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종목에서 심판이 차지하는 역할은 상당히 크다. 축구의 경우만 해도 심판의 휘슬 한 번으로 페널티 킥이 결정될 수도, 경고나 퇴장을 받는 선수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는 ‘야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야구에서 심판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54개의 아웃카운트를 판정해야 하고, 300-400여개의 볼카운트를 판정해야 한다. 세 시간을 훌쩍 넘기는 야구의 특성상 이러한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강한 체력과 정확한 판단력을 갖춘 ‘검증된 인재’가 그라운드의 포청천(재판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제 역할을 100% 수행해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바로 심판이라는 직업이다. 오히려 작은 오심 하나로 인하여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것이 심판이다.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승부를 벌이는 양 팀의 정 중앙에 서서 공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공정성을 상실한 판정’은 심판으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판사가 법률을 무시한 판결을 내리는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 '그라운드의 포청천'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프로야구 심판은 보다 정확하고 보다 권위있어야 한다 (사진=위클리 이닝 '팀 화이트')
▷ ‘판정 번복’도 심판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행위
지난 3일, SK 와이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부산 사직 경기에서 또 하나의 웃지 못할 ‘코미디’가 펼쳐졌다. 바로 3회 말 롯데 자이언츠 공격때였다.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무사 1, 2루 찬스를 맞은 롯데는 박기혁이 보내기번트를 시도했다. 박기혁의 번트 타구는 1루 방향 파울선상을 향해 떠올랐다가 떨어졌고, SK 포수 정상호는 넘어지면서 이 타구를 잡아내는 듯 했다. 이 때 1, 2루 주자는 모두 2, 3루까지 도달한 상태였고, 정상호는 타구를 잡아 1루로 송구하여 타자 주자 박기혁을 아웃시켰다. 여기서 박정권이 1루를 밟은 후 공을 2루로 송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보내기 번트가 성공하는 듯 했다. 주심과 각 루심들도 별다른 제스추어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를 ‘포수 파울플라이 아웃’으로 판단한 김성근 감독이 주심에게 어필을 했다. 이에 나광남 주심과 1, 2, 3루심들이 한 자리에 모여 ‘4심 합의’를 이끌어 낸 결과 김성근 감독의 손을 들어주었다. 포수 파울 플라이로 타자 박기혁이 아웃(1아웃), 1루수 박정권의 베이스 터치로 1주 주자가 아웃(2아웃), 1루수의 2루 송구로 2루 주자가 아웃(3아웃)된 것으로 본 것이다. ‘번트 성공’ 판정을 번복한 것. 이에 SK 선수들은 덕아웃으로 돌아와 다음 회 공격 준비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트리플 플레이’ 판정에 이번에는 로이스터 롯데 감독이 주심을 향하여 강력한 항의를 시작했다. 포수 파울 플라이가 아니라, 타구가 분명히 바운드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 심판의 권위는 스스로 찾는 것이다. 남들이 인정한다고 해서 심판의 권위가 저절로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진=위클리 이닝 '팀 화이트')
로이스터 감독의 강력한 항의에 이번에도 다시 한 번 더 4심 합의에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오갔다. 비디오 판독은 홈런 타구에 한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규정이 명백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심이 중계방송 비디오를 통하여 타구가 바운드 된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이에 판정을 다시 번복하기 위해 3루심을 포함한 심판들은 김 감독을 설득할 목적으로 SK 덕아웃을 찾았다.
이에 김성근 감독은 심판들을 향하여 “4심 합의가 이루어졌으면 그것이 최종 판정인데 이를 다시 번복하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이 날 때마다 비디오 판독을 할 것인가.”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심판들이 여기서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9분간의 경기 중단 끝에 김 감독이 결과에 승복하며 경기가 재개되었으나, 한 번 식어버린 롯데의 기세는 거기서 끝이 난 터였다. 1사 2, 3루 찬스에서 조성환은 2루 땅볼로 살아나았지만, 3루 주자가 홈에서 태그아웃되는 것을 막지 못했으며, 이어 등장한 이대호는 바뀐 투수 전병두의 구위 난조를 적절하게 이용하지 못한 채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단 한 번의 정확한 판정이 아쉬운 순간에 심판들은 사상 유래 없는 ‘두 번의 판정 번복’으로 스스로의 권위를 떨어뜨린 셈이었다. 이 판정 번복으로 인하여 경기 시간 지연은 물론, 야구장을 찾은 팬들도 실망감을 가득 안은 채 경기장을 빠져나가야 했다. 만약에 판정에 대한 번복 없이 경기가 진행되었다면 경기 결과는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었다. 적어도 경기 결과만 놓고 보았을 경우(7-5 SK 승) 이 판정 번복 하나가 경기 흐름을 바꾸어 놓은 셈이다.
▷ ‘메이저리그’보다 더 뛰어난 국내 심판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 프로야구 심판들은 왠만한 메이저리그 심판들보다 판정을 정확하게 한다. 이는 지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통하여 미국에서도 인정한 부분이다. 특히, MBC-ESPN에서 도입한 S존으로 야구 경기를 보면, 심판들의 존 설정이 엄정하고 일관된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애매한 상황에서 나온 판정의 경우, 대부분은 심판이 옳았다. 그리고 TV로 야구를 시청하던 팬들은 이를 정확하게 확인했다. 상당수의 심판들이 엄정하고, 정확하게 판정을 내리고 있다는 점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심판 판정에 대한 논란은 꾸준히 나온다. 특히, 올 시즌에는 더욱 그러하다. 일부 심판들은 매번 KBO 게시판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많은 야구팬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일부’ 때문에 다른 공정한 심판들도 욕을 먹는 것이 최근 한국 프로야구 심판들의 현주소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는 심판들은 ‘심판들도 인간이 아니냐?’라며 다소 억울해 할 수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심판도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 없고, 인간이기에 나올 수 있는 오심도 분명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심판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판정을 잘 해야 한다. 심판의 판정으로 승부가 갈리게 되면 선수들의 노력이 폄하되기 때문이다. 지난 3일 경기처럼 반복되는 실수가 많고, 공교롭게도 특정 심판의 이름이 오르내릴 수준이라면 야구팬들은 심판의 자질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 법을 배우지 못한 재판관에게 재판을 맡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KBO를 비롯한 모든 ‘그라운드의 재판관’들의 각성이 필요할 때다. 필요하다면 관련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도 감수해야 한다.
<사진=위클리 이닝 사진팀, ‘팀 화이트’님 제공>
// 유진(http://mlbspecial.net)
유진의 꽃 보다 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