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사진으로 돌아보는 배리 본즈의 756홈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8. 8.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73개, 2001년) 보유자인 배리 본즈가 마침내 통산 홈런 순위에서도 행크 아론을 제치고 단독 1위로 올라섰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8월 4일 센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아론과 타이를 이루는 755호 홈런을 기록한 본즈는 7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홈경기 5회 말 마침내 아론을 넘어섰다. 754호 홈런을 기록한 이후 755호에 도달하기까지는 8일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신기록까지는 3일이면 충분했다.


트레버 호프만의 500세이브, 크렉 비지오의 3000안타와 프랭크 토마스,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500홈런, 탐 글래빈의 300승 등 유난히 진기한 대기록의 탄생이 풍성한 한 해였지만 그 무게감이나 의미에 있어 배리 본즈의 통산 홈런 신기록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의 홈런 신기록 달성과 관련해 이런 저런 말들이 참으로 많다. 하지만 31년 만에 새로이 쓰인 이 위대한 기록의 주인공 앞에서 잠시나마 모든 선입견을 내려놓고 그가 달려온 여정을 추억해 보았으면 한다.


1983년 본즈가 애리조나 주립대학에 재학하던 시절(19세)의 모습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아온 본즈는 이미 저 당시부터 5-tool플레이어로 스카우터들의 주목을 받았다. 아들 배리를 위해 아버지 바비 본즈(통산 332홈런)는 윌리 메이스(통산 660홈런)에게 아이의 대부가 되어줄 것을 부탁했고, 그의 친척 중에는 ‘가을의 사나이’ 레지 잭슨(통산 563홈런)도 있었다.


오른손 타자였던 바비 본즈는 그의 아들이 더 위대한 타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억지로 왼손잡이가 되게 만들었고, 바비의 그런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는 고교시절과 대학시절 아마추어 최고의 타자로 각광 받았고, 미래의 빅스타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내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이 시절부터 거만한 그의 태도는 언론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곤 했다.


고교 졸업반 당시 자이언츠로부터 2라운드 지명을 받았으나, 계약금이 적다는 이유로 대학을 택한 본즈는 3학년을 마치고 다시금 빅리그의 문을 두드렸고 1985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부터 1라운드(6순위)에 지명 받는다. 
 

마이너리그에서도 승승장구였다. 드래프트 이후 바로 싱글 A에 합류한 본즈는 71경기에서 13홈런 15도루 .299/.383/.547을 기록하며 이듬해 더블 A를 거치지 않고 바로 트리플 A로 합류했다. 거기에서도 44경기에서 7홈런 37타점 16도루 .311/.435/.527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며 1년도 채 되지 않는 마이너 생활을 끝으로 빅리그에 올라온다. 당시만 하더라도 배리 본즈는 홈런왕 스타일의 타자이기 보다는 30홈런-30도루를 기대할만한 호타준족의 선수였다.


1990년 7월 12일 데뷔 5년 만에 본즈는 자신의 통산 100홈런에 도달한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당시 신인 이었던 앤디 베네스(통산 155승)에게서 빼앗은 홈런이었다.


그 해는 본즈에게 의미 있는 시즌이었다. 지난 4년 동안 계속해서 팀의 톱타자로 활약하던 그는 이 해를 기점으로 클린업 트리오(당시 5번)에 포함되었고, 데뷔 후 처음으로 3할 30홈런 100타점 100득점에 50도루까지 기록한 본즈는 팀을 지구 1위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24장의 1위 표 중 23장을 받으며 자신의 첫 번째 시즌 MVP를 수상한다.


