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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로이스터의 야구가 보여준 ‘꿈’ 그리고 ‘한계’

by 카이져 김홍석 2009. 10. 5.

부산의 수많은 야구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던 추석 연휴가 끝이 났네요. 아쉽게도 롯데 자이언츠의 가을야구는 또 다시 조기에 끝을 맺었습니다. 9년 만에 포스트시즌에서 승리를 거두며 작년보다는 한 경기 많은 4경기를 치렀지만, 결국 최종적인 승리는 맛보지 못한 채 분루를 삼키고 말았네요.

단순히 4위 팀이 3위 팀에게 패한 것이라면 크게 억울할 건 없겠지만, 첫 경기에서 승리한 후 내리 3연패로 졌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가 없네요. 게다가 그 패배가 상대팀이 잘해서 패한 것이라기보다는 실책으로 인한 ‘자멸’이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4경기에서 8개의 실책. 아무리 롯데가 정규시즌 최다 실책 팀이라지만 그래봐야 4경기에 3개 정도를 범하는 수준이었죠(133경기 96에러). 하지만 그 두 배가 넘는 실책을 남발했고, 이는 패배로 직결되고 말았습니다. 상대팀 두산이 4경기에서 단 하나의 에러도 없었다는 것과 너무나도 비교되는 부분이었죠. 특히 3,4차전에서의 실책은 하나같이 결정적인 것들뿐이었습니다. 4차전에서 조주장의 실책은 통한의 기억으로 남겠죠.

이러한 패전의 책임을 한 몸에 지고 있는 장본인은 다름 아닌 로이스터 감독입니다. 2년 계약이 끝난 상황이라 그의 재계약 여부를 놓고 팬들 사이에서의 의견도 분분하죠.

“올챙이 시절 생각해라. 로이스터 아니었으면 4강에 오르지도 못했다”

“이 정도 선수들이라면 누구 감독이라도 4강에 오를 수 있다. 이제는 포스트시즌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감독이 필요하다”

사실 두 가지 모두 틀린 의견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로이스터가 없었더라면 롯데가 4강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도 동감을 하고, 이제 롯데에게는 포스트시즌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감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동감을 하니까요.

하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로이스터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라는 논리에 대해서는 절!대!로! 수긍할 수 없습니다.

작년에 롯데가 3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대호가 든든히 버티고 있는 가운데 가르시아, 강민호, 조성환, 김주찬이 동시에 좋은 성적을 거둬주고, 마운드에서도 손민한을 필두로 한 12승 선발 트리오가 등장했기 때문이죠. 일부 팬들은 이러한 이유를 들어 로이스터 감독을 ‘운 좋은 감독’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로이스터가 아닌 다른 감독이었더라도 5월이 되면서 한 때 타율이 2할3푼대까지 떨어진 가르시아를 그대로 믿고 1군에서 지속적인 출장 기회를 줬을까요? 7월초에도 .255/.320/.296(타/출/장)의 허접한 기록을 내고 있던 리드오프 김주찬을 계속해서 믿고 맡겼던 것은 로이스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타던 송승준과 장원준의 경우도 계속해서 믿고 긴 이닝을 소화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부실한 불펜이 그나마 버텨줄 수 있었죠.

이러한 요소들이 후반기에 힘을 발휘했기에 작년의 롯데는 4강을 넘어 3위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국내 감독들이었다면 3할 타자 김주찬이나 타점 1위 가르시아를 볼 수 없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롯데가 포스트시즌에 오르는 일도 없었겠죠.

그런 로이스터 감독의 ‘장기전을 이끌어가는 믿음의 야구’는 올해도 빛났습니다. 가르시아는 전반기(88경기 16홈런 47타점 .251/.341/.470)와 후반기(42경기 13홈런 37타점 .296/.382/.618)의 성적이 너무나도 달랐죠. 이 정도 레벨의 타자는 믿고 기다리면 최소한의 제몫은 해준다는 것을 로이스터 감독은 보여줬습니다.

롯데는 8월에 접어들면서는 선발 로테이션이 완전히 붕괴됐습니다. 손민한은 부상으로 이탈했고, 송승준은 컨디션을 완전히 잃어버렸으며, 이용훈도 부진의 늪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조정훈과 장원준만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상황이었죠. 만약 이 때 컨디션 난조인 송승준을 정신 차리라는 이유로 2군으로 내리고 임경완이나 이정훈을 선발로 전향시켰다면 결과는 어땠을까요? 롯데 불펜이 끝까지 버틸 수나 있었을까요?

일반인들이 보기에 로이스터 감독의 투수교체 타이밍은 ‘한 경기’를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는 매우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좀 더 빨리 교체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계속해서 점수를 주고 위기가 이어지는 데도 선발 투수를 계속 던지게 만드는 모습을 보면 짜증이 날 만도 하겠죠. 하지만 그런 투수운용이 133경기라는 시즌 전체를 놓고 보면 로테이션을 지키고 불펜을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로이스터는 증명해 보였습니다.

