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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페드로가 정말로 ‘외계인’일까? NO!

by 카이져 김홍석 2008. 1. 4.


조 토레 전 뉴욕 양키스 감독이 별명을 지어준 이후, 우리들은 페드로 마르티네즈라는 풀 네임 대신
‘외계인’이라는 별칭으로 더욱 많이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 별칭과 더불어서 페드로가 (특히 한국에서!) 지나치게 신격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때문에 이번 기회를 통해 페드로에 대한 많은 팬들의 환상을 한 번 깨볼까 한다.


은퇴한 선수들이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 후보가 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유는 ‘그 선수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5년은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페드로가 환상적인 모습을 선보였던 시절도 이미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때문에 이제는 그를 조금은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봐도 되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특별히 페드로에 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지나치게 과대평가 받고 있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특별히 악감정을 담고 그를 바라보고 있지도 않다. 페드로에 관한 필자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 본문을 읽기에 앞서 다음의 두 칼럼을 살펴보길 권한다.(바로가기 클릭)


우리가 페드로에 열광하는 이유는?(2007/08/03)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재기가 기대되는 이유?(2007/08/30)


페드로가 위력적인 투수로 명성을 떨쳤던 것은 역시나 보스턴에서의 7년(98~04)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것도 바로 이 기간 동안의 페드로 마르티네즈라는 투수가 얼마나 위력적이었으며, 또한 팀에 대한 공헌도가 컸었던가를 살펴보려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번 글에서의 초점은 페드로 개인의 성적(특히 방어율)이 아니라 ‘팀 기여도’다. ‘부상을 당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변명이 통할 정도라면 ‘외계인’이라는 별명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테니까.


에이로드와 매니 라미레즈가 나란히 연봉 2000만 달러의 벽을 넘어서며 오버페이라는 논란이 한창일 때, “페드로라면 2000만 불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라는 말이 떠돈 적이 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많은 이들이 팀을 위해 엄청난 공헌을 했다고 여기는 페드로는 ‘외계인’이라 불렸던 보스턴 시절에도 자신이 받은 연봉 이상을 해주지 못했다. 그는 7년 동안 자신이 받은 만큼만 보답했을 뿐이다.


방어율이라는 것은 투수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는 스탯이며, 다승은 팀 타선의 도움이 있으면 자기 실력 이상으로 많은 숫자를 기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어율이 무조건 중요하고 승이라는 스탯을 경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를 들어 같은 팀에서 같은 타선의 지원을 받았는데 A라는 선수는 3.00의 방어율로 20승을, B라는 선수는 2.00의 방어율로 20승을 거뒀다면, 개인 성적은 B가 좋을지언정 팀 공헌도는 둘 다 똑같은 것이다. 방어율 등에 관계없이 같은 승리를 팀에 가져다 줬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연봉이라는 것은 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치가 반영되는 것이기에 B가 더 많은 연봉을 받겠지만, 팀의 승리에 공헌한 정도가 갔다면 그 시즌 당장의 팀 공헌도는 다를 수가 없다. 우선 이러한 기본 생각의 바탕 위에서 이 글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선수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연평균 1400만)다. 그 다음은 1350만의 케빈 브라운, 그리고 3위가 1290만 달러를 받은 페드로 마르티네즈다. 즉, 이 기간의 페드로는 메이저리그 전체 선수들 가운데 3번째로 많은 연봉을 받았다. 그렇다면 팀 기여도도 그 정도 수준은 되어야 연봉에 걸 맞는 활약을 했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과연 페드로의 팀 기여도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타자들을 일일이 살펴볼 것도 없이, 당대 최고의 투수들과의 비교를 통해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성적과 팀 기여도를 살펴보자.


이름

등판(평균)

다승(평균)

이닝(평균)

평균연봉

팀 승리

팀 패배

브라운

188(26.9)

86(12.3)

1261.2(180)

1350만

115

73

페드로

201(28.6)

117(16.7)

1383.2(198)

1290만

136

65

랜디

227(32.4)

122(17.4)

1634.0(233)

1240만

145

82

매덕스

239(34.1)

121(17.3)

1583.0(226)

1110만

147

92

무시나

219(31.3)

106(15.1)

1471.0(210)

990만

131

88

글래빈

239(34.1)

109(15.6)

1544.0(221)

905만

140

99

클레멘스

223(31.9)

115(16.4)

1453.0(208)

840만

148

75


위의 표는 98년부터 04년까지의 7년 동안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았던 선수들과 그들이 등판한 회수-다승-소화한 이닝을 나타낸 것이다. 순서는 평균 연봉 기준이며, 맨 오른쪽에 있는 팀 승리-팀 패배는 그들이 등판했을 때 팀이 거둔 승과 패를 나타낸 것이다.


