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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2008시즌 타이틀 예상(1) - 요동치고 있는 NL 사이영상

by 카이져 김홍석 2008. 9. 11.

언제나 이맘때가 되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팀들의 윤곽만큼이나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 바로 개인 타이틀의 행방이다. 특히 가장 큰 영광이랄 수 있는 리그별 시즌 MVP와 사이영상의 경우 특히 그 관심의 집중도가 높다.


올 한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 가운데서도 리그별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단 한명씩에게만 주어지는 크나큰 영광. 시즌 종료까지 3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현재 각 개인 타이틀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선수들을 만나보려고 한다.


오늘은 먼저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당초 거침없이 질주하며 독주채비를 갖춘 선수가 나타나는 바람에 이미 승자가 가려진 것만 같았던 내셔널리그 최고 투수의 자리는 빨리 가던 선수가 갑자기 미끄러지면서 크게 요동치고 있다. 현재로선 한 치 앞도 예상하기 힘든 혼전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 미끄러진 1순위 브렌든 웹

웹이 지난 8월 21일 샌디에이고와의 경기에 올 시즌 27번째로 선발 등판해  19승째를 챙겼을 때만 하더라도 이미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판도는 사실상 결정이 났다고 생각했었다. 당시의 웹은 2위와 무려 4승 차이로 다승부문 단독 1위, 투구 이닝(184) 1위, 방어율도 2.74로 3위를 마크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이미 게임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팬들과 전문가들 관심의 초점은 웹의 최종 승수에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후의 등판한 세 번의 경기에서 웹은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무너지고 말았다. 샌디에이고와의 리턴 매치에서 4.2이닝 6실점하며 기세가 꺾인 웹은 LA 다저스에게 홈과 원정에서 연거푸 3.1이닝 8실점(6자책), 5.2이닝 7실점하며 3연패를 당한 것이다.


바로 직전의 6경기를 모두 승리하는 등 8연승을 달리던 선수의 이유를 알 수 없는 3연패, 다승이야 워낙 벌어 놓은 것이 많아서 여유 있게 1위를 지키고 있지만 리그 2위였던 방어율은 10위권으로 떨어졌고 투구 이닝도 4위권으로 하락했다.


▶ “내가 진짜 화이트 페드로” 팀 린스컴

웹이 주춤하는 동안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던 한 명의 젊은 투수가 무서운 상승세를 타면서 치고 올라왔다. 키 180cm 몸무게 75kg이라는 왜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빠른 패스트볼을 던지는 사나이, 지난해부터 메이저리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팀 린스컴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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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는 8월 21일 시점에서 웹과 린스컴의 성적과 지금 현 시점의 성적을 나타낸 것이다. 얼핏 봐도 3주 전과는 그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웹의 승수가 멈춰있는 사이 린스컴은 3승을 더하며 공동 2위로 올라왔다. 비록 3승의 차이가 적지 않다하나 1점 가까이 차이가 나는 방어율 차이라면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는다.


지난 십 수 년 동안의 결과를 분석해 보건데 사이영상 투표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된 항목은 방어율과 다승 그리고 투구이닝이었고, 거기에 탈삼진과 승률이 보조적인 척도로 사용되곤 했다. 다승을 제외한 나머지 4개 항목에서 웹은 린스컴에게 뒤쳐진다. 비록 웹이 린스컴이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완투를 3번이나 기록하고 그 중 한 번은 완봉승으로 장식했다지만, 투구이닝 자체에서 앞서지 못한 이상 그러한 점은 크게 어필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방어율 1위, 다승 2위, 투구이닝 3위, 탈삼진과 승률 1위인 팀 린스컴과 다승 1위, 방어율 10위, 투구이닝 4위, 탈삼진 8위, 승률 4위인 브랜든 웹의 대결. 과연 투표권을 지닌 기자들의 표는 누구를 향하게 될까?


▶ ‘예상치 못한 변수’ C.C. 싸바시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노리는 것은 웹과 린스컴이 다가 아니다. 지난 7월초 클리블랜드에서 밀워키로 트레이드된 C.C. 싸바시아가 최근 현지의 일부 칼럼니스트들의 지지를 받으며 강력한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셔널리그로 이적한 이후의 싸바시아의 성적은 경악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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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웹이 예정대로 지금쯤 2점대 방어율로 20승을 기록했더라면 ‘싸바시아 사이영상론’은 등장조차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웹이 부진에 빠지고 린스컴도 20승은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싸바시아의 멋진 스탯에 눈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환상적인 방어율과 더불어 엄청난 연승가도, 게다가 13경기에서 기록한 6번의 완투와 3번의 완봉승은 올 시즌 내셔널리그 1위의 기록이다. 이러다보니 지난해 아메리칸리그에서 사이영상을 수상한 싸바시아의 역대 5번째 양대리그 사이영상 가능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역대 양대 리그에서 사이영상을 수상한 경우는 게일로드 페리,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 로져 클레멘스까지 4명뿐이다. 그 중 리그를 바꿔가며 2년 연속 수상한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다.)


