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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비교체험 극과 극 본즈 & 비지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6. 23.
 

올해는 유난히 새로이 탄생될 기록이 풍성한 한 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5월초에 필자가 쓴 칼럼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07시즌 기록에 도전하는 사나이들(타자)
07시즌 기록에 도전하는 사나이들(투수)

이미 트레버 호프만이 500세이브라는 전인미답의 고지에 올랐고, 존 스몰츠는 사상 최초로 200승 150세이브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며칠 전에는 새미 소사가 5번째로 600홈런 클럽에 가입했고, 켄 그리피 주니어도 홈런 페이스가 예상보다 좋아 어쩌면 올해 안으로 600홈런을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5승이 남은 탐 글래빈의 300승은 시간문제일 뿐이며, 로져 클레멘스는 350승 달성에 단 1승만을 남겨두었고, 매덕스도 남은 기간 동안 11승을 더 거두게 되면 올해 안으로 같은 기록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역시나 올시즌의 갖가지 기록달성 예상자들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선수는 바로 통산 홈런 신기록을 노리는 배리 본즈와, 27번째로 3000안타 돌파를 노리는 크렉 비지오일 것이다. 각각 8개의 홈런과 안타를 추가하면 본즈는 신기록을 세우게 되고, 비지오는 3000안타 클럽에 가입하게 된다. 다만 이 둘에게 비추는 언론과 팬들의 시각은 너무나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 휴스턴의 혼

이제는 너도 나도 낡은 헬멧을 자주 쓰고 나오지만, 한때 이러한 흙 묻은 낡은 헬멧은 단 한 선수의 상징이었다. 언제나 같은 헬멧을 쓰고서 최고의 허슬 플레이를 보이며 그라운드를 누비던 선수. 포수로 데뷔해 실버 슬러거를 수상하며 인정받았었지만, 이후 팀의 필요에 따라 2루수로 보직을 변경하고는 실버 슬러거뿐만이 아니라 골드 글러브까지 4회씩 더 수상한 만능선수.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를 뽑는다 해도 항상 세 손가락 안에 그 이름이 꼽혔던 공수주를 겸비한 최고의 선수가 바로 크렉 비지오다.

 
선두타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출루 회수, 즉 얼마나 많이 루상에 나갔느냐가 선두타자를 평가함에 있어서 첫 손가락에 꼽혀야 할 요소일 것이다. 비지오는 전성기였던 1992년부터 99년까지의 8년 동안, 평균 출루회수 288회를 비롯해 42더블 4트리플 17홈런 120득점 73타점 37도루의 엄청난 성적을 기록했다.(단축시즌이었던 94~95년은 160경기로 환산)


최고의 선두타자로 인정받고 있는 이치로 스즈키의 지난 6년간 평균 성적이 278회의 출루 26더블 8트리플 10홈런 112득점 60타점 39도루 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크렉 비지오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대도 전설’ 리키 핸더슨의 전성기 이후 메이져리그 최고의 리드오프였고, 몸에 맞는 공 부문에서 역대 1위에 올라있을 만큼 멋진 허슬 플레이를 보여주었던 선수다.


이 정도의 선수가 나이가 든 뒤에도 어느 정도의 기량을 유지해 20년째 한 팀에서 뛰며 3000안타 달성이라는 영광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비록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 챔프 자리에 올라보진 못했지만, 그가 모두에게 존경받을만한 최고의 선수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홈런, 스테로이드, 거만함

어느 샌가 위의 세 단어는 배리 본즈라는 선수를 가장 단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말이 되고 말았다. 메이져리그 최고의 5툴 플레이어로 화려하게 등장해 그리피와 함께 90년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3번의 MVP를 수상했을 당시의 본즈는, 기자들에게는 미움을 받을지언정 팬들에게는 언제나 환영받는 최고의 선수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메이져리그 선수들 중에 가장 큰 야유를 받는 선수가 되고 말았다.


1999년 부상으로 시즌을 중간에 접어야 했던 본즈는 2000년도에 그냥 대충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외형적으로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났고, 자신의 개인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쉽게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마크 맥과이어의 홈런 신기록을 넘어섰고, 이후 4년간 절대적인 타격의 신으로 군림하며 MVP를 4연패한다. 이렇게 라이벌 그리피와 빅맥을 뒤로하고 자신의 대부 윌리 메이스를 넘어 저 위대한 베이브 루스의 위치까지 위협하던 본즈는, 이후 터진 약물 파동과 함께 침몰하기 시작했다.


