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방향에서 5시 쪽으로 급격하게 떨어져 타자들로 하여금 엉덩방아를 찧게 만드는 배리 지토(SFG)의 낙차 큰 커브, 직구 못지않은 빠른 속도로 진행하다가 급격히 옆으로 휘어져 타자들이 엉덩이를 뒤로 뺀 채 방망이를 공을 따라가는데 데 급급하게 만드는 랜디 존슨(ARI)의 슬라이더, 제대로 보고 때렸는데도 공의 윗부분을 맞추게 되면서 땅볼을 유도하는 브렌든 웹(ARI)의 싱커 등.
빅리그에도 다양한 변화구가 존재하고, 그 하나하나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브레이킹 볼(변화구)에 의해 삼진이 나왔을 때보다는, 치지 못할 한 가운데 직구로 헛스윙 삼진을 잡을 때 관중들은 더욱 흥분하게 된다.
그렇다, 아무리 현란한 변화를 자랑하는 구질이 여럿 존재한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여전히 ‘패스트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직구’라 부르는 패스트볼(Fastball)에도 사실은 다양한 종류가 있다. 직구 같지 않은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는 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처럼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좌우로 살짝 꺾이는 컷 패스트볼, 일반적인 직구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빠르게 가라앉는 싱킹 패스트볼, 그리고 가장 직선에 가까운 동선을 가진 포심 패스트볼까지.
투심은 ‘마스터’ 그렉 매덕스(SDP)의 트레이드 마크이며, 마리아노 리베라(NYY)는 주 무기인 컷 패스트볼을 앞세워 역대 최고 수준의 마무리 투수로 우뚝 섰다. 싱킹 패스트볼은 쉽게 볼 수 있는 구질은 아니다. 은퇴한 케빈 브라운(전 LAD)의 주 무기였으며 맷 모리스(PIT)와 로이 할라데이(TOR)가 그 뒤를 이었지만 요즘은 자주 던지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그 무엇보다 우리에게 환상을 가져다주는 구질은 타자들의 스윙 궤적 위를 통과하며 강렬하게 포수의 미트로 빨려 들어가는 포심 ‘라이징’ 패스트볼’ 일 것이다. 모든 포심 패스트볼에 ‘라이징’ 이라는 명칭이 붙지는 않는다. 적어도 90마일(145킬로) 이상의 포심 패스트볼만이, 그것도 그 중 일부만이 ‘라이징’이라는 명칭으로 불릴만한 자격이 있다.
이 ‘라이징’의 의미를 잘 못 알고 있는 팬들이 있다. 야구 관련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보면 ‘공의 속도가 150킬로미터를 넘어가면 공기 저항 때문에 공이 약간 떠오른다’고 알고 있는 분들이 아직도 많이 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위를 향해 공을 뿌리는 언더핸드 투구법이 아니라면, 오버핸드나 사이드암 투수의 공이 떠오를 수는 없다.
야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이들은 공의 속도가 150킬로를 넘어가고 마운드에서 홈에 도착할 때까지 공에 40회 이전의 회전을 걸어주면 공이 실제로 떠오르게 된다고 이론적으로 밝혀내기도 했다.
하지만 160킬로에 가까운 강속구를 던지는 메이저리그의 특급 에이스들도 20회 이상의 회전을 주는 선수는 거의 없다. 마쓰자카가 30회에 가까운 회전을 준다고 하지만, 이것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강한 회전으로 인해 변화를 일으키는 브레이킹 볼의 경우도 회전수가 30회를 넘기기 힘든데 직구로 40회의 회전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징 패스트볼’ 이라는 단어가 엄연히 존재한다. 실제로 떠오르지는 않지만, 타석에 있는 타자들의 눈에는 공이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중력 때문에 떨어져야 할 공이 그 법칙을 무시하고 떠오를 때 타자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공이 투수의 손끝을 떠나는 순간부터 공은 두 개의 힘을 동시에 받게 된다. 홈 플레이트 방향으로의 직진하는 힘과 땅을 향해 수직으로 받게 되는 중력이다. 때문에 공은 떠오르는 일 없이 꾸준하게 떨어지며 포수의 미트로 빨려 들어간다.
