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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 Sports

안타깝게 묻혀버린 위대한 시즌에 관한 이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8. 18.


"THEY STOLE THE SHOW!!!"


그들이 쇼를 훔쳤다! 이는 지난 1985년 7월 13일 전세계 기아 난민을 돕기 위한 자선 공연인 "Live Aid"에서 공연한 영국 최고 가수 엘튼 존이 그룹 퀸에 대해서 일갈한 말인데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Live Aid `85는 미국 JFK 스타디움과 영국 웸벌리 스타디움에서 동시에 진행되어 당시 전세계에 내노라하는 최고 가수들이 출연한 명실상부한 역사상 최고, 최대의 공연이었습니다. 이 날 퀸은 당시 출연한 모든 가수들을 능가하는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며 사람들이 마치 퀸의 라이브 콘서트를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청중들을 압도, 같이 출연한 다른 가수들을 들러리로 만들어 버리는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올해 야구계에도 위와 같은 일이 있었죠. 이번 2008 올스타전 홈런 더비는 바로 자쉬 해밀턴에게 "He Stole The Show!!!"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에 의한, 그를 위한, 그만의 축제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아직 더비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장내에 운집한 수만명의 관중들이 오로지 그를 응원하고 구장측에서도 그에게 맞춰 음악을 틀고 심지어 틈틈히 다른 선수들은 인터뷰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로지 자쉬 해밀턴만 따라다니며 집중 조명하는 모습 등등. 하지만 여기서 잊어서는 안될 선수가 한명 있죠. 바로 저스틴 모노...


그는 작년에 이미 홈런 더비에 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년 연속 출전하며 홈런 더비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여줬는데요, 마침내 1위에 오르며 그의 노력과 바램에 부응하는 결과를 보였음에도 오히려 경기장에서 마치 죄인처럼 어쩔줄을 몰라하고 마음껏 기뻐하지도 못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참 마음이 아팠더랬습니다. 작년에 우승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요.


그래서 한번 준비해 봤습니다. 130년의 메이저리그 역사 중 정말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역사에 남을 만한 퍼포먼스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하필 동시대에 일어난 더 위대한 사건에 의해 묻혀버리며 주인공으로써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소외 되었던 당시의 안타까운 선수와 시즌들...일명 달빛에 가려진 별빛의 이야기를 말이죠.



마지막 4할 타자의 쓸쓸한 몬스터 시즌

달빛에 가려진 별빛 이야기를 하는데 이분을 빼놓고 얘기하면 아마 이분 무덤에서(아..냉동 캡슐이라 해야하나?) 벌떡 일어나 제 멱살을 잡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테드 윌리암스...


1941년 보스턴의 3년차 외야수 테드 윌리암스는 데뷔 시즌부터 이어온 고감도 타격감을 이어가며 전성기를 꽃피우고 있었죠. 물론 그의 독특한 성격으로 팀메이트들과 팬, 그리고 언론들에게 뭇매를 맞으며 힘든 생활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의 타격 능력만큼은 그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었는데요. 특히 7월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아메리칸 리그에게 승리를 안기는 9회말 2사후 역전 스리런 홈런을 날리며 최고의 타격 감각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시즌이 종료가 다가와도 4할에서 노는 그의 타율은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고 필라델피아와의 시즌 마지막 더블헤더 두 경기가 남은 시점에서 .39955라는 타율로 가만 있어도 4할 타자라는 영광을 차지할 수 있음에도 팀 동료 조 크로닌의 조언을 무시하고 경기에 모두 출장 6안타를 몰아치며 .406의 타율로 타격왕을 차지합니다. 물론 아직까지 다시는 나오지 않고 있는 4할 타율 기록이죠. 윌리암스는 단지 타율 뿐 아니라  홈런, 득점, 사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타석당 홈런수 등등 타격 전반에서 1위에 등극하며 1941년을 그의 시즌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1941년은 미국인들에게 마지막 4할타자가 나온 해 보다는 연속안타 기록이 만들어진 해로 더욱 기억되고 있습니다. 바로 조 디마지오의 56게임 연속 안타 신기록이 세워진 해였기 때문문인데요. 팬들과 언론에게 적대적이었던 윌리엄스에 비해 올바른 언행과 플레이로 범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던 국민 타자 조 디마지오는 하필 애송이 윌리암스가 대기록을 세운 해에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사실 뭐 디마지오는 이미 마이너리그 시절 66게임 연속 안타 기록을 세우기도 했죠) 대기록을 세우며 전국을 들끓게 만들었죠. 

