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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배리본즈를 비추고 있는 색안경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8. 8.


연이어서 배리 본즈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다. 사건이 사건인지라 작성 중이던 다른 칼럼을 모두 미뤄두고 본즈에 관한 내용을 먼저 다룰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배리 본즈가 홈런 신기록을 작성하는 순간을 TV중계로 지켜보면서, 그리고 이후 각종 메이저리그 관련 사이트와 커뮤니티를 돌아보면서 드는 느낌은 오직 ‘씁쓸함’ 이었다.


기대 이하의 축하행사, 어떻게든 본즈의 기록을 폄하하려는 기자들과 그에 동조하는 수많은 야구팬들.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만든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여야 한다. 바로 ‘그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했기 때문’ 이다.


그렇다, 오직 그것만이 이유가 되어야 한다. 버드 셀릭이 본즈의 신기록 작성 경기에 함께 하지 않은 이유도, 기자들이 본즈의 기록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항변 하는 것도, 팬들이 ‘본즈를 야구계에서 추방하라’ 라고 까지 주장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결론이 나온 상태여야 한다는 말이다.


▷ ‘발코 스캔들’ 이란 무엇인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언론에서 언급을 기피하는 바람에 많은 팬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본즈가 현재 연방 수사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은 틀림없으나, 그 이유는 그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느냐를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연방 대배심 청문회에서 ‘위증’을 했느냐의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우선 이 사건의 경위를 명확히 알기 위해선 발코 스캔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지난 2003년 9월 미국의 제약 회사인 베이에이리어연구소(BALCO)의 사장 빅토르 콩테는 몇몇 스포츠 스타들이 자신으로부터 스테로이드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 선수들 가운데는 시드니 올림픽 3관왕에 빛나는 최고의 육상스타 매리언 존스와 한때 100미터 세계신기록(9초 78) 보유자였던 그의 남편 팀 몽고메리가 포함되어 있었고, 배리 본즈의 트레이너인 그렉 앤더슨도 연루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그의 트레이너가 본즈에게 스테로이드를 제공했으므로 그가 약물을 복용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문제는 본즈가 그것이 스테로이드인지를 모르고 단기간 동안 복용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알고 있으면서 파워를 늘리기 위해 계획적으로 사용했느냐 하는 것이다.


본즈는 그해 12월에 있었던 청문회에서 “트레이너가 준 것이 약물인 줄 몰랐다”라고 증언했고, 그의 트레이너 앤더슨은 본즈에 관한 증언을 거부했다. 덕분에 아직까지 앤더스는 철창에 갇혀서 재판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본즈의 증언을 거짓이라 판단한 메이저리그 금지약물 조사단장인 조쉬 미첼 상원의원은 그의 위증을 증명하기 위해 수사에 돌입한 것이다.


▷ 끊이지 않는 의문

지난 1월 뉴욕의 주요 일간지인 ‘뉴욕 데일리 뉴스’는 지난해 본즈가 금지 약물로 규정된 암페타민(각성제의 일종) 양성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이를 놓고 소위 본즈 반대파라 자처 하는 이들은 스테로이드 복용마저 사실일 것이라며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는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다. 메이저리그 규정에 의하면 암페타민 검사결과 1차로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는 이후 6개월 동안 6번의 추가 검사를 받게 되어 있으며(감기약만 먹어도 도핑 테스트에 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추가 적발 시에는 2차 25경기, 3차는 80경기 출장 금지의 징계를 받게 되어 있다.


다들 아는 것처럼 본즈는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즉 추가 검사에서는 음성반응이 나타났다는 것이며, 본즈에게서 뭔가 혐의를 발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수사 위원회에서 이를 감춰주기 위해 비밀공작을 할 가능성도 전혀 없다. 오히려 규정에 의하면 1차 검사 결과는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검사 결과가 외부로 새어 나간 것은 본즈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치졸한 공작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수사 결과의 발표를 기다려야겠으나, 설사 그가 위증을 했다는 것이 밝혀져서 본즈의 스테로이드 복용이 기정사실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그는 그것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스테로이드가 메이저리그에서 금지약물로 규정된 것은 발코 스캔들이 터진 이후인 2004년, 약물을 복용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죄를 물을 수는 없다. 그가 형사상 처벌을 받는 다면 그 이유는 ‘위증’과 ‘탈세’ 때문이지(사실로 밝혀진다면 말이다) 약물 복용 때문이 아니다.


