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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AL의 숨막히는 다승왕, 피말리는 사이영상 레이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9. 10.


17승으로 아메리칸리그 다승 부문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던 자쉬 베켓(보스턴 레드삭스)과 왕첸밍(뉴욕 양키스)이 같은 날 동시 출격해서 나란히 18승에 성공했다. 이에 질세라 잠시 주춤했던 요한 산타나도 10개의 삼진을 추가하며 15승을 달성함과 동시에 방어율 1위 댄 하렌(3.03)에게 0.06차이로 접근해 타이틀 탈환을 목전에 뒀다.


시즌 종료가 3주 정도 남은 시점에서 아메리칸 리그의 각 부문 투수 타이틀의 주인공이 될 만한 선수들을 한번 살펴보고 덧붙여 사이영상 레이스도 잠시 돌아보려고 한다.



▷ 다승 부문 - 15일 베켓 VS 왕첸밍 진검승부


올 시즌 다승왕 레이스는 중반으로 접어든 이래 계속해서 C.C. 싸바시아(17승 7패), 존 랙키(16승 8패) 그리고 자쉬 베켓(18승 6패)이 이끌어왔다. 하지만 랙키가 최근 5경기에서 1승에 그치며 잠시 주춤한 사이 왕첸밍이 5연승을 달리며 베켓과 함께 공동 선두로 치고 올라간 상태.

 
올 시즌을 부상자 명단에서 시작하는 바람에 4월에 승 없이 2패만을 안고 시작했던 왕첸밍이기에 지금의 공동 다승 1위는 더더욱 놀랍다. 5월 이후로만 18승 4패(방어율 3.53)를 기록 중이며 지금 같은 페이스가 계속 이어진다면 다승왕 1순위라 할 수 있다.


최근 6경기에서 5승을 거둔 켈빔 에스코바(16승 7패)와 저스틴 벌렌더(16승 5패)도 가능성이 있지만 남은 경기가 4경기 정도인 것을 감안했을 때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으며, 이러한 점은 랙키를 비롯한 16승 투수 4명(나머지 한명은 팀 웨이크필드) 모두에게 적용된다.


베켓과 왕첸밍, 3위인 싸바시아까지 소속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이 유력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들이 디비즌 시리즈 1선발로 등판하게 될 확률이 높기에 남은 등판은 3경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대되는 하이라이트가 기다리고 있다. 현지시간으로 14일부터 레드삭스와 양키스는 시즌 마지막 3연전을 치른다. 양팀 모두 휴식일이 끼어있고, 두 투수를 5일 로테이션이 아닌 5인 로테이션으로 기용하고 있는 터라 베켓과 왕첸밍은 15일 경기에서 맞대결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진검승부에서 승리하는 선수가 단독 다승왕에 오를 가능성이 크고, 만약 두 선수 모두 난타 당하는 등 승패 없이 물러난다면 싸바시아에게도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방어율 부문 - 추락하는 하렌과 산타나의 반격


올 시즌 내내 아메리칸 리그 방어율 1위를 지켜온 댄 하렌, 처음 두 경기를 1자책만 허용하고도(6실점 5비자책) 2연패로 시즌을 시작하는 불운을 겪었지만 방어율만큼은 양 리그를 통틀어서 1위를 지키고 있었다. 25번이나 되는 가장 많은 퀄리티 스타트(2위는 23번의 싸바시아)를 기록한 선수도 바로 하렌이다.
 

하지만 지난 6월 9일 경기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방어율을 1.58로 끌어내린 하렌은 그 뒤 등판한 16경기에서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매번 방어율이 올라갔다. 6월말 1.91이었던 방어율이 7월말에는 2.44 8월말 2.72를 거쳐 지금은 3.03으로 마침내 3점대로 진입하고 말았다. 3개월 만에 방어율이 두 배 가까이 상승한 셈.


여전히 리그 방어율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최근 4번의 등판에서 3번이나 퀄리티 스타트를 실패하는 등 3연패로 페이스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1위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켈빔 에스코바(3.04)와 요한 산타나(3.09)에게 역전을 허용할 가능성이 크다.


로져 클레멘스 못지않은 위력적인 스플리터로 메이저리그의 엘리트 투수로 자리매김한 에스코바는 올 시즌 체인지업의 비중을 높이며 더 뛰어난 투수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8월 중순 2.68까지 내려갔던 방어율이 최근 2번의 등판에서 8.1이닝 8실점하며 3점대로 올라갔고, 단 한번도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적이 없는 선수이기에 조금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최근 싸바시아와의 연이은 맞대결에서 무릎을 꿇으며 체면을 구기고 말았지만 이번 화이트삭스와의 경기에서의 산타나는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뽐냈다. 처참하게 당한 인디언스 전(0승 5패 4.38)만 제외하면 2.78의 방어율을 기록 중이기에, 더 이상 클리블랜드를 상대할 필요가 없는 산타나의 방어율이 2점대로 내려갈 것은 시간문제.


