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였던 이치로 스즈키가 빅리그에 도전한지 벌써 7년째, 03시즌이 끝난 뒤 4년간 4400만불에 체결했던 계약은 올 시즌을 끝으로 종결된다. 이미 많은 관계자들은 이치로가 시애틀에 잔류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며, 시즌 종료와 동시에 FA를 선언하여 대박을 터트릴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기류를 타고 이치로의 평균 연봉이 2000만불 선까지 오르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치로는 이미 그 명성에서 여타 메이져리그 특급 선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메이져리그 진출 첫해 타격왕에 오르면서 신인왕과 MVP를 석권, 이후 단일 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을 세우는 등 6년 연속 3할 타율에 100득점 200안타 30도루 이상 기록했고, 그러한 기록은 올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단순한 컨택팅 능력으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어지간한 땅볼은 죄다 내야 안타로 만들어 버리는 빠른 발을 바탕으로 한 최상급의 주루 플레이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 메이져리그에서 가장 삼진잡기 어려운 까다로운 타자 중 한명이고, 빨랫줄 같은 송구로 무장한 최고의 외야 수비수이기도 하다. 거기에 철저한 자기 관리와 계획적인 트레이닝을 통해 자신의 타격폼을 매년 변화시키는 등 끊임없는 노력을 하기로 유명한 선수다.
하지만 그러한 이치로라 하더라도 과연 2000만 달러를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지는 쉽게 판단할 수 문제가 아니며, 그것은 필자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최근의 FA 시장을 되돌아보고, 다른 선수들과의 비교를 통해 기준이 될 만한 몇 가지 지표를 제시할 수 있을 뿐, 최종적인 판단은 이 글을 읽는 각자에게 맡긴다.
◎ MLB에서 연봉 2000만 달러가 가지는 의미
2000년과 2001년이 끝난 뒤 다가온 오프시즌은 그야말로 선수들의 몸값이 더 오를 수 없을 만큼 오른 절정의 인플레를 자랑하던 시기였다. 6년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평균 연봉 1~4위는 그 당시 계약을 맺었던 선수들이다. 그 당시에 이루어졌던 타자들의 주요 계약들은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계약의 첫 해가 되는 연도와 그 해의 나이 그리고 계약 내용이다)
알렉스 로드리게스(2001년 26세 10년간 평균 2520만), 매니 라미레즈(2001년 29세 8년간 평균 2100만), 데릭 지터(2001년 27세 10년간 평균 1890만), 배리 본즈(2002년 37세 5년간 평균 1800만), 제이슨 지암비(2002년 31세 7년간 평균 1715만), 카를로스 델가도(2001년 29세 4년간 평균 1700만)
만약 이치로가 2000만불의 잭팟을 터트리게 된다면 단숨에 지터를 넘어 메이져리그 전체 연봉 3위에 오르게 된다. 이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2천만이라는 액수에 예전만큼의 큰 반감을 가지는 일은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엄청난 액수임에 틀림없으며 상징으로써 지니는 의미는 더욱 크다.
주의 깊게 살펴 볼 점은 위의 선수들은 배리 본즈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나이였다는 것이다. 이치로는 박찬호와 동갑인 73년생, 새로운 계약을 맺은 후 맞이하게 될 내년은 서른다섯 살이다. 이치로도 이후의 안정적인 선수생활을 보장받기 위해 5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지만, 이제 30대 후반이 되는 선수에게 2천만 달러를 쉽사리 내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중심타선에 위치한 선수들로 계약 직전 시즌의 성적이 무시무시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1번 타자인 이치로가 이들을 제치고 거액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충분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불리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의 네 명은 지난 오프시즌 기간 동안 FA를 선언하여 대박을 터트린 선수들이다.
배리 지토(2007년 29세 7년간 평균 1800만불), 알폰소 소리아노(2007년 31세 8년간 1700만), 카를로스 리(2007년 31세 6년간 평균 1670만), 아라미스 라미레즈(2007년 29세 5년간 평균 1500만)
이들은 먼저 언급된 선수들에 비해 이름값이나 그 성적의 가치에서 다소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계약을 이끌어 냈다. 에이로드와 매니의 계약 이후 찬바람이 불었던 메이져리그였지만 지난 몇 년간의 흥행으로 인해 FA 시장도 다시 불 붙었다는 점이 이치로에게 유리한 점이다. 무엇보다 그의 에이전트가 스캇 보라스 라는 것은, 어쩌면 모두의 상상을 초월하는 계약이 이루어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들게 한다.