게다가 전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1984년 릭 서클리프라는 선수가 6월 중순 클리블랜드에서 시카고 컵스로 이적한 후 사이영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클리블랜드에서 4승 5패 방어율 5.15를 기록하던 투수의 놀라운 변신이었다.(당시 서클리프 대신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은 선수 중에는 훗날 슈퍼스타로 성장해 1993년 월드시리즈의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이 되는 조 카터-통산 396홈런 1445타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적 후 20경기에 선발 등판해 150.1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2.69의 방어율로 16승 1패를 기록한 서클리프는 다승 3위, 방어율 2위, 탈삼진 1위의 드와이트 구든(17승 9패 276탈삼진 방어율 2.60)을 제치고 만장일치 사이영상을 따냈다. 그의 경이적인 승률과 모두를 놀래키기에 충분했던 활약이 불러온 결과였다.


물론 반대의 예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트레이드 데드라인(7/31)을 앞두고 휴스턴 에스트로스로 트레이드 된 랜디 존슨은 11경기에서 1.28의 방어율로 10승 1패를 기록하며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지금의 싸바시아와 완전 판박이 같은 활약상이다. 하지만 당시의 랜디 존슨은 고작 3위 표 두 장을 얻는데 그쳐 7위에 머물렀다. 적은 투구이닝(84.1)이 문제였다.


규정이닝(162)에 거의 근접한 서클리프는 사이영상을 수상했지만, 그 절반 수준인 랜디는 변변한 표조차 얻지 못했다. 98년에는 수상자였던 탐 글래빈(20승 6패 2.47)을 비롯해 사이영상 수상자로서 부족함이 없던 선수들이 제법 존재했지만 84년에는 그렇지 못했다는 점도 수상자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의 드와이트 구든은 신인 신분이었다.


▶ 섣부른 예측은 금물, 하지만 현재 1순위는 린스컴

웹은 앞으로 4번의 선발 등판이 남아있다. 린스컴은 팀이 그의 사이영상 수상을 위해 일정을 조절한다면 4번, 그렇지 않다면 3번이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진 웹이 22승 이상을 따내기라도 한다면 20승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린스컴으로서는 힘들어질 수도 있다. 투표권을 지닌 기자들은 시즌의 최종성적만이 아니라 시즌 전체의 균형적인 투구도 함께 고려하기 때문이다. 몇 경기의 부진으로 인해 사이영상을 날려버리기엔 웹이 쌓아온 승수가 너무나 아깝다.


하지만 웹이 지금처럼 3점대 중반의 방어율로 겨우 20승을 넘겼다는 인상을 줄 경우, 기자들의 표심은 린스컴을 향할 가능성이 크다. 방어율-탈삼진-승률 등에서 사이영상 수상자로서 손색이 없기 때문에 18승 이상만 기록해준다면 웹을 앞설 수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린스컴의 성적은 지난해 만장일치로 사이영상을 수상한 제이크 피비(19승 6패 240탈삼진 2.54)와 매우 흡사하다.


역시나 변수는 싸바시아다. 사이영상 수상자의 표준(?)이 20승과 2점대 방어율이라고 봤을 때 웹은 3점대의 방어율이, 린스컴은 20승 미달이라는 걸림돌이 분명히 존재한다. 84년 서클리프의 수상도 그러한 면이 크게 작용했듯이, 만약 시즌 끝까지 무패 가도를 달리며 12승 이상을 기록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수상자 선정 투표에 있어서 공정성이 가장 우선되는 원칙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보니 감정에 전혀 끌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특히 이런 경우는 1위 자리에 웹이나 린스컴의 이름을 적어 넣는다 하더라도 2위 칸에는 싸바시아의 이름을 써넣게 되는 것이 사람의 알 수 없는 심리가 아닐까? 32장의 1위 표가 골고루 흩어진다면 최종승자로 싸바시아의 이름이 불릴 수도 있다.


한 달을 남겨두고 갑자기 혼전 양상으로 치달은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지금 당장의 성적만 놓고 본다면 그나마 린스컴이 근소하게 앞서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방심만큼이나 팬들의 섣부른 예측이 절대 금물인 박빙의 상황. 어쩌면 1998년의 트레버 호프만처럼 가장 많은 1위 표를 획득하고도 수상에는 실패하는 진기한 장면이 다시금 연출될 지도 모른다.(1998년 호프만은 13장의 1위표를 얻고도 11표를 얻은 글래빈에게 총점에서 99 : 88로 뒤져 2위에 그쳤다.)


참고 : 사이영상과 MVP는 메이저리그 팀이 있는 각 도시에서 두 명씩 선출된 기자단(AL 28명, NL 32명)이 투표권을 행사하여 수상자를 결정하게 된다. 사이영상과 신인왕의 경우 1위부터 3위까지 용지에 이름을 적게 되어 있는데, 1위는 5점, 2위는 3점, 3위는 1점씩 계산해 그 총점으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MVP의 경우 1위부터 10위까지 용지에 적는데 2위부터 10위까지는 각각 9점에서 1점, 1위는 14점으로 계산해 그 총점으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투표는 정규시즌 종료와 동시에 비밀리에 행해지며, 그 결과는 월드시리즈가 끝난 후 일정에 따라 단계별로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