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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에이로드도 스테로이드를? (maybe) NO!

by 카이져 김홍석 2007. 12. 20.

결국 메이저리그에 거대한 핵폭탄이 떨어졌다.


다름 아닌 ‘미첼 보고서’, 메이저리그의 약물 관련 의혹을 조사하고 있는 미첼 위원장이 발표한 스테로이드 또는 성장 호르몬제를 구입하거나 복용한 선수들의 실명이 거론되어 있는 리포트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배리 본즈와 제이슨 지암비, 후안 곤잘레스, 호세 칸세코 등을 비롯해 의구심이 들었지만 확신하지는 못했던 선수들의 이름도 대거 포함되어 있다. 총 409페이지나 되는 이 보고서에는 로져 클레멘스를 비롯해 케빈 브라운, 앤디 페티트, 데이빗 저스티스, 에릭 가니에 등의 선수들이 포함되어 팬들에게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보고서를 보고 안심했다. 적어도 현재 메이저리그를 떠받들고 있다고 생각되는 극소수의 선수들의 이름은 빠져있었기 때문.


타자 중엔 알렉스 로드리게스, 매니 라미레즈, 블라드미르 게레로, 알버트 푸홀스 등의 이름은 보고서에 올라 있지 않다. 투수들 중에도 그렉 매덕스와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비롯해 요한 산타나, 제이크 피비, 자쉬 베켓, 탐 글래빈, 존 스몰츠, 브랜든 웹 등의 이름은 찾을 수가 없다.


만약 이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더라면 정말로 큰 파장을 몰고 왔을 것이나, 현재 밝혀진 수준에서는 메이저리그가 살아날 수 있는 구멍은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언론에서는 ‘순도 100%의 충격’인양 보도하고 있지만, 실제 저 명단에 올라 있는 80여명의 선수들 중 대부분은(극소수는 제외) 이미 스테로이드와 관련된 의혹 섞인 시선을 한번쯤은 받은 적이 있다. 로저 클레멘스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미첼 보고서에 올라 있는 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접한 선수들의 전부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적어도 3분의 1가량이 한 번 이상은 약물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 명단에 오른 선수들은 그 중 소수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이번이 ‘첫 번째’ 보고서일 가능성이 크며, 앞으로 2차, 3차 보고서가 나올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다. 의혹을 받고 있는 수많은 선수들 중 증거가 포착된 선수들만을 1차적으로 보고했을 뿐, 아직도 조사는 진행 중이며 그로 인해 훨씬 더 많은 선수들이 파동에 휘말릴 것이다.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소위 ‘스테로이드 전도사’라 불리는 꼴 보기 싫은 인간이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선수 시절에는 쾌남으로 유명하던 그가 은퇴 이후 약물 파동과 관련해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나도 추할뿐이지만, 그의 책과 입을 통해 나온 말들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터라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 이번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간단했다.


“왜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저 명단에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올 시즌이 진행되던 중반에 “에이로드는 당신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깨끗한 선수가 아니다”라는 말로 의구심을 증폭시켰던 칸세코가 다시금 에이로드를 걸고넘어진 것이다. 어쩌면 이로 인한 파장이 클레멘스와 본즈로 인해 파생되는 악영향보다 더욱 클 지도 모른다. 누가 뭐래도 에이로드는 현역 최고의 메이저리그 스타 플레이어다.


만약 에이로드가 스테로이드의 힘을 빌렸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정말로 에이로드가 약물의 힘을 이용했을까? 그 동안 칸세코의 주장들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와중이라 속단할 수는 없지만, 지난 10년간 에이로드를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그 가능성은 아주 적다고 본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설명해 본다.


