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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 Sports

[월드컵] 그래, 모든 건 박주영 때문이다!!

by 카이져 김홍석 2010. 6. 18.

1986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첫 골을 넣어줄 선수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단 한 골도 넣지 못하며 고개를 숙인 선수가 있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국민들의 실망도 컸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한국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기억되고 있으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독일의 팬들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중 한 명으로 그 뚜렷한 자취를 남겼습니다. 비록 골은 넣지 못했지만, 86년 월드컵 당시 그 선수가 항상 2~3명의 수비수를 이끌고 다니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나는군요. 그 선수의 이름은 차범근입니다.

 

대학시절부터 한국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리던 선수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순혈 최전방 스트라이커라며 각광을 받았었지요. 좋은 체격 조건과 기술까지 겸비했다는 평가를 들으며, 차범근의 뒤를 잇는 최고의 공격수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팬들은 언제나 골을 넣지 못한다는 이유로, 잦은 부상에 시달린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하고 욕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수는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텼습니다. 그리고 30대 중반의 노장이 되어 출장한 2002년 월드컵, 그는 첫 경기였던 폴란드 전에서 전반 선취 결승골을 넣으며 한국이 4강에 진출할 수 있는 귀중한 첫 걸음을 내딛게 만들었습니다. 그 선수의 이름은 황선홍입니다.

 

90년대 중후반 대표팀 경기에서 항상 슛만 차면 골대 위 하늘 높이 공을 날려버리던 선수가 있었습니다. 팬들은 그를 심하게 비난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홈런왕 OOO’이라는 안티카페까지 만들어 그 선수 욕하기에 열을 올렸었죠. 그러나 그 선수는 한국 선수들이 절망의 끝에서 투혼을 불사르며 희망을 보여준 98년 월드컵 벨기에 전에서 동점골을 터뜨리며, 이후 시작된 한국 축구의 부흥기에 불을 당긴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도 한국 축구의 든든한 중원 사령탑으로 활약했고, 특히 폴란드 전에서는 후반 쐐기골을 터뜨리며 한국의 월드컵 사상 첫 승에 기여하기도 했지요. 그 선수의 이름은 유상철입니다.

 

2002년 월드컵 조별 예선 내내 한국 팬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선수가 있습니다. 사이드 공격수로 풀타임을 뛰었지만, 골을 넣기는커녕 계속해서 찬스를 무위로 돌리는 바람에 팬들은 차라리 그 선수를 빼고 다른 선수를 투입하라며 키보드 앞에서 온갖 욕을 쏟아 냈습니다. 그러나 그 선수는 우리나라의 탈락이 눈앞에 보이고 있던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종료 직전에 귀중한 동점골을 넣으며 전국민을 환희와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습니다. 그 선수의 이름은 설기현입니다.

 

월드컵을 1년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부임,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체력훈련만 죽어라 시키던 감독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5-0으로 패하더니, 3개월 후 이번에는 체코와의 평가전에서도 5-0으로 지면서 언론과 팬들로부터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요. 하지만 월드컵을 한달 앞둔 시점에서 그를 향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마지막 평가전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경기력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지요. 결국 그는 한국 대표팀을 사상 첫 16강 진출은 물론, 더 나아가 4강까지 끌어 올리며 국민감독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감독의 이름은 거스 히딩크입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치고는 비교적 작은 키와 만족스럽지 못한 체격조건,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떨어지는 제공 능력 때문에 원 톱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을 받은 선수가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그토록 많은 골을 넣으며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렸지만, 팬들은 그를 향해 국내용이라 비아냥거리기 일쑤였고, 그가 유럽 무대에 진출하자 주제에 무슨 유럽이냐라며 그의 노력을 비웃었지요. 그러나 그 선수는 크지 않은 키에도 2002년 월드컵에서 헤딩으로만 소중한 두 골을 넣으며 한국의 4강 진출에 큰 공헌을 세웠습니다. 2006년 월드컵에서도 토고 전의 결승골을 넣어 월드컵에서만 3골을 넣은 반지의 제왕으로 등극했지요. 그 선수의 이름은 안정환입니다.


축구천재라 불리며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주역으로 기대를 모았던 박주영. 이번 월드컵에서는 그가 주요 타켓이 되고 있습니다. 첫 경기인 그리스 전에서는 전방에서 제공권 장악에 큰 기여를 하면서 수비수들을 끌고 다녔지만, 골을 넣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른 선수들 모두가 칭찬받는 동안에도 홀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두 번째 시합인 아르헨티나전에서는 자책골로 상대의 선취점을 올려주고 말았지요. 키보드 워리어들에게 더 좋은 빌미를 제공하고 만 것입니다.

 

, 맞습니다. 모든 건 박주영의 잘못입니다. 맘껏 욕하십시오. 한국이 아르헨티나 전에서 진 것도, 16강 진출 가능성이 대폭 낮아진 것도 그로 인해 당신의 기분이 나빠진 것도 모두 박주영의 탓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당신이 취직을 못하는 것도, 찌질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 워리어질이나 하고 있는 것도, MB가 언론을 장악하려 하는 것도, 당신이 부자가 아닌 것도, 우리나라가 분단되고, 툭하면 북한과 분쟁을 겪는 것도 모두 박주영 탓입니다.

 

아니, 설사 그것들이 박주영 탓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시원하게 맘껏 욕할 대상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던가요? 모든 문제와 억울한 것들의 한을 한껏 담아서 박주영을 욕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숱한 악플과 근거 없는 루머로 인해 몇몇 연예인을 자살로 몰아간 살인자들이 바로 당신들 아닙니까. 이번에는 박주영이 좋은 먹이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좋은가요? 맘껏 물어 뜯고 그를 나락으로 몰고 갑시다.


물론 박주영 본인은 당신들 같은 키보드 워리어들에겐 관심도 없을 겁니다.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뿐이겠지요. 그리고 언젠가는 그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물론, 그 때도 당신들은 박주영의 과거를 들먹이며 그의 활약을 비웃겠지요. 당신들은 겨우 그 정도에 불과하니까요.

 

 

P.S. 최전방 공격수인 그가 수비를 하기 위해 골대 앞까지 내려와 있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선수에게 가려 공을 볼 수도 없는 위치였습니다. 그 누가 되었건 그 위치에 있었다면 자책골을 넣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의 위치선정이 특별히 잘못되었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제가 여기서 팔을 한 번 휘둘렀더니 그게 나비효과처럼 커지더니 남미에 해일이 일어나 십만 명이 죽었다 칩시다. 그게 제 탓입니까?

 

// 카이져 김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