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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메이져리그 역사상 최고의 왕자병 - 사첼 페이지(Satchel Paige)

by 카이져 김홍석 2007. 12. 10.

호세 리마! 이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는 다들 어느 정도는 아시리라 믿는다. 20승 투수?? 한때 휴스턴의 에이스?? 지나가던 강아지가 육포 달라고 ‘멍멍’ 짖을 소리다. 필자가 보기에 리마는 주제넘은 왕자병에 심각한 자아도취 기질까지 보이는, 메이저 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변태중의 한명이다.(그냥 이야기 흐름상 하는 농담에 불과하니 너무 심하게 반응하지 않길 바라는 바이다)


99시즌 분수에 넘치는 21승을 올리고서는(하필이면 21승째는 찬호 형님과의 경기에서 거둔 승리였다), 어쩌다가 정말로 운이 좋아 플루크 시즌(Fluke-season)을 맞은 줄도 모르고,


“올해 나는 사이영상을 도둑맞았다. 21세기는 리마 타임이 될 것이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엽기적인 언행으로 빅 리그를 그의 입 냄새로 오염시키더니, 아니나 다를까 결국 2000시즌에 20패를 향해 치달으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며, 팬들의 막힌 체증을 씻어 내는 데 지대한 공언을 했다(16패로 시즌 마감하며 20패 달성에는 실패했다). 필자역시도...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렇게 매번 홈런 두들겨 맞고, 7점대에 육박하는 방어율을 과시하면서도 쉴 줄 모르고 지 잘난 척하던 리마가 작년을 끝으로 더 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왠지 모를 아쉬운 생각마저 든다(이 친구 소식 아는 분은 신고 바란다). 이러한 호세 리마를 지난 주 글에서 언급하면서 갑자기 생각난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  다름 아닌 사첼 페이지(Satchel Paige)이다.


불같은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로서, 전설적인 흑인 강타자인 자쉬 깁슨과 함께 니그로 리그의 양대 전설이자, 그 공로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있는 선수. 59세이던 1965년 메이져리그 경기에 선발 등판해 역대 최고령 선수 등판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평생 2500여 경기에 선발 등판해 2000승을 거두었고, 한 시즌동안 104경기에 등판해서 103승을 거둔 기록이 있다는 무적의 철완, 메이져리그측이 흑인 선수들에게 그 문호를 15년만 빨리 개방했었더라면 빅리그의 투수 기록을 자신의 이름으로 도배를 했을 인물이 바로 이 사첼 페이지다. (국내에도 페이지에 관한 만화책이 있을 정도다)


오, 돌 던지지 마시라. 이렇게 야구 역사상 손꼽히는 위대한 투수인 그를, 희대의 떠벌이 호색, 아니 호세 리마에 비교하다니, 필자도 어불성설이란 거 마음 깊숙이 통감하는 바이다. 허나! 솔직한 마음으로 객관적으로 이 두 명을 비교하자면, 차이가 나는 것은 그 야구 실력뿐! 자아도취적 기질과 중증 왕자병 증세는 시공을 초월하여 참으로 비슷한 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선 몇 가지 그가 남긴 명언(?)을 소개해 본다. 그가 17살이던 1924년, 일자리를 잃고 소속되어 있던 세미프로 구단에서도 짤린 페이지. 형의 소개로 모바일 타이거즈라는 구단에 입단 면접을 보는데.


감독 : " 어이 페이지~ 너 정말로 그런 강속구를 한 경기 내내 던질 수 있냐??"


페이지 : "아뇨. 죽을 때까지 던질 수 있는데요?"


뭐,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다. 그 해 잘나가던 페이지를 영입하기 위해 남부 백인 리그의 어느 매니저가 한 가지 제안을 했었다. 그의 얼굴을 백인처럼 변장시켜 자신의 리그에 편입시키자는 조건으로 거액을 제시했는데, 페이지는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오... 흑인의 자존심을 지킨 멋있는 선수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은 흑인으로서 자부심을 지키기 위한 이유로 거절한 것이 아니라,


"분명 백인처럼 완벽히 변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나를 알아볼 것이다. 왜냐구? 지구상에서 나처럼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이것이 그 이유였다고 한다(ㅡ.ㅡ;). 시간은 흐르고 흘러 1940년, 당시 내셔널리그 최고의 슬러거로 이름을 날리던 핵 윌슨(단일시즌 최다 타점 기록의 주인공)이라는 타자가 그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했다.


"사첼 페이지의 공은 너무나 빨라서 마치 공깃돌을 던지는 것 같다."


윌슨같이 뛰어난 타자가 이렇게 자신을 칭찬하는 말을 해주었으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될 터인데, 이 말을 들은 페이지 왈(曰)


"당신은 나의 느린공을 본 것뿐이야. 나의 강속구는 마치 생선 알을 보는 듯 할테니까!"


이게 끝이 아니다. 선수 말년에 경기에 앞서 그의 공을 처음 받는 신인 포수를 불러서 우리의 페이지는 이런 말을 한다.


"나의 공은 세상에서 가장 받기 편하지. 자네가 할일은 그냥 원하는 곳에 미트를 펴고 앉아 있는 것뿐이야. 아무 걱정하지 말라구, 내가 그곳에 정확하게 강속구를 뿌려줄 테니까!"


이 얼마나 멋진 대사란 말인가. 페이지는 원래부터 잘난 척 하는 걸 좋아했다. 시합 때는 많은 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해 일부러 30분씩 늦게 등장하기도 했다(가끔은 경찰의 호위도 요구했다는...). 그리고 한 이닝을 끝낼 때마다 팔자걸음으로 어슬렁 어슬렁 마운드에서 내려오며 거드름을 피웠다(한 신문기자는 이를 보고는, 당시 인기를 끌던 코미디언 ‘스테핀 패칫’의 유치한 유희를 보는 듯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인터뷰 때는 항상 허풍과 거짓말을 곁들였는데, 특히 백인 기자와의 인터뷰는 차마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오버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평생 2500여 경기에 등판하여 2000승 이상을 올렸다는 그의 성적도 사실은 본인의 주장일 뿐 아무 근거가 없다고 한다.


단순히 페이지를 비난하고자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의 불같은 강속구와 엄청난 투구 능력은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리마를 생각하면 그와 동시에 왕년의 사첼 페이지가 생각나는 필자로선, 전설의 선수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 빠져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그들도 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재밌게 읽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