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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로이스터마저 ‘12초 룰’을 꺼리는 이유는?

by 카이져 김홍석 2010. 3. 9.

지난 3 4 KBO는 규칙위원회 회의를 열고 몇몇 규칙의 개정과 경기 스피드업 관련 사항에 대한 내용을 심의하고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5일 발표했는데요. 시범경기가 한창인 지금 벌써부터 스피드업 규정 가운데 하나인 12초 룰’을 두고 말들이 많더군요.

 

지난해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경기당 평균 소요시간은 무려 3시간 22분으로 역대 최장시간을 기록했습니다. 보통 2시간 45~50분 사이인 미국 메이저리그는 물론, 3시간 10분을 넘지 않는 일본에 비해서도 상당히 긴 시간이지요. 이 점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이런 문제점을 자각했기 때문에 KBO는 지난해부터 공수교대 시간을 2분 이내로 제한하고, 전광판을 통해 시간을 표시하게 하는 등 스피드업과 관련된 규칙을 계속해서 강조해왔죠.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기시간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으니 허탈할 뿐이지요. 결국 KBO는 ‘12초 룰의 엄격한 적용’이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었습니다.

 

사실 이 ‘12초 룰’이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지만, 현장에서 그것을 지키려고도, 적용하려고도 하지 않아 유명무실해진 규칙이었을 뿐이죠. 한국야구위원회의 경기규칙 8 4항에는 분명히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8.04 루에 주자가 없을 때 투수는 공을 받은 후 12초 이내에 타자에게 투구하여야 한다. 투수가 이 규칙을 위반하여 경기를 지연시킬 경우 주심은 볼을 선고한다. 이 규칙의 취지는 불필요한 지연을 막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심판원은 다음 사항을 강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수의 명백한 지연행위가 있을 때는 지체없이 볼을 선고한다.

① 투구를 잡은 포수는 곧 투수에게 다시 던질 것.

② 또 이것을 잡은 투수는 곧 투수판을 밟고 투구위치에 설 것.

 

그 동안 한국야구는 이러한 규정이 있음에도 애써 무시해왔습니다. 규정에는 분명 투수가 공을 받은 후부터 12초 이내에 투구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투수와 타자가 모든 예비 동작을 마친 후 서로의 눈을 마주친 후부터 12초가 새로 주어지는 것처럼 보였죠. 다시 말해 박한이가 그 기나긴 예비동작을 다 마치고 타석에 들어서서 확실하게 자세를 잡은 후부터, 투수가 포수의 사인에 몇 번이나 고개를 흔들고 나서 겨우 합의점을 찾고 투수판을 밟은 후부터 12초가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규정에는 분명히 ‘투수가 공을 받는 후부터’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KBO는 그러한 규정을 올해부터 엄격하게 지키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관련된 주요 내용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개의 항목을 시행규칙으로 발표했습니다.

 

a) 루상에 주자가 있을 때 투수가 타자 타이밍을 뺏는 지연 행위 시 주심이 판단하여 타임선언 후 첫번째는 주의, 두번째 경고, 세번째는 보크로 판정함.

b) 주자가 없을 때 투수가 12초 이내에 투구하지 않을 경우 주심은 첫번째는 경고 두번째부터 볼로 판정한다. 시간 계측을 위하여 2루심에게 초시계를 휴대시키며 2루심의 계측은 타자가 타석에서 준비되었을 때 시작되며 계측이 끝나는 시점은 투수가 자유족을 드는 순간으로 함.

 

취지는 좋습니다. 그리고 경기시간 단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프로 스포츠가 성공하기 위한 제1의 조건은 방송중계의 확대이고, 공중파에서의 야구중계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평균 경기시간이 3시간 이내로 진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또한, 야구장을 찾는 직장인들의 편의를 위해서도 경기시간 단축은 필수조건입니다. 경기시간이 3시간 이내로 줄어든다면, 현행 오후 6 30분인 평일 경기 시간을 7시로 조금 미루는 것이 가능해지죠. 그것은 곧 관중의 증가와도 직결됩니다.

 

때문에 우리나라 프로야구도 지난 2003년부터 경기시간 단축을 위한 이런저런 노력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하지만 2004년의 3시간 8분을 끝으로 3시간 10분대 이하로 경기 시간이 줄어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요. 게다가 작년에는 최장시간 기록을 세우고 말았습니다. KBO에서 ‘12초룰의 엄격한 적용’을 내세운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일부 현장 지도자들은 ‘현장의 의견을 무시한 처사’라며 비난하기도 하지만, 애초부터 존재했던 룰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것이 자기들 자신이라는 점을 잊어선 곤란하겠지요. 기존의 규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조금이라도 했더라면 상황이 이토록 악화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어찌되었건 이번 스피드업 규정의 강화로 인해 경기 내적으로도 많은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12초 룰에 적용하는 선수는 투수든 타자든 성적 면에서 큰 향상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매우 고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야구의 경험이 있는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할 확률이 높은 반면, 국내 선수들 중 일부는 심각한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겠지요.

