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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양키스의 에이스 '대만특급' 왕 첸밍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9. 6.


이승엽이 일본의 국민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 타자라는 사실만으로 큰 주목을 받았듯이, 메이저리그에서 뉴욕 양키스가 차지하는 위상은 일본에서 요미우리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에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2위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0회 우승)와 비교도 되지 않는 26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베이브 루스를 비롯해, 루 게릭, 조 디마지오, 미키 맨틀, 요기 베라 등의 레전드급 스타들을 배출한 최고 인기 팀이 바로 양키스다.


현존 최고 스타인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데릭 지터가 함께 뛰고 있으며, 선발투수로서 역대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경쟁력이 있는 로져 클레멘스, 트레버 호프만과 마무리계의 지존 자리를 다투는 마리아노 리베라 등의 살아있는 전설들이 함께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뉴욕 양키스라는 팀이다.

 

이러한 팀의 ‘에이스’라면 자연스레 주목받게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 이 팀의 에이스는 통산 354승의 로져 클레멘스도, 247승의 마이크 무시나도, 200승을 눈앞에 둔(198승) 앤디 페티트도 아니다. 이 쟁쟁한 선배들을 뒤로 하고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로 인정받고 있는 선수는 다름 아닌 ‘대만 특급’ 왕첸밍이다.



▷ 행운의 사나이

위에서 언급한 과거의 전설적인 선수들은 모두 타자다. 루스와 게릭을 주축으로 한 ‘살인타선(Muders Row)'으로부터 시작된 양키스는 타력의 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그러한 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에이로드, 지터, 바비 어브레유, 제이슨 지암비, 히데키 마쓰이, 자니 데이먼, 로빈슨 카노 등을 보유한 양키스 타선은 메이저리그 최강 타선(평균 5.86득점)을 자랑한다. 투수가 퀄리티 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만 기록해도 승리를 따낼 가능성이 크고, 3점대 중반의 시즌 방어율을 기록한다면 20승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은 팀이기도 하다.


왕첸밍도 그러한 팀 타선의 도움을 확실히 받았다. 19승으로 메이저리그 공동 다승 1위에 올랐던 지난 해 왕첸밍의 방어율은 전체 16위(AL 8위) 정도인 3.63이었다. 퀄리티 스타트 회수(18회)보다도 승이 더 많았기에, ‘그의 성적은 단순히 운일 뿐이다’라는 논란에 휩싸여야만 했다.


올 시즌도 왕첸밍은 퀄리티 스타트 회수와 똑같은 17승을 거두며 다승 공동 선두에 올라 있지만, 3.68의 방어율은 전체 25위(AL 13위)에 불과하다. 강팀의 에이스라는 이점을 확실히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가 빅리그 무대를 밟은 것 자체도 어느 정도 운이 따랐다. 지난 2000년 190cm-100kg이라는 당당한 체구를 자랑하는 왕첸밍을 190만 달러라는 당시로선 상당히 많은 금액으로 양키스가 잡았던 것은 그가 100마일에 달하는 강속구를 보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왕첸밍은 2000년 87이닝을 던진 후 어깨 부상으로 이듬해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2002년에야 겨우 복귀해 싱글 A에서 좋은 성적(78이닝 방어율 1.72)을 거두지만, 더블 A로 승격된 이듬 해 122이닝을 던지는 동안 4.65의 방어율을 기록해 다시 실망을 안겨주고 만다.


트리플 A에서 시즌을 시작한 2005년에도 6경기에서 34이닝을 던지는 동안 40개의 안타를 얻어맞는 등 4.24의 방어율을 보이는 등 큰 기대를 하기엔 무리였다. 하지만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케빈 브라운과 칼 파바노, 자렛 라이트 등의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선발 로테이션이 완전히 붕괴된 양키스가 그를 불러올린 것이다.


그는 이 단 한 번의 기회를 잡는 데 성공한다. 18경기에서 116.1이닝을 던지며 8승 5패 방어율 4.02로 꽤나 좋은 활약을 했던 것. 그리고 그는 그 기세를 이어가며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 다승왕으로 올라서며 신데렐라로 떠올랐던 것이다.



▷ 단순한 운??  Never!!

상황이 이러하니 ‘운이 좋다’라는 말이 틀린 말이라 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운’이 왕첸밍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운’으로 이겨낼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다. 모든 선수들이 선호하는 구단의 연고지인 이 도시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언론과 팬들의 압박이 존재한다.


메이저리그에서 팬들이 극성스럽기로 유명하고, 거기에 언론까지 매몰차기로 정평이 나 있는 대표적인 곳을 꼽으라면 단연 뉴욕과 보스턴이다. 팀의 일원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할 겨를도 없이 힘겨운 언론과의 싸움을 시작해야하고, 실수라도 했을 경우 쏟아지는 비난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지난 시즌 큰 기대를 받고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었던 자쉬 베켓이 5점대 방어율(5.01)로 무너졌던 것도 이러한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 현존 최고의 선수인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향해서도 거침없이 일침을 가하는 언론이 뉴욕 언론이다. 뉴욕과 보스턴의 선수로 성공한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


타격이 강한 양키스 소속이라는 ‘운’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압박감부터 덜어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 왕첸밍은 그런 부담감을 너무나도 잘 이겨내고 있으며, 그런 면에서 그는 ‘양키스의 에이스’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풀타임 선발로 활약하기 시작한 지난 시즌과 올해 왕첸밍이 핀스트라이프(양키스 유니폼)를 입고 등판한 경기에서 양키스의 성적은 41승 18패(.695), 이 기간 동안 그보다 팀에 많은 승리를 가져다 준 투수는 43승 20패(.683)의 요한 산타나밖에 없으며, 승률에선 오히려 왕첸밍이 앞선다. 그는 누구보다 확실한 에이스 카드다.