첫째로, 에이로드는 현재 뉴욕 양키스 소속의 선수다. 그리고 과거에는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었다. 이번 명단에 가장 많은 선수의 이름을 올린 팀이 바로 뉴욕 양키스다. 로저 클레멘스를 비롯해 앤디 페티트, 데이빗 저스티스와 척 노블락, 마이크 스탠튼 등이 양키스 출신이다. 게다가 약물 복용 기간으로 추정되는 시간(1999~2003년)이 지난 후라 하더라도 게리 셰필드와 제이슨 지암비 등이 양키스에 몸 담았었거나 현역으로 뛰고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 역시 강한 의혹을 받고 있던 이반 로드리게스가 이번 명단에 이름이 빠졌을 뿐, 후안 곤잘래스와 라파엘 팔메이로는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에이로드는 그들과 함께 선수생활을 했다. 즉, 양키스와 텍사스는 오클랜드와 함께 이번 약물 관련 조사의 한 가운데에 있던 팀이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로드의 이름은 명단에 없다. 현재 양키스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집중적인 조사를 받았을 것이 틀림없으며, 팔메이로, 곤잘레스와 같이 뛰었던 에이로드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에이로드의 이름은 명단에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시애틀 시절은 의심할 필요도 없다. 당시 에이로드와 함께 뛰던 선수 중 가장 의심을 받았던 제이 뷰너 조차도 이번 명단에는 빠져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또한 지난 4년간 지루하게 이어져온 스테로이드 파문의 출발은 호세 칸세코의 자서전이 원인이었다. 그의 입을 통해 수백 명의 메이저리거들이 자신들의 치부를 노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칸세코가 에이로드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연 시점으로부터 수개월이 지났다. 메이저리그의 상징과도 같은 로저 클레멘스조차도 심판대에 올린 미첼 조사 위원회에서 에이로드에게만 특혜를 줬을 리는 없다. 그런데 에이로드는 명단에 없다. 달리 말하자면 아무런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둘째로, 에이로드의 성적 자체도 어느 정도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시애틀 시절의 에이로드가 스테로이드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에이로드가 양키스에 몸담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바로 스테로이드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이후의 시기다. 그렇다면 양키스 시절도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에이로드가 스테로이드를 접했다면 그것은 라파엘 팔메이로, 후안 곤잘레스 등과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이며, 그 둘 외에도 당시의 팀 동료였던 이반 로드리게스나 게이브 케플러 등은 약물 사용 혐의가 꽤나 큰 선수들이다. 실제로 그들에게 권유를 받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2004년 이후 에이로드는 수차례에 걸쳐 도핑 테스트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단 한 차례도 그의 혈액 속에서 스테로이드 성분이 검출된 적은 없다. 쉽게 그 이후로는 결백이 이미 증명되어 있다는 뜻이다.


자, 그렇다면 에이로드가 과연 텍사스 시절에 근육 강화제품을 사용했을까? 혹자는 텍사스로 이적한 직후부터 에이로드가 52, 57개로 그 홈런수가 증가했음을 이유로 그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텍사스로 이적한 에이로드가 50홈런 이상을 기록할 것이라는 것은 웬만큼 메이저리그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모두가 예상할 수 있었던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오히려 텍사스 시절 에이로드의 성적은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면이 있을 정도다.


에이로드가 데뷔할 당시의 시애틀 홈구장인 킹-돔은 타자에게 매우 유리한 구장 중 하나다. 그러한 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던 에이로드는 96년 36홈런으로 화려하게 데뷔했고, 97년에는 2년차 징크스를 겪으며 23홈런에 그치기도 했으나 98년에는 161경기에 출장해 42홈런 46도루로 40-40클럽에 가입하기도 한다.


