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줄다리기 끝에 미겔 카브레라의 행선지가 결정 되었다. 놀랍게도 그를 데려가는 팀은 숱한 루머를 뿌렸던 4개 팀(양키스, 레드삭스, 에인절스, 다저스)이 아닌 복병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다.
각각 투-타에서 팀내 최고의 유망주인 앤드류 밀러와 카메론 메이빈을 포함한 6명의 유망주를 내어주는 초대형 트레이드다. 다른 팀들이 카브레라 한 명을 놓고 고심하며 자기네 유망주와 저울질 하고 있을 때, 타이거스는 과감한 결단으로 퍼줄 수 있는 만큼 퍼주고 에이스급(?) 투수인 돈트렐 윌리스까지 한꺼번에 데리고 왔다.
이미 유격수 에드가 렌테리아를 영입했던 디트로이트는 이번 트레이드를 통해 지구 라이벌인 클리블랜드를 넘어, 레드삭스나 양키스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양키스에 비하면 오히려 한 수 위인) 전력을 구축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까지 요한 산타나의 거취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사실상 타이거스의 전력을 보스턴과 더불어 빅리그 최강으로 평가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산타나를 얻는 팀은 어떻게든지 ‘즉시 전력감’의 선수들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유망주는 잃었을지언정 당장의 전력 누수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팀 타선은 양키스 이상으로 강해졌고, 선발진은 한층 두터워졌다. 1번 커티스 그랜더슨, 2번 플라시도 플란코, 3번 미겔 카브레라, 4번 매글리오 오도네즈, 5번 게리 셰필드, 6번 카를로스 기옌, 7번 에드가 렌테리아, 8번 이반 로드리게스 로 이어지는 그들의 타선은 공포 그 자체다.
최근 몇 년간의 FA 시장이나 트레이드 상황을 보면 한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번의 카브레라 트레이드나 산타나와 관련된 루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특급 선수들의 행방은 대부분 아메리칸 리그의 팀으로 결정지어 진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아메리칸 리그의 특급 선수들은 리그를 떠나기 싫어하게 되었고, 내셔널 리그의 스타플레이어들도 아메리칸 리그로 옮기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타자들의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 90년대 후반 : 내셔널 리그를 향해 Go~!
1990년대 말 메이저리그 관계자들과 팬들에게는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아메리칸 리그를 주름잡는 스타급 플레이어들이 계속해서 내셔널 리그로 그 발걸음을 옮겼기 때문이다.
1998년 시즌 중반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를 주름잡던 랜디 존슨이 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었고 시즌이 종료되자 거액(4년 5340만)을 받으며 애리조나행을 택했다. 그보다 2년 먼저 내셔널 리그로 건너왔던 케빈 브라운도 아메리칸 리그 팀들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더 큰 금액(7년 1억 500만)을 제시한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1997년 중반에는 ‘홈런왕’ 마크 맥과이어가 세인트루이스로 트레이드 된 후 그곳에 눌러 앉았고, 99년 11월에는 매니 라미레즈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리그 최고의 우익수 자리를 다투던 션 그린(6년 8400만)도 다저스로 오게 되면서 리그를 옮긴다. 비슷한 시기에 짐 에드먼즈, 브라이언 자일스, 루이스 곤잘래스 등의 좋은 선수들이 계속해서 내셔널 리그로 건너왔다.
이러한 리그 간의 이동은 2000년 2월에는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였던 켄 그리피 주니어까지 신시네티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면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물론 반대로 아메리칸 리그로 이적한 선수도 있었으나, 선수의 면면을 비교해 살펴봤을 때,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상대적으로 아메리칸 리그보다 내셔널 리그 팀을 소유한 구단주(대표적으로 다저스를 인수했던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들이 투자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투자는 양 리그의 불균형에서 시작되었다. 딱히 아메리칸 리그가 전력상 위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91년 이후 10번의 월드시리즈에서 아메리칸 리그가 7번이나 우승했었다. 그 이전의 10년 동안 5번씩 사이좋게 우승을 나눠가졌던 양 리그의 균형이 깨진 것이었고, 가장 큰 원인은 96년 이후 4번의 월드시리즈를 재패한 뉴욕 양키스였다.
