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이 주제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3년째 이 부탁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3년째 그의 몸에는 별다른 이상 징후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그의 미래가 불안하게 느껴집니다. 과연 ‘괴물’ 류현진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제 기량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류현진은 올 시즌 5경기에 등판해 4승 무패 평균자책 2.13의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5경기 모두 7이닝 이상을 소화했고, 3자책 이하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지요. 한 시즌의 시작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겁니다. 팀의 9승 가운데 4승을 홀로 책임졌습니다. 한화 타선이 리그에서 가장 약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고무적인 성과입니다.
하지만 그의 어깨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류현진은 5경기에서 최소 115구 이상을 던지며 총 595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22일 삼성 전에서는 128구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경기당 평균 투구수는 119개, 데뷔 이후 가장 많은 공을 매 경기마다 던지고 있습니다.
사실 류현진은 이닝당 투구수가 적은 투수가 아닙니다. 단지 많이 던지기 때문에 오랜 이닝을 소화하는 것이죠. 피안타율은 2할대 중반이고, 9이닝 기준 볼넷 허용개수도 3개에 이릅니다. 구위도 좋지만, 그런 구위로 타자를 윽박지르기 보다는 경기 전체의 흐름을 읽고 운영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이지요. 데뷔 이후 계속해서 ‘어린 나이답지 않은 피칭’이라는 소리를 들은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이닝이터는 올 시즌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한 로이 할러데이입니다. 올 시즌 5경기에 등판해 4승 1패 평균자책 1.80의 환상적인 성적을 기록하고 있지요. 5경기에서의 총 투구이닝이 무려 40이닝으로 평균 8이닝에 달합니다. 두 번의 완투 경기가 있었고 그 중 한 번은 완봉승이었죠. 실제로 할러데이는 9번의 완투를 기록한 시즌만 세 번이나 될 정도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이닝이터입니다.
하지만 그 할러데이의 올 시즌 경기당 평균 투구수는 류현진만큼 많지 않습니다. 할러데이는 올 시즌 5경기에서 평균 103개를 던졌을 뿐입니다. 류현진보다 2이닝을 더 던졌지만, 총 투구수는 80개나 적습니다. 이 선수야말로 ‘이닝이터’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선수지요. 2002년부터 매년 경기당 평균 7이닝 이상을 던지고 있으면서도 경기당 평균 투구수는 102개에 불과합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의 3년 동안 할러데이가 120구 이상을 던진 회수는 총 97경기 가운데 고작 6번밖에 되지 않습니다. 헌데 같은 기간 동안 84경기에 출장한 류현진은 무려 22번이나 됩니다. 같은 기간 동안 둘의 경기당 평균 투구수는 할러데이가 106개, 류현진이 106.7개로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할러데이가 꾸준히 100~110구 사이의 투구수를 유지한 반면, 류현진은 평균 100개를 던지다가도 4경기에 한번 꼴로 120개가 넘는 많은 공을 던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비슷한 투구수를 기록하더라도 항상 비슷한 투구수를 유지하는 할러데이에 비해, 가끔씩 무리를 하곤 하는 류현진은 혹사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할러데이는 올해 33살의 베테랑으로 이제는 투구수에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입니다. 실제로 할러데이의 소속팀 감독은 그가 풀타임 선발로 활약하기 시작한 2002년부터 29살이었던 2006년까지의 경기당 평균 투구수를 100개 미만으로 조절해주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30세가 된 2007년 이후로는 투구수가 다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별 탈 없이 좋은 피칭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류현진은 만 19세였던 2006년부터 계속해서 혹사에 가까울 정도의 투구수를 기록해 온 선수입니다. 게다가 120구 이상의 많은 공을 던지는 일도 빈번했지요. 공격 중에는 대부분 투수가 벤치에 앉아서 쉬는 메이저리그와 달리, 한국 야구는 공격 중에도 연습투구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요소를 모두 포함하면 류현진은 20대 초반의 나이에 너무나도 많은 무리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는 박정환 기자(당시 스포츠서울닷컴)가 2007년 9월에 작성한 칼럼의 일부를 인용한 것입니다.(원문링크)
'많은 이닝 소화가 혹사를 유발한다'는 전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만고불멸의 진리와 큰 차이가 없다. 류현진이 혹사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이닝도 이닝이지만 어리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그간의 예에서도 충분히 증명이 된다.
