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현이 플로리다 말린스로 이적해 선발 로테이션에 안착한지도 두 달이 넘었다. 그 동안 김병현은 13경기에 나서서 70.1이닝을 던지며 4승 3패 방어율 4.22의 성적을 거뒀다. 중간에 구원 등판해 2.2이닝 동안 2실점 한 경기를 빼면 순수하게 선발 투수로서의 방어율은 4.12로 조금 더 낮아진다. 이정도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작년에는 4명의 신인 투수가 에이스 돈트렐 윌리스와 함께 모두 두 자리 승수를 거두었던 플로리다 말린스지만 올해는 그 상황이 다르다. 윌리스가 시즌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그나마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던 세르지오 미트리(4승 5패 3.34)도 최근 8경기에서는 피안타율이 .325까지 치솟으며 5.40의 방어율을 기록 중이다.
이러한 와중에 김병현을 영입한 플로리다는 그가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 6승 6패의 5할 승률(팀 시즌 승률 .462)을 거두고 있다. 출발은 앞날을 확실히 기약할 수 없는 5선발이었지만, 지금은 팀 내 위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의 김병현은 팀 내에서 가장 믿을만한 투수 중 한명이다.
하지만 현재 김병현에게는 몇 가지 불안요소가 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지적되어 오고 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한 단계 더 높은 선수로의 성장은 힘들다. 김병현의 당면과제가 무엇인지 지금부터 한번 살펴보자.
▷ 스테미너 부족
얼마 전 김병현은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강판당한 후 뒤이어 등판한 구원투수들의 난조로 인해 승리가 날아가자, 경기 후 자신은 150구도 던질 수 있다며 교체한 감독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을 표현한 적이 있다. 하지만 김병현이 150구를 던지면 그 경기는 이길 수가 없게 된다.
경기 시작 후 50구 까지 던졌을 때의 김병현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피안타율은 2할에 불과하고 피출루율(.325)이나 피장타율(.353)도 나무랄 데 없다. 하지만 50구가 넘어간 이후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50구 이후부터 피안타율은 .265로 상당히 높아지고 피출루율(.394)과 피장타율(.449)은 더 큰 상승폭을 보인다.
스테미너의 부족이 원인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타자들이 그의 공에 익숙해진다는 점이 문제다. 시합에서 처음 타자를 상대했을 때(.198/.333/.388)와 타순이 두 바퀴 돈 후 세 번째 상대했을 때(.267/.382/.467)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구원투수일 때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문제지만 선발투수인 이상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다. 스테미너의 부족은 치명적인 결함이며, 이닝이 진행됨에 따라 상대 팀에게 파악당하는 것이 문제라면 그것은 더더욱 심각하다.
▷ 수비 & 퀵 모션
선발투수로서 김병현이 부족한 점은 또 있다. 바로 수비의 문제다. 잠수함 강속구 투수인 김병현은 투구 동작 이후 자세가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타구에 대처하는 판단과 타이밍이 늦어지며, 땅볼 시 1루로의 스타트도 더딘 편이다.
또한 그는 퀵 모션에서의 투구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 김병현이 올 시즌 허용한 도루는 15개, 상대팀의 18번의 시도 중 성공하지 못한 적은 단 3번에 불과하다. 전담포수인 맷 트레너가 작년 34번의 시도 중 16번을 잡아낸 뛰어난 도루저지 능력을 갖춘 선수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역시나 원인은 김병현 자신에게 있다.
올해뿐만이 아니더라도 김병현이 투수였을 때 주자의 도루 성공률은 무려 80%(107/134)에 달한다. 빅리그 최고의 견제 동작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뉴욕 양키스의 앤디 페티트의 경우 주자의 도루 성공률이 67%에 불과할 뿐 아니라 200이닝 기준으로 시도 회수 자체가 17회로, 김병현(33.5회)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심리적인 부담으로 다가와 투구에서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주자가 2루에 있을 때(피안타율 .238)보다 도루의 우려가 있는 주자 1루 상황(.308)과 주자를 루상에 묶어두어야 하는 3루 상황(.333)에서의 피안타율이 너무나도 큰 차이를 보이는 결과로 나타난다.
▷ 제구력 불안
김병현이 플로리다에서 70.1이닝을 던지면서 허용한 안타는 겨우 60개, 피안타율은 .226이며 이는 60이닝 이상을 던진 메이저리그 투수 중 18위에 해당한다. 9개의 홈런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피장타율은 .385로 정도로 수준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어율이 4점대가 넘어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피출루율이 높기 때문이다.
김병현의 피출루율은 .356이나 되고 이는 120위에 해당된다. 피안타율과 어마어마한 차이다. 김병현이 허용한 볼넷은 무려 47개, 9이닝으로 환산하면 무려 6.01개나 되며, 이는 6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볼넷은 투구 수의 증가로 이어진다.