또한 이때부터 시작해 1998년까지 8번의 외야수 골드 글러브(1995년 제외)를 수상했고, 실버 슬러거를 처음 수상한 것도 바로 이 해였다. 90년대 최고의 선수 배리 본즈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소속팀인 피츠버그는 명장 짐 릴랜드(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감독)의 지휘 아래 3년 연속 지구 우승을 달성했고, 지난해 아쉽게 2위에 그쳤던 본즈는 2년 만에 다시금 자신의 두 번째 MVP를 수상한다. 정교한 타격(.311)과 장타력(.624)에 무시무시한 선구안(127볼넷)까지 갖춘 본즈는 이미 투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시즌을 마치고 FA가 된 본즈는 6년간 4375만 달러라는 당시 최고 대우를 받으며 아버지의 팀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한다. 본즈를 놓친 피츠버그는 그 이후로 현재까지 단 한 번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1993년 7월 8일 본즈는 자신의 통산 200홈런을 이제는 지구 라이벌이 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기록한다. 또한 이 해는 본즈가 2000년 갑자기 달라진 모습으로 팬들앞에 나타나기 전까지 그의 커리어 하이로 기억되던 시즌이었다.


팀은 아쉽게 지구 2위에 그치며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으나 46홈런으로 홈런왕에 오르는 등 타율(.336) 출루율(.458) 장타율(.677) 타점(123) 득점(129)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본즈는 2년 연속이자 자신의 3번째 MVP를 수상한다. 기자들이 아무리 본즈를 싫어한다 해도 이 엄청난 기록을 남긴 선수에게 표를 던지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본즈가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 자신의 통산 300호 홈런을 때린 후 기뻐하는 모습이다. 1996년 자신의 32세 생일을 두 달여 앞둔 시점에서 달성한 기록이었으며, 이미 300개가 훨씬 넘는 도루를 기록하고 있던 본즈는 그의 아버지처럼 역대 4번째로 300홈런-300도루 클럽의 가입자가 된다(현재는 스티브 핀리까지 5명).


또한 이 해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본즈가 1988년 호세 칸세코 이후로 역대 2번째 40-40클럽에 가입한 해였다(42홈런 40도루). ‘기록’ 이라는 측면에서 본즈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시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팀이 포스트 시즌에 오르지 못한 마당에 이미 3번의 수상 경력이 있는 본즈는 MVP투표에서는 5위에 그치고 만다.


1998년 8월 23일 본즈는 유래가 없는 대 기록을 작성한다. 300홈런 때와 마찬가지로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400호 홈런을 기록,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400홈런-400도루를 달성한 선수가 된 것이다. 이미 5월 29일 경기에서 만루상황에서 고의 사구를 얻어내며 자신의 위력을 증명했던 본즈가 또 다시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하지만 팬들의 관심은 본즈를 떠나 있었다. 당시는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세기의 홈런 대결이 한창이던 시기였고, 팬들의 모든 이목은 그쪽으로 향해있었다. 나중에 본즈는 이때 팬들이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그 후, 어떤 결심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본즈는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팬들 앞에 나타난다.


2000시즌에 49홈런 장타율 .688을 기록하며 알수 없는 위화감과 함께 자신의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운 본즈는 2001년 마침내 모든 것을 폭발시킨다. 자신을 화나게 만들었던 마크 맥과이어의 시즌 최다 홈런(70개)을 넘어서는 73개의 홈런을 기록한 그는 각종 단일 시즌 기록을 자신의 이름으로 도배한다.


역대 최다인 177개의 볼넷을 얻으며 테드 윌리암스 이후 처음으로 5할의 출루율을 보여주었으며, 베이브 루스를 뛰어넘은 역대 단일 시즌 최고 장타율(.863) 기록도 세운다. 개막 직후인 4월 17일 자신의 통산 500호 홈런까지 기록했던 본즈는 2001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선수가 되었다.(3년 차이가 나는 바로 위의 사진과 비교해 보라)


그에게는 홈런 챔피언의 명예와 함께 사상 처음으로 MVP를 네 번이나 수상한 선수가 되는 영광이 주어졌다. 이때부터 4년간 본즈는 ‘야구의 신’으로 군림한다.


2002년 역대 네 번째로 600홈런의 주인공이 된 본즈, 2003년에는 7개의 도루를 추가해 또다시 500홈런-500도루라는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했다. 그리고 2004년 4월 12일 661홈런을 기록한 본즈는 자신의 대부인 윌리 메이스를 넘어 통산 홈런 순위 3위에 올랐고, 9월 17일에는 센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제이크 피비를 재물로 통산 700홈런을 달성한 세 번째 선수가 된다.