이미 빅맥 때부터 스테로이드에 대한 말들이 있어왔고, 본즈가 기록 행진을 하는 동안에도 일각에서는 꾸준히 약물의혹이 제기 되었었지만 오래 지속된 메이져리그의 침체기를 그나마 벗어나게 해줄 유일한 선수가 다름 아닌 본즈였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관중 동원 신기록을 세운 04시즌까지는 모든 의문들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게 사라졌다. 하지만 2005년 2월 돈에 눈이 먼 호세 칸세코가 자신의 자서전 『약물에 취해(Juiced)』에서 본즈를 걸고넘어지면서 문제는 확대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본즈의 선수생활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갔다.


한때 아직까지 특별한 별명이 없는 본즈를 위해 “배리 ‘U.S.’ 본즈” 라는 별명을 붙여주자며 호들갑을 떨던 팬들이 그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려 버린 것이다. 지난 SI(sportsillustrated)의 '선수 투표' 에서도 26%나 되는 선수들이 본즈를 가장 불친절한 선수로 꼽았고, 그렇게 메이져리그에서 가장 성격이 더러운 선수라는 편견과 함께 팬들로부터 멀어지고 말았다.


오프시즌이 되면 매년 훈련을 같이할 만큼 절친한 친구였던 게리 셰필드와도 스테로이드 파문의 한 가운데에서 소원한 관계가 되고 말았고, 최근에는 행크 아론까지도 “나는 본즈가 누군지 모른다” 라고 말하며 애써 그를 무시하려고 하고 있다. 계속되는 아론의 이러한 선배답지 못한 언행은 볼썽사납기 그지없지만, 어찌되었건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본즈는 주위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외로운 선수인 것이다.


◎ 친절한 비지오씨

“내가 이번 사건을 놓고 그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할일을 했을 뿐이고. 내가 다친 것은 단지 운이 안 좋았을 뿐이다” - 크렉 비지오 -


사실 비지오는 2000년도 시즌 종료 두 달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되지만 안았더라면, 이미 작년에 3000안타를 달성했을 지도 모른다. 매년 전 경기를 출장한 것은 아니지만 1989년 이후 19년 동안 그 한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풀시즌을 소화해냈을 정도로 건강함과 꾸준함을 자랑하는 선수가 바로 비지오다. 그런 비지오가 시즌 중간에 전력에서 이탈하게 만든 것은 바로 프레스턴 윌슨(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슬라이딩이었다.


플로리다와의 경기에서, 당시 1루 주자였던 윌슨은 후속 타자의  땅볼 때 더블플레이를 막기 위해 발을 높게 쳐들고 2루를 향해 돌진한다. 그냥 보기에도 슬라이딩이 아닌, 축구의 태클과 비슷한 수준의 위험해보였으나, 허슬의 대명사인 비지오는 아랑곳 하지 않고 수비에만 전념한다. 그 결과 비지오의 무릎은 파열되었고, 그것으로 그의 2000시즌은 끝이었다.


수많은 팬들과 언론이 윌슨의 과격한 플레이를 맹비난했지만 비지오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위에 인용한 비지오의 말은 바로 이때 그가 윌슨을 변호해주었던 인터뷰 내용의 일부분이다. 이러한 점이 바로 비지오의 매력이다. 자신도 메이져리그 최고의 허슬을 보여주는 플레이어인 동시에 다른 이의 같은 플레이도 인정해주는 대범함.


절친한 친구이자 최고의 동료였던 제프 벡웰과 보여주었던 우정으로 인해 데뷔 후 단 한 번도 팀을 옮기지 않을 수 있었고, 또한 팀은 나이가 들어 예전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그에게 20번째 시즌을 약속했다.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항상 최고의 파이팅을 보여주는 선수를 싫어할 팬이 어디에 있겠는가.


◎ ‘공공의 적’ 배리 본즈

작년 5월 16일 샌프란시스코와 휴스턴의 경기에서는 정말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1회와 4회 각각 5점씩 득점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11-3으로 이기고 있던 5회 초 선두타자로 본즈가 타석에 들어섰다. 선발 완디 로드리게스를 구원해 마운드에 있던 러스 스프링어와의 대결. 제 1구는 본즈가 피하면서 아슬아슬하게 등 뒤로 빠지는 공이었고, 2구는 다리를 노렸지만 또다시 본즈가 슬쩍 피한다. 팔꿈치를 향해 날아든 3번째 공은 방망이 손잡이로 커트하고, 같은 코스로 들어오는 제 4구는 본즈가 다시 한 번 피하며 위기를 모면한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5구째는 본즈의 어깨를 명중시키고 만다.