김병현이 12번의 선발 등판에서 소화한 이닝은 겨우 67.2이닝으로 평균 5와 3분의 2이닝에 불과하다. 이닝 당 투구 수도 17.2개나 된다. 이래서야 6이닝도 채우기 힘든 것이 당연하다. 실제로 김병현이 올해 7이닝 이상을 던진 것은 5승을 거두었던 지난 신시네티 레즈전이 유일하다. 이래서야 불펜이 떠안는 부담이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 좌타자 공포증
빅리그에 우타자가 좌타자 보다 1.5배 이상 많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김병현은 우타자(162타석)보다 좌타자(188타석)를 더 많이 상대해야만 했다. 실제로 김병현을 상대하는 팀들을 보면 붙박이 주전타자를 제외시키고 백업 멤버를 기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왼손타자들을 많이 라인업에 포함시키려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김병현이 왼손타자에게 심각한 약점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투수라면 우타자에게 강한 대신 좌타자에게 약점을 보이는 것은 일반적인 경향성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김병현만큼 큰 선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우타자(.180/.273/.266)는 거의 압살하다시피 철저히 제압하는 김병현이 좌타자(.279/.431/.524)에게는 그 이상으로 두들겨 맞고 있는 것이다.
김병현을 상대로 하는 좌타자들의 OPS는 무려 .955로 리그 특급 타자 수준이다. 마치 올 시즌 짐 토미(17홈런 56타점 .277/.436/.526)의 성적과 흡사하다. 평소에는 주전도 되지 못하는 선수들이 좌타자라는 이유만으로 김병현 앞에서는 강타자 토미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런 실정이니 상대팀 감독들이 어떻게든지 좌타자를 라인업에 많이 포함시키려고 애를 쓸 수밖에.
▷ 선발투수를 택한 그의 몫
스포츠 선수가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단점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짧은 이닝을 던지는 구원투수라면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방법만으로도 최고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김병현은 이미 그것을 몸소 보여준 적이 있는 선수다.
오버스로 투수가가 대부분인 빅리그에서 그들에 뒤이어 등판할 잠수함 투수라면, 그 상황만으로도 큰 이점이 된다. 길어야 2이닝, 많아야 40개 정도를 던지는 클로져라면 체력의 문제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지금 당장 최선의 힘을 다해 눈앞의 타자를 제압하면 그만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당면 과제들은 그가 구원투수일 때는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들이다. 볼넷은 한 이닝에 4개를 주지 않는 한 실점을 허용하지 않는다. 홈스틸이 아닌 한 도루도 그다지 신경 쓸 이유가 없다. 피안타만 최소한으로 줄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선발투수는 다르다. 최대한 긴 이닝을 끌고 가야하고, 한 명의 타자를 최소 3번 이상 상대해야 한다. 이닝을 길게 끌고 가기 위해선 체력 안배도 반드시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볼넷을 줄여 투구 수를 절약할 필요가 있다. 선발투수라면 장점을 키우는 동시에 단점을 줄여가야만 하는 것이다.
김병현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마무리 투수로서 성공한 투수다. 글의 전개상 부족한 면만 부각시키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장점이 많은 투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김병현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한 때 메이저리그를 연구하는 세이버매트리션들은 클로져와 지명타자는 20대 후반 이상의 베테랑 선수들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8세를 기점으로 그 성적 차이가 너무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정관념을 깬 선수 중 한명이 바로 김병현이다. 22살에 36세이브를 올린 풀타임 클로져의 등장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빅리그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그렇지만 김병현은 스스로 선발투수로의 보직 변경을 원했고, 그 바람은 이루어졌다. 지금 드러난 그의 약점들은 선발투수를 택한 김병현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김병현은 조금은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잣대는 자기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올해 250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는 김병현은 시즌이 끝나면 FA자격을 획득한다. 3년 정도의 계약 기간에 총액 1000만 달러 정도는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지만, 자존심 강한 김병현이 그 정도에 만족할 리가 없다. 마무리 투수로 남았으면 지금쯤 1년에 천만 달러를 받는 선수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그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어쩌면 매 경기마다 자신의 볼넷 개수를 보면서 가장 화가 나는 사람은 김병현 본인일 지도 모른다.
내년에 그가 어떤 유니폼을 입을지는 알 수 없으나, 얼마나 좋은 조건으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이어갈 지는 앞으로의 활약에 달려 있다.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김병현은 분명 발전하고 있다. 5월 보다는 6월이, 6월 보다는 7월의 피칭이 더 안정되어 있다.
굳이 편한 길을 버리고 험난한 길을 택한 김병현, 그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79년생인 그는 동갑인 요한 산타나보다도 1년 먼저 빅리그에 데뷔했고, 라이언 하워드와는 데뷔 년도가 5년이나 차이가 난다.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단 53이닝만 던진 채 빅리그에 올라왔던 특급 유망주 출신이다. 가진 재능에 있어서는 의심할 필요도 없다.
아직도 28세에 불과한 그이기에 개선의 여지는 얼마든지 남아있고, 성공 가능성도 충분히 높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활약만 하더라도 팬들에게 충분히 좋은 기억으로 남겠지만, 앞으로 10년 이상 이어질 그의 선수 생활을 위해서, 그리고 현재의 유일한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 한국의 빅리그 팬들을 위해서라도 약점을 극복하고 더욱 멋진 활약을 펼쳐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