하지만 공의 속력이 150킬로에 달할 정도로 강력한 스피드를 동반하고 있고, 40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회전력이 뒷받침 된다면, 공기 저항에 부딪쳐 어느 정도의 부력(떠오르려는 힘)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부력이 라이징 패스트 볼을 만들어 낸다.
마운드부터 홈 플레이트까지의 정확한 길이와 마운드의 높이, 투수의 키와 팔 길이 등을 모두 고려하면 쓸데없이 복잡해진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공이 투수를 떠나 홈 플레이트를 통과하기 까지 진행하는 거리는 18미터, 떨어지는 폭은 180센티 정도 된다고 가정하자.
즉, 공은 18미터를 날아가면서 아래로 180센티를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초반 9미터를 진행하는 동안 100센티 정도 떨어졌던 공이, 후반에 공기 저항과 회전력에 의한 부력으로 인해 80센티만 떨어진다면, 선수들의 눈에 이 공이 어떻게 보일까?
이것이 바로 라이징 패스트 볼의 정체다. 이 20센티의 차이가 바로 타자들의 방망이를 공 아래쪽으로 헛스윙하게 끔 만드는 것이다. 선수들의 눈에는 공이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것은 그들이 그만큼 많은 연습을 통한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사람이란 모든 상황에서 다음에 일어날 상황을 예측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러한 예측이 빗나갔을 때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곤 한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프로 선수라고 해도 순간적인 예상이 틀렸을 때 프로답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가끔 바람의 영향으로 인해 외야수가 만세를 부르고, 불규칙 바운드가 일어날 때 내야수가 알을 까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연습은 이러한 예측을 더욱 정확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남성이라면 한번쯤은 공을 하늘 높이 던져서 받아 본적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쉽지 않다. 하지만 반복해서 연습하다보면 하늘에 떠있는 공의 위치와 방향을 보면 대충 떨어질 곳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150킬로의 공이 포수 미트에 꽂히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0.43초. 이 짧은 시간 안에 공을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할 수는 없다. 실제로 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치는 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타자가 볼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투수의 투구 동작과 공이 투수의 손에서 떠나는 순간, 그리고 그 직후의 극히 짧은 순간 공의 움직임뿐이다.
일반인이라면 감히 범접하지 못할 영역이지만, 프로 선수라면 그 찰나의 순간 공의 속도와 방향만을 가지고도 이후 공이 그릴 궤적을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뛰어난 반사 신경과 연습으로 인한 경험으로 무장한 타자는 공이 들어올 것으로 예측되는 포인트를 향해 힘차게 배트를 돌린다.
이때 위에서 말한 라이징 패스트 볼이 들어오면 방망이는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게 된다. 떨어지긴 하지만 예상보다 ‘덜’ 떨어져서 짐작했던 포인트보다 높게 들어오는 공을 보고 있노라면, ‘공이 떠오른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마련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선수는 많지만, 위력 있는 포심 패스트 볼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투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100마일에 가까운 강속구를 쉴 새 없이 뿌려대는 ‘노히트 노런’의 주인공 저스틴 벌렌더(DET), 올 시즌 에이스로 거듭난 브래드 패니(LAD) 등이 평균 95마일(153킬로)이 넘는 패스트 볼 스피드를 자랑하는, 현재 가장 위력적인 라이징 패스트 볼을 구사하는 선수들이라 할 수 있다. 올 시즌 데뷔한 팀 린스컴(SFG)과 조바 체임벌린(NYY)도 또 다른 환상적인 패스트 볼을 보여주고 있다.
멋진 이름만큼이나 보는 이로 하여금 큰 매력을 느끼게 하는 라이징 패스트 볼. 그런 멋진 강속구로 삼진을 잡아내는 투수는 언제나 팬들의 영웅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