파워 배팅의 면에서 확실히 눈을 뜨기 시작한 에이로드는 99년 한 달을 결장하고도 129경기에서 42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린다. 160경기로 환산하면 52개, 이미 에이로드는 24살의 나이로 50홈런 이상을 기록할 수 있는 파워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시기의 에이로드는 스테로이드와 관련이 없음이 거의 확실하다. 그런 에이로드의 홈런 개수가 2000년에는 다시 41개로 줄어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애틀 매리너스는 1999년 후반기부터 킹-돔을 떠나 세이프코 필드를 개장했다. 그리고 이 구장은 현재 빅리그 전체를 통틀어 3위 안에 들어갈 만큼의 투수 친화적인 구장이다. 99년 킹돔에서의 23경기에서 .299/.394/.609의 배팅 라인을 자랑하던 에이로드는 세이프코 필드에서 출장한 42경기에서는 .276/.324/.546으로 고전을 면치 못한다. 2000년에도 이와 같은 추세는 그대로 이어진다. 원정에서 열린 73경기에서 무려 28홈런 81타점 .356/.433/.702의 화려한 타격을 자랑했던 에이로드는 홈구장에서 펼쳐진 75경기에서는 13홈런 51타점 .272/.406/.502로 작아졌다.


타격의 유-불리에 따라 경기장의 영향을 많이 받는 홈경기보다는 원정 경기에서의 성적이 그 선수의 객관적인 실력을 더욱 잘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원정에서 저 정도의 타격을 보여준 에이로드가 타자들에게 친화적인 텍사스의 알링턴 볼 파크로 옮겨간 것이다. 그 기대치가 과연 어떠했을까? 2001시즌이 시작하기 전 “타격 3관왕이 가능한 선수”라는 내용의 설문에서 ESPN의 칼럼니스트 전원이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꼽았다. 실제로 가능할 것이라는 평가도 다분히 있었던 상황. 그런 에이로드에게 있어 텍사스에서의 3년간 성적은 그 기대치를 100% 만족시키는 것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한다고 누구나 배리 본즈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 메이저리그에서 스테로이드를 복용해서 배리 본즈 이상이 될 수 있는 타자를 꼽으라면 첫 손에 꼽히는 선수는 바로 에이로드다. 에이로드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면 과연 홈런수가 저 정도에 그쳤을까? 또한 약물의 힘을 빌렸던 선수가, 그것과 멀리하게 된지 4년이나 지난 올해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박찬호 때문에라도 텍사스 시절의 에이로드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에이로드는 지금보다 더 날씬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으며, 부드러운 스윙과 뛰어난 배트 컨트롤로 많은 홈런포를 쏘아 올렸었다. 에이로드가 본격적으로 체구를 불리기 시작한 것은 양키스로 이적해서 유격수의 짐을 덜어버리고 난 이후다. 3루수라면 더 많은 홈런을 쳐야 자신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물론 그러한 과정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슬럼프(?)를 겪기도 했고, 실제로 지난 오프시즌 기간 동안 15파운드 가량을 감량하고 돌아온 올해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가운데 스테로이드가 들어갈 곳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거포들의 몸이 어떠한 지는 마크 맥과이어와 배리 본즈, 제이슨 지암비 등의 예에서 아주 잘 살펴 볼 수 있다. 그들의 체격과 에이로드를 비교한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


이러한 정황적인 증거를 놓고 봤을 때 에이로드는 스테로이드와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니, 주위 선수들의 권유로 한두 번쯤은 사용해 봤을 수도 있겠지만(이 정도는 청소년 시절 담배나 술을 한 번쯤 접해보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봐야할 것이다), 성적 향상을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사용했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이와 같은 글을 쓰면서도 현재의 상황은 참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얄밉기는 하지만 칸세코의 말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예상치도 못한 선수들이 언제 어디서 오명을 뒤집어쓰고 심판대 앞에 서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에이로드 역시도 위와 같은 요소들로 인해 ‘아닐 것 같다’고 추정할 수 있을 뿐, 확신할 수는 없다. 이는 에이로드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 선수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면 이와 같은 추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주관적인 바람으로도 그러한 추측이 실제이길 간절히 바란다. 에이로드를 비롯해 현 메이저리그를 이끌고 있는 핵심 주축 선수들, 그들의 명단은 앞으로 나오게 될 2,3차 명단에도 영원히 등재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이야 말로 약물로 오염되어 팬들을 실망시키고 있는 메이저리그의 빛이며,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이 팬들과 함께 달려갈 빅리그를 대표해야할 이들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팬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그러하길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