누가 보더라도 다섯 개의 공 모두가 본즈의 몸을 노리고 날아든 빈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정도였고, 전부 패스트볼이었다. 보다 못한 심판이 스프링어와 가너 감독을 모두 퇴장시켜버리지만, 그들이 퇴장 당하는 모습을 보며 휴스턴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야구팬으로서 보고 있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 장면이었다. 아무리 본즈가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고 하지만, 노장인 그에게 단지 큰 점수 차로 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장면을 연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일이 있었으니 당연히 다음 이닝에 자인언츠 선발 제이미 라이트의 보복과 함께 난투극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후 라이트는 인터뷰를 통해 “본즈가 흥분하지 말고 게임에 집중하라고 했고, 팀원들 모두가 따랐다.” 라고 밝혔다.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한 맷 모리스가 다음날 선발 등판했지만 역시나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다. 본즈가 그렇게 하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인간적으로 그다지 존경할만한 선수는 아니었다. 팀의 클럽하우스에서 혼자서 4개나 되는 락커를 혼자서 사용해왔고, 거침없는 언행으로 인해 항상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단지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모습만의 본즈의 참 모습은 아니다. 그의 불친절한 태도로 인해 언론은 예전부터 그의 적이었고, 그러한 언론은 본즈의 나쁜 면을 부각시키기 마련이다. 어쩌면, 우리는 본즈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오해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 본즈와 비지오의 5년 후

본즈와 비지오는 올시즌 시작 전 팀과 1년 계약을 맺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홈런 신기록과 3000안타 달성에 성공하게 된다면, 올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둘은 5년 후 ‘명예의 전당’ 입성을 위한 투표에서 같이 후보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 올해 초에 있었던 투표에서 칼 립켄 주니어와 토니 그윈이 역대 Top 10 안에 들어가는 높은 득표율로 입성에 성공했지만, 그들만큼이나 명예의 전당행이 확실해 보였던 마크 맥과이어는 20대 초반의 낮은 득표율을 보이며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게 했다.


크렉 비지오의 경우 립켄이나 그윈 만큼의 높은 득표율은 아니겠지만, 그의 상징성이나 업적으로 미루어 봤을 때 충분히 명예의 전당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비지오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의 절대적인 캐리어를 만들어 온 본즈는 제 2의 빅맥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미 수많은 칼럼리스트들이 계속해서 스테로이드 관련 선수들의 자격 없음을 주장해왔고, 그것은 이번 빅맥의 예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다만 그냥 쉽게 모든 것을 선수들에게 덮어씌우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많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지만 스테로이드가 메이져리그에서 금지약물로 공식 지정된 것은 2002년에 와서이다. 그 전까지는 필요성은 제기 되어 왔으나, 확실한 규칙이 없었던 상황. 게다가 본즈의 경우 아직 스테로이드 복용 여부가 명백한 사실로 드러난 상황도 아니며, 만약 정말로 약물을 했다 하더라도 복용 시기로 추정되는 시점도 바로 2002년까지이다.(만약 했다면) 새로 만들어진 법으로 과거의 죄를 묻는 것은 실정법에 어긋나는 일이다. 정말 심각한 범죄일 경우 소급해서 그 죄를 묻는 경우가 있지만, 과연 프로 스포츠인 메이져리그에서 그렇게까지 해서 본즈의 죄를 물어야 하는 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본즈는 이미 스테로이드 복용이 의심되는 시점 이전에 3번의 MVP를 수상하며 명예의 전당 회원으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상태였고, 약물과 관계없을 거라 추정되는 2004년의 성적 또한 인간의 것이라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보여주었다.(.362-.609-.812 45홈런 129득점 101타점 232볼넷)


지난 5월 ESPN의 인터넷 투표 결과 75%가 본즈의 스테로이드 복용을 기정사실로 믿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60%는 본즈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본즈의 스테로이드 복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피트 로즈와 빅맥의 경우에서 보듯이 명예의 전당 입성은 힘들어 보인다. 당장 홈런 신기록이 달성되는 경기에서 조차도 메이져리그 사무국이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할지를 몰라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역 최고령 타자 훌리오 프랑코가 나이와 관련된 갖가지 기록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그 뒤를 잊는 두 명의 선수가 역사에 남을만한 기록을 세우려는 이 시점. 한 선수는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고, 다른 한 선수는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남들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들고 있다. 블랙삭스 스캔들과 피트로즈의 도박 파문 이후 메이져리그 최악의 스캔들로 기록될 것으로 보이는 스테로이드 파문. 그 최종 결과와 함께, 당장 한 달 안에 벌어질 본즈의 홈런 신기록 경기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가 정말 궁금하다. 비지오의 기록 달성 이후 벌어질 축하 행사를 보며 본즈는 무슨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