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초부터 시작된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한창입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18일 현재 8승 1패로 단연 1위를 달리고 있는데요. 5연승 다음에 KIA에게 일격을 당했지만, 그 후 다시 3연승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계속 원정만 다니던 롯데는 지난 16일부터 홈인 사직에서의 6연전에 돌입했는데요. 18일까지 3경기 모두 일반 관중의 신분으로 경기장에 다녀왔습니다.
본적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시범경기는 시범경기 나름의 재미가 있죠. 굳이 승부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경기가 매우 빠른 템포로 진행된다는 점, 그리고 무료로 입장해 평소에는 비싼 돈을 주지 않으면 앉을 수 없는 자리에서 좋은 전망으로 경기를 즐길 수 있다는 점 등이지요. 오후 1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시끄러운 응원보다는 경기 자체에 집중하길 원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죠. 선수들의 기량을 확인하며 올 시즌의 전망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구요.
롯데는 지금 현재 모든 면에서 최고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9경기에서 50점(팀타율 .304)을 뽑았고 실점은 21점만 허용(팀방어율 2.02)했습니다. 팀 홈런도 11개나 되지요. 득점-실점-홈런 모두 8개 구단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수준의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지요.
현재 시범경기에서 규정타석(경기수X3.1)을 채운 선수가 29명입니다. 하지만 그 중 롯데 선수는 홍성흔 단 한 명입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롯데 선수들이 너무 잘해서 경기마다 3번째 타석에 들어서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죠. 보통 첫 두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면서 고감도 타격감을 자랑하니 5회 이후에는 후보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사직을 찾은 팬들조차 “기혁이 저거 미친거 아냐?”라고 할 정도로 고감도 타격감을 자랑하고 있는 박기혁(18타수 12안타)을 비롯해, 홈런왕 이대호(19타수 9안타 4홈런), 김주찬(16타수 10안타), 조성환(20타수 9안타) 등은 식지 않는 방망이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기대주인 손아섭(21타수 7안타), 전준우(17타수 6안타)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 ‘12초 룰’의 최대 피해자는 홍성흔?
그런데 이런 롯데 타선 가운데 유일하게 힘을 내지 못하고 있는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유일하게 규정타석을 채운 홍성흔인데요. 지금까지 28타수 4안타로 1할대의 빈타(.143)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홈런 없이 타점만 달랑 하나, 반면 삼진은 5번이나 당했습니다. 출루율은 딱 2할이고, 장타율도 .179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기대에 부응해주지 못하니 로이스터 감독이 다른 선수로 교체하지 못하고 계속 기회를 주는 것인데요. 함께 부진하던 가르시아(22타수 6안타 .273)가 18일 경기에서 2안타를 때려내며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 것에 비해 홍포의 방망이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습니다.
현재 홍성흔은 지난해에 재미를 톡톡히 본 ‘갈매기 타법’을 버리고 거포로의 변신을 위해 타격 자세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아직 그 자세에 익숙해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들 홍성흔이 타석에 들어서면 먼저 취하던 특유의 자세(위 사진 참조)를 기억하실 겁니다. 홍성흔은 타석에 들어서면 항상 두세 번의 연습 스윙과 더불어 오른손으로는 홈플레이트의 끝을, 방망이를 든 왼손으로는 1루쪽을 가리키는 특이한 행동을 했었죠. 마치 특별한 ‘의식’이라도 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헌데 올 시즌부터는 그러한 사전 행동을 할 시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바로 ‘12초 룰’ 때문인데요. 이것은 투수만이 아니라 타자에게도 타석에서의 빠른 움직임을 요구합니다. 덕분에 홍성흔은 작년처럼 느긋하게 자신만의 의식을 치를 시간을 가질 수 없게 됐습니다. 두세 번은 기본으로 그러한 행동을 했었던 것이, 지금은 한 번 취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자칫하다간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에서 상대 투수의 공이 날아올 수 있거든요.
