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라운드 우선 지명이 없어진 2009년에는 유난히도 많은 고교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맺었다. 화순고 주장 신진호(포수)는 계약금 60만 달러에 켄자스시티 로열스와 계약을 맺었고, 동산고 포수 최지만과 김선기는 모두 시애틀 메리너스와 계약했다. 그리고 여기에 또 다른 ‘예비 메이저리거’가 청룡기 우승을 위해 팔을 걷었다. 바로 김상국 전 한화 이글스 포수의 아들인 김동엽(18)이다.
김동엽은 계약금 55만 달러에 시카고 컵스와 계약을 맺었다. 185cm, 92kg의 좋은 체격조건을 갖춘 김동엽은 지난해 봉황대기 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홈런을 기록하는 등 파워히터로서 가능성을 선보였다. 일본으로도 ‘야구유학’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김동엽은 내년에 미국으로 진출할 경우 이상훈, 구대성에 이어 한-미-일 야구를 모두 경험하게 되는 세 번째 선수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미국 진출을 앞두고 그는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을까. 배재고와의 청룡기 1회전을 앞두고 몸을 풀고 있는 그를 목동구장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꿈
Q : 시간 내 주어서 너무 고맙다. 실제로 보니 생각 외로 덩치가 커서 놀랐다.
김동엽(이하 ‘김’으로 표기) : (웃음) 그래서 메이저리그에서 뽑아 간 것 같다. 힘 있는 타격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워가 좋다’고 하더라.
Q : 그러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의 꿈을 언제부터 꾸기 시작했나?
김 : 어려서부터다. 메이저리그를 보면서 ‘나도 저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Q : 그래서인가? 유년시절부터 해외 경험을 많이 쌓았다.
김 : 일본에 2년 정도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졸업 이후 니치난(日南) 학원으로 야구 유학을 떠났다. 작년에 돌아왔다.
Q : 일본어는 잘 하는가?
김 : 많이 늘었다. 그런데, 귀국 이후에는 (일어를 잘 쓰지 않다 보니) 많이 잊어버렸다.
Q : 경험해 보니 어떠한가? 한-일 양국간 고교야구의 차이가 많은가?
김 :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일본은 휴식일이 없다. 선수들이 풀타임으로 수업을 듣고 이후에 야구를 한다. 4교시건 6교시건 모든 수업을 소화해야 한다. 야구는 그 다음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휴식일이 보장된다.
Q : 이제 미국으로 가면 한-미-일 야구를 모두 경험한다. 소감이 어떠한가?
김 : 설래인다. 열심히 하여 메이저리그에서도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Q : 미국야구 이야기가 나왔으니 메이저리그를 이야기 해 보자. 특별히 모델로 삼고 싶은 선수가 있는가?
김 : 아직 없다. 나는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싶다.
Q : 지금 컵스의 주전 외야수로 밀튼 브래들리, 후쿠도메, 알폰소 소리아노 등이 있다.
김 : 그 중 소리아노가 나와 비슷한 스타일인 것 같다.
Q : 그렇다면 영어 공부는 좀 했나?
김 : (쑥스럽다는 듯) 영어는 전혀 못 한다. 언어 문제는 내가 극복해야 할 문제다.
Q : 미국에 가면 신진호, 김선기, 최지만은 물론, 정영일, 장필준, 최현 등을 만날 날이 올 것이다. 그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김 : 일단 선배들을 만나면 미국 생활의 모든 것을 물어보고 싶다. 컵스에는 나 외에도 이학주(충암고 졸업), 이대은(신일고 졸업) 선배가 있으니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동기들을 시합 도중 만나게 된다면 먼 땅에서 힘들게 선수 생활을 하게 될 만큼, 매우 반가울 것 같다. 모두 같이 추후에는 메이저리그에서 만나 함께 경기를 하고 싶다.
Q : 컵스는 이대은, 이학주 말고도 최희섭이 한때 몸담았던 곳이다.
김 : 나를 지명한 스티브 윌슨 컵스 스카우터가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 높은 것 같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이 분들과 함께라면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Q : 출국은 언제 하는가?
