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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현 MLB 최강 구질 -대세는 체인지업!!

by 카이져 김홍석 2007. 12. 30.
 

투수와 타자의 승부는 결국 ‘타이밍 빼앗기’이다. 100마일(161킬로)에 근접하는 강속구를 던질 줄 아는 투수들도 브레이킹 볼을 익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아무리 빠르고 묵직한 공을 던진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기는 어렵다.


‘직구만 던지는 투수’ 따위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패스트 볼(fastball)을 자신의 주 무기로 삼는다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스피드의 변화를 주게 되어 있다. 패스트 볼의 종류도 여러 가지인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최근 메이저리그의 투수들, 특히 젊고 유망한 투수들을 보면 대부분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체인지업(Change-up)’을 자신의 주 무기로 삼는 투수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최근의 ‘대세’는 체인지업이다. 대체 체인지업에 어떤 장점이 있기에 너도나도 그것을 연마하려고 할까?


▷ 체인지업이란?

체인지업은 직구와 같은 폼으로 던진다. 투구시 폼과 팔의 속도는 직구와 똑같은데 타자에게 날아드는 공의 속도는 훨씬 느린 것이다. 패스트 볼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보다 10~15마일 가량 느리다. 때문에 체인지업은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고 헛스윙을 유도하는 데 있어 최고의 무기가 된다.


던지는 방법도 그다지 어렵진 않다. 패스트 볼을 던진다고 생각하고 그립(grip)만 바꿔서 약간 느슨하게 쥐고 던지면 된다.


공을 쥘 때 엄지와 검지의 끝을 맞대어서 동그라미를 만들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공위에 걸치고 던지는 ‘써클 체인지업’, 엄지와 새끼손가락은 공 아래쪽에 나머지 세 손가락은 공의 위쪽에 걸치는 그립은 일반적으로 ‘세 손가락 체인지업(Three finger chang-up)’이라 부른다. 손바닥에 밀착시켜 공을 밀듯이 던지는 ‘팜(palm) 볼’도 체인지업의 일종이다.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전매특허였던 써클 체인지업은 약간의 좌우 변화까지 동반하고, 세 손가락 체인지업은 투심 패스트 볼처럼 아래를 향해 약간 떨어진다. 팜 볼의 경우는 공에 회전이 거의 걸리지 않기 때문에 떨어 진다기 보다는 가라앉는다는 느낌을 주기에 타자의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종류가 더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이 세 가지 정도라 할 수 있다. 직구와 조화를 이루어 좋은 타이밍에 구사된다면 타자들은 단번에 잡아낼 수가 있지만, 구질을 미리 읽혔을 경우엔 단번에 장타로 연결될 위험도 있다.


▷ 왜 체인지업인가?

‘91’ ‘98’년 2번의 사이영상에 빛나는 탐 글래빈, ‘97’ ‘99’ ‘00’년 3번의 사이영 위너 페드로 마르티네즈, ‘03’ 시즌 마무리로서 사이영상을 따낸 에릭 가니에, 통산 최다 세이브 신기록 보유자 트레버 호프만, ‘04’ ‘06’ 20대의 나이로 2번의 사이영상을 수상한 요한 산타나.


그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들을 사이영상 수상자가 되게 하고 전설적인 투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 구질이 바로 체인지업이다. 최근에는 그 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올 시즌 AL 방어율 3위인 댄 해런(15승 9패 3.07)과 다승 5위 켈빔 에스코바(18승 7패 3.40), NL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콜 하멜스(15승 5패 3.39), 피츠버그의 주목 받는 영건 탐 고즐라니(14승 10패 3.88) 등이 체인지업을 무기로 좋은 성적을 이루어 냈다.


또한 저스틴 벌렌더(18승 6패 3.66)와 펠릭스 에르난데스(14승 7패 3.92)등 최근에 좋은 투구를 선보이며 미래의 에이스로 기대 받는 투수들도 하나같이 체인지업을 갈고 닦아 자신의 무기로 쓰려고 준비하는 중이다. 이들이 체인지업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체인지업에는 두 가지의 큰 장점이 있다. 첫 번째, 던지기가 쉽다. ‘위력 있는’ 체인지업을 구사하기 위해선 오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빅리그 투수들 중 체인지업을 던질 줄 모르는 선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두 번째 이유가 정말 결정적이다. 체인지업은 던질 때 손목과 팔꿈치를 억지도 뒤틀어서 회전을 줘야만 하는 커브나 슬라이더와는 달리 직구와 같은 폼으로 구사가 가능하다. 즉, 부상의 위험이 훨씬 적고 어깨에 무리가 덜 가기 때문에 체인지업이 주 무기인 선수는 비교적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메이저리그 최후의 마구라 불리는 슬라이더의 경우, 존 스몰츠, 케리 우드, 프란시스코 리리아노, 리치 하든 등 많은 선수들을 팔꿈치와 어깨 부상으로 신음하게 만들었다. 그 어떤 구질보다 큰 위력을 보이지만 ‘양날의 검’과 같은 위험을 동반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체인지업은 비교적 부상의 위험이 적다. 자신의 패스트 볼에 자신이 있는 선수라면 체인지업 하나만 잘 익혀도 충분히 위력 있는 투구가 가능하다. 억지로 변화구를 던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제구력이 흔들리게 되는 경우도 없다. 실제로 위에 언급한 투수들 중에서 제구력 불안을 노출하는 선수는 현재 단 한명도 없다.


