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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올림픽 출신의 메이저리그 스타는 누가 있을까?

by 카이져 김홍석 2008. 8. 11.

야구가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였다. 유럽 쪽에서의 인기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라 이전부터 시범경기로 열리긴 했으나, 공식 정규 경기에 포함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야구는 이번 2008년 북경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2012년 런던 올림픽부터는 정식종목에서 다시 제외되고 말았다. 야구의 저변이 그다지 넓지 못한 터라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2016년 올림픽에서 다시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지만, 확신할 순 없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인 메이저리거들이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핑계 아닌 핑계를 IOC측에서 대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번을 마지막으로 다음부터는 더 이상 메이저리그의 꿈나무들을 올림픽을 통해 미리 볼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지난 몇 회의 올림픽 동안 미국은 항상 마이너리그 유망주들을 주축으로 선수단을 꾸렸고, 그런 그들은 나중에 메이저리그의 스타로 성장해 팬들과 다시 만났다. 올림픽에 출장했던 메이저리그의 스타는 누가 있을까? 지금부터 한 번 살펴보자.(이 글은 미국의 스포츠 전문 사이트인 SI.com의 뉴스를 일부분 참고로 했음을 밝혀둔다.)


▷ 1984년 LA 올림픽(시범경기)

야구의 나라 미국에서 열린 올림픽이라 시범경기로 야구가 열렸다. 그리고 그 미국 대표팀의 중심에는 마크 맥과이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결승에서 일본에 충격의 패배를 당하며 은메달에 그치며 체면을 구겼다. 이는 맥과이어가 21타수 4안타 무홈런으로 부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훗날 솔리드한 외야수로 더욱 널리 알려졌지만 B.J. 서호프는 원래 포수였다. 84년 올림픽에서 포수 마스크를 쓰고 투수들을 리드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또한 당시 미국팀의 주전 유격수는 훗날 신시네티 레즈의 ‘영원한 캡틴’으로 칭송받는 배리 라킨. 마크 맥과이어와 더불어 대학 최고의 선수로 손꼽혔던 윌 클락도 당시 대표팀에 포함되어 있었다.


▷ 1988년 서울 올림픽(시범경기)

나중에 뉴욕 양키스의 캡틴이 되는 티노 마르티네즈는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2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팀에 금메달을 안겼다. 비록 시범경기이긴 했지만 올림픽과 월드 시리즈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티노는 행운의 사나이임에 틀림없다.


티노가 홈런을 날렸을 때 1루에 있다가 홈으로 들어온 선수가 로빈 벤츄라였다. 그는 .409의 타율로 팀을 이끌었고, 올림픽이 끝난 후 그 해의 전미 아마추어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되는 ‘골든 스파이크 어워드’ 수상자로 결정된다. 이 해의 대표로는 조막손 투수인 짐 에보트찰스 내기 등이 주축 투수로 활약했다. 특히 에보트는 결승에서 만난 일본을 상대로 3실점 완투승을 거두며 지난 대회의 패배를 되갚아준다. 당시 일본 팀의 에이스는 노모 히데오였다.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첫 정식종목 채택)

노마 가르시아파라는 19세의 나이로 드디어 야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올림픽에서 대표가 되는 영광을 차지한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미국을 위한 대회가 아니었다.


현재 뉴욕 양키스의 1루수인 제이슨 지암비도 92년 올림픽의 대표선수였으며,


현 보스턴 레드삭스의 주전 포수인
제이슨 베리텍도 참가했다. 그 외에도 필 네빈, 대런 드라이포트, 제프리 해먼즈 등이 당시 대표로 출장해 금메달을 목표로 달렸다.


하지만 미국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아마 최강 쿠바에게 4:1로 패했고 3,4위전에서 만난 일본에게도 8:3으로 무릎을 꿇으면서 치욕적인 노메달에 그쳤다. 이 당시의 미국 대표팀에는 팀을 강인하게 이끌어 줄 수 있는 에이스가 없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92년의 영웅은 다름 아닌 쿠바, 그 가운데서도 큰 관심을 받았던 선수 중 한명이 올란도 에르난데스다. 이후 그는 쿠바를 탈출해 메이저리그로 진출했고, 아직까지도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3루수 트로이 글로스는 96년 올림픽 당시 미국 대표팀의 주포로 활약했다. 크리스 벤슨, 제프 위버, 빌리 카치, 브래든 루퍼 등으로 구성된 투수진, 자크 존스, 트레비스 리, 마크 캇세이 등이 이끄는 타선. 지난 대회의 치욕을 씻기 위해 미국은 정예 멤버를 구성하고 출전했지만 또다시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이번에도 준결승에서 그들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일본이었다.


