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9/1),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가 전체 1순위로 뽑은 유창식(광주제일고)과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금은 무려 7억원, 역대 신인들 가운데 공동 2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얼마 전 LG 트윈스도 올해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뽑은 임찬규와 입단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금은 3억원이었는데요, 이는 지난해 전체 1순위였던 팀 선배 신정락과 같은 액수입니다. 올 시즌의 드래프트 수준이 작년보다 훨씬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역대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5억원 이상의 ‘억’ 소리 나는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특급 유망주’는 모두 16명, 이제 유창식이 이 대열에 합류하면서 17명이 되었네요. 문제는 이렇게 엄청난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선수들 중 그 기량을 프로 무대에서 제대로 발휘하며 팬과 구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선수는 정말 몇 안 된다는 점입니다. 과연 유창식은 이러한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앞서 8위부터 공동 10위까지의 9명의 선수는 살펴봤고, 이번에는 최상위인 1~7위(유창식 제외)를 살펴보려 합니다. 1편을 못 보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7위. 조용준(2002년, 순천효천고-연세대-현대-히어로즈) – 5억 4,000만원
사실 98학번 투수들은 고교시절에 크게 주목을 받거나 높은 평가를 받진 못했습니다. 1년 후배인 백차승(부산고)-봉중근(신일고)-송승준(경남고)의 80년생 트리오가 고교 1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모든 스카우터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죠. 조용준도 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대에 2차 지명 5라운드에 뽑혔던 선수로 ‘특급’과는 거리가 멀었죠. 하지만 98학번 선수들은 대학에 진학해 거기서 크게 성장했고, 그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강철민-서승화, 그리고 조용준이었습니다. 고교 1학년 때까지 내야수였던 조용준은 투수로서의 경험을 쌓을수록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한참이나 앞서 있던 동기생들을 모두 따라잡았죠. 프로 데뷔 이후 조용준의 모습은 모두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최고 140km/h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슬라이더를 무기로 ‘조라이더’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신인왕와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는 등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리그 최정상급 마무리로 활약했죠. 하지만 결국 슬라이더는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2005시즌 종료 후 어깨 수술을 했고, 그 결과 5년이 지난 현재도 1군에서 뛸 만한 구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 계약금이 결코 아깝지 않은 선수였지만, 그 이상으로 팬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긴 선수지요.
공동 5위. 유원상(2006년, 천안북일고-한화) – 5억 5,000만원
2006시즌 드래프트에 앞서 유원상은 ‘고교 빅3’ 중 한 명이었고, 그 중 실질적인 No.2로 평가 받고 있었습니다. 이후에 나오게 될 No.1에 대한 평가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그렇지, 유원상에 대한 평가도 굉장했지요. 같은 드래프트 동기생인 류현진은 저기에 포함되지도 못했을 정도로 말이지요. 1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 자리를 꿰차며 황금사자기 우승의 주역으로 떠오른 유원상은 유승안 전 한화 감독(현 경찰청 감독)의 아들로도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입단 과정에서부터 많은 잡음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당시 1차 우선 지명으로 유원상을 뽑긴 했지만 한화는 5억원까지는 줄 생각이 없었고, 유원상 측은 7억원 이상을 요구했었죠.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유승안 감독은 “메이저리그 구단과 접촉 중”이라는 발언으로 구단측을 뒤흔들었고, 그로 인해 팬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결국 자신들의 원하는 조건을 얻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유원상이 받은 저 계약금은 이글스 사상 최고액이지만, 사실은 7억원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데뷔 시즌에 5승을 거두면 5,000만원, 10승을 거두면 또 1억원, 이렇게 총 1억5,000만원의 추가 옵션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2006년에 1군에서 단 1이닝도 던지지 못한 유원상에게 저 옵션은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류현진에게 완전히 가려졌고, 이후 1군에 올라와서도 ‘볼넷 대마왕’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 통산 17승 27패 방어율 5.36의 기록을 남기고 있는 그는 한화 팬들의 애증의 대상이지요.
