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양대 리그 사이영상과 MVP를 수상자를 4번에 걸쳐 살펴봤다. 여전히 클리프 리가 거의 확정적인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제외하면 나머지 3개 부문은 모두 혼전 양상이다. 막상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섣부른 예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양대 리그의 신인왕(Rookie of the Year) 레이스는 이미 사실상의 수상자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올해 수상자는 이미 지난 5월부터 거의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두 선수의 독주가 돋보였기 때문.
사실 신인왕 투표는 MVP와 사이영상 이상으로 만장일치가 잘 나오지 않는 편이다. 지난 10년 동안 만장일치로 신인왕에 오른 선수가 2001년 내셔널리그 수상자였던 알버트 푸홀스 밖에 없었을 정도. 하지만 올해는 오랜만의 만장일치 수상자를 기대볼만 하다.
▶ MVP와 사이영상, 신인왕 수상자의 선정방법
사이영상과 MVP는 메이저리그 팀이 있는 각 도시에서 두 명씩 선출된 기자단(AL 28명, NL 32명)이 투표권을 행사하여 수상자를 결정하게 된다. 사이영상과 신인왕의 경우 1위부터 3위까지 용지에 이름을 적게 되어 있는데, 1위는 5점, 2위는 3점, 3위는 1점씩 계산해 그 총점으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MVP의 경우 1위부터 10위까지 용지에 적는데 2위부터 10위까지는 각각 9점에서 1점, 1위는 14점으로 계산해 그 총점으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투표는 정규시즌 종료와 동시에 비밀리에 행해지며, 그 결과는 월드시리즈가 끝난 후 일정에 따라 정해진 순서대로 발표된다.
▶ AL - 팀을 정상으로 이끈 에반 롱고리아
에반 롱고리아(22)는 이미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뉴욕 양키스의 조바 챔벌린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주목받았던 선수다. 모든 유망주 랭킹에서 아메리칸리그 신인 타자들 가운데 1위를 독식했던 그를 위해 팀은 일찌감치 이와무라 아키노리의 포지션을 3루에서 2루로 이동시켰다.
‘FA 자격 획득 시기를 최대한 늦추겠다’는 다소 어이없는 이유 때문에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한 롱고리아는 개막 2주 만에 메이저리그로 콜업됐다. 이후의 롱고리아는 그 명성 그대로의 타격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데뷔 후 맞이한 3번째 경기에서 첫 홈런을 쏘아 올리더니 올 시즌 모든 루키들 가운데 가장 많은 27개의 홈런을 때려내 리그 13위에 올라 있다. 출루율과 장타율 역시 경쟁자들에 비해 앞선다.
무엇보다 롱고리아의 저 성적은 늦은 콜업과 8월 초에 당한 부상으로 인해 40경기 가량을 결장한 상태에서의 기록이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기치 않은 부상만 아니었더라도 그는 신인으로서 드물게 30홈런 100타점을 무난히 달성했을 것이다.
롱고리아의 라이벌로는 쿠바 홈런왕 출신으로 지난 오프시즌을 떠들썩하게 하며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둥지를 튼 알렉세이 라미레즈(27)가 첫 번째로 꼽힌다. 시즌 초 메이저리그에 적응하지 못해 4월까지 타율이 .121에 머물며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으나, 5월부터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리그의 2루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내야 수비 역시도 수준급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역시나 장타력에서 앞서는 롱고리아를 제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주된 의견이다. 롱고리아의 만장일치 수상을 저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할 것으로 보이며, 신인왕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내년 시즌이 정말로 기대되는 선수다.
투수들 가운데는 무너진 디트로이트의 선발 투수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아만도 갈라라가(26)가 돋보인다.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들 가운데 방어율과WHIP(이닝당 평균 안타+볼넷 허용율)에서 1위에 오른 그는 시즌 마지막 선발 등판에서 승리하며 13승으로 인상적이었던 루키 시즌을 마감했다. 평소라면 얼마든지 신인왕 수상을 노려볼만한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자가 너무 강력하다. 8월 중순까지 12승 4패 평균자책점 3.17의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시즌 막판의 6경기에서 난조를 보이며 더 많은 승수를 쌓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보스턴의 새로운 돌격대장 자코비 엘스버리(25)는 2001년의 이치로(56개) 이후 오랜만에 신인 신분으로 리그 도루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아쉽게도 신인왕 등극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의 평가에서 그는 3위 안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도루는 많지만 장타력의 부족과 평균 이하의 선구안 그리고 너무나도 기복이 심한 플레이 등, 아직은 보완해야할 점이 많다는 평가다.
