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선발과 마무리 투수 중 비중이 더 큰 보직은?”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팀 사정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대체로 중간계투요원이 튼튼하고, 뒷문이 확실한 팀은 “1선발” 이라고 대답할 것이고, 마무리 부실로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치는 팀은 주저 없이 “마무리”라고 답할 것이다.
투수 조련사로 일본 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LG 트윈스 다카하시 투수코치는 주저 없이 ‘마무리가 1선발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김재박 감독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특히, 다카하시 코치는 “선발이 무너져도 이길 방법은 많이 있다. 그러나 마무리가 무너질 경우 이를 대체할 투수가 없다는 점에서 이기기 힘들다. 이는 주니치 시절에도 지겹게 봐 왔던 부분이다”라고 견해를 표한 바 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김재박 감독은 “가장 좋은 투수를 마무리로 쓸 것이다. 아무래도 선발 중에서 나오지 않겠냐”고 하여 한때 봉중근의 마무리 전향설까지 나오기도 했다.
KIA 타이거즈도 한기주 카드가 무너지자 즉각 윤석민을 ‘임시 마무리’로 대체한 바 있다. 그리고 윤석민으로 인하여 ‘불펜 안정화’가 이루어지자 다시 그를 선발로 돌렸다. 그만큼 A급 마무리 투수의 존재는 ‘승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즈(일명 K-로드)는 메이저리그 마무리 투수 중에서도 탑 클래스에 속한다. 사진 ⓒ 뉴욕 메츠 공식 홈페이지 캡쳐
좋은 마무리 투수란?
그렇다면 ‘좋은 마무리 투수’의 요건은 무엇일까? 단순히 세이브를 많이 잡아내기만 하면 그만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세이브 숫자가 많다 해도 블로운 세이브(세이브 기회를 놓쳐 버린 횟수) 역시 적지 않다면 A급 마무리라 보기 어렵다. 또한, ‘상대방에 압도적인 위압감을 가진 투수인가’도 좋은 마무리 투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말 그대로 경기를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포함하여 레너드 코페트(‘야구란 무엇인가’의 저자)나 김소식(전 대한야구협회 부회장) 등 야구 전문가들에 따르면, ‘좋은 마무리 투수’가 갖추어야 할 요건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1. 많은 세이브 포인트(구원승+세이브+홀드)를 올린 투수
2. 마운드에만 서도 상대 타자들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는 투수
3. 왠만한 위기 상황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강심장’ 투수
4. 탈삼진 능력이 좋은 투수(9이닝 환산 탈삼진 개수가 7~8개 이상일 경우에 한함)
5. 빠른 볼 구속이 150km(한국에서는 140km 후반) 이상 나오는 투수
6. 마리아노 리베라의 ‘컷 페스트볼’과 같이 제 2의 결정구가 있는 투수
7. 평균자책점이 1년 내내 2점대 초반(혹은 그 이하)을 유지하는 투수
결국 ‘빠른 볼을 포수 미트 정 중앙에 내리 꽃을 수 있는, 배짱 있는 속구투수’가 좋은 마무리 투수라는 이야기다. 타자들은 일단 그 기세에 눌리기 때문에, 시작부터 지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 8명 마무리 투수들 중 누가 A급 마무리 투수일까?
메이저리그의 경우 2009년 현재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즈(뉴욕 메츠)가 마무리 투수로는 가장 빼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현재까지 23경기에 출전한 로드리게즈는 1승 무패 13세이브, 평균자책 0.76으로 단연 돋보인다. 23과 2/3이닝동안 무려 24개의 탈삼진을 잡아내어 A급 마무리 투수다운 위용을 과시한다.
로드리게즈 외에도 마리아노 리베라(뉴욕 양키스), 프란시스코 코데로(신시네티 레즈), 요나단 파펠본(보스턴 레드삭스) 등이 A급 마무리 투수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한국 프로야구는 어떨까? 2009년 6월 1일 현재까지 각 팀 마무리 투수들의 성적은 아래와 같다.
탈삼진을 솎아내는 능력, 평균 자책점 등을 두루 살펴보았을 때 A급 마무리 투수에 가장 가까운 선수는 SK의 정대현, 두산의 이용찬, 히어로즈의 황두성, 한화의 토마스 정도로 축약될 수 있다. 이들 중 정대현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투수들은 140km 후반~150km에 육박하는 빠른 볼도 동시에 갖추고 있어 믿음직함을 더한다. 반면 정대현은 느린 변화구로 타자들을 솎아낸 이후 130km 중반대의 빠른 볼로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한다. WBC나 올림픽에서 정대현의 변화구에 많은 타자들이 속아 넘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선발로 시즌을 시작한 KIA의 윤석민도 마무리로서 꽤 수준급 성적을 기록했다. 지금은 다시 선발로 돌아갔지만, 만약에 그가 지속적으로 마무리를 맡았다면 2점대 평균 자책점에 마무리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100탈삼진 기록도 가능했을 것이다.
오승환(삼성)의 경우 압도적인 탈삼진 생산 능력이나 세이브 숫자에서 여전히 대한민국 1위다운 모습을 선보이고 있으나 많은 피홈런 숫자(5개. 8개 구단 마무리 중 1위)로 인하여 번번히 세이브 기회를 놓치고 있는 점, 3점대 후반 평균자책점이 감점 요인으로 작용한다.
▲ 두산의 이용찬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 마무리 투수라는 중책을 대과 없이 수행하고 있다. 사진 ⓒ 두산 베어스 구단 제공
이들에 비해 가장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우규민(LG)과 애킨스(롯데)다. 둘은 탈삼진 생산 능력도 가장 뒤떨어지며, 평균자책점도 마무리 투수답지 않은 4점대에 머물고 있다. 빠른 볼 구속도 우규민의 경우 140km를 넘기지 못하고 있으며, 애킨스도 140km 초반에 머물고 있다. 조금 더 지켜 볼 필요가 있으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두 선수가 8개 구단 마무리 가운데 ‘가장 처진다’고 할 수 있다.
// 유진(http://mlbspecial.net)
유진의 꽃 보다 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