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오심은 ‘번복의 대상’이 아닌 ‘반성의 대상’이다

by 카이져 김홍석 2010. 6. 5.

메이저리그에서 사상 초유의 오심 사태가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투수 아만도 갈라라가(28)가 퍼펙트게임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던 상황에서 심판의 오심으로 인해 대기록 달성이 무위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죠. 스스로의 호투와 야수들의 절묘한 수비로 만들어지고 있었던 대기록이 최후의 순간에 터져 나온 1루심의 오심으로 인해 허공으로 날아가버렸습니다.(관련기사 링크)

 

오심만 아니었더라면 갈라라가는 퍼펙트게임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죠. 야구에서의 모든 플레이는 심판의 판정이 내려짐으로써 그것의 정체성이 부여됩니다. , 심판의 판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확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으며, 심판이 그것을 세이프로 판정한 이상 그 타구는 안타입니다.

 

이것은 번복될 가능성도 없고, 번복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지에서도 백악관까지 나서며 오심의 정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이를 애써 무시하고 있는 상황이죠. 갈라라가에게는 무척 아쉬운 일이겠지만, 만약 이번 일을 계기로 판정이 번복되고 기록이 수정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나쁜 선례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심은반성의 대상일뿐번복의 대상이 되어선 곤란합니다. 아무리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심판의 판정 역시 야구의 일부분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야구라는 스포츠는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죠. 야구뿐만이 아니라 축구를 비롯한 각종 구기 스포츠는 대부분 비슷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비디오 판독이 확대 적용되거나 하면, 스포츠의 순수성만 해치게 될 뿐입니다.

 

다들 알고 계신 것처럼 야구는 처음부터공평함과는 아주 거리가 먼 스포츠죠. 이날 경기에서도 디트로이트의 외야수 오스틴 잭슨이 펜스 쪽을 바라보고 달려가면서 등 뒤에서 떨어지는 플라이 볼을 잡지 않았더라면 퍼펙트는 일찌감치 깨졌을 겁니다. 그런 타구를 실력으로 잡을 수 있는 수비수가 과연 존재하긴 할까요?

 

잭슨이 그 타구를 잡은 것은 실력이라기 보다는 그 순간의 운에 의해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갈라라가의 퍼펙트가 이어졌던 것도 이처럼 수많은실력이 결합된 결과였던 셈이죠. 야구가 육상이나 수영 같이 철저한공평함공정함속에 치러지는 기록경기였다면, 27명의 타자를 모조리 삼진으로 잡아내지 않는 한 퍼펙트란 기록은 애당초 요원한 일이었을 겁니다.

 

사실, 문제의 1루심은 이 경기에서 또 하나의 결정적인 오심을 저질렀었습니다. 8회 땅볼을 때리고 1루로 달려간 자니 데이먼을 세이프로 판정한 것이죠. 자신이 서 있던 위치에서는 유독 그렇게 보였는지 몰라도, 퍼펙트가 깨졌을 당시의 판정과 거의 유사한 상황이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공수가 교대되었어야 할 상황에서 디트로이트의 공격이 이어졌고, 이어서 나온 매글리오 오도네즈의 적시타로 1-0이었던 스코어가 3-0으로 벌어졌지요. 과연 갈라라가가 1-0인 채로 9회를 맞이했어도 그토록 침착한 피칭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한만약이란 가정이 부질없는 일이듯, 퍼펙트에 대한만약도 이미 지나간 버스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야구팬들은 오심이 사라지길 바랍니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도 마찬가지죠. 심지어, 심판들 스스로도 오심이 발생하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겁니다. 그 누구도 오심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지요.

 

비디오 판독을 확대하면 오심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이죠! 줄일 수는 있겠지만, 사라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홈런 타구를 비디오로 판독한다는 것도 100%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죠. TV 중계 카메라로 펜스를 넘어가는 홈런 타구를 정확하게 잡아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다른 모든 상황에서 비디오 판독을 한다고 하여 그것이 100% 정확한 판정이라고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이번처럼 명확하게 아웃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면 몰라도, 공과 발이 거의 동시에 글러브와 베이스에 도착하는 경우에는 어떤 판정을 내려야 할까요? 정말 1억 분의 1초 차이도 없는 완벽한 동시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분명 공이나 발, 둘 중 어느 것 하나가 먼저 도착하기 마련이죠. 비디오 판독으로 그걸 잡아낼 수 있나요? 그런 상황에서는 비디오를 본 심판의 판단에 맡긴다고 규칙을 정하면, 그것은 결국 또 하나의 오류의 가능성을 남길 뿐입니다. 그렇다고 정확한 판정을 위해 모든 야구장에 초고속 카메라를 설치하거나, 모든 공과 베이스, 글러브에 정밀 센서를 장착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결국 심판의 오심은반성의 대상으로서 야구라는 스포츠가 안고 가야만 하는 숙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야구는 기록의 우열을 가리는 스포츠가 아니라, 상대방과의 승부를 내기 위한 스포츠이니까요. 무엇보다 야구는 심판의 콜로 시작해서, 모든 플레이 하나하나가 심판의 판정으로 그 정체성이 부여되는 스포츠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심 자체를 인정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심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미 나온 오심에 대해서는반성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 시즌을 치르는 동안 볼 판정과 관련된 사건이 참으로 많았죠.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는 오심과 관련된 불평도 참 많이 나왔습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오심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논란이 일어날 테고, 그 중에는 이번처럼 심각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팬들은 명백한 심판의 오심임이 밝혀지면 그것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가해야 합니다. 팬들은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질책의 목적은 어디까지나오심을 줄이기 위한 것이어야 하지, 심판이란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곤란합니다. 그것은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이번 메이저리그에서 벌어진 퍼펙트를 깨버린 잘못된 판정은 오심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사건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오심은반성의 대상이지번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물론, 오심이 나왔을 때 그것을 돌이켜보고 반성하여 앞으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는 심판들의 최우선적인 노력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P.S. 갈라라가의 퍼펙트는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겠지만, 팬들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달성된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환상이 되어 버린 그의 퍼펙트게임은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9이닝 퍼펙트(10회 깨짐)와 하비 해딕스의 12이닝 퍼펙트(13회 깨짐)와 더불어비공식 3대 퍼펙트게임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아쉽겠지만, 자신의 이름이 역사 속에 더 뚜렷하게 남는다는 점에서 너무 억울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메이저리그 홈페이지 캡쳐]


#재밌게 보셨다면 아래의 View On 추천 버튼을 꼭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