애킨스를 필두로 한 롯데의 불펜이 올 시즌 범한 블론세이브는 총 12개로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적었습니다. 롯데의 불펜 요원들이 특별히 뛰어나서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팬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겁니다. 블론세이브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투구이닝을 최소화함으로써 그들의 피로를 줄여준 결과였죠. 로이스터의 미국식 투수 운용이 장기전에서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 지를 여기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로이스터가 처음 한국 무대를 밟았을 때, 저는 나름대로 상당한 기대를 가졌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긴 기간 동안 감독직을 수행하며 능력을 보여준 사람은 아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베이스볼’을 보여줄 것이 틀림없었고, 그렇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일부러 블로그의 포스팅이나 기사를 통해 로이스터 감독을 많이 다루었습니다. 미국식 야구의 장점과 재미를 알리는데 조금이나 보탬이 되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로이스터는 ‘장기전’에서 발휘되는 ‘메이저리그식 야구’가 지닌 힘을 어느 정도는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2년 연속 4강 진출이라는 실질적인 결과가 바로 눈앞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한계’ 또한 명확하게 보여주고 말았네요. 바로 ‘단기전에서의 약점’입니다. 결국 로이스터는 이러한 점을 극복하지 못한 채 두 번의 도전을 모두 무위로 돌리고 말았습니다. 작년의 뼈아픈 패배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도전인 올해에도 유리한 상황에서 역전을 당했다는 것은 다시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겠네요.

로이스터는 분명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정규시즌부터 그러한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죠. 자신이 알고 있던 베이스볼에 ‘한국식 야구’의 특징이 점점 가미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9월의 선발 투수 운용은 로이스터가 어느 정도 한국 야구에 충분히 적응했음을 알려주기도 했지요.

그러나 최후의 관문인 포스트시즌에서는 ‘그 정도 수준의 적응’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특히 3차전과 4차전은 투수교체 타이밍이 너무나도 아쉬웠습니다.

3차전의 분수령이 된 2회, 1사 2,3루 상황에서 김현수를 고의사구로 거른 것은 ‘당연한’ 지시였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투수를 교체했어야 하는 타이밍이었죠. 이미 자신감을 상실한 투수에게 상대 4번 타자를 상대하게 한 것은 무리였습니다. 4차전에서도 배장호가 점수를 내주기 시작했다면, 그 순간 곧바로 투수를 바꿔서 흐름을 끊어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물론 가장 큰 잘못은 조성환에게 있지만, 좀 더 일찍 투수를 바꿔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준플레이오프는 133경기가 아니라 5전 3선승제니까요.

이러한 부분은 로이스터만이 아니라 ‘선발 투수를 믿고’ 경기를 이끌어가는 메이저리그식 야구가 단기전에서 안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죠. WBC 준결승에서 베네수엘라 감독이 ‘지면 끝’인 경기에서도 얻어터지고 있는 선발투수 카를로스 실바를 바꾸지 않고 있다가 우리나라에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어처구니없이 패한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아쉽게도 로이스터 감독이 그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말았네요. 지난해의 패배를 교훈삼아 ‘한국 야구의 단기전 승부 법칙’을 깨달았으면 싶었는데, 약간의 배움은 있었지만 완전히 마스터할 수는 없었나 봅니다.

아쉽게도 로이스터의 한국 무대 도전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팀을 2년 연속 4강에 올려놓은 것은 놀라운 업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한국 야구에서의 포스트시즌이 의미하는 바를 로이스터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30분의 8이기에 포스트시즌 진출 자체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메이저리그와, 8분의 4이기에 우승만이 의미를 지니는 한국 야구의 차이를 말이지요.

지금의 방식으로는 정규시즌 1위에 오를 전력을 보유하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한다 하더라도, KIA나 SK를 상대로 단기전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면에서는 양 쪽의 장점을 취합하여 보여주고 있는 김경문 감독의 수완이 새삼 대단해 보였습니다.(타자운용은 미국식, 투수운용은 한국식)

과연 로이스터 감독의 모습을 내년에도 볼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그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현재로서는 장담할 수 없겠네요. 다만, 그의 야구가 보여준 또 하나의 ‘꿈’만큼은 모두가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로이스터가 추구한 ‘선수를 믿고, 선수가 하는 야구’야 말로 스포테인먼트로 진화하기 위해 프로야구가 지향해야할 방향이라고 저는 믿고 있으니까요.

로이스터 감독 이하 롯데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전부, 2009년 한 해에도 너무나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도 우승을 향한 갈매기의 도전이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그 수장이 누가 되건, 지금의 색깔을 어느 정도 유지한 채 약간의 단기전 스킬만 가미할 수 있다면, 롯데라는 팀은 최소 몇 년 동안은 늘 4강권에 이름을 올릴 강팀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우승을 향한 그 날까지, 모든 갈매기들 파이팅!!

[사진출처=Osen.co.kr]

// 카이져 김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