자, 이 자료를 기준으로 봤을 때 저 7년 동안 가장 팀에 대한 기여도가 높은 선수는 누구라고 생각되는가? 연봉을 비롯한 모든 면을 놓고 봤을 때 부상으로 아예 커리어를 말아먹은 ‘먹튀’ 케빈 브라운(사실 브라운은 위의 명단에 오를 자격이 없기에 굵은 글씨로 표현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과 마이크 무시나, 탐 글래빈 정도는 페드로보다 확실히 기여도가 낮아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 3명(랜디, 매덕스, 클레멘스)은 모두 페드로보다 팀 기여도가 높아 보이지 않은가?


페드로가 외계인이 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건강이다. 이 ‘외계인’이라는 별명이 영화 에일리언에서 나오는 ‘퇴치당해야만 하는 괴물’이 아니라 E.T. 에서의 꿈과 희망을 이루어줄 수 있는 ‘전능한 외계인’의 의미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의 부실한 몸은 그가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201번 등판해서 팀에 136승을 가져다준 페드로가 239번 등판해서 147승을 가져다준 매덕스에 비해 공헌도가 높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페드로가 등판했어야 할 저 38번의 경기는 누가 책임져줄 것인가? 그는 2경기 연속 3홈런을 얻어맞았다는 이유만으로 부상자 명단에서 보름 동안 쉬곤 했던 선수다. 그가 등판하지 않은 경기들에는 어쩔 수 없이 마이너리그 유망주 또는 불펜의 롱릴리프를 선발 투수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저 경기들에서의 승패는 누가 책임지며 그로 인해 들어가는 추가비용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게다가 에이스인 페드로가 많은 이닝을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에 나머지 투수들이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2004년이 되어 밤비노의 저주를 이겨내며 86년만의 우승을 일구어냈지만, 그 전의 기간까지는 ‘페드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승하지 못했다. 혹시 ‘페드로가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투수들의 혹사가 심해서’ 우승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보스턴이 매년 후반기만 되면 투수들의 부진으로 고생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전혀 근거 없는 가정은 아니라고 본다.


방어율이 아무리 낮아도 등판 회수와 이닝이 뒷받침 되지 않는 다면 팀 기여도에 대한 평가는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04년은 페드로가 보스턴에서 최악의 성적을 거뒀던 해였지만, 217이닝을 소화해 불펜의 부담을 줄여준 해이기도 했다.


물론 페드로의 저 당시 연봉은 절! 대! 로! 오버페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그가 저 7년 동안 전체 3위에 해당하는 연봉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고, 그 정도 연봉이면 더도 덜도 없이 ‘자기가 한만큼’은 충분히 보상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기간 내에 전성기를 모두 보낸 채 FA 시장에서 ‘대박’을 노리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겠지만, 그것은 자기 복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많은 이닝을 소화해주는 에이스의 존재는 그 팀에 있어서 정말로 큰 힘이 된다. 페드로 역시도 230이닝 이상을 소화해주었던 몬트리올에서의 97년과 보스턴 이적 후 첫해인 98년은 전형적으로 그러한 모습이었다. 특히 31경기에 등판해 241.1이닝을 소화한 97년은 놀라울 뿐이다. 개인적으로 진정으로 페드로가 ‘외계인’이라 불리기에 합당한 시즌은 보스턴 시절이 아니라 바로 첫 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했던 1997년이라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보스턴 이적 이후 98년을 제외하고는 ‘이닝이터’다운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이 페드로 마르티네즈라는 투수가 가진 숙제이자 한계였던 것이다.


방어율 3.00의 투수와 4.00의 투수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동일한 등판 회수와 이닝을 소화한다고 가정했을 때 두 선수가 팀에 가져다주는 승차는 단 3승뿐이다. 34경기를 등판한다고 했을 때, 3.00의 투수가 4.00의 투수에 비해 단 3경기를 더 승리한다는 뜻이다.


페드로는 다른 에이스들에 비해 매년 5경기 가량을 적게 등판했다. 페드로가 등판했더라면 최소한 3승 이상은 더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쉽게 말해 페드로의 방어율은 ‘개인성적’이라는 측면에서는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지만, ‘팀에 대한 기여도’라는 면에서는 그 방어율에 +1.00을 해도 할 말이 없다는 뜻이다. 페드로의 팀 기여도는 그의 방어율이 나타내는 것만큼 크지 않다. 즉, 팀에 대한 공헌도의 측면에서 그의 방어율은 거품이다. 위의 표에서 각 선수들의 방어율을 표기하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페드로 마르티네즈라는 선수가 남긴 업적을 비하하기 위함이 아니다. 필자가 하고 싶은 것은 ‘폄하’가 아니라 ‘평가’다. 박찬호가 전성기이던 그 시절, 너무나도 뛰어난 투수로 한국의 팬들에게 기억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유리 몸을 가진 천재였을 뿐이다.


당시 지미 윌리암스 전 보스턴 감독은 김영덕 감독이 연상될 정도의 철저한 기록 관리로 페드로의 성적을 만들어 주었다. ‘만들어진 기록’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필자로서는 그 ‘기록의 순수성’에 물음표를 그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