지난해 홍성흔이 엄청난 타격을 보여줄 수 있었던 원인이 바로 저 ‘의식’에 있었다면, 그 의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게 된 올 시즌은 고전할 수밖에 없다는 다소 재미난 결론이 나오는데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12초 룰의 최대 피해자는 투수들이 아니라 홍성흔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참고로 타석에서 시간 끌기로 유명한 삼성의 박한이도 지금까지 25타수 6안타, 타율 .240으로 별로 성적이 좋지 못하네요)
▶ 기대해도 좋은 라이언 사도스키
롯데의 첫 사직경기였던 16일 LG전에는 새 외국인 선수 라이언 사도스키가 등판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피칭을 보여주더군요. 소프트뱅크와의 교류전에서 보여준 피칭 때문에 일찌감치 기대를 하고 있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굉장하더군요. LG 타자들이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녹화된 경기화면을 다시 확인했는데요. 역시나 경기장에서 느꼈던 위력이 TV 화면을 통해서도 그대로 나타나더군요. 타자의 몸 쪽에서 그처럼 예리하게 떨어지는 싱커는 아무나 던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어쩌면 사도스키야말로 넓어진 스트라이크 존의 이점을 가장 잘 살리는 투수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15승 이상을 기대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17일과 18일에 나온 장원준과 송승준의 컨디션도 매우 좋아 보였습니다. 장원준은 5이닝 2실점, 송승준은 6이닝 3실점하며 각각 승리를 챙겼는데요. 송승준은 5회까지 시범경기 8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다 6회 2사후 2명의 주자를 내보낸 후 이숭용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해 무실점 행진이 깨졌습니다. 하지만 이는 박준서(로 이름 바꾼 박남섭)의 실책성 수비로 인한 결과였죠. 채감상 느껴지는 그의 자책점은 여전히 ‘제로’였습니다. 그만큼 구위가 좋았습니다. 특히 직구!
재작년과 작년 모두 롯데는 3명의 투수(송승준-장원준-손민한/조정훈)가 선발진을 지켜왔는데요. 올해는 아마 사도스키-장원준-송승준이 그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명우와 이용훈 등이 조정훈과 손민한이 부상에서 돌아올 때까지 잘 버텨준다면 6월 이후로는 KIA보다도 더 막강한 선발진이 가동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되더군요.
▶ 어르신들을 소외시키는 인터넷 예매제도
시범경기를 찾은 관중들의 특징은 어르신들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옆에 앉으셨던 어르신께 “평소에도 야구 보러 자주 오세요?”라고 여쭤봤는데요. “아니 평소에는 이렇게 못 오지”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야구 좋아하시면 올해는 자주 보러 오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어르신께서는 씁쓸한 표정으로 “표 구하기가 어려워서…”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말씀을 좀 나눠봤는데요, 알고 봤더니 그 어르신은 예전에는 꽤나 많은 경기를 보러 오셨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못하답니다. 바로 인터넷 예매제도 때문인데요. 예전에는 일부러 일찍 경기장에 찾아 오셔서 표를 끊고 친구분들과 근처에서 시간을 보낸 후 경기를 보곤 하셨는데, 인터넷 예매제도가 시작된 이후로는 그게 힘들어졌다고 하시더군요.
실제로 인터넷 예매제도가 시작된 이후 사직구장을 찾으시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시야가 가장 안좋은 외야석에 몰려 계십니다. 인터넷은 사용하실 줄도 모르고, 경기장에 일찍 와서 표를 사려고 해도 남아 있는 표의 대부분이 외야석이기 때문인데요. 결과적으로 인터넷 예매가 오랜 팬이신 어르신 분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고 만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랬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살기가 편해진 것이지 좋아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어르신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딱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모처럼 전망이 좋은 좌석에 앉으셔서 시범경기를 즐기는 어르신들을 보고 있으니 왠지 제가 다 미안해지더군요. 사실 그분들은 항상 가장 좋고 편안한 자리에 계셔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를 해결할 만한 좋은 방법은 없을까요? 모처럼 3일 연속 경기장을 찾아 겨우내 참아왔던 야구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는 좋은 시간들이었지만, 가슴 한 켠으로는 씁쓸한 기분이 남아버렸습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