박정현은 최초로 만 20세 이하의 나이에 200회를 투구한 선수다. 1969년생인 박정현은 만 20세던 1989년 242.2 이닝을 던졌다. 1992년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1993년부터 은퇴 시즌까지 박정현은 8년간 평균 36.0 이닝 투구에 그쳤다. 이 기간 방어율은 4.66. 1992년 만 19세로 204.2 이닝을 소화한 염종석은 첫 수술을 받은 1995년 이후 11년간 평균 106.2 이닝 방어율 4.15의 평범한 투수가 됐다.
주형광은 유일하게 만 20세 이하 때 2년 연속 200회를 넘긴 투수다. 만 18세인 1994년에 데뷔한 주형광은 만 20세까지 3년간 평균 200회가 넘는 603.2 이닝을 기록란에 새겼다. 이후의 성적은 11년간 820.2 이닝에 방어율 4.77. 프로 14년차지만 여전히 젊은 나이(만 31세)로 창창한 주형광의 현재 보직은 중간계투다.
류현진 이전 가장 최근 만 20세 이하의 나이에 200회 투구로 희생된 선수는 SK 와이번스의 이승호다. (2001년 220.2 이닝) 프로 첫 3년간 이승호는 503.0 이닝을 투구했지만 이후 3년은 269.2 이닝에 만족해야 했다. 게다가 이승호는 2005년을 끝으로 1군 마운드를 밟지 못하고 있다. 이승호의 신분은 임의탈퇴 선수다.
류현진은 주형광 이후 역대 2번째로 만 20세 이하의 나이로 2년 연속 200이닝을 던진 선수입니다. 게다가 투구수도 8~90년대를 방불케 할 만큼 상당히 많았지요. 그의 평균자책점이 ‘2.23-2.94-3.31-3.57’로 매년 높아지고 있으며, 반대로 승수는 ‘18-17-14-13승’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지금까지 잘 던지고 있는 걸로 봐서 류현진은 위에 앞선 4명의 선배들보다는 확실히 내구성이 좋은 투수입니다. 하지만 그 특출남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요. 게다가 류현진가 같은 과체중의 선수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이 되면 급격한 체력 저하와 더불어 기량이 쇠퇴하곤 합니다. 지금부터 꾸준한 보호를 해주지 않는다면 당장 1년 후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상당수의 팬분들은 “8~90년대에는 아무리 많이 던져도 괜찮았다. 그놈의 혹사 소리 좀 그만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럴 순 없지요.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자주 예로 드는 ‘은퇴한 회장님’ 송진우가 30세가 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200이닝을 소화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신 분은 많지 않더군요. 20대에 비교적 어깨를 보호할 수 있었기에 송진우라는 철인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겁니다.
또한, 당시와 비교했을 때 투수들의 기술 발달이 50이라면, 타자들의 기술 발달은 100, 아니 200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투수들은 단지 기량을 닦을 수밖에 없었던 반면, 타자들은 각종 보호대 등이 생겨나면서 몸 쪽 공의 공포로부터 일정부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세계 야구계를 강타한 타고투저의 열풍은 이런 부분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80년대에는 만취한 선동열이 완봉승을 거둘 수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야구가 발전했다는 뜻이지요.
개인적으로는 김인식 감독님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분의 성품이나 지도력, 그리고 경기를 풀어가는 방식 등이 너무 마음에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단 한가지 섭섭하게 느껴졌던 것이 바로 류현진에 대한 투구수 관리였습니다. 감독님이 선수 시절 투수 출신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웠지요. 올해 감독이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질 줄 알았으나, 오히려 그 정도가 심해진 것을 보니 한대화 감독 역시 타자 출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전 류현진이 마쓰자카보다 더 좋은 투수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그가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 한국 프로야구의 위상을 드높이길 바라고 있기도 하지요. 사실 박찬호와 추신수는 ‘한국 프로야구’가 낳은 스타는 아니니까요. 때문에 언젠가는 한국 프로야구 출신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성공해주길 바라고 있고, 그 후보 1순위로 류현진을 꼽고 싶습니다.
헌데 가능할까요? 류현진이 정말 철인 28호일까요? 120개가 넘는 공을 마구 뿌려대면서도 그의 어깨가 버텨낼 수 있을까요?
한대화 감독님, 제발 부탁입니다. 류현진의 어깨를 보호해 주십시오. 모든 야구 팬들의 한결 같은 소망입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한화 이글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홈페이지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