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레드삭스와 양키스의 특급 신인 대격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9. 4.

1992년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도 염종석(17승 9패 2.33)이라는 걸출한 신인 투수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비록 마지막 문턱에서 패하긴 했지만 작년 한화의 비상은 투수 3관왕 겸 MVP 류현진(18승 6패 204삼진 방어율 2.23)의 힘이었다.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다. 정규시즌이든 포스트시즌이든 기대 이상으로(혹은 기대만큼) 활약하는 신인이 있으면 팀 분위기 자체가 달아오르기 마련이다.


전체 승률 12위에 불과했지만 지구를 잘 만나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던 지난 시즌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10번째 월드시리즈 챔프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깜짝 활약을 보여주었던 신인 투수, 아담 웨인라이트의 존재 덕분이었다.


정규시즌에서는 셋업맨 역할을 담당하던 웨인라이트는 불안한 마무리 브랜든 루퍼를 대신해 포스트 시즌에서는 주전 마무리로 기용되었고, 9경기에 등판해 9.2이닝 동안 15개나 되는 탈삼진을 잡으며 무실점, 4세이브를 기록하며 최고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시리즈 MVP는 타지 못했지만, 포스트 시즌 전체 MVP를 뽑는다면 그 주인공은 웨인라이트밖에 없다.




▷ 팀을 좌지우지하는 신인들


보스턴 레드삭스와 LA 엔젤스를 제외한 나머지 6자리 포스트 시즌 진출 팀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올 시즌도 잘 나가는 팀들을 보면 저마다 한두 명씩의 좋은 신인들을 보유하고 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지구 1위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팀내 홈런 1위(28개)에 올라 있는 외야수 크리스 영과 3루수 마크 레이놀즈(12홈런 49타점)의 힘이 크다.


투수진만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밀워키 브루어스는 '푸홀스조차 능가하는 역대 최고의 첫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라이언 브론(26홈런 71타점 .330/.375/.634)의 힘을 바탕으로 무난히 지구 1위 자리를 수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콜로라도 로키스가 5할 승률(.515)을 유지하며 아직도 포스트 시즌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올 시즌 신인 최다 타점을 기록 중인 트로이 털로위츠키(18홈런 74타점 .289/.357/.459)의 영향이 적지 않다.


LA 엔젤스의 타선이 짜임새 있게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레지 윌리츠(25도루 출루율 .397)라는 좋은 1번 타자 감이 예상치도 않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덕분이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도 4선발로써 나름 솔리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저스틴 저마노(7승 7패 4.11)가 고맙기만 하다.


15경기만에 8승(3패)을 거두며 3.79의 좋은 방어율로 팀의 상승세의 일익을 담당했던 카일 켄드릭도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역전 지구 우승을 위해 빠져서는 안 될 핵심 전력이 되었다.


이처럼 좋은 신인이 나오면 팀의 분위기는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팀 성적은 좋아지게 마련이다.(물론 예외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인들의 파워를 가장 절실히 체험하고 있는 팀은 바로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의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다.




▷ 신인들이 만들어 낸 1위 - 보스턴 레드삭스


올 시즌 좋은 활약을 이어가는 팀들 중 신인 선수들의 파워가 가장 큰 팀이 바로 보스턴 레드삭스다. 당초에는 신인왕 1순위로 꼽혔던 마쓰자카 다이스케 혼자만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나머지 신인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올 해 보스턴의 지구 1위는 힘들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가장 돋보이는 선수는 마쓰자카(13승 11패 3.88)다. 최근 3연패를 당하는 등 승수를 챙기지 못해, 신인왕 레이스에서도 브라이언 베니스타(12승 7패 3.16)가 턱밑까지 추격해 들어오는 것을 허용했지만 그는 여전히 믿을만한 선발 투수이고, 한 경기를 책임질 수 있는 선수다.


포스팅 금액과 연봉을 합쳐 총액 1억 달러에 달하는 거액으로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었기에, 다소 부진한 지금에 와서 여러 가지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기도 하지만, 단 한번도 5회를 채우지 못한 경기가 없었을 정도로 꾸준하고, 그 피칭에는 아직도 힘이 있다.


빅리그에 데뷔하자마자 게임당 평균 6.53이닝을 던지고 176.1이닝 동안 174개의 삼진을 잡아낸 이 27살 투수가, 내년 리그에 완전히 적응한 모습을 보인다면 어떤 활약을 보여줄 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더 놀라운 선수도 있다. 당초 '마쓰자카의 말벗' 정도로 생각하고 영입한 오카지마 히데키의 놀라운 활약(3승 4세이브 1.56)이 없었더라면 보스턴의 뒷문은 훨씬 불안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는 현재 빅리그 최고의 셋업맨이며 사이영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


타격 9위에 올라 있는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322/.392/.444)는 마치 10년 전의 데릭 지터를 보는 듯하다. 재치 있는 플레이와 기대 이상으로 견고한 수비(5에러)는 팀의 보배와도 같다. 2번 타순에서 알토란같은 활약을 보인 페드로이아가 없었더라면 중심타선이 부진했던 시즌 중반까지 꽤나 고전했을 것이다.