 

감독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습니다. 물론 감독들이야 자신들 팀 사정에 따라 유리하다 싶으면 ‘좋은 규칙’이라고 하고, 불리하다 싶으면 ‘현장 무시’라고 말하기 일쑤니 그들의 의견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들이니까요.

 

하지만 메이저리그식 야구를 추구하는 로이스터 감독마저 “12초 룰을 어길 때마다 경고를 주면 투수의 흐름이 끊기고 밸런스가 무너진다”고 말하며 다소간의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12초 룰의 적용에 따라 가장 큰 혜택을 보게 될 지도 모르는 팀이 바로 롯데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지요.

 

개인적으로는 12초 룰의 적용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볼 선수로 송승준과 손민한, 그리고 가르시아를 꼽고 싶습니다. 손민한은 원래부터 인터벌이 짧은 편이고, 마이너리그에서 오래도록 수업한 송승준도 빠른 템포의 투구를 하는 편이지요. 상대 투수와의 심리전이 짧아진다면 가르시아로서는 나쁠 것이 없습니다.

 

로이스터 감독의 부임 이후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빠른 템포의 야구를 구사한 롯데이기에 지금의 변화로 인한 영향을 가장 덜 받고, 제일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로이스터 감독마저 우려를 나타냈으니 이는 조금은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미국에도 투수의 인터벌 규정이 있습니다. ‘투수가 포수로부터 공을 받은 후부터 12초 이내’로 우리나라와 같습니다. 20초와 15초를 거쳐 2년 전부터 12초 룰을 실전에서 적용하고 있지요.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간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큰 무리없이 적용되었습니다. 일본은 15초룰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15초 룰만 제대로 적용되도 경기시간은 크게 줄어들지요.

 

작년 포스트시즌에 너무나도 경기시간이 길다는 생각이 들어 투수들의 인터벌을 재본 적이 있습니다. 투수들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지긴 했지만 보통 17~22초 사이에 형성이 되더군요. 포스트시즌이라 더 심했는지 몰라도, 덕분에 매 경기마다 4시간이 넘는 지루한 경기를 봐야만 했습니다. 정규시즌에는 그보다 조금 더 짧겠지만, 과연 저 정도의 시간을 한꺼번에 12초 이내로 단축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인터벌 규정이 조금 강화된다고 해서 경기 수준이 질적으로 저하되거나, 타자 혹은 투수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적응 여부에 따라 손해를 보거나 이득을 보는 선수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것이 경기 자체의 재미를 떨어뜨릴 이유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무엇이든 일장일단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기준이 ‘12초’라면 좀 문제가 될 여지가 크다고 봅니다. KBO의 이번 결정에는 ‘최종 목표로 이행하는 중간 단계’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미 12초가 규칙으로 명기되어 있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겠지만, 그 동안 실전에서 15초도 지켜지지 않던 상황에서 12초 룰의 올바른 적용이 과연 가능할까요?

 

메이저리그 감독 출신인 로이스터마저 부담스럽게 생각할 정도라면 12초 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굳이 12초가 아닌 15초만 제대로 지켜져도 경기시간은 대폭 줄어들 것이 확실하니까요.

 

12초 룰이 올 시즌 프로야구의 판도 변화와 경기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무척 기대가 되는군요. 물론 현재로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다소 앞서지만 말입니다.

 

참고로 이번에 KBO에서 발표한 경기 스피드업과 관련된 나머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c) 투수가 로진을 과다하게 묻히는 행위에 대하여 첫번째 경고, 두번째 부터는 볼로 판정함.

d) 대기 타자석에 나올 수 있는 선수는 타자석에 서있는 선수의 다음타자 만으로 제한함.

e) 경기중 불펜에 나와있는 인원은 최대 6, 대기타석에 나와있는 인원은 타격코치를 포함하여 최대 3명으로 함 → 삭제

f) 스트라이크존 확대 → 타자의 몸쪽과 바깥쪽에 공 반개 정도 확대

g) 선수 교체시 감독이 주심에게 통보

h) 타자석에서 너무 늦은 타임은 받지 말 것(투수가 자유족을 들었을 때, 주심은 타자석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i) 비디오 판독 후 최종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시 감독에게 퇴장을 명할 수 있음.

j) 경기중 1,3루 주루코치 스톱워치 사용금지

k) 주심의 판단에 따라 투톤칼라 또는 색이 있는 글러브도 착용할 수 있음.

l) 클리닝타임을 폐지하고 3,5,7회 간단한 그라운드 정리를 실시함.

m) 감독, 코치, 선수들이 심판을 비난하는 행위에 강력 제재조치

 

// 카이져 김홍석[사진=롯데 자이언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