아직 정확한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고, 그가 확실히 ‘유죄’라고 밝혀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계자들과 기자들은 그를 확실한 죄인인양 몰아가고 있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이후 그가 무죄라고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 의혹의 시선들은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성경에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필자 역시도 본즈가 위증을 했을 가능성이, 즉 그가 알고도 스테로이드를 복용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죄의 선언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함이 분명하고, 이것은 ‘법’ 임에 앞서 우리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다른 이에 대한 배려로 지켜줘야 할 기본적인 예의가 아닌가.


적어도 그에 대한 비난과, 기록에 대한 폄하는 모든 수사 결과가 나와서 그가 의도적으로 스테로이드 복용했음이 사실로 드러난 이후에 해도 충분하다.


▷ 도대체 언제부터 행크 아론이 최고였나?

본즈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괜히 행크 아론까지 언급해서 미안하지만, 최근 어떻게든 본즈를 깎아내리기 위해 안달이 나서 아론과 본즈를 비교하며 아론의 위대함을 증명하고자 한 기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당신들에게 언제부터 행크 아론이 최고의 타자였나? 그를 외면한 것은 오히려 당신들이 아닌가?” 라고 말이다.


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각종 메이저리그 관련 언론과 사이트들은 한 번씩은 ‘20세기 최고의 선수를 뽑아보자’ 또는 ‘역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 라는 주제로 모든 선수들의 기록을 저울질 하며 순위를 매기기에 열중했다.


대부분 1위부터 100위까지 뽑힌 이 수십 가지의 랭킹에서 행크 아론이 5위 안에 그 이름을 올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베이브 루스가 만장일치로 1위에 오른 가운데 그 뒤의 순위는(투수 제외) 윌리 메이스, 테드 윌리암스, 루 게릭, 호너스 와그너, 타이 캅 등이 엎치락뒤치락하며 2위와 그 아래를 오갔을 뿐이다. 아론을 5위로 올려놓은 것은 「스포팅 뉴스」정도뿐 대부분의 랭킹에서 그는 6위와 10위 사이를 왔다 갔다 했을 뿐이다.


타격만을 본다면 역대 최고의 타자는 베이브 루스, 공・수・주를 모두 포함한 관점에서 본 역대 최고의 선수는 윌리 메이스. 이것은 오랜 세월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통념이었다. 심지어 ‘역대 베스트 나인’을 꼽을 때도 아론의 이름은 빠져있었다. 본즈가 한 자리를 대신 차지하기 전까지 외야의 세 자리는 루스와 윌리 그리고 테드의 것이었다.


이렇게 단 한 번도 행크 아론을 역대 최고의 선수로 인정하지 않았던 이들이 갑자기 행크 아론의 업적을 칭송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즈가 루스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뛰어넘은 이 시점에서 그에 대한 대항마는 통산 홈런 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아론이 유일했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은 아닐까.


물론 그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지금과 달리 투수들의 시대에 선수 생활을 하며 압도적이면서도 꾸준한 성적을 기록한 아론의 선수 생활은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하지만 평소에는 그러한 면을 부각시키면서 그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던 이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기에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다.


왜 평소에는 아론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며 윌리 메이스나 테드 윌리암스보다 위대한 타자라고 주장하지 못했을까? 아니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흑인’ 행크 아론은 배리 본즈로 인해 지금까지 받아왔던 차별을 완전히 해소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 기자들의 분풀이?

ESPN의 유명한 칼럼리스트들의 본즈 관련 칼럼을 보면 하나 같이 글 가운데 그가 본즈에게 푸대접을 받았던 기억을 언급하고 있다. 그들이 본즈의 기록을 폄하하기 위한 진짜 이유가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 때문이 맞긴 한 걸까? 단순히 자신들이 푸대접 받았던 분풀이를 하기 위한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1941년의 MVP를 다시 뽑아보자” 라는 주제의 글이 넘치던 시기가 있었다. 지난 2002년 7월 마지막 4할 타자인 테드 윌리암스가 사망했던 그 당시의 일이다.


