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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LG 사태로 생각해 본 운동선수의 '표현의 자유'

by 카이져 김홍석 2010. 8. 7.

공인에게 적용되는 표현의 자유란 무엇일까요? 아니, 그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봐야 할 것이 있군요. 과연 운동선수를 공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운동선수가 구단의 처우나 감독의 전술에 대해 이의가 있을 때, 이를 언론을 통한 직접적인 코멘트나 사적인 공간을 통하여 언급하는 것은 과연 표현의 자유일까요, 아니면 단체생활의 룰을 위배하는 무책임한 행동일까요?

 

올 시즌 LG 트윈스는 유독 인터넷에서의 설화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박종훈 감독을 비롯하여 이형종, 서승화, 봉중근과 그의 부인, 그리고 은퇴한 전 LG 투수 이상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관계자들이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상처를 주고받아야 했지요. 그리고 이것은 LG의 지리멸렬한 팀워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남아 팬들에게도 씁쓸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결국 가장 크게 상처 받은 것은 다름아닌 LG의 팬들이었죠.

 

LG 박종훈 감독은 최근 선수단에 대하여 시즌 중에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선수 본인이나 선수와 관련된 지인들이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서 올린 글이 결과적으로 팀 내부사정을 외부로 발설하고 의도하지 않은 논란을 일파만파로 확산시켜 팀 분위기를 흐리고 있는데 대한 질책성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자칫 운동선수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구시대적인 규제방식이 될 수도 있음을 우려합니다. 실제로 그러한 조치를 두고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는 없겠지요. 내부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선수들 스스로가 지켰어야 할 암묵적인 룰을 위배한 상황에서 나온 어쩔 수 없는 조치인 셈이니까요.

 

사실 박종훈 감독이 처음부터 선수들의 의사표현을 제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시즌 초반에 3년차 투수 이형종이나 에이스 봉중근의 부인이 박종훈 감독의 선수기용에 불만을 품고 비판적인 글을 올려 파문이 일어났을 때도 박종훈 감독은 오히려 선수들을 끌어안거나 먼저 사과하면서 이들을 감싸 안았었죠. “선수들도 사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시할 수 있는 것은 자유다.”라는 개방적인 생각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그런 박종훈 감독의 대인배적인 성격과 유연한 대처는 언론과 팬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도 좋았었죠. 이형종은 뉘우치는 마음(?)으로 1군에 올라와 롯데전에서 수준급 피칭을 보여주며 개인 첫 승을 거두었고, 봉중근도 다시 1군에 복귀한 후 계속해서 좋은 투구를 함으로서 팀을 4강 경쟁으로 이끌었으니까요. 그때까지는 박종훈 감독의 저러한 대처가 오히려 흩어졌던 팀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후반기 시작과 함께 이형종과 서승화가 또다시 물의를 일으키자 박종훈 감독의 인내도 한계에 부딪혀버린 것 같네요. 특히 서승화가 2군 행을 통보 받고 자신의 홈페이지에 '야구 그만두겠다'는 식의 글을 남기며 또다시 항명 논란을 일으킨 것이 결정타였습니다.

 

서승화는 순간의 화를 이기지 못하여 경솔한 행동을 저질렀다며 사과했지만, 이번에는 박종훈 감독도 싸늘한 반응을 감출 수 없었나 봅니다. "인터넷에 자기 기분대로 글을 툭 남기는 행동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이기적인 행동이다. 자신으로 인해 구단과 동료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면 무책임한 짓이 아닌가"라고 반문했을 정도지요.

 

미니홈피는 개인의 사적인 공간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운동선수나 연예인 같은 유명인들에게는 미니홈피가 단순히 개인의 공간을 넘어 팬과 언론을 연결하는 소통의 매개체가 되기도 하죠. 운동선수를 좁은 의미에서 보면 공인이라고 할 순 없겠지요. 하지만 최근 들어 그 공인이라 불리는 대상이 유명인으로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운동선수들도 그들의 언행이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할 때 공인에 근접한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지도자와 선수, 선후배간의 수직적 상하관계에 익숙한 한국과 달리, 서구에서는 운동선수들도 지도자와 선수가 격 없이 의견을 나눌 만큼 개방적입니다. 선수라 할지라도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소신껏 밝힐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죠.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이라 할지라도 감독의 고유권한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항명하거나, 사적인 부분이라 할지라도 팀의 내부사정을 외부로 언급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시즌 중에도 미니홈피나 트위터, 블로그 등을 통하여 팬-언론과 소통하지만, 선수단이나 리그 자체의 규정상 위배되는 언행을 했을 때는 제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메이저리그에는 클럽하우스 안에서의 일을 외부로 유출하지 마라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기고 언론이나 자신의 블로그 등에서 말을 함부로 쏟아내는 선수는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내야만 합니다. 팬이나 동료 선수들도 그렇게 함부로 떠벌리고 다니는 선수를 좋아하지 않지요. 특히, 한국처럼 감독의 권한과 역할이 큰 경우에는 더더욱 지켜져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얼마 전 양신양준혁이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수많은 팬들은 그것이 선동열 감독의 선수 기용 방식에 의해 설 자리가 좁아진 양준혁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양준혁 본인은 그 수많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단 한 번도 선동열 감독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양준혁은 어디까지나 후배들에게 길을 내주기 위해 은퇴를 결심했다는 말만 반복했을 뿐이지요. 그 전에도 자신의 출장 기회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섭섭함을 조금씩 내비치긴 했으나, 그것이 프로의 생리라며 젊은 선수들과의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구단이나 감독과 어느 정도 마찰을 일으켜도 팬들이 절대적으로 양준혁의 손을 들어줄 것이 분명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죠. 그렇게 묵묵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서승화나 이형종은 자신들이 양준혁처럼 될 수 없는 이유를 감독이 우리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양준혁처럼 될 수 없는 진짜 이유는 그들이 양준혁만큼 노력하지 않았고, 또한, 양준혁만큼 신중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당사자들은 몰랐다 보군요.

 

표현의 자유와 생각의 다양성은, 그에 걸 맞는 책임이 수반될 때 존중 받을 수 있습니다. 올 시즌 내내 LG 선수단을 괴롭히고 있는 인터넷 파문은, 권리만을 주장하고 의무와 책임을 망각한 몇몇 선수들의 치기가 만들어낸 아쉬운 결과물이죠. 물론, 자신의 방식을 선수들에게 관철시키지 못하고 이러한 불만을 자아내 지금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박종훈 감독도 그 책임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당장 올해뿐 아니라 내년에도 LG 4강 혹은 그 이상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자 한다면, 팀 내부적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다만, 이번 사태가 자칫 단체생활과 질서라는 명분으로 선수들이 일상적인 표현의 자유마저 제약하고 소통의 권리를 가로막는 부작용을 낳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강제적인 억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수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지키는 그들만의 룰이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 구사일생 이준목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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