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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달갑지 않은 김병현의 애리조나 행(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8. 5.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넘겼기에 더 이상 김병현의 트레이드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플로리다측은 ‘웨이버 공시 후 트레이드’라는 초강수를 사용하면서까지 기어코 그를 트레이드 하고 만 것이다.


스몰 마켓인 플로리다가 김병현의 연봉(250만 달러)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었고, 애당초 앞으로의 팀의 계획에 김병현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플로리다가 계속해서 트레이드를 시도하긴 했지만, 냉정하게 말해 김병현 자체가 그다지 매력적인 트레이드 카드가 아니었기에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봤었는데, 결국은 최후의 수단까지 사용해 그를 보낸 것이다.


사실 이번 애리조나 행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뉴스다. 김병현은 플로리다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좋은 환경에서 플레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병현의 앞날이나 당장 맞이할 상황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올 시즌 후 FA가 되는 김병현에게 있어 애리조나는 가장 피해야할 구단 중 하나였던 것이다.


▷ 도깨비 팀 애리조나

현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61승 50패로 2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3위 LA 다져스에 각각 1.5게임, 2게임차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선두를 달리고 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즌 전 전망을 하면서 애리조나를 지구 3위로 예상한 전문가도 드물었을 정도다.


게다가 지금의 성적 또한 언뜻 봐도 이해하기 힘들다. 애리조나는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팀 방어율 7위(4.00)에 올라 있지만 게임당 평균 실점은 그보다 조금 많은 4.4점으로 10위에 올라있다. 반면 게임당 평균 득점은 4.1점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28위에 그치고 있고 팀 타율이나 출루율 장타율 할 것 없이 모두 리그 최하위권이다.


샌디에이고는 게임당 평균 4.3점을 득점하고 평균 실점은 3.81점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올라있다. LA도 게임마다 4.58점을 올리는 동안 내주는 점수는 4.3점으로 득점이 더 많다. 이런 상황인데도 득점보다 실점이 많은 애리조나가 이 두 팀을 제치고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은 신기할 뿐, 달리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다.


다져스는 89개의 에러를 범해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으니 그 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59개의 에러(8위)만을 범한 센디에이고보다 75개의 에러(22위)를 범한 애리조나의 성적이 좋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안정적인 불펜의 힘을 바탕으로 한 이기는 경기에서의 집중력이 상당하다는 것, 그리고 홈경기에서의 좋은 승률 때문이다.


애리조나는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14승 7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다져스와 파드리스를 제치고 지구 1위로 올라섰다. 14승중에 무려 7승이 1점차 승부에서 얻어진 것이었다면, 7패 중에는 1-10, 0-14, 0-11 등의 패배가 포함되어 있다. 이기는 경기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반면, 선발진이 일찍 무너지면 맥없이 패할 때도 많다는 것이다. 이기는 경기에서의 팀 방어율은 2.53으로 팀 방어율 1위인 샌디에이고(2.29)보다는 못하지만 2위인 보스턴(2.66)보다도 좋은 반면, 지는 경기에서는 5.91로 엄청난 격차를 보인다.


애리조나는 현재 어웨이 경기에서는 28승 29패로 5할에 조금 못 미치는 승률을 기록 중이지만 홈경기에서는 33승 21패로 6할이 넘는 승률(전체 6위)을 보이고 있다. 팀 방어율은 홈(4.04)과 어웨이(3.96) 모두 큰 차이가 없지만 평균 득점은 홈(4.46)과 어웨이(3.77)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이 홈에서의 많은 승리가 지금의 애리조나 성적의 밑바탕이다.


▷ 트레너와의 이별 그리고 타자 친화적인 구장

사실 플로리다가 맷 트레너를 김병현의 전담포수로 짝지어 준 것은 한국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그를 특별히 배려하거나 대우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트레너 때문에 필자는 플로리다가 처음부터 김병현과 미래를 같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특급 선수가 아닌 다음에야 팀의 주전 포수에게 5일에 한번 정도 휴식(Day-off)를 주고 백업 포수를 기용하는 것은 빅리그의 상식이다. 때문에 플로리다는 팀의 주전 포수인 미겔 올리보는 앞으로 계속해서 같이 하게 될 젊은 투수들과 계속해서 호흡을 맞추게끔 하고, 떠나 보낼 김병현에게는 수비형 백업 포수인 트레너를 붙여준 것이었다.


