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마쓰자카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 졌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7. 4.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템파베이와의 경기에서 8이닝 동안 4개의 안타만을 허용, 9개의 삼진을 곁들이며 무실점으로 막아 시즌 10승 고지에 올랐다. 그 동안 동양인 투수로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노모 히데오와 박찬호, 그리고 작년 메이져리그 다승 1위에 올랐던 왕 첸밍도 전반기 최다 승수는 9승이었다. 시즌 17경기 만에 도달한 10승, 최근 메이져리그에 완전히 적응한 듯한 마쓰자카의 모습을 보면 데뷔 시즌 20승도 꿈은 아닌 듯 보인다.


메이져리그의 기준으로는 마쓰자카도 어디까지나 신인 신분이며, 신인왕 후보 중 한명임에 틀림없다. 마쓰자카가 이 페이스를 이어나가며 20승을 거둔다면 1954년 밥 그림 이후로 2번째 20승 신인왕이 탄생하게 될 전망이다. 현재 마쓰자카의 메이져리그 데뷔 임팩트는 2001년 이치로와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는 수준이 아니다.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인적으로 메이져리거가 아닌 투수들 중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던 투수가 세 명 있다. 현역 시절의 선동렬 감독과 쿠바 국가 대표로 세계 대회에 나왔던 당시의 호세 콘트레라스, 그리고 바로 오늘의 주인공 다이스케 마쓰자카이다. 선동렬 감독은 결국 빅리그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콘트레라스는 2002년 맥시코 원정에서 미국으로 망명을 신청, 결국 이것이 받아들여지게 되면서 메이져리그에 입성했고, 마쓰자카도 올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빅리그 무대를 밟게 되었다.


선 감독의 투구야 국내에 있을 때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콘트레라스와 마쓰자카의 투구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를 야구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였다. 우완 강속구 투수로는 로져 클레멘스 이상의 투수가 없다고 여겼던 필자였지만, 당시 두 명의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클레멘스와 비슷한 좋은 체격 조건을 갖추고 있던 콘트레라스는 이미 클레멘스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구위와 투로서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다. 올림픽 예선리그에 등판해 완봉승을 거두며 호주를 1-0으로 꺾었고, 4일 뒤 벌어진 일본과의 준결승에서도 9이닝 동안 6개의 피안타만을 허용하며 9삼진을 곁들여 또다시 3-0 완봉승을 거뒀다. 결승에서 미국에게 패하는 바람에 쿠바의 3연속 올림픽 우승은 물 건너갔지만(콘트레라스는 이미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금메달을 딴 적이 있었다), 그 두 경기를 통해 콘트레라스라는 투수가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마쓰자카 역시 시드니 올림픽을 통해 본격적으로 전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만 20세가 된지 3일 만에 미국과의 예선리그 1차전에 등판한 마쓰자카는 10이닝 동안 8안타를 맞으며 2실점하며 승패 없이 물러났다. 경기는 결국 미국의 4-2 승리로 돌아갔지만, 5회까지 단 1안타로 미국 타선을 봉쇄하는 등, 9회 152킬로의 강속구로 아담 에버렛을 삼진잡는 모습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당시 미국팀의 선발투수는 벤 시츠였다)


이후 벌어졌던 한국과 일본의 예선 경기와 3-4위전 경기는 는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예선 6차전에서 마쓰자카가 9이닝을 역투하며 10개의 삼진을 잡았지만 이승엽에게 홈런을 허용하는 등 5실점, 결국 그가 마운드에서 내려온 뒤 추가 득점에 성공한 한국이 7-6으로 승리했다. 각각 미국과 쿠바에게 진 뒤 마쓰자카와 ‘일본 킬러’ 구대성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3-4위전에서, 마쓰자카는 7회까지 우리나라 타선을 무실점으로 꽁꽁 묶었지만 8회 앞선 세 번의 타석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던 이승엽에게 2타점 2루타를 허용하며 3-1로 무릎을 꿇었다.


구대성의 너무나도 뛰어난 투구로 인해 한국과의 승부에서 연이은 패배를 당하기는 했지만, 4일 만에 등판한 준결승에서 보여줬던 마쓰자카의 투구 역시 칭찬받기에 충분했다. 갓 20세가 된 이 투수의 5년 후를 생각하면 두렵기만 했다. 당시 미국 대표팀에는 현재 팀의 에이스로 활약 중인 로이 오스왈트와 벤 시츠가 있었고 그 외에도 커트 에인스워드, 라이언 프랭클린, 존 라우치 등이 있었지만, 결승에서 쿠바를 완봉으로 눌러버린 시츠와 마쓰자카가 단연 두드러져보였다.