                         

윌리암스가 묵묵히 대기록을 작성하고 있던 시즌 내내 대중매체는 윌리암스의 기록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오로지 디마지오의 경기와 그의 일거수 일투족만 보도하였고 결국 디마지오의 기록 행진이 종지부를 찍은 후에도 한번 넘어간 관심은 그리 쉽게 돌아오지 않아 4할 타자의 기록 경신 여부는 머쓱할 만큼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시즌 MVP도 조 디마지오에게 돌아가게 되고요. 뭐 안타깝게 묻혔다고 할 정도로 철저한 외면을 받은 것은 아니겠지만 윌리암스가 세운 위대한 기록과 몬스터 시즌의 무게감을 감안할 때 1941년은 그에게 참으로 타이밍 안좋은 해였음은 분명합니다.



괴물에게 묻혀버린 마지막 타격 트리플 크라운

일단 이름부터 명확히 하도록 하죠. "Carl Yastrzemski"......맞습니다. 뭐 다 아시다시피 마지막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선수죠. 칼 야스트르젬스키, 칼 야젬스키, 칼 야스젬스키 등등 이 분의 어렵고도 난해한 이름을 부르는 방법은 여러가지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 "Z"는 묵음으로 취급하여 한국말로 "칼 야스트렘스키"라고 읽는 것이 정답에 가깝습니다.

                     

데뷔 후 23년간 오로지 보스턴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한 프랜차이즈 스타 야스트렘스키에게 1967년은 정말 평생 잊지못할 한 해였는데요. 위에서 밝힌바와 같이 타율 .326 홈런 44개 타점 121점으로 이후 40년이 넘도록 나오지 않을 마지막 타격 트리플 크라운의 위업을 달성한 것이었습니다. 개인 기록 뿐만이 아니었죠. 디트로이트, 미네소타와 리그 챔피언 자리를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던 시즌 막바지 2주 동안  타율 .523 홈런 5개 타점 16점으로 팀을 이끌고 결국 마지막 미네소타와의 리그 우승을 결정 짓는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팀에 리드를 안기는 3점 홈런을 작렬 시킨 것도 모자라 9회말 결정적 호수비로 승리를 지키며 팀에 월드 시리즈(당시에는 정규 시즌 우승이 바로 월드 시리즈 진출이었죠) 진출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구단주 탐 요키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맹세코 내 평생 최고로 행복한 날이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다음해 야스트렘스키의 연봉을 100% 인상해주기로 약속하였고 팬들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1920년부터 시작된 밤비노의 저주를 드디어 풀 수 있을 것이라며 흥분, 우승 퍼레이드를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1967년은 야스트렘스키의 해가 될 것이라는데 의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했죠. 하지만 월드 시리즈에서 맞붙은 상대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승부욕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최강의 투수 밥 깁슨이 이끄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였습니다.


밥 깁슨의 승부욕은 정말 무서울 정도여서 경기 시작전에는 상대팀 선수는 물론이고 자기 팀 동료들에게 조차 말 한마디 건낸 적이 없었고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일조차 매우 드물 정도였죠. 하루는 경기 도중 타구에 다리를 맞아 골절상을 입었음에도 투수 교체를 거절하고 공을 계속 던지겠다고 고집을 피워 모든 이를 아연실색하게 만들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팀 동료들은 "깁슨은 절대 승리를 원하여 경기하는게 아니다. 절대로...그는 다만 지는 것을 정말 미칠듯이 혐오하여 지지 않기 위해 경기를 하는 것이다"라고 회고하였죠. 

                   

아무튼 월드 시리즈에서 맞붙은 두팀은 정말 치열한 혈투를 벌였는데요. 팔꿈치 염증으로 이미 시즌 중 13번의 선발 등판을 거르며 풀타임 데뷔후 가장 부진(?)한 시즌을 보냈던 깁슨은 컨디션이 정상이 아님에도 1차전 선발 등판하여 1실점 완투승을 올리고 3일 후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앞선 상황에서 다시 선발 등판하여 완봉으로 승리를 거둡니다. 이후 팀이 연패를 당해 3승 3패로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다시 3일만 쉬고 마지막 경기에 등판하여 이번엔 홈런까지 기록하며 2실점 완투승을 기록, 팀의 우승을 이끌죠. 월드 시리즈 3경기 선발 등판 3승, 3완투, 1완봉, 방어율 1.00,  27이닝 14피안타 26삼진...보스턴은 깁슨 한명에게 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완벽하게 제압당했고 깁슨은 전국적인 영웅으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습니다.