단 한 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실력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올 시즌도 위기에 빠진 양키스를 구한 건 ‘2800만 달러의 아르바이트 맨’ 로져 클레멘스가 아니라 연봉이 50만 달러도 채 되지 않는 왕첸밍이었다.


그가 만약 이대로 다승왕에 오른다면, 양키스 선수로서 2년 연속 다승왕에 오른 최초의 선수가 된다.



▷ 세 명의 스승

마이너 시절 어깨 부상으로 투구 스타일을 바꾸어야만 했던 왕첸밍은 싱커볼 투수로 다시 태어났다. 94마일까지 나오는 그의 싱킹 패스트 볼은 이미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제 2,3의 구질인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도 빅리그에서 충분히 통할만한 수준으로 닦아놓았다.


게다가 그에게는 또 하나의 행운이 있었다. 지난 수십 년간 이 세 가지 구질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던 세 명의 선수와 함께 선수 생활을 하는 감격을 맛봤던 것이다.


선수생활의 마지막 2년을 양키스에서 뛰며 2005년 왕첸밍과 함께 뛰었던 싱킹 패스트 볼의 1인자 케빈 브라운,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양키스에 몸담았던 슬라이더의 제왕 랜디 존슨, 스플리터로 빅리그 역사에 너무나도 확실한 한 획을 그은 로져 클레멘스까지 올해 합류했다.

 

849승을 합작한 이 세 명의 위대한 투수들과 함께 선수 생활을 하며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큰 재산이다. 특히 자신이 주무기로 삼고 있는 구질을 극한까지 연마한 이들의 투구하는 모습은 살아있는 교과서나 마찬가지였을 것.


거기다 마이크 무시나와 앤디 페티트라는 좋은 선배들에게도 배울 점이 넘처난다. 왕첸밍이 마이너리그 시절보다 오히려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뒤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데에는 이러한 면도 작용했을 것이 틀림없다.


어쩌면 양키스라는 팀에 몸담아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행운은 팀 타선의 도움이 아니라, 전설적인 선수들과의 교류, 그리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간접경험과 깨달음이 아닐까. 그러한 면에서 왕첸밍은 진정한 행운아이다.



▷ 부상을 이겨라

사실대로 말하자면 필자는 작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왕첸밍이라는 투수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인 입장이었다. 아니, 올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부상에 대한 위험 때문이다.


2000년 87이닝, 2001년 부상, 2002년 78이닝, 2003년 125이닝, 2004년 149이닝 그리고 2005년 150이닝. 2001년 어깨 부상을 당한 후 그는 끊임없이 부상과 재활을 반복했다. 150이닝을 던진 것이 2005년이 처음이었을 정도며, 그 해도 어깨 통증으로 인해 7월 중순 부터 2달 가까이 결장했다.


부상을 달고 다닌 다는 의미의 ‘인저리 프론(Injury-prone)’이라 불릴만한 선수였던 것이다. 사실 작년 왕첸밍의 19승 이상으로 놀라웠던 것이 그의 200이닝 투구(218이닝)였다. 그리고 그러한 무리는 올 시즌 데드 암 증상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며, 실제로 그는 어깨는 아니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올 시즌도 ‘부상자 명단’에서 시작했다.


아직도 왕첸밍은 부상의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케빈 브라운이 그러했듯이 90마일 대 중반의 싱커볼은 어깨와 팔꿈치에 상당한 무리를 동반한다. 꾸준한 관리와 지속적인 노력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언제 또다시 부상의 늪에 빠져 신음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미 언론은 일본 출신의 마쓰자카와 함께 대만 출신인 동갑내기의 왕첸밍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 엎치락뒤치락 하던 둘의 승수 쌓기 경쟁은 마쓰자카가 13승에 묶여 있는 동안(현재 14승) 연승을 달리며 치고 나간 왕첸밍의 승리로 끝이 날 전망이다.


아직 단 한 번도 맞대결한 적은 없지만, 혹시나 두 팀이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에서 맞붙어 두 명이 맞대결을 펼치게 된다면 엄청난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꼭 포스트 시즌이 아니라 내년이라도 둘의 맞대결은 최고의 흥행카드로 평가받을 것이 분명하다.


이미 스타가 될 조건은 모두 갖춰진 상황이다. 이제 남은 것은 부상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 에이스로서 확실히 자리매김 하는 것뿐이다.


올 시즌 보스턴 전에 4번 등판해 3승을 거두면서 팬들의 사랑도 듬뿍 받고 있는 왕첸밍이 부상을 이기고, 자신을 따라다니는 행운의 끈을 확실히 붙잡아 ‘양키스의 에이스’에서 ‘메이저리그의 에이스’로 거듭날 수 있을지, 최고 인기 팀의 최고 투수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머나먼 한국 땅의 팬들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