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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 Sports

올림픽 귀화선수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시각...

by 카이져 김홍석 2008. 8. 8.

올림픽 개막을 코앞에 둔 이 시점에 해외와 한국 언론에 자주 언급되는 선수가 한 명 있다. 그 선수의 이름은 바로 김하늘(26). 그는 이번 올림픽에 호주 양궁 국가대표로서 Sky Kim이라는 이름으로 출장한다. 그는 이른바 올림픽 귀화선수인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큰 국제 대회가 벌어질 때면, 이러한 귀화 선수들이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꽤나 많은 나라들이 이러한 귀화선수들로 인한 곤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올해 국민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낸 추성훈 때문에 이러한 선수들에 대한 시각이 예전에 비해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 같으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귀화선수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개인의 꿈을 위해 국적을 바꾼’ 이들은 ‘부조리가 있는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꿈을 위해 국적을 바꾼’ 추성훈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의견이다.


이런 귀화선수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은 어떠해야 할까? 일부의 주장대로 정말로 이들이 매국노인 것일까?


김하늘은 2003년 뉴욕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한국 대표로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던 선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국내 대표선발전을 통과하기가 더 어렵다’는 양궁이란 종목의 특성 때문에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이후 호주 양궁협회의 제안을 받은 김하늘은 2006년 호주 시민권을 취득했고, 이번에 호주 대표로 올림픽에 출장한다.


문제는 김하늘이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에이스인 임동현(22, 한체대)과 3번 경기를 펼쳤고, 그 중 2번이나 승리했다는 점이다. 즉, 그가 한국의 선수들을 꺾고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며, 한국의 국민들 중 일부는 이러한 현실을 용납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김하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본 여자 양궁 대표 선수 중에는 엄혜랑(23, 일본명 하야카와)이라는 선수도 있다.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엄혜랑은 일본에서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귀화한 케이스. 세계적인 레벨에서 검증된 선수는 아니지만 ‘혹시나’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6년 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추성훈을 향해, ‘추성훈이 조국을 메쳤다’라고 표현한 언론은 이번에도 ‘김하늘, 조국을 향해 활을 당긴다’, ‘귀화 선수들, 한국 메달 빼앗자!’라는 과격한 표현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이끌어 내기에 여념이 없다.


4년 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결승에서 한국 선수를 물리친 외국(아마도 미국) 선수와 기쁨의 포옹을 나누는 한국인 감독이 일부 네티즌들에 의해 난도질당한 적이 있다. ‘어떻게 조국을 이겨놓고 기뻐할 수 있느냐?’가 비난의 이유였다. 과연 이 이유는 정당한 것일까?


호주 양궁 대표팀의 감독은 올림픽 단체전 2관왕에 빛나는 오교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표팀 감독의 25%는 한국인이라고 한다. 태권도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한 때 ‘한국 셔틀콕의 황제’로 불렸던 박주봉은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베이징을 밟는다. 과연 그들이 자신이 키운 선수들의 승리를 기뻐하는 것이 옳지 못한 행동일까?


이번 올림픽 귀화선수의 논란에는 미국의 농구 선수들도 포함되어 있다. NBA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정통파 센터 크리스 케이먼은 이번 올림픽에서 할아버지의 나라인 독일의 대표 선수로 올림픽에 나선다. 케이먼의 활약으로 예선을 돌파할 수 있었던 독일은 이미 그를 영웅시 하고 있다. WNBA의 스타 베키 해먼이라는 선수는 지난 4월 갑작스레 러시아로 귀화해 이번 올림픽에 출전했다. 미국에서는 이들이 ‘배신’을 했다며 난리다.


하지만 케이먼과 해먼의 경우를 김하늘과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케이먼과 해먼은 순수하게 ‘개인의 명예와 욕심’만을 위해 귀화를 선택한 경우다. 둘 다 미국 대표로 뽑히지 못하자 자신들의 꿈을 위해 귀화를 선택한 것이다. 케이먼은 이미 수천 만 달러의 돈을 벌어들인 부자고, 해먼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 출신의 귀화 선수들은 다르다. 힌국이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는 분야는 대부분 비인기 종목이다. 그런 종목의 선수들은 국제무대에서의 실적이 없으면 은퇴 후의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그런 상황. 그런 상황에 처한 선수들에게 ‘귀화’란 단순한 ‘꿈을 위한 도전’과는 다르다.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감독이라는 입장으로 해외에 나가 있는 수많은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국내 시장은 너무나도 좁다.


야구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을 위해 귀화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당연히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굳이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아도 프로 선수로서 충분히 넉넉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야구가 비인기 종목이었다면. 그래서 한국 프로 무대를 통해 벌수 있는 돈이 적다면, 그리고 그 대신 올림픽에 출장해서 얻을 수 있는 혜택과 연금이 어마어마하다면 아슬아슬하게 대표팀에 탈락한 선수들이 중국이나 대만 또는 그 외의 나라로 귀화해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한국 대표팀에도 중국에서 귀화한 탁구의 당예서가 있다. 얼마만큼의 성적을 보여줄지는 몰라도 만약 그녀가 금메달을 딴다면 한국의 국민들은 분명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기뻐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순수하게 ‘한국인’ 당예서가 대한민국을 대표해 금메달을 딴 것이 기뻐서.

둘째, 비록 ‘용병’이 따낸 부끄러운 금메달이지만, 이유야 어쨌건 이로 인해 한국이 한 단계 더 높은 순위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이 기뻐서

셋째, 중국에서 귀화한 ‘중국인’ 당예서가 ‘탁구 최강국’이라 잘난 채 하는 중국을 물 먹인 것이 통쾌하고 재미있어서


만약 한국의 국민들이 당예서의 메달을 기뻐하는 이유가 두 번째나 세 번째라면 그것 또한 무척이나 서글픈 일이 아닐까.


엄혜랑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기사에 달린 악플을 보고, “전 조국을 겨누지 않아요. 우울증에 걸리는 연예인들 심정이 이해가 가요. 처음엔 너무 힘들었죠. 하지만 이제는 담담해졌어요.”라고 답했다. “올림픽은 나라 간 싸움이 아니라 선수 간 경쟁이라는 얘기를 믿고 싶어요.”라는 말도 남겼다.


올림픽은 어떤 대회일까? 나라간의 싸움일까 아니면 개개인의 경쟁인 것일까?


나 역시도 올림픽이란 세계 정상을 두드리는 개인이 국가와 국민의 응원을 얻어 경쟁하는 대회라고 생각한다. 올림픽은 단순한 나라간의 경쟁이나 순위다툼이 아니다. 개인의 꿈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대회에서 국가별로 메달을 집계해 순위를 매기는 것이 우습다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꿈과 미래를 위해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에게 조국을 대표한다는 명목하게 참고 희생하기를 강요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따지고 보면 쇼트트랙의 파벌싸움도 이러한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 강요로 인한 것이 아니었던가.


국적이 어떠했던 이유가 무엇이었건 간에,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최선을 다해 세계 최고의 자리를 위해 달려가는 선수들은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개인의 사정도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조국의 선수들과 경쟁한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쓸데없는 ‘매국노 논쟁’으로 낭비할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열심히 땀 흘리고 있는 우리의 대표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