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는 전반기를 60승 28패, 승률 .682의 엄청난 성적으로 마감했다. 올스타 휴식기를 앞둔 마지막 2경기에서 연패를 당하는 바람에 마무리가 다소 깔끔하지 못했던 게 아쉽지만, 그래도 2위 삼성 라이온즈와는 무려 7.5게임 차. 그야말로 '절대강자'라는 표현에 부족함이 없는 화려한 질주였다.
SK는 팀간 상대전적에서도 2위 삼성(7승8패)에게만 살짝 근소하게 뒤졌을 뿐, 나머지 6개 구단을 상대로는 모두 우위를 점하며 고른 성적을 보였다. 특히 '엘롯기'로 불리는 LG(9승 1패), 롯데(10승 2패), KIA(11승 2패)를 대상으로는 무자비하게 승수를 쓸어 담으며 천적관계를 과시했다. 역대 페넌트레이스에서 60승 고지를 먼저 돌파한 팀의 한국시리즈 직행 확률은 무려 62％나 된다. 김성근 감독은 당초 목표했던 페넌트레이스 82승을 넘어 최대 90승까지로 목표를 상향조정했고, 지금의 분위기는 그것도 그다지 어려운 목표가 아닐 것만 같다.
사실 SK의 강세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독주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도 많지 않았다. 윤길현과 채병용이라는 불펜의 주축 투수 두명이 군에 입대했고, 김광현, 전병두, 정대현 등 상당수가 시즌 초반 개점휴업 상태였을 만큼 전력누수가 심했다. 하지만 SK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상황일수록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끈질기게 승리를 쟁취하는 투쟁심을 보여줬다.
SK의 야구를 말하려면 역시 야신 김성근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팀이 잘나가고 승차가 벌어진 상황이면 짐짓 여유를 부릴법한데, 김성근 감독은 단 한 순간도 방심하는 법이 없다.
"우린 아직 멀었다. 오히려 지금이 위기다. 그때그때 고비를 잘 넘기고 있는 것뿐이다. 갈 길이 멀다."라며 끊임없이 선수단을 독려한다. 그토록 많이 이겨왔음에도 김성근 감독과 SK 선수들에게는 여전히 승리에 대한 갈증과 굶주림이 느껴진다. 김성근 감독은 SK가 강한 원동력으로 ‘철저한 준비’를 꼽는다.
"내실을 살펴보면 SK는 선수 개개인이 화려한 팀은 결코 아니다. 사실 SK가 상대를 쉽게 압도해서 이기는 경기는 많지 않다. 우리가 잘나가는 것 같지만 실질적인 전력의 차는 크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 차이를 승리로 만드는 것은 바로 집중력이다. 이러한 집중력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을 통하여 어떤 상황에서든 미리 준비되어있어야 한다."
이것이 김성근 감독의 지론이다. 말이 쉽지, 그러한 집중력을 언제든 발휘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김성근 감독이니까, 그리고 그러한 김성근 감독과 지난 몇 년 동안 함께 해온 SK 선수들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박경완이나 김광현, 이승호, 정근우 같은 선수들이 SK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들이 빠진다고 SK가 약해질까?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박경완과 김광현이라는 차-포를 다 떼고도 베스트 전력의 KIA와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연출했던 SK다. "선수가 없어서 야구를 못한다." 혹은 "운이 없어서 졌다."는 식의 핑계도 김성근 감독에게는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이야기'일뿐이다.
SK를 상대하는 팀들은 하나같이 그 집요함에 혀를 내두른다. 유난히 SK의 승리행진의 제물이 많이 되었던 롯데나 LG는 물론이고, 올 시즌 SK에게 잦은 역전패를 당하며 16연패 악몽의 서막을 알렸던 KIA 팬들은 SK만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실제로 SK와의 시합에서 충분히 해볼만한 승부를 펼치다가도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막상 붙어보면 생각만큼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꼭 SK쪽으로 기운다. 똑같이 전력을 분석하고 연구해도, SK에게는 유독 경기의 흐름을 집어내는 능력이 있다.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흐름을 빼앗는 모습이, 물론 잘하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얄미울 정도다."
물론 SK에게도 약점은 있다. 겉보기에는 순탄한 질주를 이어오는 것 같지만, 그 가운데는 전반기 혹사당한 이승호와 정우람이 과부하에 걸릴 위험이 항상 상주하고 있다. 타선은 뽑을 점수는 잘 뽑아주지만 지난해까지와는 달리 상-하위 타선을 가리지 않던 고른 응집력은 다소 떨어진 느낌이다. 1진과 2진의 격차가 없는 것이 최대의 장점이었던 SK 야구에 있어서, 올해처럼 베스트멤버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김성근 감독이 전반기 독주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않고 선수들을 끊임없이 몰아치는 이유도 알고 보면 여기에 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자칫 마음을 놓을 경우, SK만의 장점이던 집중력과 근성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승리를 갈구하고, 자신들을 끊임없이 채찍질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SK가 강한 것은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모두 융화되어 팀의 힘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팀이 보여주는 집요함이야말로 김성근 감독과 SK 야구의 매력이기도 하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제공=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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