공동 5위. 성영훈(2009년, 덕수고-두산) – 5억 5,000만원
성영훈은 중학시절부터 크게 주목 받았던 선수로, 이미 오래 전부터 동기생들 중 최대어로 평가 받던 선수죠. 당시 2번째로 많은 계약금을 받았던 오지환(LG)과 김상수(삼성)가 받은 액수가 2억8,000만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성영훈에 대한 당시 평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미 덕수고 2학년 때부터 150km/h 이상의 공을 던지기 시작했고, 두산은 서둘러 그를 1차 지명으로 선택하여 팀 사상 두 번째로 많은 계약금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성영훈은 저 엄청난 구속에 비하면 다소 왜소한 체격 조건(180cm-85kg)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상반된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부산고 출신의 안태경의 잠재력을 더 높게 평가하기도 했었죠. 2학년 때까지 성영훈의 라이벌로 평가 받던 안태경은 3학년이 되어서는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텍사스 레인져스에서 80만 달러의 적지 않은 계약금을 주고 데려갔었습니다. 아직 성영훈이 1군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작년에는 시즌 초에 당한 부상 때문에 재활로 시간을 보냈고, 올해는 시즌 초 1군에 합류했지만,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2군으로 강등되었죠. 그리고 2군에서 처참하게 두들겨 맞으며 10점대 방어율을 기록 중입니다. 물론, 아직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선수임이 틀림 없습니다.
4위. 김명제(2005년, 휘문고-두산) – 6억원
병역 비리 파동으로 투수진에 구멍이 난 두산은 당시 1차 지명으로 고교최대어로 평가 받던 김명제를 선택하고, 구단 역사상 최고액인 6억원을 안겨주었습니다. 2차 1순위로 지명한 서동환까지 2명에게 무려 11억을 쏟아 부은 것이죠. 김경문 감독이 부임한 이후 첫 신인이었던 김명제는 그 만큼 팀 내에서 큰 주목을 받음과 더불어 가장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입단과 동시에 선발 자리가 주어졌고, 이후 2008년까지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매년 100이닝 이상을 투구했지만, 2006년에 11연패를 기록하는 등 전반적인 성적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동기생인 오승환, 윤석민, 최정, 정근우 등 김명제보다 한참 아래로 평가 받았던 동기생들이 타 팀의 중심 선수가 되어 맹활약하기 시작한 후에도 김명제는 여전히 ‘유망주’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리고 결국 지난해 연말, 음주운전 추락사고를 당해 아직도 재활 중에 있습니다. 복귀한다 해도 얼마간의 징계를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이며, 그 복귀 시점도 아직은 미지수이지요. 1군에서 통산 479이닝을 던졌고 22승 29패 방어율 4.81의 평범한 성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김명제 최고의 피칭은 2007년 플레이오프 3차전입니다. 당시 류현진과 맞대결을 펼친 김명제는 6.2이닝을 3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1.1이닝 동안 3점을 허용하고 조기 강판된 류현진을 꺾고 승리투수가 됐었죠. 두산 팬들이 아직도 김명제를 잊지 못하고,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당시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공동 2위. 임선동(1997년, 휘문고-연세대-LG-현대) – 7억원
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92학번 동기생들 중에는 유난히 ‘괴물’들이 많았습니다. 조성민, 손경수, 박찬호, 염종석, 정민철, 손혁, 차명주 등 정말 쟁쟁한 선수들이 한꺼번에 등장했던 시기였죠. 그 중에서도 임선동은 조성민과 더불어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경쟁했고, 엄밀히 좀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임선동은 9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LG에 선택되었으나, 연세대로 진학했습니다. 국가대표로 수많은 업적을 쌓은 임선동은 일본 프로야구 다이에 호크스로 진출하고 싶었으나, LG에서 지명권을 주장하는 바람에 2년 간의 법적 분쟁 끝에 결국 LG에 입단할 수박에 없었죠. 계약금으로 10억원을 요구했던 임선동은 당시로선 정말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7억원이라는 역대 최고액을 받고 프로 무대로 올라옵니다. 97년에 3.52의 방어율로 11승을 거두며 주목을 받았지만, 이듬해엔 1승 6패에 그치면서 현대로 트레이드 되었죠. 이후 김시진 투수코치를 만나며 임선동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혹독한 지옥훈련으로 살을 빼고 최상의 몸 상태로 2000시즌을 맞이한 임선동은 18승 4패 방어율 3.36의 좋은 성적으로 다승-탈삼진 타이틀과 더불어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까지 거머쥐죠. 하지만 김시진 코치의 시야에서 잠시 벗어났던 그 해 겨울 동안 무려 20kg 이상 다시 살이 쪘고, 그걸로 임선동의 선수 생활은 끝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화가 난 김시진 코치는 그를 포기했고, 자기관리에 실패한 임선동은 그렇게 나락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임선동은 2006년을 끝으로 프로 통산 130경기에 출장, 696.2이닝 투구, 52승 36패 방어율 4.50의 그저 그런 기록을 남긴 채 은퇴했습니다. 92학번 중에서도 빅3로 꼽혔던 임선동-조성민-손경수의 선수 생활은 여러모로 참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지요.