무엇보다도 탐 글래빈과 트레버 호프만이라는 두 투수가 그다지 위력도 없는 직구 구속으로도 마흔이 넘어서까지 좋은 투수로 남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요한 산타나의 경우에서 보듯 빠른 패스트 볼과 섞였을 때는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젊은 투수들이 체인지업을 선호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 체인지업의 대가(1) - 탐 글래빈 & 콜 하멜스

90년대 이후로 체인지업으로 큰 위용을 떨친 선수는 누구보다도 탐 글래빈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표정의 변화 없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글래빈은 위력 있는 직구도, 각이 큰 변화구도 가지지 못했지만 느린 패스트 볼과 체인지업의 절묘한 로케이션과 구석을 찌르는 그 탁월한 컨트롤로 지금까지 선수생활을 이어왔다.


통산 303승(역대 21위)을 거둔 이 좌완 투수는 현역 최다인 5번의 20승, 두 번의 사이영상(2위와 3위도 두 번씩), 10번의 올스타에 선정된 영광의 주인공이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가 1995년 우승할 당시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투수답지 않은 좋은 타격으로 4번의 실버슬러거 수상 경력도 가지고 있는 글래빈은, 전체 투구의 40%가량(작년은 37.5%) 될 정도로 체인지업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올 시즌 후 은퇴가 유력한 그는 5년 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최근 들어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콜 하멜스를 보고 있노라면 글래빈의 후계자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글래빈과 마찬가지로 좌완인 하멜스도 스카우팅 리포트에 ‘fantastic'이라 칭해질 정도의 멋진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절묘한 제구력에 쓸만한 커브까지 장착한 하멜스는 이러한 구질들의 절묘한 조합으로 이닝(315.2)보다 많은 탈삼진(322)을 잡아낼 정도로 위력 있는 투구를 보여준다. 글래빈과 달리 90마일대의 패스트볼을 겸비한 하멜스, 그라면 글래빈의 뒤를 이어 체인지업을 이용한 로케이션만으로도 충분히 에이스급 투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 체인지업의 대가(2) - 페드로 마르티네즈 & 요한 산타나

앞서 소개한 두 명이 커멘드와 로케이션으로 주로 승부를 하는 투수라면, 페드로와 산타나는 뛰어난 체인지업에 불같은 강속구까지 겸비한 투수들이라 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99년부터 2003년까지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는 페드로 마르티네즈였으며, 그 이후의 바통을 이어받은 선수는 바로 요한 산타나다.


그다지 좋지 않은 체격 조건(페드로 180센티, 산타나 183)을 가진 이 두 선수의 주 무기는 바로 필살의 체인지업. 페드로의 서클 체인지업이 21세기 초를 그의 시대로 만들어주었다면, 2004년을 기점으로 요한 산타나의 체인지업은 그를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로 우뚝 설 수 있게 도와주었다.


사실 두 체인지업의 위력을 말하자면 페드로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다. 직구와 비교해 무려 15마일에 달하는 스피드 차이와 좌우의 현란한 변화까지 동반하며 우타자의 몸 쪽으로 꺾여 들어가는 페드로의 써클 체인지업은 당대뿐만이 아니라 빅리그 역사를 통틀어도 손에 꼽히는 수준임에 틀림없다.


체인지업 외에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던 위력적인 커브와 투심 패스트 볼까지 구사가 가능한 페드로가, 체인지업 외에 별달리 내세울 것이 없는 산타나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것은 사실이다. 1점대 방어율을 두 번이나 기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대 흐름상 페드로의 후계자라 칭할 수 있는 산타나도 두 종류 이상의 체인지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빅리그 최고의 투수로 떠올랐다. 비록 페드로와의 비교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 없겠지만, 전성기 시절의 페드로와 그렉 매덕스를 제외하면 그가 현재 보여주는 위압감은 그 어떤 투수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데뷔 초에는 체구에 어울리지 않은 강속구와 흔들리는 제구로 인해 불안한 면이 노출되기도 했지만, 체인지업이 완성이 되면서 제구력도 함께 향상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빅리그 최고의 에이스로 떠올랐다.


매년 20개가 넘는 홈런을 허용하면서도 2점대의 방어율(지난해까지 3년 연속)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그의 볼 배합과 제구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올 시즌은 AL 최다 피홈런의 주인공이 되는 등 예년보다 조금 부진(15승 13패 3.33)했지만, 그의 거취가 이번 오프 시즌 최대의 관심사로 떠올랐을 만큼 여전히 리그 최고의 투수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체인지업의 효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