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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지금은 장타력 있는 1번 타자의 시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9. 7.


야구의 전략과 전술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며, 그에 따라 타자들의 역할도 변화해왔다. 그것은 각 타순별로 타자들이 맡게 되는 임무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타순은, 공격의 첨병 역할을 하는 1번과 클린업 트리오라 불리는 3,4,5번이었다. ‘1번이 나가고 2번이 보내고 3~5번이 불러들인다.’ 라는 것은 한국와 일본 야구에서는 거의 정설처럼 통한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러한 점이 그대로 적용될까? 현재의 추세로 보자면 ‘NO'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우선 이번 칼럼에서는 1번 타자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 리키 핸더슨과 크렉 비지오의 등장


1960년대 중반 이후로 70년대와 80년대까지는 타자들이 투수들에게 기를 펴지 못하던 시기였다. 마치 지금의 한국 야구처럼 홈런이 적게 나왔던 시기였고, 이 당시 1번 타자의 미덕은 어디까지나 안타 등으로 인한 출루와 도루였다.


하지만 70년대 말, 역대 최고의 1번 타자라 할 수 있는 한 선수가 등장한다. 그 이름은 리키 핸더슨, 40세가 넘어서도 선수 생활을 끈질기게 어어 온 덕분에 통산 타율(.279) 등에서 많은 하락이 있었지만 그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1번 타자였다.


통산 2295득점과 1406도루는 역대 1위의 기록이며, 2190개라는 1번 타자답지 않은 어마어마한 볼넷은 배리 본즈(2553개)에 이어 역대 2위에 올라있다. 3000안타(3055개)를 달성한 선수이며 그 중 10%가량인 297개를 홈런으로 장식한 선수다.


정교한 타격과 뛰어난 선구안 그리고 빠른 발을 모두 갖춘 핸더슨은 그 자체만으로도 최고의 1번 타자로 평가받았지만 그는 86년 28홈런(리그 6위)을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로, 연평균 16개의 홈런을 쳐주는 장타력도 겸비한 선수였다.

 

이러한 핸더슨의 뒤를 이은 선수가 크렉 비지오(휴스턴 에스트로스)다. 마찬가지로 3000안타(3046개)를 달성한 비지오는 빠른 발(통산 414도루) 못지 않은 장타력을 갖춘 선수다. 20홈런 시즌이 무려 8번이나 될 정도로 뛰어난 장타력을 과시했으며 매년 60개 이상의 장타를 터뜨리며 킬러-B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역대 최고이며 80년대 최고의 1번 타자였던 리키 핸더슨과, 90년대 최고였던 크렉 비지오, 이 두 사람으로 인해 1번 타자에 대한 시각이 많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들은 출루해서 득점하는 선수임에 동시에 앞선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역할도 함께 병행했던 선수다.


매년 100득점 이상을 기록할 뿐만 아니라, 타점도 70개 이상을 꼬박꼬박 기록했다. 이들은 단순히 하위타선과 중심타선을 이어주는 교량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팀 타격의 중추이자 핵심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의 타격을 갖춘 선수라면 3번 타순에 배치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들은 계속해서 리드오프로 남았고, 그에 따라 1번 타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진다.



▷ 브래디 앤더슨의 50홈런


90년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1번 타자 역할을 도맡아했던 브래디 앤더슨은 1996년 시즌 50홈런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한 대형 사고를 친다. 데뷔 후 8년 동안 73개의 홈런에 그치며 장타력보다는 빠른 발을 이용해 1번 타자의 역할을 수행하던 선수가 어느 날 갑자기 일으킨 사건이었다.


당시 50홈런은 단일 시즌 기록으로 역대 19위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기록이었으며, 마크 맥과이어(52홈런)에 이은 메이저리그 전체 2위의 기록이었다. 부상 없이 풀 시즌을 뛰어야 100득점을 겨우 넘기곤 했던 앤더슨은 그 해 37개의 2루타까지 곁들이며 117득점 110타점 21도루 .297/.396/.637의 화려한 성적을 남겼다.


앤더슨의 개인 성적만 좋아진 것이 아니었다. 팀 득점은 전년도(4.89)에 비해서 1점 가까이 상승한 5.82까지 치솟았고, 볼티보어는 앤더슨을 비롯해 라파엘 팔메이로(39홈런 142타점), 로베르토 알로마(22홈런 132득점), 칼 립켄 주니어(26홈런 102타점), 바비 보니야(28홈런 116타점) 등을 앞세워 와일드카드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다.


