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비운의 천재 투수 삼인방(1) - 케리 우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7. 27.


▷ 한 경기 20탈삼진의 전설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1986년 4월 29일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의 23살짜리 젊은 투수가 상상도 못한 대형 사고를 친다.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홈경기에서 9이닝을 완투하며 무려 20개의 탈삼진을 기록, 스티브 칼튼-탐 시버-놀란 라이언이 가지고 있던 종전 기록(19개)을 경신하며 정규이닝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홈팬들 앞에서 환상적인 삼진 쇼를 펼치며 1실점 완투승을 거둔 이 선수는 펜웨이 파크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팀의 미래로 주목 받고 있었던 이 투수는 그 경기를 통해 단숨에 빅리그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사이 영 이후 레드삭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성장하는 이 젊은 투수의 이름은 로져 클레멘스였다.


1984년에 빅리그에 첫 선을 보였던 클레멘스는 이듬 해 풀타임 선발 자리를 보장 받았지만 부상으로 인해 100이닝도 채우지 못한다. 86시즌을 맞이한 클레멘스는 20탈삼진 경기를 비롯해 시즌 내내 도미넌트한 모습을 보이며 방어율(2.48)과 다승(24승) 타이틀을 차지했고, 올스타전 MVP와 사이영상, 그리고 리그 MVP까지 싹쓸이하며 ‘로켓 맨’의 시대를 예고한다.


그리고 10년 후인 1996년, 이제는 사이영상을 3번이나 받은 베터랑 투수가 된 클레멘스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다시 한 번 20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완봉승을 거둔다. 레드삭스를 떠나는 클레멘스가 팬들에게 보여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한 경기 20삼진, 이는 로져 클레멘스만의 성역이었다.


클레멘스의 첫 번째 20탈삼진 경기를 TV로 시청했고, 두 번째 경기를 마이너리그 선수 신분으로 접했던 한 애송이 투수가 있었다. 1998년 시즌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어 빅리그에 첫 발을 내딛은 이 선수는 5월 6일 데뷔 후 5번째 선발 등판 경기에서 ‘킬러-B’로 명성을 날렸던 휴스턴 에스트로스를 상대로 20개의 탈삼진을 기록, 내야 안타 하나만을 허용하며 완봉승을 거둔다.


당시만 해도 아직까지는 컨트롤을 더 다듬어야 한다고 평가 받았던 시카고 컵스의 신인 투수 케리 우드가 이루어낸 쾌거였다. 로져 클레멘스 외에는 누구도 근접하지 못했던 성역에, 경기를 지켜본 팬들을 패닉 상태로 만들어 버린 20살의 루키가 그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6피트 5인치의 당당한 체구에 99마일을 뿌리는 우완 정통파 강속구 투수, 주무기는 달랐지만 케리 우드는 젊은 시절의 로져 클레멘스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고, 12년 전 로켓이 그랬던 것처럼 단숨에 전 미국을 들끓게 하는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 최강의 마구 슬라이더, 그리고 혹사...

로져 클레멘스의 스플리터, 마리아노 리베라의 컷 패스트볼, 존 스몰츠와 랜디 존슨의 슬라이더, 그렉 매덕스의 투심,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체인지 업, 대럴 카일과 배리 지토의 커브 등은 지난 십 수년간 빅리그를 대표했던 최고의 위력을 자랑하는 구질들이다. 제대로 구사되었을 때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 지는 일일이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떠한 위력을 자랑하는 최고의 구질도 신인 시절의 케리 우드가 구사하던 슬라이더의 위력에는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다. 스피드와 날카로움, 그리고 엄청난 무브먼트까지 동반한 우드의 슬라이더는 진정한 마구였다. 신인 시절 제구력이 완전하지 않았던 우드였기에, 컨트롤이 흔들리는 날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제구가 되는 날 그의 슬라이더를 건드릴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166.2이닝에서 117개의 안타만을 허용하며(피안타율 .196) 무려 233개의 삼진을 잡았다. 9이닝으로 환산했을 때 나오는 12.58개 라는 기록은 단일 시즌 역대 1위의 기록이었다. 이 후 99년 페드로 마르티네즈(13.21)와 01시즌 랜디 존슨(13.41)이 차례로 경신하긴 하지만, 닥터-K로 유명한 이들 조차도 우드의 기록을 넘어선 것은 저 한 번씩이 전부였다. 지금도 우드(10.36)는 이 부문의 통산 기록에서 페드로 마르티네즈(10.20)를 제치고 랜디 존슨(10.78)에 이어 역대 2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슬라이더라는 구질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완전히 다룰 수 있는 경지가 되기 전까지는 그 위력만큼이나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구질인 것이다. 작년에 폭포수 슬라이더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미네소타 트윈스의 프란시스코 리리아노가 그랬던 것처럼, 우드 역시도 자신의 위력적인 슬라이더를 던지기 위해서는 팔꿈치의 상당한 무리를 감수해야만 했다.


게다가 우드는 당시 상당한 혹사를 당하고 있었다. 난타 당해 겨기 초반에 마운드에서 내려온 두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24경기에서 우드의 게임당 평균 투구 수는 무려 113개, 이닝당 투구 수도 16.8개에 달했다. 20살의 어린 투수를 이렇게 혹사시켜서야 슬라이더가 아니더라도 무리가 오는 것이 당연하다. 결국 시즌 종료 한 달여를 남기고 팔꿈치에 통증이 와 남은 정규시즌을 포기해야만 했다.


