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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박찬호가 양키스에 있었다면 20승??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0. 13.
마쓰자카나 왕첸밍에 관한 칼럼이나 기사를 쓰면 항상 고정적으로 달리는 리플이 있습니다.


“왕첸밍(또는 마쓰자카)는 타선이 좋아서 승이 많을 뿐이다. 박찬호가 전성기 때 양키스(또는 보스턴)에 있었다면 25승은 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런 의미 없는 가정에 불과하지만, 타선이 좋은 팀에 있었다면 20승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 꽤나 많아 보이더군요.


알고 계신 것처럼 박찬호는 2000년과 2001년에 걸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아래 표는 그 2년간 박찬호의 성적입니다.


Year

G

W

L

CG

SH

IP

H

BB

K

ERA

WHIP

00

34

18

10

3

1

226.0

173

124

217

3.27

1.31

01

35

15

11

2

1

234.0

183

91

218

3.50

1.17


많은 분들이 ‘박찬호 20승 가능설’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다져스 타자들의 빈약한 득점 지원’인데요.


2000년 당시 다저스 타선은 경기당 평균 4.93득점으로 다저스타디움 개장 이후로 2번째로 높은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211홈런은 프랜차이즈 기록이고 말이죠.


팀 전체 조정 OPS도 107을 기록하면서 리그 전체 평균보다 7%좋은 타격을 과시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001년에도 마찬가지로 107의 조정 OPS를 기록했죠.


내셔널 리그 3-4위권에 해당하는 수치이자 메이저리그 전체로 봐도 7-8위권에 올라있었습니다. 사실 그 2년 동안의 타선은 다저스 프랜차이스 사상 손에 꼽힐 정도로 강타선을 자랑했던 기간이었습니다.(놀랍죠?^^;)


물론 2001년 같은 경우는 승패 없이 물러난 10경기에서의 방어율이 2.90일 정도로 승운이 안 따라 주기는 했죠. 방어율도 어이없는 구원등판 때문에 치솟은 경향이 좀 있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타선이 약해서 20승을 못했다’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어 보이네요. 그 2년간 20승 투수는 8명,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선수도 8명이죠. 2점대를 기록하지 못한 박찬호가 20승을 한다면 다른 3점대 방어율의 20승 투수들처럼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소릴 들을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투수가 자신의 힘으로 넘볼 수 있는 최다승은 18승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이상의 승수를 쌓기 위해선 “평균 이상의 타선지원+평균 이상의 구원투수진”이 갖춰져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20승을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18승이라면 2000년의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결코 부족한 승수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어율 7위가 다승에선 5위를 했으니 손해라고 할 순 없지 않겠어요?


2001년 같은 경우는 많이 아쉽긴 하지만, 그 전년도에 2.35의 방어율로 13승에 그친 팀 동료 케빈 브라운을 보며 위로할 수밖에요-.-;;(물론 이 해는 좀 손해를 봤습니다. 17~18승 정도는 했어야 했죠)


다저스 타선은 원정 경기와 홈경기에서의 평균 득점이 1점 넘게 차이가 납니다. 반대로 투수들은 홈에서 1점 가까운 이득을 보구요. 다저스타디움의 위력이죠.


다저스에 1990년 이후로 20승 투수가 나오지 않는 것도 홈경기에서는 투수들이 잘 던지지만 타자들이 못치고, 원정에서는 타자들이 잘 치지만 투수들이 못 던지는 부조화가 계속해서 반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과연 박찬호가 타격이 좀 더 좋은 다른 팀에 있었다면 20승 투수가 될 수 있었을까요?


‘동일한 방어율을 기록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서는 그 확률이 꽤나 높아지겠지만, 홈(2.34-2.36)과 원정경기(4.29-4.83) 방어율 차이가 꽤나 컸던 선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가정은 통하지 않는다고 봐야겠죠.


아무래도 정말 팀을 잘 만났다면 2년 연속 20승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팀에서는 16~18승 정도에서 머무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 것보다, 왜 굳이 20승에 집착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네요. 또, 왕첸밍과 마쓰자카의 기사만 나오면 박찬호의 전성기를 언급해서 그의 우수성을 증명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말이죠.


위의 성적을 다시 한 번 보시죠.


저 2년 동안의 평균 성적으로 그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선수는 랜디 존슨, 커트 쉴링, 그렉 매덕스, 탐 글래빈 이렇게 4명이 전부였습니다.(페드로 마르티네즈와 케빈 브라운은 2001년 부상으로 시즌 절반을 날렸기 때문에 제외)


그 외에는 그 누구도 박찬호보다 위라고 말할 수 없었죠. 정말 엄밀하게 랭킹을 매긴다 하더라도 대럴 카일, 팀 허드슨 등과 5위를 다툴 수 있을 정도의 성적입니다. 결과야 어찌되었건 5년간 6500만 불을 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죠.(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뒤의 5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겠지만요)


왕첸밍이 2년 연속 19승을 거뒀다고 해서 박찬호의 저 2년 보다 뛰어났다고 평가하긴 어렵습니다. 승과 방어율만 중요한 것이 아니죠. 물론 리그가 다른 만큼 절대 비교의 대상은 아니지만 투구 이닝과 탈삼진에서 왕첸밍은 박찬호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타자에게 극단적으로 유리한 양키스타디움을 홈으로 사용하면서 2년 연속으로 3점대 방어율에 19승을 기록한 우완 투수를 무시할 필요도 없죠. 왜 왕첸밍의 기사가 나올 때마다 박찬호를 끌어들여야만 하나요?


이제 그만 과거의 박찬호를 놓아주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전성기 시절의 박찬호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며 왕첸밍과 마쓰자카와의 비교에서 우위를 주장하려는 사람이나, 고액 연봉을 받던 시절에 연봉 값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그를 무조건 비난하는 사람이나, 공통점이 하나 있죠.


두 부류 모두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당장의 결과와는 관계없이) 열심히 노력하는 ‘지금 현재의 박찬호’를 보고 있지 않더군요. 한쪽은 과거의 영광만을, 다른 한쪽은 너무 부정적인 면만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박찬호의 팬’이라고 불릴 자격은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팬들이 현재 그의 모습은 뒤로 한 채 과거의 영광만 쫒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네요. 이젠 현재의 박찬호를 응원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전성기에 대한 추억은 그가 은퇴한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현재의 위치보다는 위를 바라보는 현역이고, 국가 대표에 뽑아주기만 한다면 한 몸 불태워서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34살의 노장 선수입니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