여기에 '화룡정점'을 행한 사나이까지 나타났다. 자신의 빅리그 두 번째 선발등판에서 '노히트 노런'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해버린 클레이 벅홀츠. 양키스에게 당한 충격의 스윕으로 인해 패닉상태에 빠질 뻔한 팀을 단번에 상승 모드로 바꾼 주인공이다. 팀 분위기 쇄신 면에서 그 어떤 것도 신인의 이러한 활약보다 더 큰 효과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 신인에는 신인으로 대항 한다 - 뉴욕 양키스


작년 신인 드래프트 직후 양키스 프런트의 입은 귀에 걸렸다. FA로 풀린 탐 고든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보내는 대신 얻어온 2장의 드래프트 픽에서 조바 체임벌린과 이안 케네디라는 거물들을 건지는 행운을 얻은 것.


이미 필립 휴즈라는 마이너리그 최고 투수 유망주를 보유한 상황에 체임벌린과 케네디까지 얻은 양키스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리고 올 시즌 모두 빅리그로 올라온 이 세 명의 선수들은 남긴 성적 이상으로 큰 임팩트를 가져왔다.


4월말 선발 로테이션이 완전히 붕괴되어 팀이 바닥으로 가라앉은 상황에서 팀의 부름을 받은 필립 휴즈. 첫 경기에선 4.1이닝 4실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5월 1일에 벌어진 두 번째 경기에서는 6.1이닝 동안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고 텍사스 타선을 꽁꽁 묶어 자신의 빅리그 첫 승을 신고했다.


7회 1사 상황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내려가지만 않았어도 벅홀츠보다 먼저 '2번째 등판 노히트 노런'을 달성할 뻔했던 것이다. 신인의 투혼에 반응한 양키스는 이 경기를 시작으로 7승 2패의 좋은 성적을 잠시간 이어가기도 했다. 부상에서 복귀한 뒤에는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휴즈이지만 잠재력 면에서는 그 어떤 신인 투수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는 특급 유망주다.


조바 체임벌린의 활약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조바 룰'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그는 실질적으로 양키스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신인이다. 선발이냐 마무리냐의 내년 보직 문제를 놓고 팀 프런트로 하여금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만든 체임벌린, 이 선수가 후반기 양키스 상승세의 핵심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마이크 무시나가 부진으로 선발로테이션에서 제외되고, 그를 대신해 첫 번째 선발 등판 기회를 가진 이안 케네디. 겨우 96개의 공을 던지며 7이닝동안 5피안타 2볼넷 3실점(1자책) 6삼진의 깔끔한 투구 내용으로 첫 번째 등판을 승리로 장식한 것은 충분히 놀라웠다.


하지만 실제 그 경기를 지켜본 팬들은 그의 모습과 동작 하나하나를 보고 더 크게 놀랐을 것이다. 조바 체임벌린이 외모와 투구 폼 때문에 '제 2의 로져 클레멘스'라 불린다면, 앞으로 이안 케네디 역시 그와 똑같은 이유로 '제 2의 마이크 무시나'로 불리게 될 것이다.


호리호리한 체구, 귀공자 같은 뽀얀 피부와 외모, 거기에 아래를 보며 집중하다 포수를 직시하는 모습부터 시작해 세트 포지션에서 허리를 아래로 굽혔다가 치켜세우는 동작까지, 완전히 마이크 무시나를 빼다 박았다.


마쓰자카에게 대항할 카드로 이가와 케이(방어율 6.79)를 데려왔다가 완전한 실패를 맛본 양키스는 자체 팜에서 키워낸 신인 투수들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이들의 활약 여부에 따라 포스트 시즌에서의 성적도 달라질 전망.




▷ 진정한 승부는 내년에...


양팀 모두 신인들이 보여준 임팩트 면에서 큰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실질적인 활약상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포스트 시즌에서의 결과야 섣불리 예측할 수 없지만 2007 페넌트레이스에서의 승부는 보스턴의 승리라 봐야할 것이다.


진정한 승부는 내년에 이루어질 전망이다. 보스턴은 마쓰자카가 100% 적응한 모습을 보일 것이고, 페드로이아는 지금처럼 성장한다면 노마 가르시아파라와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떠난 후 사라졌던 '보스턴의 심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선발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벅홀츠는 내년에도 여전히 신인신분이다. 이안 케네디 등과 함께 치열한 신인왕 레이스를 펼칠 것이 틀림없다. 여기에 또 한명의 타자 유망주 자코비 엘스버리까지 있다.


양키스도 체임벌린의 보직이 확실히 정해지고, 휴즈와 케네디가 왕 첸밍과 함께 팜 출신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신인들로 인해 울고 웃으며, 흥미진진한 레이스를 이어온 두 팀, 내년 시즌은 그들을 주축으로 한 진검승부가 다시 한 번 펼쳐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