◎ 1번 타자 이치로의 진정한 가치
이치로가 현재 메이져리그에서 뛰고 있는 최고의 1번 타자 중 한명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내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며 보도하는 것처럼 역대 최고수준의 1번 타자일까? 전문가들이나 선수들, 그리고 빅리거들의 기록을 어느 정도 꿰고 있는 팬들이라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그렇지는 않다”라고 답할 것이다.
너무 멀리 볼 필요도 없다. 중심타자가 아니면서도 25년간 이어온 선수생활의 통산 4할이 넘는 출루율을 기록하며 5번의 득점왕에 오른 ‘대도’ 리키 핸더슨(통산 출루율 .401 1406도루-역대 1위), 1983년부터 1990년까지 8년 연속으로 리그 출루회수 1위에 오른 웨이드 보그스(통산 출루율 .415)만 하더라도 이치로가 쉽사리 넘볼 수 있는 선수들이 아니다. 또한 지난 번 칼럼 「본즈와 비지오의 비교체험 극과 극」에서 크렉 비지오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간략히 언급했듯이 이치로가 1번 타자로서 지난 6년동안 보여준 성적은 비지오의 전성기 8년에 비해 조금은 모자란 면이 있다.
이치로 만큼 특이한 스타일의 리드오프가 나타난 것은 처음이지만, 그만한 수준의 리드오프는 빅리그에 항상 한두 명씩 있어 왔고, 그것은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당장 최고의 1번 타자를 뽑으라고 해도 뉴욕 메츠의 호세 례이예스보다 앞선다고 평가할 수 없을 정도이며, 지난 9년 연속으로 100득점을 기록하며 이치로와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1번 타자 자리를 다투어 온 쟈니 데이먼도 있다. 거기에 팀 사정상 최근 3번 타자로 자리를 굳혀 가고 있지만 그래도 리드오프에 가까운 칼 크로포드와 헨리 라미레즈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1번 타자의 가장 큰 미덕은 득점과 출루다. 하지만 이치로가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것은 MVP를 수상했던 데뷔 시즌 뿐, 나머지 시즌은 평균 109득점 정도. 매년 278회나 루상에 나가는 타자의 득점이 이 정도인 이유는 후속 타자가 부실한 탓도 있지만, 그 자신이 장타력을 갖추지 못한 선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1번 타자의 장타력은 갈수록 중요시 되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이다. 1970년대부터 이루어진 세이버매트리션들의 활약으로 인해, 도루는 실제 게임에서 득점의 향상에 큰 영향이 없음이 수치상으로 나타나고 있고, 대신 장타력은 그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실제로 홈런을 많이 치는 중심 타선의 선수들이 득점 부문의 상위권에 랭크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것은 1번 타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례이예스와 데이먼 그리고 라미레즈 역시도 이러한 장타력을 갖춘 선수들이기에 이치로보다 출루 횟수가 적으면서도 더 높은 득점을 기록하는 것이다.
또한 이치로의 평균 타점은 60타점 정도이며 이는 출장 게임수를 따져 본다면 1번 타자들 중에서도 적은 편에 속한다. 2007년판 『빌 제임스 핸드북』에 따르면 작년 아메리칸 리그 타자 중에서 타점 올릴 가능성이 가장 낮은 선수가 바로 이치로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장 올해만 하더라도 .364의 타율에 .416의 출루율을 보이고 있는 이치로가 53득점 37타점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타율과 출루율은 .284-.330 정도에 불과하지만 13개의 홈런을 날린 지미 롤린스는 60득점 45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치로가 투수 입장에서는 다소 어이없는 안타를 생산해 냄으로써 상대팀의 전의를 상실하게 하는 플레이어임은 분명하나, 단순히 리드오프의 역할로 봤을 때 현재 메이져리그에서 홀로 찬란하게 빛나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 다른 1번 타자들과의 연봉 비교
사실 이러한 마이너스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이치로가 충분히 역사에 남을만한 최고 수준의 리드오프 중의 한 명임은 분명하다. 특히 현역 1번 타자들 중에서는 쟈니 데이먼을 제외한다면 호세 레이예스나 헨리 라미레즈 등은 아직 이치로와 비교될만한 대상은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은 바로 그가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이 2천만 불이기 때문이다.
