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etc...

PIFF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해변에서 잠을 잔 이유는?

by 카이져 김홍석 2009. 10. 11.

지난 8일부터 시작된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지금 한창입니다. 저 역시 <TNM미디어>의 몇 안 되는 정식기자(라고 쓰고 그냥 ‘일개 블로거’라고 읽습니다)로서 프레스 배지를 발급받았습니다. 그 덕에 최근 해운대와 남포동을 누비며 영화제 취재(라고 쓰고 ‘구경’이라고 읽습니다)에 푹 빠져 있지요.

개막식은 8일 오후 7시부터였지만, 실제 일정은 그보다 조금 더 이른 오후 1시 30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개막작인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기자시사와 기자회견이 먼저 열렸거든요. 우선 언론 기자들을 대상으로 먼저 영화를 공개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취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죠.

기자시사가 열리는 상영관으로 향하던 도중 약 20여명 가량 되어 보이는 ‘아줌마’들이 진을 치고 앉아서 수다 떠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멀리서 지켜보며 이상한 느낌을 살짝 받았는데, 가까이 가보니 모두 일본 분들이시더군요. 아무래도 한류스타를 비롯한 세계적인 스타를 보기 위해 일부러 PIFF 일정에 맞추어 관광을 오신 분들 같았습니다.

아마도 그 일본인 아줌마들이 거기에 앉아 있었던 이유는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주인공이자 최고의 한류 스타 가운데 한 명인 장동건을 보기 위해서인 것 같더군요. 기자시사의 경우는 일반인들이 잘 알 수도 없는 건데 어떻게 알고 찾아오신 건지, 정말 그 열정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야 시사회가 시작하기 전에 상영관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 분들이 장동건을 실제로 만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의지만으로도 그들의 ‘동건 사랑’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10일에는 저녁에 해운대 그랜드 호텔에 볼 일이 있어서 찾아갔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특이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더군요. 이미 시간은 저녁 9시를 향하고 있었는데,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대부분 여성)이 호텔 현관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습니다. 간간히 우리말도 들렸지만, 역시나 대부분은 일본인 관광객들이더군요.

그랜드 호텔은 PIFF에 참여하는 게스트, 즉 감독과 배우들이 묶는 곳이죠. 저녁이 되어 일정을 마치면 그들은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가집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노린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헬기를 타고 호텔 옥상에 내리는 것은 아니니까요. 어차피 그들도 현관 앞에서 차를 내려 걸어갈 수밖에 없고, 그 찰나의 시간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다가도 호텔 입구로 차가 한 대 들어오면 모두의 시선이 그쪽을 향하더군요. 제가 그들을 지켜본 10여분 동안은 잘 알려진 스타가 들어오지 않아서인지 차에서 누군가 내릴 때마다 실망스런 표정으로 다시 자기들만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이었지만, 잘 알려진 스타가 차에서 내려 그를 보게 되었을 때 관광객들이 느낄 감동과 환희는 대충이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영화제 전반부 3일의 일정 가운데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한류스타 이병현, 헐리우드의 스타 조쉬 하트넷, 일본의 인기남 기무라 타쿠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나는 비와 함께 간다>의 야외무대 오픈 토크 행사였습니다.

예상대로 해운대 해변가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그 3명의 스타를 보기 위해 애를 썼는데요. 프레스 배지를 무기삼아 진입이 차단된 곳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는 저를 향한 질투 어린 시선들이 뒤통수를 찌르더군요. 평소 연예인들을 자주 보는 여성 기자들조차도 그들 세 명의 스타가 등장하자 비명을 지를 정도였으니, 일반인들이야 오죽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또 놀라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10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이 행사를 위해 어떤 분들은 아예 9일 밤부터 그곳 해변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미리부터 좋은 자리를 잡아 스타들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였죠. 그렇게까지 열정을 보이신 팬들 중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상당수를 차지했다는 소리를 영화제 관계자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작년 최대의 이슈였던 <놈놈놈>의 오픈 토크 행사 때 비슷한 광경을 직접 목격했던 저였기에, 충분히 짐작이 가더군요. 해운대에서 열리는 영화제의 굵직한 행사마다 가장 좋은 자리를 잡고 스타들을 가까이서 느끼는 분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멀리 관광오신 아줌마 팬들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리 ‘한류스타’라는 말을 해도 실감이 잘 안 났었는데, 작년부터 영화제 취재를 실제로 해보니 그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되더군요. ‘아시아의 별’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걸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그 일본인 관광객들은 일부러 부산을 찾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네요. 오히려 부산 시민들이 PIFF의 진짜 가치를 잘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그들의 열의와 정성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사진=PIFF 홈페이지]

// 카이져 김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