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etc...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0. 10.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화려한 폐막식과 함께 짧지만 즐거웠던 9일간의 여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폐막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윤종찬 감독의 신작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 인데요. 폐막식이 있기 전날인 9일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와 기자회견을 통해 먼저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미남 배우 현빈과 항상 단아하고 청순한 역할만 맡았던 이보영의 연기변신으로 더욱더 놀라웠던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볼까 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는 이청준의 단편<조만득 씨>를 각색한 작품이다. 정신병동을 소재로 한 원작의 설정에서 조금은 달라졌지만 정신병동을 중심으로 상처받은 인물들의 삶을 투영한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영화의 시작은 더벅머리 총각 만수(현빈)가 정신병동에 입원을 하면서이다. 만수는 도박에 빠진 형과 무기력한 가족으로 인해 상처가 깊다. 형은 매번 그를 찾아와 카드를 내놓으라고 윽박을 지른다. 정신병원에서 만수가 즐기는 행위는 의사에게 종이로 만든 수표를 건네면서 자신이 부자라고 과시하는 것이다. 그를 바라본는 간호사 수경(이보영) 역시 행복한 인물은 아니다. 그녀는 병동의사와 실연을 겪고 있는 중이며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힘겹게 추스르고 있다. 그들이 만나는 공간은 상처가 머무는 장소이다.


당신은 정말, 행복하십니까?
미친 사람이 차라리 행복해 보일 때가 있다.
세상이 행복하기만 한 사람들이 몇이나 있으랴.
어떤 이에게 세상은 너무도 참혹하여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들기도 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제가 느꼈던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어렵지만 '행복'이라고 조심스레 표현할 수 있겠네요. 제목과 정말 똑같이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행복이 뭘까요? 한 때 고민했던 문제였고, 지금도 고민합니다. 여러분에게 행복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영화의 주인공인 만수와 수경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생긴 것부터가 그러하지요. 만수는 새카만 더벅머리에 후줄근한 옷 밖에 가진 게 없습니다. 수경은 화장기도 없는 얼굴에 입술은 계속 부르터져 있죠. 영화 또한 그들의 행복한 삶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밑도 끝도 없는 감정선의 밑바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치매에 걸린 엄마와 자살한 형이 남겨준 도박 빚, 사채업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카메라는 오히려 미쳐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응시합니다. 아무도 자신을 안아줄 수 없는 공간 속에 살고 있다는 걸 똑바로 이야기해주고 있지요.


남자는 그렇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견딜 수 없어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과대망상증이지요. 빈 종이에 자신이 서명만 하면 전 세계 은행에서 돈을 내어 준다고 믿습니다. 정신병원에서 그는 사채 빚에 시달리지도 않고, 치매에 걸린 엄마의 똥 묻은 옷을 빨래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 수경도 만나게 되지요. 연인에게 버림받고, 직장암 말기의 아버지를 간호하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수간호사 수경. 그녀의 현실 역시 모든 게 괴롭기만 합니다.


같은 공간에서 만나는 이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만남은 상처가 계속 생겨나지 않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인 것 같기에 그랬습니다. 멈춤의 시간이었습니다.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고, 서로의 모습을 통해 현실을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하죠. 하지만 무거운 현실 앞에선 으스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이 물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차가운 현실의 굴레는 만수와 수경을 더 옥죄어 옵니다.


지켜보는 심정이라는 게 말이죠. 마음이 찢어지는 게 아닙니다. 갑갑하고, 무겁고, 삶의 무게가 명치 위를 꾹 누르고 있는 것만 같아서, 가슴을 긁어내고 쳐내고 토해내고 싶은. 이들을 지켜보는 심정은 이러한 말들로 밖에 꾸밀 수 없겠네요. 시원하게 울만한 누군가의 품도 없었고, 울어버리고 난 뒤 툴툴 털어버릴 만한 여유조차 보이지 않는 긴 시간이 흘러갑니다. 병원에서 강도 높은 치료를 받게 되는 만수, 점차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는 수경. 이들은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한 치 앞도 볼 수 없습니다. 깜깜한 길 위입니다. 의지하는 거라곤 고작 오토바이 앞에 달린 작은 빛 하나. 담담하게 또는 툴툴거리며 나아갑니다. 위태롭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갑니다. 무섭다고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결코 내 앞의 현실을, 나의 과거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행복했던 병원생활. 역설적이게도 그가 제정신을 되찾아 퇴원할 수 있게 된 계기는 그토록 자신을 괴롭혔던 형의 사진 덕분이었습니다. 만수의 진짜 행복을 찾아주기 위한 형의 마지막 선물. 이젠 만수는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나갈 수 있을까요?


앞서 물었던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져봅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수경은 행복을 찾았을까요? 감독은 말합니다.

웰빙이란 화두가 범람하고, 자살율이 솟구치는 시대. 혼란스럽다. 삶에 대한 무분별한 집착과 성급한 판단들 모두.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불행 앞에서 끝내 무너지는 사람들. 너무 허망하다. 고통의 끝자락 어디쯤에서 꿈이 너무도 멀어보였을까. 영화 속, 만수와 수경. 두 사람도 아마 그런 심정이었으리라. 알기에 기를 쓰고 두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어떻게든 살아있음에 다시 행복을 꿈꿀 수 있으리라 믿으며.(2008년 10월 감독의 변 中)


아마 감독은 만수와 수경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행복하다'라고 느낄 수 있게 도와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건, 그래요. 제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삶' 인 것 같습니다. 살아내는 것 자체가 행복이란 말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 기쁘고 화려한 순간, 순간순간 모두가 그러합니다. 살아있고, 살아내고, 삶을 통해 살아감이 행복이며, 그런 행복이 모여 삶이 된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만수와 수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갑니다.
나도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나는... 행복합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posted by
ross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