쟈니 데이먼(2006년 33세 4년간 평균 1300만), 라파엘 퍼칼(2006년 30세 3년간 평균 1300만), 훌리오 루고(2007년 32세 4년간 평균 900만), 후안 피에르(2007년 32세 5년간 평균 880만), 지미 롤린스(2006년 28세 5년간 800만), 브라이언 로버츠(2007년 33세 3년간 평균 620만)
최근 FA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은 각 팀의 리드오프 들이다. 퍼칼과 루고, 피에르 등은 그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팀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고, 이미 계약 당시부터 오버페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쟈니 데이먼은 1번 타자 중 최고의 대우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선수였고 그러한 그 에 대한 평가가 연 평균 1300만불이라는 금액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이치로가 계약을 함에 있어서 가장 직접적으로 비교될 선수가 바로 데이먼이기 때문이다.
이치로보다 뛰어난 성적을 보였던 시기의 크렉 비지오가 당시 받았던 연봉은 전체 20위권 수준이었다. 전성기 시절의 리키 핸더슨과 웨이드 보그스도 비슷한 수준의 금액을 받았다. 올해 1250만불의 연봉을 받는 이치로는 38위에 랭크되어 있으며, 미겔 테하다가 1380만 정도로 20위에 올라 있으니, 이치로가 그동안 헐값에 뛰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막대한 금액에 팀을 옮기는 선수도 있지만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고 싶어 하거나, 그 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은 생각보다 적은 금액에 연장계약을 맺기도 했다. 사이영상 수상 이후 5년간 1270만불이라는 비교적 싼 가격에 계약을 한 카디널스의 에이스 크리스 카펜터를 비롯해, 데이빗 오티즈(4년간 1300만), 랜스 버크만(6년간 1420만), 알버트 푸홀스(7년간 1430만) 등이 그러한 선수들이다.
◎ 가능성이 있는 팀과 이치로의 상품성
이치로가 2000만불을 받게 된다면 그 모델은 다름 아닌 데릭 지터가 될 것이다. 델가도, 로드리게스, 라미레즈의 계약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던 무렵 양키스는 지터에게 또다시 엄청난 금액을 쥐어주는 연장계약을 발표한다. 총액 1억 8900만불의 10년 계약이었다. 당시 27세에 불과하던 지터였기에 기간은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역시나 그 금액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스타인브레너 양키스 구단주가 지터에게 그만한 금액을 보장해 준것은 다름 아닌 그의 상징성과 상품성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지터는 루스-게릭-디마지오-맨틀의 뒤를 잇는 양키스 혼의 계승자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그에 따라 뉴욕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지터는 가지고 있는 상품성 하나만으로도 실력 이상의 연봉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점은 이치로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현재 이치로는 일본 스포츠계의 최고 스타다. 미국 이상의 야구 열기를 자랑하는 일본에서 3년 연속으로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 1위’에 올랐다. 일본인이 미국 경제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고, 이치로 자신도 충분한 뉴스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하며 상품성을 높여 왔다. 이미 일본을 넘어 미국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이치로를 통한 마케팅으로 시애틀 구단은 막대한 이득을 보았고, 이러한 그의 상품성은 ‘2천만 불 계약설’에 설득력을 더 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메이져리그에는 그 정도의 자금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치로의 영입을 간절히 원하는 팀이 존재한다. 다름 아닌 보스턴 레드삭스다. 데이먼을 보낸 뒤 계속해서 1번타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왔고, 올해 1번타자로 낙점하고 거액에 영입한 훌리오 루고는 처참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탄탄한 전력으로 메이져리그 승률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내년 시즌이나, 올해 당장의 포스트 시즌을 위해서라면 시즌 중간에라도 사인&트레이드 형식으로 이치로를 거액에 데려올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나머지 팀들은 이치로에게 그러한 거액을 쥐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양키스에는 데이먼이 있고, 메츠에는 레이예스가 있으며 다져스에는 퍼칼과 피에르가 버티고 있다. 이들 팀은 굳이 그 큰 금액을 지불하면서 이치로에게 목숨을 걸 필요가 없는 팀들이다. 자금력은 있지만 리빌딩에 돌입하려고 하는 화이트 삭스는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고, 지난 오프시즌 기간 동안 이미 많은 자금을 푼 컵스 역시도 더 이상의 여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진 않는다.
아무래도 역시 이치로에게 2천만 가까운 돈을 쥐어줄 수 있는 팀은 레드삭스 외에는 없어 보인다. 최고의 성공 스토리를 써온 이치로가 미국 진출 7년 만에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기대된다. 어쩌면 그것은 한달 가량 남은 트레이드 데드라인 이전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