한 경기만 난타를 당하더라도 판도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는 방어율 부문이기에 싸바시아(3.15)나 랙키(3.18) 등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현재로선 지난 3년 연속으로 2점대 방어율을 기록했던 메이저리그 유일의 선수이며, 4년 연속도 충분히 노릴만한 산타나의 3번째 1위(2년 연속)가 유력해 보인다.



▷ 탈삼진 - 산타나의 어부지리


올 시즌 메이저리그 탈삼진 레이스를 주도한 선수는 단연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에릭 베다드(13승 5패 3.16)다. 28경기에 출전해 182이닝을 던지는 동안 잡은 탈삼진은 무려 221개. 양에서는 물론이고 9이닝 당 탈삼진(10.93개)에서도 내셔널리그 1위인 제이크 피비(10.02)를 제치고 빅리그 전체 1위를 질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년부터 피칭에 눈을 뜨기 시작해, ‘투수 코치계의 마이더스 손’ 레오 마조니 코치와 함께 한 올해 완전히 그 기량이 만개한 베다드는 오른쪽 복사근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결국 그는 9이닝당 탈삼진 1위에 만족해야 할 처지.


베다드의 부상 덕분에 지난 시즌까지 3년 연속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했던 요한 산타나(213개)는 4연패에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9개만 더 추가하면 베다드를 제치고 1위로 올라가 놀란 라이언(1976~79, 1987~90), 랜디 존슨(1992~95, 1999~2002) 등과  탈삼진 4연패를 달성한 선수로 이름을 남기게 될 전망이다.


견제할 만한 대항마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99개로 3위를 달리고 있는 템파베이 데블레이스의 스캇 카즈미어도 무시할 수 없다. 9이닝 당 탈삼진(9.80)에서는 오히려 산타나(9.42)를 앞서고 있는 상황이며, 남는 일정상 산타나의 등판이 3번일 가능성이 큰 반면, 카즈미어는 4번을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그 4번의 등판 중 두 번이 보스턴 전이고, 나머지 두 번의 등판에서도 뉴욕 양키스와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 아쉽다. 후반기 탈삼진 페이스(산타나 80이닝 88개, 카즈미어 70이닝 84개)에서 산타나를 압도하고 있는 만큼 남은 등판에서 힘을 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산타나의 차지가 될 확률이 좀 더 높아 보인다.



▷ 사이영상 레이스 - 그야말로 오리무중


어부지리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현재의 페이스대로라면 요한 산타나가 방어율-탈삼진 부문에서 2관왕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탈삼진이 사이영상 수상에서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다.


다승-방어율이 똑같은 두 투수 A, B를 두고 탈삼진이 더 많다는 이유로 A가 더 좋은 피칭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B가 탈삼진이 적은만큼 투구 수를 절약해 더 많은 투구 이닝을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산타나가 투수 3관왕의 지표 중 2개 부문에서 1위를 한다고 해서 사이영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최근의 사이영상 구도를 보노라면 여전히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승과 방어율,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투구 이닝과 휩(이닝당 안타+볼넷 허용개수) 등이 비교적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현재 아메리칸 리그의 유력한 사이영상 후보는 베켓, 싸바시아 그리고 산타나 이렇게 3명으로 좁힐 수 있다.


 


다승은 베켓이, 투구 이닝은 싸바시아가, 나머지 스탯은 대부분 산타나가 앞서고 있다. 베켓은 전체적인 균형에서 뛰어나다는 점이 돋보이고, 싸바시아는 많은 이닝을 책임지며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산타나 역시 다승을 제외하고는 꿀릴 것이 없는 상태.


산타나는 남은 3경기를 전승으로 장식해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18승을 채우고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한다면 모를까 한 경기라도 삐끗하면 3번째 수상은 물 건너 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비해 싸바시아는 다승에서 베켓과 동률을 이룬다면 게일로드 페리(1972년 24승 1.92)이후 35년 만에 팀에 사이영상을 가져다 줄 수 있을 전망.
 

결국 가장 큰 변수는 다승왕 두 명의 맞대결인 15일 보스턴 VS 양키스 전이 될 전망이다. 엉뚱하게도 약간은 부족한 방어율(3.69)로 인해 사이영상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왕첸밍이 키를 쥐고 있는 재밌는 형국이다. 이 승부만 승리로 장식해 다승 단독 1위를 지킨다면 베켓은 영광의 사이영상 위너가 될 수 있다.


과연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 양키스와 레드삭스의 시즌 마지막 자존심 대결은 의외의 요소가 있어 더욱 재미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