물론 이는 결과적으로는 김병현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포수로써의 수비나 투수 리드의 측면 모두 다 뛰어난 트레너는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물론 김병현의 볼넷 개수가 확연하게 늘어난 점을 봤을 때 투수 리드의 측면에서는 약간의 물음표를 그리고 싶지만 어쨌든 올리보 보다는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애리조나에도 그러한 포수가 있다. 팀의 주전 포수인 크리스 스나이더는 일찍이 타자로서의 재능뿐 만이 아니라 포수로서의 수비 능력에 있어서도 주목을 받던 유망주 출신 포수다. 2004년 더블 A에서 99경기 동안 15홈런 57타점 .301/.389/.520(타율/출루율/장타율)의 빼어난 성적으로 마이너리그 올스타에 뽑혔던 그는 아직까지 타격에서는 그 재능을 완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수비에서 만큼은 그 실력을 백분 발휘하고 있다.


71경기에 출장해 576이닝동안 단 하나의 에러도 범하지 않았다. 에러가 0개인 포수 중에 그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한 선수는 카를로스 루이즈(590.1이닝, 필라델피아 필리스) 단 한명 뿐이다. 그가 포수 마스크를 썼을 때 투수들의 방어율은 3.39에 불과하고, 마찬가지로 500이닝 이상을 소화한 포수 중에서 센디에이고의 자쉬 바드(543.2이닝 3.02)를 제외하고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이다.


김병현의 새로운 파트너로 스나이더가 낙점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애리조나에는 심각한 암초가 될 만한 변수가 존재한다. 바로 스나이더와 함께 애리조나 안방을 책임지고 있는 미겔 몬테로다. 1983년생인 이 신인 포수는 아직까지 빅리그 경력이 일천하지만 타자로서 스나이더 이상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선수다. 문제는 이 선수의 수비와 투수리드가 빅리그 최악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하다는 데 있다.


최근 들어 몬테로는 더욱 중용되어 스나이더와 거의 플레툰으로 기용되는 중이다. 62경기에 출장해 389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범한 에러는 무려 6개로 300이닝 이상을 소화한 포수 가운데 가장 나쁜 수비율을 보이고 있다. 도루 저지도 34번의 시도에서 9번(.265)을 잡아내는데 그쳐 55번 중 19번(.345)이나 주자를 잡아낸 스나이더에 비해 뒤쳐진다.


수비는 약과다. 투수 리드의 측면에서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같은 투수들의 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몬테로가 마스크를 썼을 때 투수들의 방어율은 4.85로 스나이더에 비해 무려 1.5가량이나 높아진다. 물론 스나이더가 팀의 에이스인 브렌든 웹의 전담 포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머지 선발 투수들을 비교해 봐도 마찬가지다. 몬테로를 포수로 맞이한 투수들은 스나이더와 호흡을 맞췄을 때보다 피장타율이 1할 이상 올라간다.


현재 스나이더는 웹과 덕 데이비스의 전담, 몬테로는 리반 에르난데스의 전담 포수로 고정되어 있고 나머지 투수들에 대해선 거의 절반씩 마스크를 쓰고 있다. 김병현이 미카 오윙스나 유스메이로 페팃을 대신해 선발 투수로 나선다 해도 남은 경기의 절반은 몬테로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이는 그동안 수비형 포수에 익숙해져 있었던 김병현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은 자명하다.


