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오프시즌에서 뉴욕 양키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즈가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 세계 야구팬들이 충격에 빠진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이다. 결코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 이번에는 LA 다저스의 ‘타점머신’ 매니 라미레즈가 말썽을 일으켰다. 아니, 스스로가 말썽을 일으켰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확실한 것은 그가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50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다는 것이다.
라미레즈는 인터뷰를 통하여 “몸이 좋지 않아 의사를 찾았다. 개인적인 건강문제 때문에 약을 처방 받았는데, 아마 그 의사는 그게 문제없다고 생각한 듯 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약은 현재 규정상 금지약물이었다. 어찌되었든 내 책임이다”라고 말하며 일단 본인의 책임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지난 5년간 15번 정도 (금지약물) 테스트를 받았다”고 하여 스테로이드 복용 사실이 없었다는 사실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전미 여론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특히. ESPN의 제이슨 스탁(Jayson Stark)은 논평을 통해 라미레즈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지금도 ‘라미레즈를 잊어라. 절대 그를 용서할 수 없다(Forget Manny, don't forgive him)’는 제목의 칼럼은 그를 포함한 전미 야구팬들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잘 드러나 있다. 특히, 라미레즈에 대해 ‘쇼는 끝났다(Show's over)’고 비아냥거린 부분은 그에 대한 ‘실망’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빌 사이먼스(Bill Simmons) 역시 “매니 라미레즈는 그의 세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오른손 타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하여 약물 복용이 고의든 아니든 간에 잘못은 그에게 있음을 시사했다.
칸세코 자서전 내용대로 진행되는 MLB, ‘약물에 취해’
이제 팬들은 블라디미르 게레로(LA 에인절스), 켄 그리피 주니어(시애틀 매리너스), 라이언 하워드(필라델피아 필리스), 앨버트 푸홀츠(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정도가 약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거포들이라며 이들에 대한 믿음만큼은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혹시 저 선수도?’ 라는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칸세코의 자서전, ‘약물에 취해(Juiced)’의 각본대로 메이저리그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추가 혐의자는 또 다시 생길 수 있다.
이미 메이저리그는 호세 칸세코를 필두로 배리 본즈,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미겔 테하다, 로저 클레멘스, 앤디 페팃, 라파엘 팔메이로 등이 약물 복용 혐의를 받고 있거나 스테로이드 양성반응이 나타났던 선수들이다. 여기에 미첼 리포트 발표 이후 많은 이들은 ‘약물 복용 경력이 있는 선수들로만 라인업을 짤 경우 무적의 타선이 된다’고 평한 바 있다. 야구팬들이 색안경을 끼고 야구를 본다 해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아무런 할 말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지 않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대처 방법에 있다. 약물 홈런에 야구 팬들이 열광하고 있을 때에도 이에 대한 검사를 소홀히 했던 사무국은 정작 사건이 터지자 자신들의 책임은 회피한 채 “약물을 한 아무개 선수는 나쁘다”라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그리고 사후약방문으로 2007년 이후에야 지금의 철저한 약물검사 시스템이 정착화됐다. 그럼에도 불구, 여전히 많은 선수들이 ‘알게 모르게’ 약물을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말로 ‘칸세코 리스트’에 올려져 있는 선수들이 하나 둘씩 야구팬들의 심판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안전한가?
그렇다면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야구계는 약물에서 안전할까? 이 질문에 대한 최적의 대답은 ‘아마도(maybe)’가 되리라 본다. 왜냐? 유교문화 영향을 깊이 받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지약물 복용 자체를 ‘아예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이라면 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년 시절부터 ‘담배는 나쁘다, 마약은 범죄다’라고 수 없이 들어 왔던 유교문화 특성상 약물 자체를 거론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 외국에서는 합법화 되어 있는 대마초를 우리나라에서는 ‘마약’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도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그래서 한국무대에서 활약했던 두 명의 외국인 농구선수가 대마초 흡연과 함께 ‘보따리’를 싼 일도 있었다(대마초가 합법이라 생각했던 두 선수는 사실 퇴출 자체가 기가 막혔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KBO는 외국인 선수로 MVP까지 받았던 다니엘 리오스(전 두산 베어스)의 약물 복용 사실이 발각되면서 한동안 긴장의 끈을 붙잡아야 했던 경험이 있다. 즉, 우리나라도 이제는 더 이상 ‘운동선수 약물복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 여전히 약물검사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올 2월에 잠깐 나온 이야기가 공론화되지 못하고 ‘지나간 일’로 치부해 버린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메이저리그는 이미 다수의 슈퍼스타들이 약물을 복용하면서 ‘종주국’이라는 자존심을 버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08년을 기준으로 야구 세계랭킹 1위다. 이러한 사실이 전 세계적으로 공증받기 위해서는 2007년 MLB 사무국이 그러했듯이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전 선수들에 걸쳐 약물 검사를 정례화 해야 한다.
// 유진=http://mlbspecial.net
※ 본 고는 위클리 이닝(http://www.inning.co.kr)에 기고하였습니다.
유진의 꽃 보다 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