여기에서 그쳤더라면 좋았다. 하지만 승부욕이 강한 우드와 당시 컵스 감독이었던 짐 리글맨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와일드카드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팀을 위해 우드는 다시 돌아왔고, 리글맨 감독은 돌아온 우드를 디비즌 시리즈 3차전에 선발 등판시킨다.


경기 결과(5이닝 1실점)는 중요치 않다. 결국은 그 경기가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팬들에게서 캐리 우드라는 촉망 받는 투수의 미래를 빼앗아 간다. 이듬해 스프링 캠프에서 또다시 통증을 호소한 우드는 토미 존 수술을 받으며 기나긴 재활에 들어갔고, 2000시즌 중반이 되어서야 힘들게 복귀하지만 더 이상 그에게서 예전과 같은 슬라이더는 볼 수 없었다.


▷ 힘들었던 부활, 그러나 또다시...

예전과 같이 괴물 같은 위력의 슬라이더는 볼 수 없었지만, 우드에게는 여전히 위력적인 98마일의 포심과 하드 커브가 있었다. 계속해서 부상자 명단에 들락거리긴 했지만 2001년 174.1이닝 만에 217삼진을 잡으며 12승 6패 3.36의 방어율로 부활의 신호탄을 알렸다.


그리고 2002년 케리 우드는 처음으로 200이닝 이상을 던지며 풀타임을 소화해 낸다. 33게임에 등판 4번의 완투와 한 번의 완봉승을 포함해 12승 11패 3.66의 방어율, 또한 여전히 이닝(213.2)보다 많은 탈삼진(217개)을 기록한다. 게임당 평균 투구 수는 105개, 부상 전력이 있는 투수이기에 걱정이 되는 수치이기는 하지만, 던진 이닝이나 등판 경기 수 등을 고려하면 심각하게 무리가 갈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3년 이후 시카고 컵스 팬들에게 악몽으로 기억될 한 사람이 등장한다. 투수 혹사의 대명사 더스티 베이커 감독이 컵스의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케리 우드는 2003년을 자신의 커리어 하이로 장식한다. 32경기를 선발 등판해 4완투 2완봉을 곁들이며 14승 11패의 좋은 성적으로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견인한다. 통산 가장 좋은 방어율인 3.20을 기록했으며 211이닝 동안 잡은 266개의 탈삼진은 메이저리그 1위에 올라 있었다. 100개의 볼넷을 허용했지만 .203의 언터처블급 피안타율을 자랑했다.


하지만 베이커 감독의 투수 운용은 이미 우드를 재기 불능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7이닝 동안 141구를 던지게 하는 등, 게임당 평균 투구 수가 111개(리그 2위)에 달했다. 마지막 10경기(정규시즌 6경기 + 포스트 시즌 4경기)에서의 평균 투구수는 무려 120개, 이쯤 되면 용서할 수 없는 감독의 만행이라 부를만하다.


2004년 140.1이닝 2005년 66이닝 그리고 2006년 19.2이닝, 결국 케리 우드는 2007시즌을 앞둔 스프링 캠프에서 자신은 이제 구원 투수로 뛸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며 팬들을 절망 속에 빠뜨린다. 베이커 감독이 떠난 컵스에는 선발 투수 케리 우드도 사라지고 없었다.


▷ 구원 투수로의 재기

지난 주, 케리 우드가 부상 치료 후 세 번째 가진 재활 등판에서 스피드 건에 95마일을 찍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지난 2년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지만, 아직도 이 투수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고, 이번처럼 좋은 소식이 들리면 「시카고 트리뷴」지에 대서특필 되곤 한다.

 
지난 달 16일 30번째 생일을 맞이한 케리 우드, 이제 이 선수에게 예전과 같은 화려한 선발 투수로서의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는 이제 구원 투수일 뿐이다. 팀은 그에게 경기 출장 수에 따라 옵션이 달린 연봉 계약을 했고, 어쩌면 우리는 500만 불을 받는 불펜 투수를 보게 될 지도 모른다.


어떤 이에게는 우드가 지난 2년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2000만 달러를 가져간 먹튀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20세의 나이에 팬들에게 꿈과 환상을 보여준 최고의 유망주였다. NBA 팬들이 ‘포스트 조던’의 선두 주자였던 앤퍼니 하더웨이를 잊지 못하고 항상 그의 부활을 염원했던 것처럼, 케리 우드는 비슷한 느낌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선수인 것이다.


우드가 언제쯤 빅리그에 복귀할 지, 그리고 어떠한 활약을 펼칠 지, 현재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때 팬들의 맘을 설레게 만들었던 이 최고의 파워 피쳐가 중간 계투로 뛰는 모습을 기대하는 팬들은 없을 것이다. 슬라이더로 인해 어깨가 지쳐 있었던 존 스몰츠가 선택했던 것처럼 언젠가는 최고의 클로져로의 완벽한 변신에 성공하는 케리 우드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하지만... 이런 기대를 해야 하는 현실 자체가 서글프기는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