시즌의 절반이 지난 6월 말이 되어서야 겨우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수 있었던 크리스 데이비스(22)는 정말 아쉬운 케이스다. 경기 수가 부족한 만큼 누적 스탯이 부족해 올해의 신인왕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79경기에서 17홈런 55타점을 기록한 데이비스는 차세대 거포 1루수로서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5월 말이 되어 메이저리그에 첫 발을 내디딘 오클랜드의 신인 투수 브래드 지글러(28)는 8월 13일까지 방어율이 ‘0.00’였다. 첫 39이닝 동안 단 1점도 허용하지 않으며 ‘데뷔 후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종전 1907년 조지 맥퀼란의 25이닝)’을 101년 만에 경신한 것이다. 비록 8월 14일 경기에서 실점을 허용하며 기록은 중단되고 말았으나, 팀의 주전 마무리 자리까지 꿰찬 지글러는 앞으로 주목해볼 선수임에 틀림없다.
롱고리아의 성적도 유난히 돋보이는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만장일치의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특히 시카고나 디트로이트 출신의 기자들은 충분히 연고 팀의 선수를 찍을만한 명분이 있다. 하지만 신인 신분으로 팀의 4번 타자로 활약하며 템파베이를 사상 첫 포스트시즌으로 이끈 롱고리아가 ‘올해의 신인’으로 뽑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 NL - 올스타 포수 조반니 소토
시카고 컵스의 조반니 소토(25)는 루키시즌인 올해 곧바로 팬투표에 의해 내셔널리그 올스타전에서 주전으로 포수 마스크를 쓰는 영광을 누렸다. 물론 대도시인 시카고 소속의 선수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토는 그에 어울리는 실력도 갖춘 선수다.
아래의 표를 보면 소토와 더불어 신시네티 레즈의 조이 보토(25)의 성적이 가장 뛰어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보토가 소토의 라이벌이 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두 선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하나 있다. 포수(소토)와 1루수(보토)라는 포지션 차이는 약간의 타율과 10개도 안 되는 도루 개수로 극복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소토가 2001년 푸홀스 이후로 7년 만에 만장일치 신인왕 수상자로 결정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유다. 야구에서 수비지향적인 센터라인, 그 중에서도 포수라는 포지션은 그만한 가치를 지닌다. 보토가 30홈런 100타점 이상을 기록했다 하더라도 소토와 경쟁이 될지는 의문이다.
2008시즌을 앞두고 모든 유망주 관련 랭킹에서 1위를 독식한 제이 브루스(21)는 경기수가 적은만큼 누적 스탯에서 경쟁자들을 앞서지 못했다. 더군다나 비율 스탯도 기대만큼 인상적이진 않다. 하지만 21살이라는 나이는 여전히 그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게 되는 이유이며, 4~5년 후에는 MVP 후보로 성장해 있는 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투수왕국’ 애틀란타의 계보를 이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이어 저젠스(22)도 상당히 인상적인 시즌을 보냈다. 아메리칸리그의 갈라라가보다도 4살이나 어리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올 시즌 최고의 신인 투수는 저젠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시즌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후쿠도메 코스케(31)는 시즌 초반의 좋은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실망스런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할 예정이다. 4월 이후 매달 타율이 하락하는 부진의 늪에 빠지더니 8월과 9월은 연이어 1할 대의 빈타에 허덕이고 있다. 한 때는 팀의 중심타자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어느 순간부터 평범한 타자로 전락하더니 이제는 주전 자리마저 위태로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LA 다저스의 구로다 히로키(33)는 두 번의 완봉승을 거두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팀 타선이 뒷받침 되지 않아 많은 승수를 쌓는 데는 실패했다. 물론 스스로도 기복이 있었으며, 투구 이닝도 경기당 평균 6이닝에 조금 못 미친다는 문제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후쿠도메와는 달리 진출 첫 해였던 올해 무난히 메이저리그에 적응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내년 시즌에는 좀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선수다.
소토는 이미 ‘최고의 신인’을 넘어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브라이언 맥캔(23홈런 87타점 .301)과 더불어 ‘메이저리그 최고의 포수’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 소토이기에 7년 만의 만장일치 신인왕 탄생을 기대해 본다.
// 김홍석(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