▷ 21세기의 개막 - 이제는 아메리칸 리그로~
하지만 이러한 내셔널 리그로의 이동은 언젠가부터 그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기 시작했다. LA 다저스와 뉴욕 메츠가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영입하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으나, 결국 그는 텍사스와 계약하며 아메리칸 리그에 잔류했다. 매니 라미레즈와 마이크 무시나도 마찬가지였으며 박찬호도 2001시즌 종료와 함께 아메리칸 리그로 둥지를 옮겼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2003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획득했던 블라드미르 게레로와 게리 셰필드가 각각 에인절스와 양키스로 유니폼을 바꿔 입음으로써 더욱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새미 소사, 짐 토미, 바비 에브레유, 리치 섹슨, 에드리언 벨트레, 마이크 로웰, J.D. 드류 등의 거물급 선수들이 연이어서 트레이드 또는 FA 계약을 통해 아메리칸 리그로 옮겨갔다.
투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2004시즌부터 케빈 브라운과 커트 쉴링이 각각 양키스와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고 등판하게 되었으며, 2005년에는 랜디 존슨마저 양키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선수 팔기의 선봉에 서있었던 플로리다 출신의 A.J. 버넷과 자쉬 베켓도 각각 토론토와 보스턴 선수로 맹활약하고 있다.
물론 이 흐름에도 예외는 존재한다. 지난 3년에 걸쳐 한때 ‘오클랜드의 영건 3인방’ 이라 불렸던 팀 허드슨-마크 멀더-배리 지토가 모조리 내셔널 리그로 거취를 정했다. 알폰소 소리아노도 워싱턴을 거처 시카고 컵스에 둥지를 틀었으며 카를로스 벨트란도 뉴욕 메츠에 안착한 것처럼 내셔널 리그도 선수 영입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의 미겔 카브레라와 돈트렐 윌리스의 트레이드나 토리 헌터의 FA 영입 건에서 볼 수 있듯이, 아메리칸 리그 팀들이 스타급 선수들의 영입에 있어 더더욱 적극적이며, 선수들 역시 내셔널 리그보다는 아메리칸 리그를 선호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요한 산타나를 데려갈 팀도 아메리칸 리그 팀일 것이 거의 확실하다.
▷ 내년 시즌도 아메리칸 리그 천하?
사람의 평가하는 이상 ‘순수하게 객관적인 관점’은 존재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주관적인 요소를 배재하고 바라보자면, 현재 내셔널 리그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견줄 수 있는 팀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로서는 뉴욕 양키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LA 에인절스를 넘기도 힘든 상황이다.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예년의 기량을 회복하여 강력한 에이스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뉴욕 메츠 정도가 그나마 아메리칸 리그의 강호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겠으나, 그 외의 팀들은 감히 명함을 내밀기 조차 민망한 형편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저 5개 팀 중에서 산타나를 잡는 팀이 있을 것이고, 최근 트레이드 시장에 나온 오클랜드의 에이스 댄 해런(15승 9패 3.07)의 거취도 산타나를 놓친 팀들이 마음먹고 달려든다면 내셔널 리그에서 데려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팀 페이롤(선수단 연봉) 상위 10위권에 올라 있는 내셔널 리그 팀은 겨우 셋에 불과하며, 그 중 올시즌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한 팀은 시카고 컵스(나머지 둘은 뉴욕 메츠와 LA 다저스) 뿐이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도 내셔널 리그 팀들은 FA 선수들에게 외면당한 채 빅리그의 문을 두드리는 일본 선수들 영입에나 관심을 쏟고 있는 형편이다.
단기전인 월드시리즈나 올스타전이 양 리그의 수준차를 가늠하게 해주는 지표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승부로 끝난 2002년을 제외한 최근 10번의 올스타전을 모조리 아메리칸 리그가 승리했다는 점과, 지난 12년 동안 내셔널 리그가 월드시리즈를 차지한 것이 4번에 불과하다는 점은 분명 간과하기 힘든 요소다.
이미 월드시리즈가 끝나자마자 당분간은 보스턴 레드삭스를 꺾을 팀이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 상황에서, 아메리칸 리그 팀들은 점점 전력을 상승시키고 있고, 내셔널 리그에서는 뚜렷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이 이어질 경우, 한때 NBA에서 나타났던 ‘서고동저(서부 컨퍼런스가 동부 컨퍼런스에 비해 월등한 승률을 기록하는 것)’ 현상처럼 리그 간의 불균형이 심화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어쩌면 이미 충분히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과연 2008년 내셔널 리그의 반격은 가능할까.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기에는 아메리칸 리그로 부든 바람이 너무나도 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