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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아름답지 못한 양준혁의 은퇴, 코 끝이 찡하다...

by 카이져 김홍석 2010. 7. 27.


올 시즌은 올스타전을 전후로 하여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들이 연이어서 터지는군요. 게다가 이번에 전해진 소식은 너무나 아쉬움이 커,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코 끝이 찡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신이라는 호칭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양준혁(41)이 끝내 현역에서의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전해진 올 시즌 후 은퇴하겠다는 내용은 일순간 사람을 멍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내용을 확인한 순간, 머리 속이 텅 빈 느낌이 들어 모든 일손을 놓고 한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야구를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과거에도 이런 일은 종종 있었습니다. ‘롯데의 심장이었던 박정태가 은퇴했을 때도 그랬고, 메이저리그의 그렉 매덕스나 제프 베그웰이 은퇴를 선언했을 때도 비슷한 공허함을 느낀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들은 모두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고 아끼던 선수들이었습니다. 사실 양준혁은 그 범주에 속하는 선수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런 느낌을 받다니요, 새삼 그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양준혁의 은퇴는 그와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소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관련된 소식을 접하면 접할수록, 코 끝이 찡해져 오는 이 느낌, 너무나 싫군요. 또 한 명의 레전드를 이렇게 떠나 보내야 한다는 현실을 납득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의 은퇴 소식에 제가 이렇게 감정적이 될 줄은 미쳐 몰랐네요.

 

그가 7 1일 롯데와의 경기에 9회말 대타로 나와 끝내기 1타점 2루타를 때린 것이 그의 2318번째이자 마지막 안타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올스타전에서 쏘아 올린 3점 홈런이 그가 선수로서 팬들에게 선물하는 마지막 홈런이 되겠네요. 양준혁이 3점 홈런을 쏘아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9년 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박찬호를 상대로 홈런을 쳤던 칼 립켄 주니어를 떠올리신 분들이 분명 계셨을 겁니다. 양준혁이 홈런을 터뜨리는 순간부터 이상하게도 립켄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되더니만, 결국 이렇게 은퇴를 선언하고 마는군요.

 

일각에선 양준혁의 선택을 두고 아름다운 은퇴라고 표현하더군요. 아름다운 은퇴라... 글쎄요, 전 양준혁의 이번 은퇴 선언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말로 포장을 하더라도 그의 은퇴 선언이 ‘100% 순수한 자신의 의지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양준혁이 은퇴를 선언하는 배경이 자신의 기량이 더 이상 프로에서 통하지 않을 수준으로까지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팬들 모두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는 불과 사흘 전, 올스타전에서 홈런을 친 선수입니다. 5 16일까지만 하더라도 시즌 3할 타율을 유지하고 있었지요. 이후 대타요원이 되면서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어 타율이 .252까지 하락했지만, 출루율은 여전히 .387이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규정타석의 50%이상을 소화한 선수들 가운데 20위에 해당하는 준수한 기록이지요. 당장 작년만 해도 .990의 높은 OPS를 기록했던 선수입니다. 과연 기량이 모자란 것일까요, 아니면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은 것일까요?

 

얼마 전 자메이카 출신의 여자 스프린터인 멀린 오티가 만 50(60년생)의 나이로 슬로베니아 400m 계주 대표로 선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나이에 아직도 대표팀으로 활약할 수 있는 기량을 유지하고 있고, 또 현역으로 뛸 의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고 아름답다고 느껴졌습니다.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제이미 모이어는 올 시즌 9 9패 방어율 4.84의 나름 준수한 성적을 기록 중이었으나, 팔꿈치 부상을 당하면서 복귀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만약 시즌 아웃이 된다면, 이대로 은퇴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요. 올 시즌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령 완봉승을 달성하기도 한 모이어는 1962 11월생으로 삼성 선동열 감독보다도 2달 먼저 태어난 만 48세의 노장입니다.

 

모이어가 이대로 은퇴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 아름다운 은퇴가 아닐런지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본 후, 더 이상 기량을 발휘할 수 없는 정도까지 모든 것을 불사른 후의 은퇴. 그 누구의 강요도, 그 어떤 외압도 없이 순전히 그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스스로의 물러남. 그것이야 말로 진정 아름답다고 표현될 수 있는 레전드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오티가 대표팀에 뽑힐 수 있는 기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발위원들이 당신은 나이가 많아서 안돼라고 했다면 그녀의 최고령 대표 기록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겁니다. 또한, 오티가 스스로 선수생활을 이어갈 의지가 없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양준혁은 아직 현역으로 뛸 수 있는 기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나이가 많으니 이제 후배들에게 길을 좀 터줘야겠어라는 소리를 2~3년 전부터 계속해서 들어왔습니다. 그가 자신의 선수생활에 대해 어떠한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지난 겨울 천하무적 야구단에 출연했을 때 한 말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지요. 홈런 신기록을 작성했을 때, 그리고 2,000안타를 때렸을 때, 그런 기록을 세울 때마다 양준혁의 시선은 이미 그 다음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대체 그 무엇이 그의 시선을 꺾고, 질주를 멈추게 했을까요. 말이 좋아 원한다면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도록 조건 없이 풀어주겠다, 그건 결국 푸른 유니폼을 입고 십 수년 동안 그라운드를 누벼온 그에게 더 이상 삼성맨으로 뛸 수 없다는 최후통첩과도 같은 말이 아닌가 말입니다.

 

양준혁의 은퇴가 100% 자신의 의지로 이루어진 선택이었다면, 이토록 그의 은퇴가 아쉽게 느껴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지금의 이 현실이 사태를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조용한 분노를 느끼게 만드는군요. 감히 그 누가 있어 현재의 한국 프로야구를 만들어 온 한 명의 위대한 선수에게 은퇴를 종용할 수 있단 말입니까.

 

KIA에서 이종범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야구 팬들은 이미 많은 아쉬움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그랬기에 지난해 한국 시리즈에서 보여준 이종범의 활약은 팬들에게 통쾌함마저 느끼게 해주었지요. 올 시즌 삼성이 우승을 한다면, 그 이면에는 분명 양준혁의 알토란 같은 활약이 뒷받침된 결과일 것이라고 내심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그 양준혁이 시즌 중간에 전열에서 이탈하고 말았네요. 과연 올 시즌 삼성이 우승할 수 있을까요?

 

구단의 입장에선 어차피 비슷한 기량이라면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양준혁보다는 수천만원을 받는 어린 선수를 키우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앞으로를 위해서나 더 나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팬들에게 있어 양준혁의 현역 시절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수십억과도 바꿀 수 없는 크나큰 행복이라는 것을 왜 몰라주는 것일까요.

 

100% 자신의 의지가 아니기에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 양준혁의 은퇴 선언. 선수 생활 내내 선수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선수협 결성을 주도한 것 외에는 사소한 문제 하나 일으키지 않으며 타의 모범이 되었던 양준혁이기에 아마도 구단과의 더 이상의 마찰을 원치 않고 이런 선택을 한 것이겠지요. 그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그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한 이들을 향한 팬들의 분노는 대체 어찌 감당하려는지 모르겠네요.

 

양준혁 선수, 그 동안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당신은 한국 프로야구의 과거이고 현재이자 곧 역사였습니다. MVP나 홈런왕 한 번 수상한 적 없기에 무관의 제왕이라 불릴지 몰라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업적이 더욱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그 동안 정말 정말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열어갈 제2의 야구인생에도 무한한 축복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기록제공=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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