공동 2위. 김진우(2002년, 광주진흥고-KIA) – 7억원
바로 이번 글의 계기가 된 주인공이죠. 고교 2학년인 2000년 봉황대기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 선수상과 투수상을 독식, 이것이 진흥고의 ‘고교 4대 대회’에서의 첫 우승이었습니다. 3학년인 2001년에는 대통령배와 전국체전 우승, 청룡기 준우승을 견인하며 독보적인 고교랭킹 1위로 꼽혔습니다. 제 기억으로 신일고 재학 시절의 봉중근 이후로 이처럼 고교무대를 압도적으로 평정한 선수는 김진우가 처음이었습니다. 당연히 연고인 KIA는 김진우를 1차 지명으로 선택했고, 역대 최고액 타이인 7억원의 계약금으로 그를 붙잡았습니다. 데뷔 첫 해부터 무시무시한 강속구를 무기로 12승을 수확함과 더불어 탈삼진왕을 차지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지만, 신인왕은 대졸이었던 ‘조라이더’ 조용준에게 내주고 맙니다. 2년차였던 2003년에는 3점대 중반의 좋은 방어율로 11승(5패)을 거두는 등 중간에 부상으로 고생하긴 했지만, 2.69의 방어율로 10승을 거둔 2006년까지는 그런대로 좋은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2007년 초반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면서(18.1이닝동안 4사구 29개) 부진을 겪더니, 이내 무단으로 팀을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KIA는 김진우를 임의 탈퇴 선수로 공시했고, 이후 거듭되는 복귀 시도와 잠적으로 3년 넘게 말썽을 부렸죠. 얼마 전 공식적으로 KIA에 다시 합류하긴 했지만, 다시금 1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2007년 당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자 일각에서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라는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단순히 ‘훈련부족’에 의한 결과였죠. 앞으로는 20대 후반의 나이인 만큼, 좀 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1. 한기주 (2006년, 광주동성고-KIA) – 10억원
2006년에 입단한 신인들 중에서 유원상-나승현과 더불어 ‘고교 빅3’로 평가 받았던 주인공, 하지만 한기주는 그 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냈고, 일각에서는 ‘선동열 이후 최대어’라는 평가까지 망설이지 않았죠. 그만큼 한기주에 대한 평가와 기대는 엄청났었습니다. 1차 지명으로 한기주를 택한 KIA는 역대 최고액인 10억원을 안겨주며, 그의 성공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음을 나타냈죠. 실제로도 입단 이후 첫 3년 동안의 한기주는 매우 좋은 성적으로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첫 해에는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두 자릿수 승수를 챙겼고, 2년 차인 2007년부터는 마무리 투수로 변신해 팀의 뒷문을 든든하게 지켰죠. 하지만 정작 ‘선동열 이후 최고 투수’라는 수식어는 동기생인 ‘진짜 괴물’ 류현진이 가져갔고, 한기주는 어쩔 수 없이 류현진과 끊임없이 비교되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매번 부진한 투구로 팬들의 눈밖에 나고 말았죠. 금메달을 따면서 병역 혜택을 받긴 했지만, 그 때부터 팬들은 한기주를 향해 ‘한작가’ 혹은 ‘새가슴’이라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9시즌이 시작되자 프로 무대에서도 불을 지르기 시작하며 ‘불기주’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더해졌습니다. 결국 팀의 마무리 자리를 빼앗겼고, 시즌 종료 후 토미존 수술을 받고 현재 재활 중입니다. 하지만 한기주가 가지고 있는 재능은 여전히 훌륭하다고 봅니다. ‘팬들의 과도한 의해 망가진 선수’의 대표격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지난해의 부진은 부상 때문이었다고 본다면, 통산 2.88의 방어율을 기록 중인 한기주는 여전히 리그 정상급 투수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복귀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이지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한화 이글스, 넥센 히어로즈, 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기록제공=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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