나쁜 소식은 이게 끝이 아니다. 『빌 제임스 핸드북』에 의하면 애리조나의 홈구장인 채이스 필드의 작년 평균 파크 이팩트는 109로 저 유명한 쿠어스 필드(111)에 이어 메이저리그에서 두 번째로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지난 3년간의 종합 수치를 따져도 마찬가지였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팀 타선도 홈구장에서 더 많은 득점을 올렸고, OPS(출루율+장타율)의 경우 1할에 가까운 큰 차이를 보였다. 실점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역시나 홈에서 더 고전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구장에 따라서 투구내용에 큰 차이를 보였던 김병현이기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 FA를 기다리는 김병현

혹자는 그가 다시 한 번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 3번째 우승을 노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애리조나가 다져스와 파드리스의 추격을 뿌리치고 포스트 시즌에 오를 전망은 아무리 당장 앞서고 있다 하더라도 낙관적이지는 않다. 가지고 있는 기본 전력에서부터 꽤나 차이가 나는데다가 감독인 밥 멜빈의 용병술도 믿을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올시즌 애리조나 최고의 타자는 에릭 번즈(16홈런 61타점 .305/.368/.495)다. 하지만 그는 시즌의 절반은 1번 또는 2번 타자로 경기에 출장했다. 1번부터 9번까지 통틀어서 올해 애리조나는 1번 타자가 18개의 홈런을 치는 동안 3번 타자가 친 홈런은 8개에 불과하며 4번 타자도 12개에 그치고 있다.


타점 올리기 가장 유리한 3-4번 타자의 타점이 57-49개에 불과한데 비해 7-8번 타자의 타점이 56-46개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기대 했던 젊은 타자들이 모두 고개를 숙인 탓도 있지만 감독이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로서는 아무래도도 이러한 팀이 막강 투수력을 자랑하는 파드리스나 짜임새 있는 다져스를 제치고 포스트 시즌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게다가 김병현이 당장 원하는 것은 월드시리즈 우승이 아니다. 설령 이대로 팀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다 해도 그것은 김병현이 이룬 성과라 하기엔 조금 민망한 면이 있고, 당장 눈앞의 우승에 동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다.


김병현은 올 시즌 종료 후 FA가 된다. 그런 점에서 평균 이상의 타격을 보유하고 있고 수비가 좋은 전담 포수까지 있던 플로리다는 김병현에게 있어 최적의 팀이었다. 얼마 전 김병현 스스로가 인정했을 정도로 그가 싫어하는 사람도,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없는 팀이 플로리다라는 팀이다.


김병현은 그다지 좋지 않은 기억을 마지막으로 애리조나에서 떠나왔다. 첫 번째 우승의 감격을 맞본 곳이지만 랜디 존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바뀐 곳에서 예전의 향수를 느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기껏 안정되어 있던 멘탈적인 부분이 다시 삐걱거리기 시작할 지도 모른다.


플로리다 시절에는 구원투수가 김병현의 승리를 날리는 경우가 가끔 있었지만, 애리조나는 그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춘 상황에서 마운드를 넘겨주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타선이 빈약하다. 올해 애리조나가 거둔 61승 중 선발 투수의 승수는 겨우 38승, 무려 23승이 불펜의 몫이었으며, 이는 5할 이상의 승률을 거둔 팀들 중 가장 높은 불펜 승리 비율이다.


쉽게 말해 김병현이 똑같은 투구 내용을 이어간다 하더라도 플로리다 시절보다 많은 승수를 거두기 힘들다는 뜻이다. 게다가 수비와는 담을 쌓은 포수와도 호흡을 맞춰야 한다.


FA를 앞두고 어떻게든 뛰어난 성적을 남겨서 좋은 대우를 받고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팀에 정착하기를 원하는 김병현에게 있어 애리조나는 아무런 이점이 없다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다.


웬만하면 긍정적인 내용과 희망적인 전망으로 칼럼을 마무리하고 싶지만 이번만큼은 힘들 것 같다. 김병현 스스로가 어떻게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외부에서 바라보기에는 긍정적인 요소보다는 부정적인 요소가 많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믿을 것은 김병현의 의지와 실력, 그리고 자신의 꿈을 향한 그 거센 도전 의식, 단지 그것뿐이다. 더욱 힘들어진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나갈 지는 김병현 본인 스스로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두 달여 남은 올 시즌의 마무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그려질 지 관심을 가지고 그의 행보를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