◎ 일본 리그에서의 마쓰자카

마쓰자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1998년 여름이었다. 일본의 고교 야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갑자원 결승에서 노히트 노런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주인공이 바로 마쓰자카였고, 그 해 봄과 여름의 갑자원 10경기를 선발 등판해 6번의 완봉을 포함해 모두 완투승을 거두었다는 내용이 뒤를 따랐다. ‘괴물투수’ 등장의 서곡이었다. 고교시절 40경기에 가까운 공식전에서 그의 승률은 100%였다.


요코하마 고등학교를 졸업한 마쓰자카는 1999년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해, 16승을 거두고 고졸 신인으로서는 45년 만에 퍼시픽리그 다승왕에 올라, 신인왕 수상과 함께 역대 최연소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된다. 8년간의 일본 프로야구 생활 가운데 부상으로 시즌의 절반을 접어야 했던 2002년을 제외하고 7번 모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리그 다승왕 3회, 탈삼진 타이틀 4회, 방어율 타이틀을 2회씩 따내며 2001년에는 일본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데뷔 당시에만 해도 컨트롤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지만, 2002년을 계기로 그것마저 극복하며 완전무결한 투수로 거듭난 이 젊은 투수는 장착하고 있는 구질도 다양하다. 90마일대 초중반의 패스트볼과 주무기인 커터와 슬라이더 외에도 커브, 체인지업, 포크까지도 구사할 수 있는 마쓰자카는 이미 일본리그 진출과 동시에 리그 최고의 투수가 되어 있었고, 언젠가는 메이져리그에 진출해 그 위상을 떨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2005년 이후 메이져리그 진출을 노렸으나 구단에서 리그 투수 최고 연봉을 보장하며 잡았다. 당시 계약서에 2006년 좋은 성적을 보이면 메이져리그 진출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소문이 있었고, 그것은 시즌 후 사실로 드러난다. 06시즌을 앞두고 출전한 제 1회 WBC에서 당당히 초대 MVP로 등극하며 일본을 우승으로 이끌며 몸값을 더 높인 그는 2006시즌,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선수생활 중 최고로 많은 승수를 거두며 가장 낮은 방어율을 기록한다.


이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보스턴 레드삭스가 5111만 1111달러 11센트로 마쓰자카와의 독점 교섭권을 따냈고, 6년간 5200만 불을 받기로 하면서 보스턴 유니폼을 입게 된다. 비록 마쓰자카가 받는 돈은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정작 보스턴은 그 두배 가까운 1억 300만불을 투자했으니 마쓰자카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본리그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최고의 완투형 선발 투수인 마쓰자카는 그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줄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 “The dice is cast”

“주사위는 던져 졌다” 라는 말이다. 서양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 중 한명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한 말로, 그 이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명언 중 하나가 되었다.(참고로 필자의 닉네임은 바로 이 카이사르에게서 따온 것이다) 'dice'는 주사위를 뜻하는 명사 ‘die'의 복수형이므로 위의 문장 역시 "The die is cast" 로 바꿔써도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간단하게 “다이스 케스트”라고 발음할 수 있다.


‘Dice-K’는 마쓰자카의 미국진출과 더불어 팬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마쓰자카에 대한 소문을 들은 미국팬들이 그의 닉네임을 지어주면서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이 문장을 빌려온 것은 아닐까? 발음상으로도 그렇고, ‘cast'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throw‘ 의 뜻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다이스 케스트” 는 마쓰자카의 별명과 관련지어 생각하면 “마쓰자카가 던지다” 로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Dice-K’라는 별명 속에 “마쓰자카의 투구는 메이져리그 역사를 바꿀 것이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이해해도 그것이 과대 해석은 아닐 것이다. 마쓰자카는 이미 성공적인 시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처음 두 달동안은 거품이니 뭐니 말들도 많았고, 실제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6월 이후 등판한 7경기에서 그는 빅리그에 완전히 적응한 듯 엄청난 투구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매 경기마다 8개 이상의 삼진을 잡으며 1.10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는 마쓰자카가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추세를 이어 간다면, 카이사르가 유럽의 역사를 바꿨듯이, 마쓰자카는 메이져리그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역사’를 운운할 만큼의 충분한 것을 보여준 적은 없지만, 진출 첫 해에 전반기 10승을 이루어 내며 그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마쓰자카가 올시즌 종료 후 받게 될 성적표가 정말로 궁금하다.


마쓰자카의 최근 7경기 성적

6월 5일 7이닝 7피안타 2볼넷 8탈삼진 2실점 패

6월 10일 6이닝 4피안타 4볼넷 9탈삼진 2실점 패

6월 16일 7이닝 3피안타 3볼넷 8탈삼진 무실점 승

6월 22일 6이닝 5피안타 5볼넷 9삼진 1실점 승

6월 27일 8이닝 3피안타 1볼넷 8삼진 1실점

7월 3일 8이닝 4피안타 1볼넷 9삼진 무실점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