김 : 졸업하고 내년 2월에 갈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 두 야구선수
Q : 아버지 이야기를 좀 해 보자. 아버지(김상국 전 북일고 감독)가 포수출신인데, 포수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김 : (고개를 가로 저으며) 없었다. 고교시절 전까지는 투수나 유격수를 경험했고, 외야수로 뛴 것은 귀국하고 나서부터다.
Q : 아버지가 현역시절 출장했던 경기를 본 적 있는가?
김 : 있다. 그런데,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잘 안 난다.
Q : 야구한다고 할 때 집에서 반대하지는 않았나?
김 : 반대는 하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한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무언가를 지원해 주시지도 않으셨다. ‘반대만 안 하는’ 수준이셨다.
Q : 김동엽 선수와는 별도로 경기고 이성곤, 서울고 김동빈 등이 모두 프로야구 선수 2세들이다. 이들 중 나는 몇 위라 생각하는가?
김 : (웃음) 내가 스스로 결정내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성곤이는 발이 빠르고 타격 센스가 좋아 추후 프로지명을 받을 만한 인재라 본다. (김)동빈이도 추후 대형 선수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Q : 마지막 질문이다. 김동엽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김 :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야구는 일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야구밖에 없다. 야구 없이는 내 자신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야구를 계속하고 싶고, 또 야구로 대성하고 싶다.
▲ 배재고와의 첫 경기를 7-0으로 승리한 이후 만난 김동엽.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그는 쑥스럽다는 듯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이 날 경기에서 김동엽은 3번 타자로 출장하여 2루타 하나/몸에 맞는 볼 하나를 기록했다.
나의 아들, 김동엽
배재고와의 청룡기 1회전에 선발 3번 타자 겸 좌익수로 출장한 김동엽은 인정 2루타를 기록하는 등 3타수 1안타 1타점의 괜찮은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멀리서 이를 말 없이 지켜 본 이가 있었으니, 바로 김동엽의 어머니였다. 아버지 김상국 前 감독을 대신하여 야구장을 찾은 김동엽의 모친은 ‘아들이 야구를 너무 좋아하여 반대할 틈도 없었다’며 못말리는 그의 야구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Q : 그래도 아들이 야구한다고 했을 때 ‘덜컥’ 하셨을 것 같다. 김상국 전 감독께서도 야구선수였기에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는가?
김동엽의 모친 : 아들이 돌잔치 지나고 나서부터 캐치볼 놀이를 즐겨 했다. 그래서 집안에서 깨먹은 물건들도 많았다(웃음).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하다 보니 아이가 스스로 야구를 좋아하게 되더라. 좋아하다 못해 야구에 미쳐있는 것 같다(웃음). 그래서 미처 반대할 틈도 없이 자연스럽게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
Q : 부자(父子)가 모두 야구하는 것을 지켜봤을 텐데, 아버지와 아들 중 누가 더 야구 재능이 낫다고 보는가?
김동엽의 모친 : 아직은 아들이 아버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버지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은 크다고 본다. 본인이 야구를 사랑하고, 또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는가.
Q : 시카고 컵스와 계약을 맺었는데, 계약 소식을 접하고 나서 기분이 어땠는가?
김동엽의 모친 : 진로가 확정되어 홀가분했다. 하지만 먼 나라로 가서 얼마나 자리를 잡을지 걱정된다.
Q : 일본에도 다녀오는 등 아들이 적지 않은 해외 경험을 했다.
김동엽의 모친 : 처음에 일본 갔을 때에는 ‘어머니, 한 번만 와 주세요’ 소리를 많이 했다. 하지만 1년 정도 지나다 보니 오히려 자기가 들어오기 싫어했다. 적응이 중요한 것 같다. 미국에서도 이러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영어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곧잘 했는데, 손을 놓다 보니 많이 잊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노력해서 배우면 곧잘 따라갈 것 같다.
Q :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김동엽의 모친 : 어디에서 야구하건 간에 결국 자신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꼭 한 번 미국 야구를 이겨보았으면 좋겠다.
// 유진(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