리그 최하위권에 불과한 팀 도루(76개-12위)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홈런 파워(257홈런-1위)만으로 이루어낸 결과였다. 앤더슨이 경기 시작과 동시에 상대 투수를 철저하게 망가뜨려준 덕분이었다.


이미 빌 제임스를 비롯한 세이버 매트리션들의 활약으로 도루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적으며 홈런과 볼넷이 중요하다는 논리가 빅리그에 스며들고 있었고, 빌리 빈(오클랜드 단장)처럼 그것을 팀 운영에 적용하는 관계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본격적으로 1번 타자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30홈런을 밥 먹듯이 때려대는 알폰소 소리아노(시카고 컵스)가 등장했고, 그는 리키 핸더슨으로부터 시작해 비지오와 앤더슨을 거치며 논란의 대상이 되 1번 타자의 역할에 대해 확인 도장을 찍어버린다.



▷ 지금은 장타력 있는 1번 타자의 시대


지난 해 메이저리그 최고의 1번 타자로 꼽힌 선수는 아메리칸 리그는 그래디 시즈모어(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내셔널 리그는 호세 레예스(뉴욕 메츠)다.


53개의 2루타(1위)와 11개의 3루타, 여기에 28홈런과 22도루까지 곁들인 시즈모어는 134득점(1위) 76타점을 기록하며 MVP급 활약을 했다. 92개의 장타는 리그 최다였으며 .290/.375/.533의 배팅 라인도 환상적이었고 볼넷도 78개나 골라냈다.


레예스도 만만치 않았다. 양리그를 통틀어 1위에 오른 도루(64개)만이 아니라 30개의 2루타와 17개의 3루타 그리고 19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도 돋보였다. 122득점 81타점을 기록한 레예스는 .300/.354/.487의 비율 스탯을 자랑하며 MVP투표에서도 7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이들이야 말로 새 시대에 걸 맞는 이상적인 1번 타자라며 추켜세웠고, 이러한 경향은 올해 들어 더욱 두드러진다.

(G:경기수, R:득점, H:안타, 2B:2루타, 3B:3루타, HR:홈런, RBI:타점, BB:볼넷, SB:도루, CS:도루자, AVG:타율, OBP:출루율, SLG:장타율)


위의 표는 올 시즌 주요 리드오프 타자들의 성적이다. 위의 그룹은 장타력을 겸비한 선수들이고, 아래쪽은 전통적인 시각에 걸 맞는 1번 타자들이라 할 수 있다.


내셔널리그의 신(新) 유격수 3인방이라 칭해도 될 만한 지미 롤린스(필라델피아 필리스), 핸리 라미레즈(플로리다 마린스), 호세 레예스의 올시즌 활약은 MVP를 줘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지난해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시즈모어와 칼 크로포드(템파베이 데블레이스)의 활약 역시 눈에 띤다.


사상 최초로 30더블-20트리플-20홈런-20도루 동시 달성을 노리는 커티스 그랜더슨(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등장은 작년 시즈모어 만큼이나 놀라우며,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결장했지만 소리아노는 역시나 훌륭한 타자임을 알 수 있다.


크리스 영(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은 1번 타자임에도 불구하고 팀 내 홈런 1위이고, 팀 사정에 따라 1번 타순에 배치되고 있는 버논 웰스(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브라이언 자일스(샌디에이고 파드레스)는 변화된 타순에서 성공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거포출신 타자다(이 둘의 성적은 1번 타자로 나왔을 때의 성적만 나타냈다).

 
아래 그룹의 선수들도 꽤나 성적이 좋다. 하지만 이치로를 제외하면 위의 그룹의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조금 모자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 숫자 자체가 부족하다. 현재 1번 타자의 역할이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를 잘 알려준다 할 수 있다.


‘뛰어난 1번 타자가 팀을 강하게 만든다’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강한 팀이 되기 위해선 좋은 1번 타자가 필요하다’ 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위의 그룹이건 아래의 그룹이건 이들이 속한 팀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기는 시즌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추세와 시대의 흐름은 장타력이 있는 1번 타자를 선호하고 있고, 그러한 선수를 보유한 팀이 그렇지 못한 팀에 비해 좋은 타력을 보유한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야구의 흐름이 또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당분간은(어쩌면 계속해서)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