올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후쿠도메는 이 당시 19살의 나이로 대표팀에 발탁되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금메달은 또다시 쿠바) 준결승에서 일본은 미국 마운드를 초토화시키며 11:2로 제압해 ‘미국 킬러’로서의 명성을 드높였다. 후쿠도메는 8년 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에도 출장했다.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전의 대회가 아마추어 선수들만이 참가가 가능했다면, 시드니 대회부터는 프로선수들의 참가가 가능해졌다. 그러한 규정에 힘입어 두 대회 연속으로 쿠바와 일본에게 무릎을 꿇으며 결승 진출에 실패한 미국은 시드니 대회에서 최정예 멤버를 꾸려서 출장한다. 물론 메이저리거가 포함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이너리그 특급 유망주’가 대거 포함된 미국 대표팀은 강했다. 그리고 그 대표팀을 이끈 것은 LA 다저스의 전 감독이었던 토미 라소다다.


라소다는 88년 대회를 제압한 짐 에보트 이후 믿을만한 에이스의 부재가 패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두 명의 막강 원투펀치를 대표팀에 포함시켰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결승에서 쿠바를 3피안타 셧아웃으로 제압한 벤 시츠다. 지금은 밀워키 브루어스의 에이스인 시츠가 당시 결승전에서 보여주었던 투구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시드니 올림픽 당시 미국팀을 가장 괴롭힌 것은 쿠바나 일본이 아닌 바로 한국이었다. 그리고 그 한국을 연거푸 제압한 투수는 지금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특급 에이스로 성장한 휴스턴 에스트로스의 로이 오스왈트였다. 예선리그와 준결승에서 한국전에 두 번 모두 등판해 정대현과 맞대결을 펼친 오스왈트는 예선에서는 완봉으로 준결승에서는 3:2로 한국을 물리치며 미국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한국전의 영웅은 오스왈트만이 아니었다. 예선리그 0:0의 상황에서 진필중으로부터 만루 홈런을, 2:2로 팽팽히 맞선 준결승에서는 9회말 끝내기 솔로 홈런으로 한국을 침몰시킨 덕 민케이비츠의 활약도 돋보였다. 하지만 민케이비츠는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수준급 선수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 경기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오스왈트의 호투도, 민케이비츠의 홈런도 아닌 심판의 어처구니없는 판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3,4위전에서 만난 일본과 만난 한국이 선발 구대성의 멋진 투구에 힘입어 상대 선발인 마쓰자카를 꺾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사실이다. 구대성과 마쓰자카도 이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고, 마쓰자카의 경우는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맛봤다.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많은 사람들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의 야구 결과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 한국이 예선에서 충격적인 탈락을 당했고, 미국조차도 예선에서 멕시코에게 무릎을 꿇고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메이저리그 감독은 프랭크 로빈슨(당시 몬트리올 감독)을 사령탑으로 임명하고 지난 대회와 같이 마이너리그 유망주들로 팀을 꾸렸으나 결과적으로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마쓰자카는 시드니 올림픽에 이어 아테네 올림픽에도 일장기를 달고 출장했다. 하지만 지난 대회에 이어 마쓰자카는 비운의 주인공이었다. 호주와의 준결승에서 무려 13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1점만 허용했으나, 호주 선발 크리스 옥스프링(현 LG 트윈스)의 예상치 못한 호투로 1:0으로 패배한 것. 미국과 한국이 없는 올림픽에서 최정예 멤버를 출전시켜 금메달을 노렸던 일본으로선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3,4위 전에서 승리해 동메달을 목에 건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양키스의 에이스 왕첸밍도 당시 올림픽에 출장했다. 그는 한국을 예선에서 탈락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왕첸밍은 예선에서 한국전에 선발 등판해 정민태와 맞대결을 펼쳐 결과적으로 판정승을 거뒀다. 당시 왕첸밍은 더블A 소속이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번 올림픽에서 보게 될 미래의 메이저리그 스타는 누가 있을까? 역시나 미국의 대표팀을 눈 여겨 봐야겠지만, 최정예를 출격시킨 한국과 일본, 대만 등의 선수들도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또한 쿠바의 선수들도 언제 망명을 신청해 메이저리그에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


한국의 첫 상대인 미국은 선발로 유일한 대학 선수인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샌디에이고 주립대학)을 등판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난 달에 있었던 세계 대학 선수권에서 한국을 상대로 등판해 7이닝을 노히트로 막아낸 주인공. 볼넷도 1개밖에 허용하지 않았고, 13개의 탈삼진을 쏟아내며 한국 대표팀을 침몰시켰다.


투구 수는 겨우 87개, 6회까지 퍼펙트로 한국 대학팀을 막아낸 그가 7회에 볼넷을 허용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국제경기 퍼펙트’라는 치욕을 맛볼 뻔 했다. 스트라스버그는 대만 전에도 등판해 7이닝 2피안타 2볼넷 9탈삼진의 완벽한 투구로 대회 방어율 ‘0.00’을 기록했다.


과연 한국은 로이 오스왈트에 이은 또 다른 특급 투수의 희생양이 될 것인가, 아니면 아직은 아마추어인 스트라스버그에게 프로의 쓴 맛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한국 대표팀의 성적만큼이나 미래의 메이저리그 스타가 될 지도 모르는 각국 대표 선수들의 실력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