던 그는 올 시즌 현재까지 11승 1패 방어율 2.63의 다소 놀라운 피칭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투수구가 많아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약점이 있지만, 보스턴은 막강한 선발진과 더불어 수준급의 불펜을 겸비한 팀이라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점점 마쓰자카가 책임지는 이닝이 늘어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마쓰자카의 이러한 투구가 이어지기만 한다면, 커트 쉴링이 부상으로 시즌아웃 된 마당에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 역시도 지난해 우승 멤버로서 포스트시즌을 경험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여기에 올 시즌 노히트 노런의 주인공이기도 한 존 레스터와 저스틴 매스터슨, 노장 너클볼러 팀 웨이크필드(6승 8패 3.94)까지. 보스턴의 선발 5인은 모두 3점대 이하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다. 적어도 선발진의 무게에서는 양키스보다 한 수 위다.


▷ 매니는 역시나 매니였다

전국구 인기 팀의 간판선수가 겪어야만 하는 숙명. 뉴욕 양키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그러하듯 보스턴을 대표하는 선수랄 수 있는 매니 라미레즈도 꽤나 잦은 수난을 겪는 편이다. 그리고 올 해도 매니는 다소 난처한 상황에서 돌출된 언행으로 팬들의 심장을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다.


28일 경기가 시작되기 전, 출장 선수 명단을 발표하면서 매니 라미레즈의 이름이 소개되자 펜웨이파크의 펜들이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전날 매니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팀이 나를 트레이드 시킨다면 어디든 갈 생각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 그는 현재 태업 성 플레이에 대한 의혹과, 거짓 부상으로 경기에 결장한 것은 아니냐는 의혹도 함께 받고 있다.


사실 라미레즈에 대한 이러한 눈초리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그는 원래 야구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가지고 있는 선수가 아니다. 단지 배가 고파서 방망이를 잡았고, 그렇게 시작한 야구에 특출 난 재능을 보였을 뿐이다. 매니에게 야구란 돈벌이의 수단임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게임’이다. 경기를 즐기는 모습으로 집중력을 발휘할 때는 역대 그 어느 타자와도 비교할 수 없는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지만, 어떤 때는 말도 안되는 허술한 플레이로 팬들의 한숨을 자아내기도 한다. 보스턴 팬들의 애증의 대상. 이것이 라미레즈다.


2001년부터 시작된 매니와 보스턴의 계약은 올해 1차적으로 종료가 되지만, 2년에 걸친 옵션 조항이 남아있다. 보스턴 측에서 옵션을 이행하게 되면 매니는 내년 시즌에도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고 펜웨이파크에서 뛸 수 있다. 단지 그 연봉이 2000만 달러라는 사실과 매니의 성적이 최근 몇 년간 뚜렷한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인 매니의 올 시즌 나이는 36세. 여태까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대부분 중남미 계열의 선수가 30대 후반을 기점으로 급격한 기량저하와 더불어 커리어를 마감했다. 그것은 그들이 나이를 속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충분한 돈을 벌어놓은 상황에서 굳이 야구에 목숨 걸 필요가 없어진 그들이 점점 나태해져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니가 꼭 그런 길을 걸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40세 이상의 선수는 죄다 미국 태생(그것도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백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간과해선 안 될 문제다.(참조 : 2008/04/20 - 우리의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


때문에 보스턴 구단과 엡스타인 단장도 섣불리 옵션 이행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엄청난 금액의 골칫덩이를 떠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00만 달러라면 올 시즌 FA로 풀리는 선수 중 최대어로 꼽히는 C.C. 사바시아를 잡을 수 있는 금액이다. 당연히 주판알을 튕기며 손익 계산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여기에 불만을 가진 매니는 시즌 내도록 언론을 통해 자신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처음에는 ‘나는 레드삭스에서 커리어를 마감하고 싶다’는 말로 팬들의 마음을 사는 듯 보였지만, 구단이 이에 별 반응이 없자 결국 엇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라미레즈는 올 시즌 팀 내에서 가장 많은 19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65타점 타율 .302를 기록하고 있다. 장타율은 전성기 시절에 비해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영양가 높은 활약이다. 양키스와의 28일 경기에서도 오티즈와 더불어 활발한 타격을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장의 공헌도가 크고 포스트시즌에서 발휘될 그의 능력에 대한 기대치 때문에 보스턴이 트레이드 마감 시한 이전에 그를 내보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어쩌면 올 시즌 끝까지 매니와 함께 한 다음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입장일 수도 있다.


매니도 이러한 속내를 어느 정도는 알기 때문에 옵션 이행에 대한 압박을 계속해서 넣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매니라 하더라도 지금 같아선 FA로 풀려도 2000만 달러를 받을 가능성은 없다.


한때 보스턴 구단이 간판타자인 매니를 웨이버로 공시해 서로 간의 감정이 크게 상한 적이 있는 양측. 그들의 애매한 동거는 아마도 올 시즌이 종료될 때까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과연 매니는 떠날지도 모르는 팀을 위해서 얼마만큼의 집중력을 발휘해 줄 수 있을까. 그의 방망이에 보스턴의 올 시즌 최종 성적표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 레드삭스는 강하다

한때 레드삭스가 지니고 있던 이미지는 시즌 초반에는 실컷 잘나가다가 후반 들어 부진에 빠지는 바람에 양키스에 역전당하고 결국은 와일드카드도 획득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던 때가 바로 2006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보스턴은 달라졌다. 어쩌면 양키스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이미지를 빼앗아왔다고 봐도 될 것이다. 90년대 후반의 양키스는 ‘정규시즌 성적이야 어쨌건 간에 포스트시즌 진출만 성공하면 우승 1순위’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평가는 레드삭스의 것이 된 듯하다. 대신 양키스의 이미지는 ‘정규시즌에서만 강한 팀’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해 후반기 최고의 팀은 양키스였지만 결국 지구 1위 자리를 지키고 최종적으로 월드시리즈를 따낸 팀은 레드삭스였다. 지금 당장도 위기라는 소릴 듣고 있지만 2경기 차로 상대를 앞서 있는 것은 양키스가 아니라 레드삭스다.


아무리 양키스가 좋은 기세를 타고 있다고 해도, 데이빗 오티즈가 복귀한 레드삭스가 당장의 전력평가에서 밀릴 이유가 전혀 없다. 양키스는 하비에르 네이디와 다마소 마테를 영입하면서 약점을 보강했지만, 레드삭스는 굳이 그런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을 보강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탄탄한 선수 구성을 지니고 있다.


레드삭스는 21세기 들어 유일하게 두 번의 우승을 차지한 팀이다. 그리고 지난해 우승 이후 많은 전문가들은 훗날 이 시기가 레드삭스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제는 그것을 증명할 때가 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순위 다툼에서 뉴욕 양키스와 템파베이를 누르고 지구 1위에 등극하는 것. 이것은 ‘레드삭스 네이션’이 2000년대 최강팀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