1941년 기자들에게 미움을 받던 테드 윌리암스는 4할 6리의 타율(리그 1위)과 37홈런(1위) 120타점(4위) 135득점(1위)의 당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에게 상냥하고 인기가 많았던 조 디마지오(30홈런 125타점 122득점 타율.357)에게 리그 MVP자리를 내주고 만다. 24명의 기자 중 테드에게 1위 표를 던진 이는 단 한명에 불과했다.


테드의 불친절함을 경험하지 못했던 현대의 기자들은 그 당시의 진정한 MVP는 테드 윌리암스라며 그들의 칼럼을 통해 목소리를 높였다. 야구와 성격은 별개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그 칼럼의 주인공들이 지금 본즈에게 들이대고 있는 잣대는 60년 전의 기자들과 도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테드 윌리암스는 홈런을 쳐도 웃고 좋아하는 관중들을 향해 손 한번 흔들어주는 일이 없었다. 그의 은퇴 경기가 있던 날, 테드는 홈런을 쳤고 관중들은 “우리는 테드를 원해(We want Ted)”를 연호했지만 그는 덕아웃에서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던 선수다. “나는 이 도시(보스턴)가 싫다. 이곳 사람들도 싫다. 난 한상 나를 트레이드 시켜달라고 신에게 기도한다.” 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남긴 이가 바로 테드 윌리암스라는 선수다. 사냥 연습을 위해 펜웨이 파크에서 사격 연습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선수에게 공정한 시선으로 판단을 내렸어야 했다며, 당시 기자들을 질책하던 모습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왜 본즈는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의 인권과 기본권을 무시한 채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죄’를 근거로 비난하고 평가절하 하기에 여념이 없을까. 머나먼 한국 땅에서지만 메이저리그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의 한 명으로서 궁금하기 짝이 없다.


▷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조금만 기다리자

지난 번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500호 홈런을 치던 날, 칼럼에 넣을 사진을 찾기 위해 MLB.COM을 찾았다. 무려 500여장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사진이 에이로드의 500홈런을 기념하기 위해 서비스 되고 있었다. 그의 데뷔 시절부터 시작해 친한 선수들과 주변 인물, 심지어 야구장 밖에서의 사소한 행사 사진들까지 총 망라되어 있는 것이 꽤나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였다.


하지만 오늘 배리 본즈의 사진을 찾기 위해 닷컴을 찾은 필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본즈의 기사가 실린 페이지는 디자인은 에이로드의 그것과 같았으나, 서비스 되는 사진은 고작 30장 남짓이었다. 그것도 700호 홈런, 714호 홈런 그리고 755호 홈런을 쳤을 때의 사진이 각각 10장씩 있는 것이 전부였다. 이를 ‘차별’ 이라는 단어 외의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차별하는 방법 또한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다.


ESPN의 저명한 칼럼리스트들은 본즈가 755홈런을 쳤을 때도, 달갑지 않은 기색이 역력한 기사를 쓰더니, 756호 신기록을 쏘아 올리자마자 하나같이 아쉬움이 가득한 코멘트를 남기고 있다. 아마 현지 시간으로 8일에 연이어 발표될 그들의 칼럼은 굳이 보지 않아도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배리 본즈를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다. 선수들은 “스테로이드를 복용한다고 해서 누구나 본즈처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말은 결국 본즈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했음을 인정하는 말과 같다. 또한 누구나 본즈처럼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복용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본즈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조금은 더 순수한 의미에서 그의 대기록 달성을 바라봐도 되지 않을까. 조금만 미루면 된다. 그동안의 조사 결과가 밝혀지며 그 상세한 내막이 낱낱이 드러나는 그 때까지만 참으면 되는 것이다.


절친한 친구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내 물건이 없어졌다고 해서 확실한 증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몰아붙이면 싸움이 나게 마련이다. 본즈가 무죄이든 유죄이든 지금 당장 그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분명 공정치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