반면 정규 시즌 타격 트리플 크라운에 빛나는 야스트렘스키는 월드 시리즈에서도 .400의 타율에 홈런 3개를 몰아치며 분전하였지만 1967년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괴물의 위대한 퍼포먼스에 묻혀서 말이죠. 만약 1967년 깁슨의 부상이 장기화되어 월드시리즈에서 나오지 못했더라면? 보스턴이 밤비노의 저주를 풀고 47년만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더라면? 야스트렘스키는 아마 두고 두고 인구에 회자될 1967년의 영웅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국가 영웅의 등장에 휩쓸려 버린 최다 안타 기록

지난 2004년은 84년동안 깨지지 않던 하나의 위대한 기록이 경신된 시즌이었습니다. 타격의 달인으로 일본을 평정하고 메이저 리그에 진출, 역시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던 타격 천재 이치로가 262개의 안타를 몰아치며 단일 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을 작성한 것이었는데요. 사실 미국에서야 상황이 다르겠지만 국내에서는 그 당시 까지만해도 타격과 안타 하면 왠만한 메이저리그 매니아들도 타이 콥이나 피트 로즈를 떠올리기 마련이었기 때문에 막연히 기존의 기록이 이 두 선수들 중 한명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하고 있는 수준이었죠. 하지만 100년 가까운 시간동안 이어온 단일 시즌 257개의 최다 안타 기록은 다름 아닌 조지 시슬러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1915년 세인트 루이스 브라운즈에서 데뷔한 시슬러는 당시 위대한 선수들 치고는 비교적 짧은 15년이라는 선수 생활동안 무려 2812개의 안타를 몰아치고 통산 타율 .340을 기록하며 타이 콥이 없었다면 20세기 초반 최고의 타자로 이름을 날렸을 위대한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죠. 그는 커리어 동안 1920년과 1922년 두번의 4할 타율을 기록하였는데요, 처음 4할을 기록한 1920년에 257개의 안타를 기록하며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세운 것을 비롯 .407의 타율, 19홈런 122타점 42개의 도루를 기록하여 1920년을 커리어 최고의 시즌으로 장식하는 활약을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1920년은 시슬러의 해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기록을 세운 그는 언론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주인공은 커녕 2인자로 한걸음 물러서게 되는 대접을 받게됩니다. 1919년 Dead Ball Era가 완전히 종지부를 찍으며 Live Ball Era로 넘어가면서 1918년 아메리칸 리그 전체 홈런 수가 총 96개에서 1919년 240개로 140% 증가하게 되고 리그 평균 타율도 .254에서 .268로 급격히 증가하게 되는데요, 1920년은 이런 타격 전성기에 가속이 붙어 리그 총 홈런 수 369개에 리그 평균 타율이 무려 .283으로 타격 랭킹 5위안에 드는 선수가 모두 .370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는 그야 말로 타고투저의 전형을 보여준 시즌으로 시슬러의 타격 기록은 일단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을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너도나도 좋은 타격기록을 보이는데 최다 안타와 4할 타율이 뭐 대수냐 하는 분위기가 그의 대기록을 빛바래게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를 1920년 시즌의 주인공의 자리에서 밀어낸 진짜 이유는 Live Ball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미국 근대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는 영웅이 등장했기 때문이었죠.

                                
메이저리그의 대명사이자 메이저리그 그 자체로 아직까지도 미국 내에서 식을줄 모르는 사랑을 받고 있는 베이브 루스. 1920년 보스턴에서 헐값에 팔려 양키스로 이적한 후 타격에만 전념하기 시작한 그는 당시 야구에서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대기록을 작성합니다. 54개의 홈런. 이미 Live Ball 시대에 들어선 1919년 보스턴에서 29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홈런왕의 개념을 바꿔버린 그가 1920년 기록한 54개의 홈런은 당시 사람들의 머리속에 이해할수도 없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홈런 기록이었죠. 어떻게 한 사람이 한 시즌에 50개가 넘는 홈런을 기록할 수 있을까...


단적인 예로 리그 홈런 2위를 차지한 조지 시슬러의 홈런 수는 19개, 무려 2위와 40개 가까운 차이를 보이는 그의 파워는 전미국을 들썩이게 합니다. 바야흐르 영웅의 등장이었죠. 베이브 루스의 이와 같은 등장에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세운 조지 시슬러는 완전히 들러리 그 자체로 전락하게 됩니다. 100년 가까이 깨지기 힘든 기록을 세운 그 해에 왜 하필 다른 선수도 아니고 베이브 루스가 타자로 완전 전업하며 그의 파워를 봉인 해제, 야구판을 접수하게 된 것일까요. 메이저리그를 사랑하는 매니아들 조차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 보유자가 타이 콥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말이죠...


테드 윌리암스의 4할 기록과 칼 야스트렘스키의 트리플 크라운 기록은 물론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대기록중에 대기록이며 조지 시슬러의 최다 안타 기록 역시 역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으로 어쩌면 제가 쓴 글의 주제에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시즌을 그들의 무대로 만들기에 충분한 대기록을 세웠음에도 당시 미국내에서 더 큰 임팩트를 일으킨 사건에 의해 주인공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소외된 안타까운 인물들의 몬스터 시즌에 대한 안타까움을 여러 분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주저리 주저리 쓴 글이니 다소 수긍이 안되시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