 
이 해 120개의 고의 사구를 얻는 등 232개의 볼넷을 얻어낸 본즈는 6할이 넘는 출루율(.609)을 기록하며 단일 시즌 신기록을 세웠고, 또한 역대 통산 볼넷 1위에도 자신의 이름을 올린다.


13년 연속 30홈런(빅리그 기록 타이), 4년 연속 출루율, 장타율, OPS, 볼넷, 타수 당 홈런수 1위를 이룩한 본즈, 4년 연속 MVP를 수상하며 위대한 4년의 마지막 해를 장식한다.

 
하지만 2004시즌 종료 후, 약물 복용 후유증으로 켄 케미니티(96년도 MVP)가 사망했고, 스테로이드와 관련된 발코 스캔들이 본격적으로 터지면서 본즈는 그 명예에 치명타를 입는다.


부상으로 2005년을 통째로 날린 본즈는 작년 5월 28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서 715홈런을 기록, 드디어 베이브 루스를 넘어서며 역대 2위로 올라선다. 다들 알다시피 홈런을 허용한 상대 투수는 김병현이었다. 이미 본즈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이었고, 루스를 넘어선 본즈의 존재는 그를 인정하지 않는 팬과 관계자에게 목에 걸린 가시와도 같았다.


많은 이들이 그의 은퇴를 종용하고, 그가 행크 아론의 기록을 더럽히지 않기(그들의 표현에 의하면)를 바랐지만, 본즈는 올해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2007년 7월 27일 본즈는 754호 홈런을 때리며 아론의 기록에 단 한 개차로 접근한다. 이후 커미셔너인 버드 셀릭은 마지못해 그의 경기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고, 본즈를 싫어하는 수만은 백인 칼럼리스트들은 편향된 시각이 포함된 칼럼에서 은연중에 본즈를 깎아 내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루스보다 항상 저평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즈 덕분에 재조명을 받게 된 행크 아론과의 비교와 함께, 앞으로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그의 모든 것을 능가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수많은 기사와 칼럼이 쏟아져 나왔다.


경기장에서는 그의 고가에 팔릴 것이 분명한 그의 홈런 공을 받기를 원하는 팬들과, 그를 비난하는 피켓을 들고 저주를 퍼붓는 관중이 공존하는 묘한 그림이 펼쳐졌다. 위대한 대 기록 앞에서 순수하게 기뻐할 수만 없었던 팬들과, 그러한 팬들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자신의 경기에만 집중하던 본즈. ‘스테로이드 의혹’이 빚어낸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최연소 500홈런을 기록한 바로 그날, 본즈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원정경기에서 755홈런을 때리며 행크 아론과 같은 위치에 그 이름을 올렸다.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커미셔너는 박수를 보내기는커녕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찡그렸고, 본즈의 수많은 기록의 희생양이 되었던 파드리스의 팬들은 야유를 보내기 바빴다.


현지 시간으로 8월 7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홈경기에서 본즈는 홈 팬들의 수많은 환호와 축하 속에서 홈런 신기록을 세운다.


전날 미국 흑인들의 우상이자 복싱 영웅인 무하마드 알리의 격려 메시지를 받았고, 자신의 대부 윌리 메이스는 홈런 신기록을 세운 그와 함께 했지만, 커미셔너인 버드 셀릭도, 전 기록 보유자가 된 행크 아론도 경기장에 없었다. 마크 맥과이어가 단일 시즌 홈런 신기록을 세웠던 경기에 비해 너무나도 조촐한 축하 행사만이 치러진 씁쓸한 경기였다.


훗날 배리 본즈라는 선수에게 내려질 평가는 극과 극일 것이다. 전설 중의 전설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블랙 삭스 스캔들, 도박으로 인한 피트 로즈의 영구 제명 사건과 함께 빅리그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스테로이드 스캔들)의 주범으로 남을지 아직은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기록만큼은 분명히 역사에 남는다. 그에 대한 평가는 일단 접어두고, 오늘만큼은 본즈의 756호 홈런을 축하하며 그 장면을 즐겨보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