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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무관의 제왕’ 마이크 무시나의 험난한 20승 도전기

by 카이져 김홍석 2008. 9. 3.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큰 가치를 인정받는 상은 당연히 시즌 MVP와 사이영상이다. 소위 ‘특급’이라 불리는 선수들은 웬만하면 이 상들을 한두 번씩 수상한 적이 있기 마련.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지난해까지 3번의 MVP를 수상했고, 랜디 존슨은 사이영상을 5번이나 수상했다.

하지만 장차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것으로 기대되는 선수들 중에도 유난히 이 상과 연관이 없는 이들이 있다. 타자 중에는 다저스의 매니 라미레즈(36), 투수들 중에는 뉴욕 양키스의 마이크 무시나(39)가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라미레즈는 월드시리즈 우승과 더불어 시리즈 MVP를 수상한 경력이라도 있지만 무시나는 그 마저도 없다는 점에서 ‘무관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린다.

▶ 지질히 복도 없는 마이크 무시나

보고만 있어도 호감이 가는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매너 그리고 친절하기까지 한 무시나는 메이저리그에서 18년 동안 에이스급 투수로 활약해온 베테랑 투수다. 주 무기는 어디로 떨어질지 쉽사리 예측할 수도 없는 너클 커브, 무시나는 이 다루기 힘든 구질을 완벽하게 컨트롤함으로써 메이저리그 굴지의 에이스급 투수로 우뚝 설 수 있었다.

90년대와 2000년대를 통틀어서 무시나만큼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이어온 선수는 그렉 매덕스와 탐 글래빈 정도 밖에 없다. 하지만 매덕스가 4번, 글래빈이 2번의 사이영상을 받는 동안 무시나는 단 한 번도 사이영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소위 말하는 ‘몬스터 시즌’이 없었기 때문.

언제나 리그 최고의 투수를 선정할 때면 그 후보군에 있는 선수 중 한 명이긴 했지만 무시나는 사이영상에 근접한 적도 없다. 유일하게 2위에 올랐던 99시즌은 투수 3관왕(23승 313삼진 방어율2.07)에 오르며 만장일치 수상을 한 페드로 마르티네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적이었다.


그 뿐이 아니다. 무시나는 20승을 달성한 적도 없다. 통산 267승으로 역대 35위에 랭크되어 있는 선수가 단 한 번도 20승을 기록할 적이 없다는 사실은 다소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가능성이 충분했던 94년과 95년에는 파업으로 인해 각각 48경기, 18경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아쉽게 실패하고 말았다. 2001년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후에는 자신의 실력이 예전만 못했다.

우승을 위해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떠나 양키스에 몸 담았지만, 그 전까지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양키스는 공교롭게도 무시나가 합류한 해부터 우승과 인연이 없었고, 올해는 포스트시즌 진출까지 매우 힘들어 보인다. 그의 ‘무관’ 징크스는 개인만이 아니라 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좋은 투수’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상복 없는 투수. 이것이 통산 300승과 3000탈삼진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39살 투수의 현재 모습이다.

▶ 잊고 싶은 2007년의 악몽

무시나는 1991년 데뷔 이후 모든 경기를 선발로 등판한 ‘순수한 선발투수’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자신의 커리어 전체를 선발투수로만 활약하다가 은퇴한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그 기록은 지난해 9월 3일 중단되고 말았다. 그의 부진을 보다 못한 조 토레 감독이 지고 있는 경기에서 그를 롱릴리프로 투입한 것이다. 마이크 무시나 선수 인생 최대의 굴욕이었다.

그랬다. 무시나의 2007년은 그야말로 잊고 싶은 기억이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시즌 방어율이 5점대로 치솟았고, 평균 투구이닝이 6이닝에도 미치지 못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단 한 번뿐이었지만 지고 있던 상황에서의 굴욕적인 구원등판까지.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필두로 한 타선이 워낙에 많은 점수를 뽑아줬기에 연속 10승 기록은 이어갈 수 있었지만, 마이크 무시나라는 이름값은 전혀 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무시나가 300승에 도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을 내놓았고, 팬들은 그의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의 커리어는 인정하지만 ‘큰 임팩트가 없는 선수’는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 힘들다는 것이 주된 논조였다. 모두 다 일리가 있는 의견이라는 점이 더더욱 무시나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을 것이다.

▶ 화려한 부활 - 첫 번째 20승에 도전하다

무시나는 한국시간으로 9월 3일 시즌 29번째 선발 등판 경기에서 17승째를 거뒀다. 16승을 기록한 이후 3번째 도전 만에 이루어낸 승리였다.

지난해의 악몽을 잊고자 절치부심하며 2008년을 준비했던 무시나는 ‘한 물 갔다’라는 주위의 비아냥거림을 비웃듯 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좋은 피칭을 선보이며 승수를 쌓아갔다.

그렇게 늘려가던 승수가 어느새 17승까지 도달한 것이다. 전반기를 11승 6패 방어율 3.61의 호성적으로 마감한 무시나는 후반기 들어 더욱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후반기 10경기에서 무시나의 성적은 6승 1패 방어율 3.05다.

이제 남은 등판은 4번 정도. 팀에서 그의 20승을 위해 5인 로테이션이 아니라 5일 로테이션을 무시나에게 적용시키는 배려를 해준다면 5번까지 등판이 가능하다. 그 가운데 3승을 더하면 대망의 20승에 도달하게 된다. 전성기 시절에도 이루지 못한 것을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 시기에 이루게 되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선수의 개인 타이틀을 위해 선발 투수를 갑작스레 구원투수로 등판시키는 등의 추한 짓은 하지 않는다. 때문에 무시나는 남아 있는 4~5번의 시합에서 반드시 3승을 더해야만 한다. 우승-사이영상과 더불어 그가 간절히 원하던 20승이 간신히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무시나가 보유한 유일한 타이틀은 1995년 다승왕이다. 그 외에는 특출 난 수비 능력을 바탕으로 수상한 6번의 골드 글러브 정도가 전부다. 올해 이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클리프 리가 20승을 기록하고 있기에 다승왕 타이틀을 넘보진 못하겠지만, 20승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아니던가.

뉴욕 양키스는 싫어하더라도 마이크 무시나라는 선수를 싫어하는 팬은 드물다. 때문에 이미 많은 이들이 양키스의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와 관계없이 무시나의 20승 달성을 응원하고 있다.

모두가 끝났다고 말할 때 불사조처럼 화려하게 부활하며 이루어내는 첫 번째 20승. 무시나 본인과 그 팬들에게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일까. 필자 역시도 그가 20승을 달성하고 힘차게 포효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맘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